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대한민국 예능계에 '여성'이라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예능판이 너무 '남자판' 아니냐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며, 본격적으로 '언니들의 슬램덩크', '밥블레스유', '비디오 스타', '비밀 언니', '여은파' 등  오롯이 여성들만의 매력으로 여성들만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여성 예능'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여성'이라는 핵심 키워드에 못지않게 현재 예능 판국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또 하나 있다. '전문가'다. 전문 예능인이 아닌 비 예능, 비 방송 분야에서 먼저 일정 지위에 올라 본 인물이 방송 예능계로 넘어와 인기를 누리는 것을 뜻한다. 2014년부터는 '냉장고를 부탁해'로 대표되는 '요리 전문가' 셰프들이 방송가를 점령한 바 있다. 현재 2021년은 아니다. '스포츠 전문가' 운동선수들이 대한민국 예능계를 이끌고 있다. 

다른 방송국의 인기 예능을 다시 방영하는 방식으로 편성표를 주로 채워오던 E채널이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여성'과 '스포츠' 모두를 충족하는 예능 '노는 언니'를 2020년 8월 4일 첫 방송했다.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전해주던 여성 스포츠인들의 색다른 모습과 쉽게 꺼내지 못 했던 선수생활 중 고충들을 시청자들이 알 수 있게 돼 여러 호평과 기능을 만족하고 있다. 

맏언니 박세리 중심으로 고정 출연진 곽민정, 정유인, 남현희가 뒷받침하고 다른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유동적으로 출연하는 방식을 '노는 언니'는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양궁의 기보배, 야구의 김라경, 축구의 이민아와 장슬기 등을 섭외해 종목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는 언니'에 나와 시청자가 궁금할법한 종목의 소개와 숨겨진 이야기 등을 풀어놓을 수 있는 여성 스포츠 스타에는 또 누가 있을까?

 

 

스타크래프트 : 서지수

스타크래프트뿐만이 아닌 e스포츠계 자체가 엄청난 '남초 영역'이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남성으로 떠올린다. '여성 프로게이머'라는 단어 자체가 느낌으로만 봐도 생소하다. 이러한 e스포츠 세계에서 전직 프로게이머 서지수는 당당히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STX Soul의 1군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공식전 출전 기회는 적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 예선에서 여러 번 남성 프로게이머를 꺾은 바 있다. 프로리그에서도 총 5번 출전했지만 전패해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서지수는 2012년 7월 17일 은퇴했다. 스타크래프트계에서 서지수는 상징적인 존재였기에, 은퇴식을 치르기엔 충분했다. 이후 2018년 12월 12일 아프리카TV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개인방송으로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간간히 현역 프로게이머들과의 경기 영상을 보면 감히 배틀넷 공방 고수들이 넘볼 실력이 아니었다. 프로는 프로였다.

▲ (사진: 서지수 인스타그램)
▲ STX Soul 시절 서지수의 프로필 사진

서지수가 '노는 언니'에 출연한다면 이야깃거리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말했듯이, 모두가 남자고 홀로 여자였던 프로 e스포츠 생태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근성, 그에 따른 여성 프로게이머의 생활상 등 '노는 언니' 출연진뿐만이 아닌 시청자들도 궁금해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서지수가 '노는 언니'에 출연했으면 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서지수가 '노는 언니'에 출연한다면, e스포츠가 다른 종목들과 같이 동등한 '스포츠'로써 인정을 받는 것 아닐까? 이를  서지수가 '노는 언니'에 출연하여 내심 이뤄주었으면 한다.

 

역도 : 장미란

압도적이진 않지만 우리나라도 나름 역도 강국이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 3개, 은 4개, 동 5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전병관, 사재혁 등의 역도 스타들을 배출했었다. 그래도 대한민국 역도 최고의 스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장미란이다.

장미란은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까지 3개 대회에서 전부 메달을 획득하여 '장미란 시대'를 열었었다. 은퇴 후 장미란은 직접 '장미란재단'을 설립해 여러 종목에서의 체육 꿈나무를 위한 후원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 (사진: 장미란재단 공식홈페이지)
▲ (사진: 장미란재단 공식홈페이지)

사실 장미란이 '노는 언니'에 꼭 나와주었으면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장미란의 언변 능력에 있다. 각종 인터뷰에서도 말을 조리 있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후, 출연한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도 진행자 강호동도 인정했을 만큼 상당한 예능감으로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고로 '노는 언니'에 출연한다면 시청자의 입장으로써 큰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장미란을 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도 싶을 텐데, 보편적인 미인상에서 벗어난 몸으로 역도계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장미란의 경험을 국민들은 장미란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을 것이다. 장미란 자신도 일반적인 인터뷰가 아닌 같은 스포츠계에 몸 담았던 '노는 언니' 여성 출연진들을 보면 그동안의 의례적인 인터뷰에서보다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덕·체'를 겸비한 스포츠인 장미란의 '노는 언니'출연을 고대해본다.

 

당구 : 차유람 

'노는 언니'에 출연했으면 하는 여성 스포츠 스타 중 당구선수 차유람은 아마 밸런스 삼각형이 가장 잘 맞는 인물인 듯하다. 

차유람이 '노는 언니'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적응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차유람은 방송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우리동네 예체능-테니스 편', '런닝맨',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등 지상파와 케이블 예능을 여러 출연했었다. 최소한 차유람은 방송 문법은 알고 있기에 카메라 울렁증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차유람은 방송에 다수 출연하여 당구에 대해서 한껏 말해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차유람이 다른 것을 체험하는 방송이었다.

