- 연초 거래에서 출발한 담배, 파이프 담배로 시작된 디자인
- 궐련의 모태가 된 각련…한편에서는 호화 담배 케이스 유행
- 흡연 인구 늘린 세계대전…담배 디자인의 전설 럭키스트라이크
- 4각형 담뱃갑 디자인의 한계와 전자담배로 시작된 새로운 국면

편의점 계산대 점원의 뒤편에는 수십여종의 담배가 진열되어 있다. 같은 브랜드의 담배는 저마다 디자인적으로 아이덴티티를 계승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디자인의 담뱃갑 패키지 디자인 역시 수십여종이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은 물론, 길이와 넓이 등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종류는 정해져 있다. 최근에는 궐련형 전자담배용 스틱이 등장한 상태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는 궐련이다. 엄밀하게는 이 스틱 역시 궐련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접하는 담배산업의 디자인은 거의 대부분이 궐련인 것이다. 하지만 버리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원래 담배 케이스는 절대 싸구려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치품에 해당될 정도로 비쌌다. 이에 따라 화려한 문양과 값비싼 재질로 무장한 담배 케이스도 많았다. 지금도 유럽의 코담배 케이스는 고가의 선물 중 하나다. 최고급 시가를 담는 휴미더(Humidor)는 습도까지 조절한다.

 

습도계가 달린 시가 전용 케이스 휴미더(Humidor)
습도계가 달린 시가 전용 케이스 휴미더(Humidor)

 그렇다. 담배 디자인은 단순히 4각의 종이에 그림이나 문양을 넣는데 그치지 않고, 담배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해 왔다. 특히 기업들의 궐련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경쟁은 워낙 치열해 디자인 자체가 마케팅 수단의 일환이자 영업 수단으로까지 비중이 높다.

그렇다면 담배 디자인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담배 디자인의 시작은 ‘파이프’
개척 정신이 강한 유럽인들은 대항해시대(15세기 초부터 17세기)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즐겼던 담배를 처음 접하고 전 세계에 담배를 보급한 당사자들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린 담배를 담뱃잎으로 감싸 흡연하는 방식으로 담배를 즐겼다. 또 일부 원주민들은 속이 뚫려 있는 가지 등을 이용해 파이프 담배를 즐기기도 했다.

이때에는 담배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될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시장에서 건어물이나 나물을 구입할 때 그저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가져가듯 담배도 수확 후 말려 잘라 둔 연초를 압축해 거래했다. 누군가는 연초를 종이 등으로 감싸 팔았을 것이다. 담배 자체에 대한 디자인은 보잘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담배를 이용하는 기구에서 디자인이 발전했다.

바로 파이프 담배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유행했던 파이프 담배는 구경도 어려운 오늘날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우리나라의 곰방대와 같이 길쭉한 파이프를 이용해 담배를 즐겼지만, 유럽으로 전달되면서 굴곡이 들어간 유선형의 디자인이 가미됐다. 입에 닿는 물부리 부위를 높이고 담배를 넣는 대통까지 S자로 휘어진다. 특히 대통은 갈수록 커지고 물부리 부위는 좁아진다. 파이프 담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평소 콘콥 파이프를 즐겼다던 맥아더 장군
평소 콘콥 파이프를 즐겼다던 맥아더 장군

 하지만 파이프 담배가 꼭 나무로만 제작된 것은 아니다. 내열성이 강한 나무로 만든 파이프 담배가 가장 대중적이었지만, 옥수수대로 만든 콘콥 파이프, 해포석(미어샴)으로 만든 미어샴 파이프, 흙으로 빚어 만드는 점토 파이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미어샴 파이프는 가공이 쉬워 조각 작품 같은 문양이 가미되기도 했다.

 

또 파이프 담배는 모양에 따라 각기 다른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뽀빠이를 상징하는 강인한 인상의 직선형 L자 파이프, 신사를 상징하는 유럽의 전형적인 유선형 파이프, 실용성과 동양적 미가 강조됐던 우리나라의 공밤대와 같은 일자형 파이프, 미국에서는 인디언들의 평화의 파이프가 유명한데,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이 깃털과 끈을 이용해 장식했다.

