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 기준 오는 2월 1일, 'WWE 로얄럼블 2021'이 열린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WWE는 1년 12달에 맞춰 PPV(Pay Per View)를 개최한다. 단, 2020년의 경우 8월에 '섬머슬램'과 '페이백' 2개가 개최됐다. 1월 '로얄럼블'은 WWE의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PPV며, 독특한 룰을 가진 '로얄럼블 매치'로 프로레슬링 이외 팬들의 시선도 이끈다.

'로얄럼블 매치'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3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처음에는 1·2번으로 등장한 선수 둘이서 경기를 시작한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선수가 등장하고 30번 선수까지 차례로 등장하여 경기에 참여한다. 탈락 방식은 일반적인 승패 방식인 핀폴과 서브미션이 아니라 3단 로프 위로 넘겨져 링 사이드 바닥에 두 발이 모두 닿으면 탈락된다. 이 과정은 자의적이어도 인정된다. 2단과 3단 로프 사이를 통과하여 떨어지거나, 한 발만 링 사이드 바닥에 닿으면 탈락되지 않는다. 결국 29번째 선수를 탈락시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선수가 '로얄럼블 매치'의 우승자가 된다.

▲ '로얄럼블 2021' 로고 (사진: WWE)
▲ '로얄럼블 2021' 로고 (사진: WWE)

1993년부터는 '로얄럼블 매치'의 우승자는 자신이 원하는 챔피언쉽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며, 그 경기는 3월 말 4월 초에 개최되는 WWE의 가장 크고 성대한 PPV '레슬매니아’에서 펼쳐진다. 

'로얄럼블 매치'에서 우승하고 '레슬매니아'에서 챔피언쉽을 획득하는 과정을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대관식'이라 부른다. WWE의 흥행을 책임즐 '탑 가이'가 될 재목을 '로얄럼블 매치'의 우승으로 확인하고 '레슬매니아'에서 챔피언이 됨으로써 당대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로얄럼블'은 1988년부터 시작하여 매해 1월 WWE에 소속돼있는 당대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한 링에서 볼 수 있는 '꽉 찬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상술했듯이, 최종 우승자를 통해 당대 프로레슬링 최고의 슈퍼스타는 누구인지 WWE만의 방식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횟수로 34회째를 맞이하는 '로얄럼블' 역사에 굵은 변곡점엔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며 '로얄럼블'을 심층 이해해보자. 그렇다면 '로얄럼블 2021'을 한껏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1991 : 헐크 호건, 최초 2년 연속 우승하다

▲ (사진: WWE)
▲ (사진: WWE)

프로레슬링의 그 자체가 돼버린 헐크 호건을 상징하는 명장면이 여럿 있다. ‘레슬매니아 3’에서 앙드레 더 자이언트에게 바디 슬램을 작렬하는 장면, 노란색과 빨간색을 벗고 흰색과 검은색의 악역 헐리우드 호건으로 턴힐(선역에서 악역으로 전환)하는 장면 등. 

또 하나가 미국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이다. 프로레슬링을 넘어 미국의 영웅이 자신임을 공표하는 듯한. 이 모습은 1991년 열린 30인 '로얄럼블 매치'를 우승하고 행했던 세레모니였다. 그냥 우승한 것도 아닌 1990년에 이어 WWE 역사상 최초 연속 2회 우승의 세레모니 였기에 더욱 드라마틱했고 프로레슬링 팬들의 기억에 오래 각인됐다.

부정할 수가 없다. 1990년대 초반 프로레슬링 부흥기를 이끈 주인공은 헐크 호건이었음을.
 

1994 : 초유의 공동우승 발생

▲ (사진: WWE)
▲ (사진: WWE)

상술했듯, '로얄럼블 매치'는 우승자가 1명 나와야 한다. 그런데 1994년 열린 '로얄럼블 매치’는 공식적으로 '공동 우승'으로 기록돼있다. 브렛 하트와 렉스 루거가 그 '공동 우승'의 주인공이었다. 

브렛 하트와 렉스 루거가 각각 파투와 애덤 밤을 탈락시킨 후 최후의 2인으로 남았다. 서로 해머링을 주고받다가 3단 로프를 넘어 두 선수의 발 4개가 동시에 링 사이드 바닥에 닿아버렸다. 심판진은 잠시 논의 끝에 두 선수를 '로얄럼블' 역사 상 초유의 공동 우승자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2명의 우승자가 생겨난 가운데, '로얄럼블'은 '레슬매니아'까지 이어지는 '대관식'의 전초전이라는데, 그 영광은 누구에게 주어졌을까? '대관식'의 주인공은 브렛 하트였다. 

당초 정해진 1994년 '로얄럼블 매치' 우승자는 렉스 루거였지만 사전에 렉스 루거가 외부에 각본을 누설해버리는 바람에 격노한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이 렉스 루거 단독 우승이 아닌 브렛 하트와의 공동 우승으로 변경했다. 

