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5일 한국 야구계에 엄청난 뉴스가 터졌다. 2007·2008·2010·2018 총 4회 우승을 거두며 'SK 왕조'를 이룩하던 SK 와이번스가 신세계 그룹 계열 이마트에 매각됐다는 소식이었다. 스포츠면을 넘어 경제면마저 뜨겁게 달군 소식이었으며 야구팬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 하고 얼떨떨했다. 

이성을 다시 찾고, SK 와이번스 팬들이나 야구팬들이나 이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나 향후 진행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팀명은 어떻게 되는지, 선수단은 유지가 되는지, 코칭스태프들은 그대로 가는 것인지. 

그리고 가장 염려되는 마지막 걱정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전 역사를 전부 부정하거나 타당한 사유 없이 연고지 이전을 감행해 지역 팬들의 등지는 '패륜'을 저질러 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행히 현재까지 신세계 그룹은 연고지 이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고 SK 와이번스의 역사를 그대로 잇기로 하며 '패륜'과 같은 행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모두가 이런 걱정을 혹시나 했을까? 이미 '패륜'을 저지른 구단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구단들이 어떤 '패륜'을 저질렀기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대한민국 스포츠에 있어서 90년대 '농구대잔치'는 현 KBL의 전신이자 근간일만큼 전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허재, 강동희, 김유택, 김영만 등이 이끈 ‘기아자동차 농구단’은 당시 한국농구의 ‘시카고 불스’라 불리며 '농구대잔치'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1996년 '한국프로농구'가 공식 출범되고 기아자동차 농구단은 부산을 연고지로 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2001년 현대모비스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새로운 모기업이 됐다. 현대모비스 주 공장이 울산에 위치해있고 부산광역시의 열악한 지원 탓에 부산에서 울산으로의 연고지 이전이 감행됐다. 당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의 '연고지 이전'은 비판의 여지가 적은 불가피한 면이 컸다.

단순 연고지 이전만으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를 '패륜팀'의 예시로 들지 않는다.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로 바뀌는 과정 중 새로 선임된 최희암 감독과 당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구단 프런트는 본격적인 '기아 농구' 지우기에 나섰다. 앞서 언급한, '기아 농구'로 한국 농구의 황금기를 열었고, 즉시 선발 전력으로 평가받던 허재·강동희·김영만·김유택을 전력 외 선수로 분류하여 결국 타 팀으로 트레이드시키거나 재계약하지 않았다. 이 빈 자리를 최희암 감독은 연세대 감독 시절 자신의 제자였던 오성식과 우지원을 데려와 더 이상 '모비스 농구'에선 '기아 농구'를 느낄 수 없게 됐다.

위 과정이 나타내는 것은 바로 '역사 부정'이다. '기아자동차 농구단'이 있었기에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란 이름으로 KBL 입성이 가능했고,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존재했기에 때문에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가 태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사를 부정한 태도를 금세 잊어버린 듯, 현재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홈 구장 울산동천체육관에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이룬 1997년도 우승 엠블렘이 있다. '기아 농구색'은 지우고 싶지만 또 우승 기록은 가져다 쓰고 싶은 전형적인 '감탄고토'다. 대체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구단의 근본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지금 공식적으로 '기아 농구'의 후신임을 인정해도 과거 '기아 농구'를 부정하며 한국농구 인기 저하의 주 원인을 제공한 '패륜' 행위를 저질렀음에는 변함이 없다.

 

구단주 로버트 어세이의 '레알 야반도주'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1970년대 말,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전신 구단 '볼티모어 콜츠'의 구단주가 된 로버트 어세이는 '볼티모어 콜츠'를 좀 더 큰 구단으로 키우기 위해 볼티모어 시와 돔구장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7만 석 규모의 돔구장 건설은 여러 분야에서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져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볼티모어 시가 속한 메릴랜드 주에 어세이는 기존 구장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리모델링 건설 비용 25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그 마저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된 어세이는 결국 '연고지 이전'을 꾀하고 여러 도시와의 밀실 협상 끝에, 인디애나폴리스로 '콜츠'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1984년 3월 2일 NFL 사무국은 '콜츠'의 '연고지 이전'을 승인했다. 이에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은 볼티모어 시가 '콜츠'에 대한 소유를 가지게 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켜 맞불(?)을 놓았다. 미국 내 프로스포츠 종목 중 가장 강렬한 열정을 자랑하는 NFL 팬답게 볼티모어의 '콜츠' 팬들은 NFL 사무국의 '연고지 이전' 승인 이후 실제 ‘연고지 이전’을 위한 트럭 앞에 드러눕는 등 분노의 실력행사(?)를 감행했다.