 

“말아 피우면 그만” 궐련의 모태, 각련
파이프 담배와는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한 것이 페이퍼 담배, 우리나라 말로는 각련(지방세법 시행령 60조)이다. 말 그대로 연초를 종이로 말아 피우는 것이 각련이다. 지금도 전용 용지를 통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인구가 많다. 이를 롤링 타바코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는 대마초를 피우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시가와 다른 것은 담배를 담뱃잎으로 말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역시 디자인으로는 말할 것이 없다. 그저 담뱃잎을 종이로 동그랗게 말아 피우는 수준이기 때문에 오직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궐련의 모태가 바로 각련이라는 점에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먼저 각련을 도입했느냐는 알 길이 없다. 기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2015년 1월 1일부터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이 각련이 수제담배라는 이름으로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담배를 만드는 기구에서부터 브랜딩 방법까지 공유됐지만, 인상된 담뱃값에 적응한 이후에는 사라졌다.

사실 이 각련은 현재 4각형의 담배 패키지 디자인의 모태다. 가장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누군가 미리 말아두었다면 더 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이 각련을 대량으로 생산해 네모난 박스에 담아 판매하던 것이 현재 담배회사의 모태다. 담배회사들이 처음 상용화해 내놓은 궐련은 필터가 없었다. 최초의 필터 담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담배회사 중 하나인 필립모리스와 BAT(British American Tobacco)가 처음 필터를 사용한 궐련을 출시한 것을 최초의 필터 담배로 보는 시각도 있고, 현재는 필립모리스에 인수됐지만 캐나다의 듀모리에(du Maurier) 브랜드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개인을 넘어 기업화되면서 궐련 담배의 디자인 역사가 시작됐지만, 사실 이 보다 앞서 화려한 디자인이 도입된 분야가 있다. 바로 코담배다. 입담배라고도 불리는 코담배는 연초를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 코 속이나 잇몸 사이에 두고 담배를 즐기는 방법이다. 무연으로 담배를 즐기는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방법이다. 이 같은 코담배는 밀가루 입자와 같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용기가 필요했고, 이를 유행처럼 즐겼던 유럽의 귀족들로 인해 디자인이 발전했다.

 

호화스러운 코담배 케이스
호화스러운 코담배 케이스

 코담배 케이스와 이슬람을 대표하는 물담배
코담배(Snuff)는 담배가 유럽에 전해진 이후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품위가 없는 모습으로 인식한 귀족들로 인해 유행했다. 주로 상류층에서 즐겼던 것이 코담배이며, 이 코담배를 담아두는 용기(Snuff box)는 사치품 중 하나였다. 상류층들 간의 거래, 선물, 과시 등의 용도로 코담배 케이스가 유행했고, 이에 금, 은, 호박, 경옥, 대모갑, 상아, 유리, 도기 등 값비싼 재질을 이용한 공예품으로 제작됐다.

특히 유럽과의 교역을 통해 이 같은 코담배 케이스가 아시아에도 전해졌고,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코담배 케이스는 최고의 사치품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유럽 등에서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로 코담배 케이스가 애용되며 장식용으로써의 가치가 높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냥 보아도 이슬람이 느껴질 정도로 물담배는 이슬람의 상징이다.
그냥 보아도 이슬람이 느껴질 정도로 물담배는 이슬람의 상징이다.

 이에 반해 아시아에서는 물담배의 디자인이 이색적이다. 유럽으로부터 담배가 전해지기 전 중동에서는 마리화나를 물담배로 즐겼다. 후카(hookah)라고도 부르는 물담배는 페르시아에서 발명됐다는 설이 있으며, 가까운 이슬람권에서 유행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물담배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로까지 발전했다.

물담배가 이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로 취급되는 것은 물담배 하나에도 이슬람 특유의 양식들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이슬람 건축 양식 중 대표적인 것은 지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붕이 ㅅ 모양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지붕이 둥근 모양이다. 영어로는 일종의 돔(DOME)이다. 특히 이슬람의 전통적인 디자인 양식은 기하학적인 문양과 표현이다. 이 같은 디자인적 특징이 모두 물담배에 스며들어 있다.