1994년 '로얄럼블' 이후 각본 진행에서도 렉스 루거는 중심에서 멀어졌고 브렛 하트만 WWE 챔피언 전선에서 활동하며 '레슬매니아 10'에서 당시 WWE 챔피언 요코즈나를 꺾으며 '대관식'의 주인공이 됐다.

 

1995 : 숀 마이클스, 1번으로 우승하다

▲ (사진: WWE)
▲ (사진: WWE)

30명이 참가하는 '특이한' 규칙을 가진 '로얄럼블 매치'는 평균적으로 대략 1시간 정도의 경기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어느 정도 각본이 가미된 프로레슬링이지만 움직임의 강도는 왠만한 스포츠 이상이기에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그래서 1번이나 2번으로 등장하는 선수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각본이 가미된 프로레슬링이란 점을 다시 상기하고, 1번이나 2번 선수가 '로얄럼블 매치'의 우승을 거머쥔다면, 그 우승자의 위상이 다른 해 '로얄럼블 매치' 우승자들보다 더 높아지는 효과를 보게 된다. 

1995년 '로얄럼블 매치'에는 1번으로 숀 마이클스 2번으로 브리티쉬 불독이 등장했다. 마지막도 이 둘만 남았다. 숀 마이클스를 3단 로프 밖으로 던져 자신이 우승한 줄 알고 세레모니를 하고 있던 브리티쉬 불독, 하지만 그 때 숀 마이클스는 발이 하나만 링 사이드 바닥에 닿았었다. 링에 다시 올라 링 코너에서 우승 자축 세레모니를 하던 브리티쉬 불독을 '진짜' 탈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1번으로 등장해 우승까지 거머쥔 역사를 직접 쓴 숀 마이클스,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1999 : 회장님의 우승

▲ (사진: WWE)
▲ (사진: WWE)

WWE가 세계적 프로레슬링 단체로 성장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현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이다. 때론 독단적인 각본 수정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회장님이라는 직책을 유지한 채 스토리라인에 적극 개입·등장하여 입체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1999년은 WWE에게 '박 터지는' 시기로 기억된다. 과거 프로레슬링과 미국의 영웅이었던 헐크 호건을 영입해 악역 헐리우드 호건으로 변신시킨 'nWo' 각본을 선보여 획기적인 인기를 끄는 데 성공한 경쟁 단체 WCW와 시청률 전쟁을 매주 해야 했기 때문이다. 

WWE는 '배드 애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악덕 회장' 빈스 맥마흔이 맞붙는 파격적인 각본을 시작해 서서히 WCW와의 시청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 각본 중에 일어난 결과가 1999년 '로얄럼블 매치' 빈스 맥마흔 회장님(?)의 우승이었다. 사실 스티브 오스틴이 거의 우승에 다다랐지만 마지막 순간 빈스 맥마흔 편에 섰던 더 락(현 드웨인 존슨)이 도발하여 시선을 빼앗겼다. 그 사이 회장님은 스티브 오스틴을 3단 로프 위로 넘겨버려 로얄럼블 역사상 최초 '비 현역 선수' 우승을 일궈냈다. 

1999년 회장님의 '로얄럼블 매치' 우승은 그 해 '래슬매니아 15' 마지막 스티브 오스틴이 빈스 맥마흔을 발로 깔아 밟는 희대의 '권선징악' 결말로 이어지는 전개가 된 것이다. 단체의 성공을 위해 직접 몸을 내던져 희생하신 회장님의 공로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2001 :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다

▲ (사진: WWE)
▲ (사진: WWE)

'로얄럼블'도 한 해 한 해 역사가 쌓이다 보니 여러 기록들이 만들어진다. 현재 '2021 로얄럼블'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깨지지 않고 있는 불멸의 기록이 하나 있다. 2001년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쌓은 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이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1997·1998·2001년까지 3번 '로얄럼블 매치'를 우승했다. 대부분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전성기를 브렛 하트와의 대립을 이루던 1997년부터 '레슬매니아 17'에서 더 락과 2차전을 치른 2001년까지로 평가한다. WWE의 전성기 또한 약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주를 이룬 성인 지향 '애티튜드' 시대로 평가한다. 다시 말해 WWE의 전성기를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중심에 서서 직접 이끌었고 그 활약의 정점이 2001년 '로얄럼블 매치' 우승이었던 것이다. 

프로레슬링 업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네 인물을 선정해 '러쉬모어 산'을 가상으로 조각한다면 헐크 호건, 더 락, 존 시나 그리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주로 꼽힌다. WWE의 전성기, WWE의 전성기를 이끈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전성기를 느끼고 싶다면, 그가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경기,  2001년 '로얄럼블 매치'를 다시 감상해보면 된다.