▲ (사진: 차유람 인스타그램)
▲ (사진: 차유람 인스타그램)

거리를 거닐다 보면 거의 건물 당 한 개씩은 당구장이 있을 정도로 당구라는 스포츠가 우리 삶에 상당히 가깝다. 하지만 미국의 자넷 리, 스웨덴의 토브욘 브롬달 등 각국의 당구계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존재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당구 스타'가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유람은 직접 방송에 출연하며 당구라는 종목의 이미지를 '건강한 스포츠'로 개선하는데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차유람이 방송에 다수 출연할 수 있었고 당구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출중한 미모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연예인에 버금가는 차유람의 외모는 당연히 방송계에서 매력을 느끼기 충분하다. 자신의 미모를 가꾸는 방법을 '노는 언니'에 나와 다른 출연진들과 공유해도 여성 시청자들에게 꿀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꼭 스포츠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으니까.

방송할 줄 아는 미모의 '당구 스타' 차유람은 '노는 언니'가 노려볼만한 스타임이 틀림없다.

 

권투 : 최현미

과거 다수의 스타를 배출했으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가 조용해졌을 정도로 있기 있던 종목이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 세계 챔피언이 존재하고 있는 종목이 있다. 바로 권투다.

홍수환, 김득구가 이끈 70년대를 지나 박종팔, 장정구, 유명우가 황금기를 열었던 80년대까지 권투는 그야말로 '국민 스포츠'였으며 국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전달하며 권투만의 매력으로 흥행을 이어갔다. 이후 90년대 들어 지인진, 최용수, 故최요삼 등이 명맥을 이어갔지만 권투의 입지는 예전만 못 하다. 현재 WBA 여성부 슈퍼페더급 챔피언 최현미가 대한민국 권투의 혼을 이어오고 있다.

권투는 격투 스포츠다. 같은 공간에서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주먹으로만 제압해야 한다. 더군다나 권투는 2분 12라운드(여성 세계 타이틀전에 한함)라는 극한의 룰로 진행된다. 극한의 룰을 가진 스포츠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현미는 극한의 훈련을 견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 (사진: WBA 공식홈페이지)
▲ (사진: WBA 공식홈페이지)

지금까지 권투가 어떤 스포츠이고 그 안에서 최현미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대강 살펴봤다. 결국 이건 타인의 시선일 뿐이다. 최현미의 입으로 최현미가 일종의 동료라 칭할 수 있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 앞에서 여성 권투의 세계를 말해준다면 '노는 언니' 출연진들이야 말로 또 하나의 신세계를 접할 것이고, 시청자들은 지난 날 영광과 함께 했던 '국민 스포츠' 권투의 지금을 알게 될 것이다. 

극한의 훈련으로 다져진 최현미의 몸은 강하다. 여러 색다른 체험들도 경험하는 '노는 언니' 무리에 최현미가 함께 한다면, '노는 언니'가 시도해볼 수 있는 경험의 영역은 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종합격투기 : 함서희

앞서 말했듯이, 90년대 초반까지도 격투 스포츠는 곧 권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UFC로 대표되는 종합격투기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역시 종합격투기 안에서도 세계적 대한민국 스타가 존재한다. 종합격투기 전문지 셔독이 선정한 여성 아톰급(약 -48kg 이하) 세계랭킹 1위는 함서희다.

2007년에 데뷔한 함서희는 현재까지 23승 9패를 기록하고 있다. 딥, UFC, 로드 FC, 라이진 FF 등 굵직한 격투 단체를 돌며 경력을 쌓았다. 로드 FC 초대 아톰급 챔피언, 라이진 FF 슈퍼아톰급 챔피언에도 오른 바가 있을 만큼 종합격투기 여성부 경량급에서는 함서희는 분명 최강자급의 네임벨류를 보유하고 있다.

▲ (사진: 함서희 인스타그램)
▲ (사진: 함서희 인스타그램)

앞서 언급한 최현미와 같이 함서희 또한 극한의 훈련, 극한의 경기를 매번 견뎌오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함서희를 존재를 일반 대중들이 아직도 생소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김동현과 정찬성으로 남성부 종합격투기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여성 종합격투기는 대중들이 아는 바가 많이 없다. 

상상해보자면, 최현미와 '노는 언니'에 동반 출연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분류에 속하면서도 차이점이 분명히 있을 여성 권투와 여성 종합격투기의 뒷 이야기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서희는 방송 출연 경력이 적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신선한 재미 역시 있을 것이다. 함서희 역시 '노는 언니'에서 주목해볼 만한 여성 스포츠 스타다.

 

 

'좋은 여성 예능'으로 남기를

지금까지는 '노는 언니'에 출연했으면 하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에 시선을 두었다면, 이제는 '노는 언니'로 시선을 가져가 보자. 왜 다른 예능도 아닌 '노는 언니'에 나오는 것이 좋을까?

시청자의 입장에서 봐도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나와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국민 영웅'이자 맏언니인 박세리의 리더십으로 분위기가 편안하게 구성되고 고정 출연진 또한 게스트들에 부담을 덜어준다. 제작진은 포맷이 흘러갈 수 있을 정도만 개입하지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결국 무장해제된 출연진들은 여성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훈련 중에도 생리를 참고 견뎠던 고충 등을 진심으로 꺼내놓기도 했다.

'노는 언니'가 아닌 다른 방송이었다면 이런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속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가능이나 했을까?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지난 날 감동을 주었던 여성 스포츠 스타를 더 알게 된 것이며, 그와 동시 '노는 언니'라는 방송의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이대로만 좋은 행보를 유지한다면 '노는 언니'는 E채널 대표 예능인과 동시 대한민국 대표 여성 예능으로도 충분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