 

로위가 디자인을 변경한 후 낸 럭키스트라이크 광고
로위가 디자인을 변경한 후 낸 럭키스트라이크 광고

 궐련 담배의 대유행, 전설적인 디자인
사실 담배는 유해성이 불거지기 전까지 약초라는 인식이 높았다.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문학과 기록에서 담배를 약으로 사용한 사례가 많다. 지금은 미성년자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과거에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많다. 아직까지도 중국의 소도시 등에서는 병을 고치겠다는 의도 등으로 어린아이에게 담배를 물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궐련이 빠르게 흡연자를 양산하게 된 원인을 전쟁에서 찾는 시각도 높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담배가 보급됐다. 러시아의 경우 코담배만 보급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국가에서 병사들에게 기존 담배회사의 양산 담배를 보급품으로 내려 보냈다.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흡연자가 크게 늘었다는 의견이 높다.

이 같은 사회적 배경은 디자인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럭키스트라이크다. 럭키스트라이크 담배의 디자이너는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ewy. 1893년 ~1986년)다. 로위는 프랑스 출생의 미국 디자이너로, 현재의 코카콜라병 등을 디자인해 미국을 디자인했다는 평가를 받는 유명 디자이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을 유선형으로 바꾼 인물이기도 하며, 1940년에 디자인된 럭키스트라이크 패키지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머릿속에 각인되는 담배 패키지 디자인으로 유명한 럭키스트라이크는 전쟁 때 유명해졌다. 디자인을 변경한 이후 “럭키스트라이크의 그린은 전쟁을 위해 떠났습니다”라는 카피를 사용해 애국심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선전 문구는 2차 세계대전 중 판매량을 20% 올리는 성과를 달성했고, 이 담배를 소지할 경우 죽을 수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로 유명해졌다. 럭키스트라이크의 성공 스토리 때문에 당시 담배회사들은 저마다 전쟁을 소재로 광고를 꾸몄다.

 

궐련 담배 패키지에 대한 또 하나의 전설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말보로(Marlboro)다. 말보로는 처음 출시 당시 여성들을 겨냥한 담배로 마케팅을 전개했다. 럭키스트라이크 등이 선점하고 있는 담배 시장에서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고, 1955년 광고대행사에서 서부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를 전면에 내세운 ‘말보로 맨’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담배를 보호하기 위해 말보로에 도입된 딱딱한 하드 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부 전체 뚜껑이 개폐되는 ‘플립탑(flip top)’을 대유행시킨 것이 말보로다.

 

담배 디자인의 위기…NEW 디자인 시대
오늘날 담배 디자인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각형의 궐련 담배가 이끌고 있다. 패키지의 기능적 디자인 역시 말보로의 하프 팩과 플립탑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다양한 규제들로 다양성을 잃었다. 이제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단순해졌고, 센세이션한 디자인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무엇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해성 경고 그림으로 인해 패키지 디자인의 한계까지 다가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패키지 디자인을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 다소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과 문구를 즐기는 변태 마초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최근 과거와 같은 디자인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담배 디자인이지만, 의외로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금 디자인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전자담배다.

전자담배는 구조가 의외로 간단하다. 입에 가져가는 물부리를 시작으로 액상을 넣고 열을 발생시켜 기화시키는 장치인 가토마이저, 가토마이저의 자원인 배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담배와 같이 둥글고 길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지만,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서 한 주먹에 다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손에 쥐어지고, 담배의 길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대 이 전자담배도 궐련형 전자담배가 등장하면서 모습이 바뀌고 있다. 아이코스, 글로, 릴로 대표되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궐련 스틱을 꼽아 담배를 찌워 피우는 것이다. 과거 필터가 없는 각련을 물부리에 끼워 피우는 것과 같이 궐련 담배를 꽂아 전자장치를 통해 즐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서 디자인이 변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궐련형 전자담배는 자동차와 같이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고 있다.

 

아이코스는 일반적인 전자담배의 모습과 같이 제작됐지만 충전기가 함께 따라다니며, 릴은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서 약간 두껍지만 심플한 디자인을 구현하고 있다. 모두 원 버튼으로 간편한 조작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아이코스와 릴이 상호 스틱을 호환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독자적인 길을 선택한 것이 글로다. 글로는 얇고 긴 궐련형 담배 스틱을 모두 감싸 열을 가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일반적인 전자담배 크기가 아닌 지프 라이터 정도의 크기로 배터리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애플의 홈 버튼과 같은 심플한 디자인을 가미했다.

더구나 앞으로 궐련형 전자담배는 더 다양한 종류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며, 담배 스틱의 종류도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성장성이 높기 때문에 사각형의 담뱃갑 디자인 경쟁에 국한되었던 담배 디자인 산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 어떤 형태로 발전해 나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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