어세이는 망명급 '야반도주'를 되레 감행했다. 메릴랜드 법안 공표 하루 전 1984년 3월 28일 밤, 어세이는 몇 십 대의 트럭을 이용해 사무집기들을 볼티모어에서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겼고 물리적 방해를 피하기 위해 이전 트럭들을 서로 다른 여러 갈래로 주행시키도 했다. 마치 첩보영화를 연상케 하는 '야반도주'를 성공시켜, 1984년 '콜츠' 앞에 인디애나폴리스가 붙어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됐다. 

상술했듯, 도저히 한국 스포츠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과정이다. 구단주 개인이 구단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가 하면, '연고지 이전'을 위해 야밤에 도시를 탈출하는가 하면, 각 주 간의 행정 권리를 침해할 수 없기에 망명을 떠나는 가 하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회가 나서는 등 지극히 과정이 '미국'스럽다. 팬들에게 일말의 언급 없이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는 행태를 ‘야반도주’라 비유하여 일컫는다.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패륜'은 비유에서 나온 '야반도주'가 아니다. '레알 야반도주'다.

 

신식구장보단 수도권이지

성남 일화 천마 

흔히 '중패'는 어쩔 수 없는 연고지 이전이었으니 동정의 여지가 있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 인식은 그야말로 겉만 알고 있을 때 내려질 수 있다. 조금만 더 알아본다면, 연고지 팬을 뒤로하고 떠나버린, 키워준 은덕 모르고 근본을 내친 '패륜'의 범주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당시 '일화 천마'다. 

1998년 8월 22일 천안오룡경기장에서 펼쳐진 '천안 일화 천마'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흘렀고, 승부차기 또한 5대 5 결과가 났다. 그 시점에서 천안오룡경기장은 야간 조명탑이 없어 더 이상 경기 전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제비뽑기로 승부를 가르고야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천안시는 1998년 12월 '천안종합운동장' 건설 착공했다. 그대로만 있었다면 '천안 일화 천마'는 2021년 현재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A매치가 여럿 열리는 신식 축구장 '천안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안시의 축구장 건설 착공과는 무관하게 '일화 천마'는 '성남종합운동장'의 잔디 교체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곧바로 성남으로 떠나 '천안 일화 천마'에서 '성남 일화 천마'로 바꾸었다.

'제비뽑기 승부'는 축구 역사 상 몇조차도 일어날 수 없는 해프닝이다. '천안종합운동장'은 현재 전철 1호선도 인근에 들어서 충남권뿐만이 아닌 수도권 축구팬들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A매치가 자주 치러질 만큼 신식 축구장으로써 수요가 높다. 그런데도 단지 잔디 교체만을 요청하여 성남으로 떠난 당시 '일화 천마'의 도주에 '불가피'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1998년 당시에는 인터넷 문화가 활발하지 않았기에 축구팬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기 어려웠고 그저 구단의 언론보도대로 '일화 천마'의 성남 연고지 이전은 시설 낙후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알려지고 말았다. 

어느 광역단체든 지방자지단체든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연고 구단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그 감정에 크고 작음은 없다. 천안 시민은 작고 성남 시민은 큰가? 달달한 향기가 나는 것 같은 수도권 인접 도시로 향한 당시 '일화 천마'의 선택은 천안 축구팬들에 깊은 상처를 낸 근본 부정 '패륜'이다.

 

연고지 이전을 대체 뭘로 아는거야?

제주 유나이티드 FC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전신인 '부천 SK'는 모기업 SK그룹이 'IMF 외환위기'를 겪어 지원금이 줄었음에도 곽경근, 이임생, 이을용, 윤정환 등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배출하며 나름의 '부천 축구'를 선보이고 있었다. 2005년 8월 축구 전문지 '베스트 일레븐'에 실린 당시 정순기 단장의 "부천은 영원합니다" 인터뷰는 '부천 축구'의 견고성과 지속성을 확인받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2월 2일 구단은 제주로 떠나버렸다. 구단 운영이 필수적인 클럽하우스 새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부천시가 새로이 내줄 부지가 없다는 의견을 구단에 전달했고, '부천 SK'는 제주로 떠나 더 이상 '부천 SK'가 아닌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됐다. 단장의 확신에 찬 인터뷰와 2005년 시즌 성적 소폭 상승 후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연고지 이전'이었기에 부천 축구팬들을 비롯한 모든 축구팬들이 적잖이 당황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FC' 불러야 할 그 구단은 그래도 부천 축구팬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부천 FC 1995' 창단과 K리그 산하리그 참가에 드는 비용을 일부 지원하기도 했다. 경기 중에도 지속해서 부천 축구팬들을 향한 사죄의 걸개도 거는 등 수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제주 유나이티드 FC'는 연고 축구팬을 무시하고 행한 '야뱐도주' 이미지를 약간이나마 쇄신해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구단은 제주를 떠나는 또 한 번의 '연고지 이전'을 꾀하는 것 같았다. 국내 축구 전문지 스포츠니어스는 2017년 6월 29일 보도에서 신식 축구장을 건설하고 있는 용인시로 연고지를 옮길 것을 '제주 유나이티드 FC' 구단 측이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각 '제주 유나이티드 FC’ 구단 측은 사실무근이라 반박했다.

