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의 계절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무서운 이야기 하나 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느때 약효를 발휘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바캉스를 떠나 휴가지에서 어여쁜 여성들을 꼬셨는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밖에서 놀 수가 없다. 그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 무서운 이야기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무서운 이야기를 자칫 없어 보일 수 있다. 이럴 때는 그럴듯한 통계치를 꺼내며 실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물론, 가장 좋은 이야기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귀신이야기지만 그리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화이면서도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사건사고다. 이왕이면 누군가 죽고 죽어나갔던 이야기라면 분위기 좀 타겠다.

그렇다면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꺼내보자. 이왕이면 세계로 나서 수백명을 죽인 하드코어 연쇄살인범에 대한 실화를 이야기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지금부터 남자라면 알아두면 좋을 세계의 연쇄살인범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루이스 가르비토
루이스 가르비토

 1. 루이스 가르비토

마약 생산지로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연쇄살인범이다. 공식적으로 경찰이 집계한 희생자 수는 138명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희생자가 4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8세에서 16세 사이의 소년들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했고, 동성애자들에게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이에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결박당해 성폭행 후 살해됐다. 시신은 절단되어 여기저기 파묻혔다.

대부분의 살인이 같은 수법이었지만 그가 오랜 기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사건 당시 콜롬비아가 내전 중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희생자의 대부분이 극빈층이라 자식이 실종되어도 찾아 나설 여력이 없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음료수 등으로 유인됐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범죄는 최소 1992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1999년에 어린 소년의 살해범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구속됐고, 경찰은 그의 수법과 유사한 유골들이 대거 발견되어 추궁한 끝에 최소한 100건 이상의 희생자를 낸 연쇄살인범이라는 자백을 받아 냈다.

이에 콜롬비아 재판부는 1853년형을 내렸지만 유가족들에게 유골을 전해주는 대가로 형량을 감면받는 사법 거래가 이뤄졌고, 22년형으로 축소되어 2021년 출소를 앞두고 있다.

 

페드로 로페스
페드로 로페스

 2. 페드로 로페스

이번에도 콜롬비아 출신이다. 그는 어린 시절 매춘부 어머니의 13 자녀 중 한명이었고,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 거리를 해매다 소아성애자를 만나 음식과 잠자지를 얻은 대신 강간당했고, 구걸과 좀도둑으로 전락해 거리를 헤매던 중 미국인 부부에 의해 고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고아원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소 10대 중반까지 차량 절도 등으로 생활하다 18세 때 경찰에 체포됐다. 수감 생활 중에는 고참 죄수 4명에게 윤간을 당했고, 얼마 뒤 면도칼로 그 4명을 살해했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2년의 형이 추가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출소한 그는 1978년부터 가학적인 연쇄살인범으로 떠돌이 생활을 한다. 페루 전국에서 수십명의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했다. 그러던 중 원주민의 9살 딸을 강간하려다 들켜 생매장 당할 위기였지만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페루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목숨을 건졌다.

콜롬비아에서 12살 소녀를 강간하려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교도소 안에서 콜롬비아에서만 최소 100여명의 여성을 살해했고, 추방된 페루에서만 그 이상을 죽였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처음엔 이를 믿지 않았던 경찰은 그가 떠벌인 장소에서 8~12세 가량의 소녀들의 유골 53구 가량을 발견하면서 그를 연쇄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1980년 16년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초 석방된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유해발굴 현장서 촬영 된 바르보사(가운데)

3. 다니엘 바르보사

앞서 설명한 2명에 못잖은 콜롬비아의 연쇄살인범이다. 그의 범죄경력은 1958년 5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을 유인해 수면제로 정신을 잃게 만든 뒤 강간하다 경찰에 체포됐고, 1964년 4월 10일에도 콜롬비아에서 성폭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살인으로 처음 기소된 것은 1974년 5월 3일이다. 당시 9세 소녀를 강간 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투옥됐다. 처음에는 30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25년으로 감형 받았고 1984 11월 탈옥해 에콰도르로 탈출했다. 그는 에콰도르 케베라는 도시에서 1984년부터 1986년 사이 적어도 184명의 강간 및 살인에 연루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그가 체포된 것은 1986년 2월 26일로, 9살 소녀를 살해한 직후 바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그는 경찰에게 가짜 신분을 이용해 속이려 했지만, 그의 범죄로부터 탈출한 여성이 확인해 증언하면서 연쇄살인 행위가 밝혀졌다. 그가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강간 및 살해를 계속한 것은 그의 그릇한 성 관념 때문으로, 평소 처녀성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9년 16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언론과 인터뷰에 나서는 등 유명세를 떨쳤으나 1994년 희생자 중 가족에 의해 감옥에서 살해당했다.

 

페드로 로드리게스 필호
페드로 로드리게스 필호

4. 페드로 로드리게스 필호

이제 콜롬비아에서 벗어나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범 페드로 로드리게스 필호를 알아보겠다. 지금까지 알아본 연쇄살인범들이 대부분 성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범행 대상을 약자로 한정했다면 필호는 주로 강자들을 상대로 살인을 일삼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13세 시절 친척을 사탕수수 기계로 밀쳐 거의 죽일 뻔 했을 때 처음으로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전했다. 14세 때 알패나스 도시의 부시장이 주방 음식을 훔쳤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해고하자 그를 살해했고, 실제 물건을 훔친 도둑도 찾아 살해했다.

이후 사랑하는 여성을 만났지만 갱단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고,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이름 모를 갱단을 찾기 위해 몇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어느 사이엔가 10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찾아가 살해하고 그 심장의 일부분을 먹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1973년 5월 24일 체포된 그는 감옥 안에서도 47명의 수감자를 더 살해해 40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확인되고 있는 소식은 2004년 출소한 그가 2011년까지 가정부로 일하다 감금 등의 혐의로 다시 경찰에 체포됐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희생자를 낸 연쇄살인범 양산하이
중국 최대 희생자를 낸 연쇄살인범 양산하이

5. 양산하이

1968년생의 중국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2001년부터 안후이, 허난, 허베이, 산둥 등 4개성을 돌아다니며 21건의 강간사건, 12건의 살인미수 외에도 67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1968년 허난성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그를 고향사람들은 내성적이고 착실한 아이로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형 집행 후 언론과 나눈 인터뷰를 보면 신체적 콤플렉스로 인해 본인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을 때 광폭하게 변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중국 언론에서는 그가 살인을 저지른 계기를 절도와 강간 등의 혐의로 복역 중 교제하던 여성이 변심하자 사회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연쇄살인이 촉발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예리한 흉기를 사용해 살인을 저지른 후 목격자까지 찾아가 살해했다.

그는 중국 공안당국의 일상적인 순찰 도중 수상한 거동 탓에 붙잡혔고, 여죄를 추궁하던 중 범행 사실을 드러났다. 2003년 허베이 성에서 체호 된 이후 허난 성 법정에서 열린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집행됐다.

특히 양산하이의 범행과 희생자수는 중국의 공산정권 수립 이후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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