 

2005 : 방송사고

▲ (사진: WWE)
▲ (사진: WWE)

프로레슬링이 '스포테인먼트'라 불리는 이유는 주로 스포츠의 움직임을 보이지만 그 안에 각본 전개를 위한 연출이 가미돼있기 때문이다. 

'로얄럼블 매치'는 전부 연출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절반 정도는 선수들의 자체적인 움직임으로 채워지고, 각본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장면들은 합을 맞춰 연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로얄럼블 매치'의 마지막은 각본 전개에 매우 중요하기에 당연히 연출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2005년 '로얄럼블 매치'의 마지막은 연출이 아닌 애드리브(?)로 마무리됐다. 바티스타와 존 시나가 최후의 2인으로 남았는데, 바티스타가 자신의 피니쉬 기술 '바티스타 밤'을 시도했다. 존 시나를 들어 올렸는데 힘에 부쳤는지 뒷걸음치다가 결국 두 선수 모두 3단 로프를 넘고 링 사이드 바닥에 동시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는 각본이 아닌 프로레슬링 범주를 넘어버린 '방송사고'였다. 

빈스 맥마흔이 격분하여 링에 등장했고, 서로 자신의 우승을 주장하던 바티스타와 존 시나는 위세를 보이고자 각자 상대를 한 번 씩 3단 로프 너머로 던지기도 했다. 둘 만의 '로얄럼블' 재경기가 선언되고 접전 끝에 바티스타가 존 시나를 탈락시켜 최종 우승했다. 

사실 이 방송사고를 지켜보던 관객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다. 잘 짜인 각본으로만 모두들 이해했다. 그만큼 당시 상황이 긴장감 넘쳤는 것이다. '방송사고'를 지극히 프로레슬링다운 문법으로 수습한 바티스타 그리고 존 시나 두 선수 모두 당대 프로레슬링 아이콘이 되기 충분했음을 2005년 '로얄럼블'로 입증했다.

 

2011 : 30명이 아닌 40명

▲ 40번째로 등장한 케인 (사진: WWE)
▲ 40번째로 '2011 로얄럼블 매치'에 등장한 케인 (사진: WWE)

항상 '로얄럼블 매치'는 30명이 출전했다. 단 한 번 30명이 아닌 적이 있었다.(2018년 각본과는 무관하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열린 50명 참가 '그레이티스트 로얄럼블' 열외)

2011년 열린 '로얄럼블 매치'에서는 30번째 선수가 등장했을 때 '아 마지막 선수가 등장하는구나',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나'와 같은 아쉬움이 없었다. 왜? 40명이 참가했기 때문에. 

유난히 소속 선수가 많았던 2011년이었기에 30명이 아닌 40명으로 참가 선수 숫자를 늘리는 결단을 WWE는 감행했다. 40명이 등장했다고 해서 다른 '로얄럼블 매치'에 비해 특히 지루하지 않았다. 10명이나 더 등장해 더 '꽉 찬' 볼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2011년은 개인이 만든 변곡점이 아닌 체제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로얄럼블' 역사에 반드시 기억돼야 할 해였다.

 

2018 : 최초의 동양인 우승자, 최초의 여성 로얄럼블

▲ (사진: WWE)
▲ (사진: WWE)

위에서 여러 '로얄럼블' 역사에 있어 유의미한 변곡점들을 되짚어봤다. 하지만 2018년의 변곡점이 다른 차원에서 유의미했다. 

WWE는 북미지역 기반 프로레슬링 단체다. 여러 지역의 혈통을 가진 미국 선수들이 WWE에 집합해있지만 결국 미국인이고 그동안 '미국 지역 한정'이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이런 '미국 중심' WWE의 2018년 '로얄럼블 매치' 우승자는 일본 국적의 나카무라 신스케였다. 동양인 최초의 우승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8년은 최초 여성부 '로얄럼블 매치'가 열렸는데 이 경기의 우승자 역시 일본 국적의 아스카였다. 

앞서 누차 말했듯이, '로얄럼블'은 '레슬매니아'까지 전개되는 각본에 있어 아주 중요한 과정에 위치해있다. 즉, 2018년 초반 WWE 각본 중심에 동양인 나카무라 신스케, 아스카가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WWE는 비로소 북미 대륙을 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적 프로레슬링 단체로 거듭났다. 

 

1년을 기다릴만한 로얄럼블

1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로얄럼블'의 매력의 요소 중 하나가 어쩌면 그 기다리는 1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30명이 우당탕탕하는 장관을 감상하기 위해 1년 12달을 기다리고 1시간가량을 흥건히 즐긴 뒤에 또 내년을 기다리는 그런 묘한 아쉬움. 

만약 매주 매달 '로얄럼블'이 열린다면 지금의 매력 같진 않았을 것이다. 1년에 한 번 하는 '로얄럼블'을 즐기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것도 이 척박한 생활을 버틸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을까? 

올해 '로얄럼블'의 주인공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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