약 3년 뒤 총선 용인 갑에 출마한 정찬민 후보는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용인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 공약에도 '제주 유나이티드 FC'는 불가능하다며 즉각 반박했다. 2017년 이후 숱하게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용인으로의 연고 이전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왜 이런 논박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른 구단에서는 이러한 풍문이 전혀 들리지 않는데 말이다.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패륜'의 조건 중의 하나, 팬들에게 일절 언급 없이 당시 '부천 SK'는 갑작스레 제주로 떠나 '제주 유나이티드 FC'로 탈바꿈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지문에 "SK가 '제주시대'를 엽니다"라고 활기차게 외치기도 했다. 연고 팬들이 키워준 은덕은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제주월드컵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쓸 생각에 설렜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패륜의 완성형

FC 서울

앞서 언급한 구단들에 비하면 'FC 서울'의 '패륜' 이미지는 독보적이다. 어쩌다 'FC 서울'는 '패륜'의 대표팀이 됐을까?

'FC 서울'이 가장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연고 복귀'라는 것이다. 원래 서울에 연고지를 둔 팀이었는데 잠시 안양으로 가서 서울로 복귀한 것이라 말한다. 먼저 인지해야 선 전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불가피한 이유 없이 연고팬들이 납득하지 못 하는 '연고지 이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전제 위에, '연고 이전'이든 '연고 복귀'든 서울에서 안양, 안양에서 서울로 움직인 'FC 서울'의 역사는 비판받을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안양에 정착하여 '안양 LG 치타스' 시절 'LG는 안양이다'라는 문구를 응원과 홍보에 적극 활용했었다. 이런 마케팅을 펼쳐온 팀이 서울로 연고 이전을 감행한 것도 모자라 안양은 본 연고지가 아니었다는 의미의 '연고 복귀'를 외치는 행태에 어는 누구도 고개를 끄덕여 줄 리가 없다.

'FC 서울'은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이전한 사유에 '불가피론'을 덧붙이기도 했다. 안양시는 축구 흥행과 관객 동원력이 부족해 인구가 많은 서울특별시로 연고 이전하여 기본적 흥행을 노리는 구단의 생리 논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체도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 '안양 LG 치타스'의 최대 라이벌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으며 둘의 대결을 '지지대 더비'라 K리그 팬들은 칭하며 K리그 최고 더비 매치로 각광받기도 했다.

'중패'라 불리는 현재 '성남 FC'는 '성남 일화 천마' 시절 '패륜' 이미지를 지우려 구단 형태와 구단명도 바꾸고 여러 노력을 해왔다. '남패’라 불리는 '제주 유나이티드 FC'는 상술했듯, 직접 사죄의 걸개를 거는 등 '패륜적' 이미지 쇄신을 위한 행동을 보이기라도 했다. 그러나 '북쪽의 패륜, 북패'라 불리는 'FC 서울'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 

'패륜'이라는 이미지는 축구계를 넘어서 스포츠계에 이미 일종의 '밈'(Meme)이 됐기 때문에 완벽히 가시기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의 가시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왜 다른 K리그 팀들이 'FC 서울'과 경기를 가지면 '북벌'이라 하는지, 'FC 서울'을 상대로 승리하면 '정의구현'이라 하는지 'FC 서울' 구단 측에서 깨달아야 할 지금이다.

 

역사를 잊은 프로 스포츠 구단에게 열혈 팬은 없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한승수 단장은 드림즈를 PF그룹에게 매각을 시도한다. PF소프트 이제훈 대표 앞에서 '역사를 잊은 야구단에게 열혈 팬은 없다'라는 문구를 띄우며 프레젠테이션했다. 이 문구가 문구 그대로 야구단에게만 적용될까? 아니다. 프로 스포츠가 아마추어 스포츠와 구별되는 제1의 이유가 팬의 존재다. 팬이 있기에 선수가 있고 구단이 있는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구단이 하루 아침에 연고를 등지고 떠나버리고, 내가 응원했던 순간의 역사를 부정해버린다면 이는 자신의 핏줄을 부정하는 ‘패륜아’와 다를 바가 없다. 부디 이 사실을 이 세상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들이 뼈저리게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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