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이하 스타) 공식 대회 아프리카 스타리그(이하 ASL)이 3월 9일 와일드카드전으로 시작했다.

2000년대 스타 개인리그의 양대산맥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MBC게임 스타리그)였다면, 2010년대 후반에는 ASL와 KSL(코리아 스타크래프트 리그)였다. 하지만 KSL이 4시즌만에 폐지되고, 2021년 3월 현재 공식적인 스타 개인리그 대회는 ASL이 유일하다. 

벌써 ASL이 11번째 시즌을 맞았다. 대회의 횟 수가 두 자릿 수를 넘었다는 건 이미 그 대회가 고유의 역사를 가졌다는 의미가 되고, 대회의 권위가 업계에서 상당하는 것 또한 방증한다. 국내 유일 공식 스타 개인리그답게 과거 이름값을 날렸던 스타급 선수들이 여전히 ASL 11에 이름을 올렸다. ASL 9·10 연속 우승자 디펜딩 챔피언 '퀸의 아들' 김명운, '홍그리거' 임홍규, '기적의 혁명가' 김택용, '괴수' 도재욱, 'KSL 최후의 우승자' 이재호, '매시아' 김정우 등이 ASL 11에서의 혈전을 예고했다. 기존 스타급 선수들 뿐만이 아닌 원지훈, 배호연, 유승곤 등의 신예급 선수들도 이변을 역시 예고했다.

유일한 스타 공식 개인리그인 만큼, 그리고 여전히 스타에 대한 인기가 여전한 만큼 상당 수의 e스포츠 팬들의 시선이 ASL 11로 모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저 무감각하게 ASL 11을 즐기면 재미없다. 어떤 면에서 관전 포인트가 있는지 맨즈랩이 요점정리해서 짚어주겠다.

 

 

김명운은 3연속 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새 시즌이 시작된 만큼 바로 직전 대회에 대해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직전 대회였던 ASL 10의 우승자는 김명운이었다. ASL 10의 직전 대회였던 ASL 9의 우승자 역시 김명운이었다. 그렇다. ASL 11에서 김명운은 3회 연속 우승을 노린다.

ASL 3회 연속 우승은 이영호뿐이었다. 이영호는 ASL 2·3·4에서 염보성, 이영한, 조일장을 연달아 꺾고 우승한 바 있다. 마지막 조일장을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는 과거 온게임넷 스타리그·MSL 3회 우승으로 스타판을 지배하던 '갓'의 모습으로 회귀한 듯한 모습이었다.

▲ ASL 10 우승 후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김명운
▲ ASL 10 우승 후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김명운

이러한 이영호의 입지에 김명운이 도전한다. ASL 11 우승하게 되면 달성되는 3회 연속 우승으로. 김명운이 ASL 11을 우승한다면 적어도 ASL 안에서는 이영호와 기록 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고 더 이상 현 저그 최강은 이제동이 아닌 자신이라고 충분히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김명운이 3회 연속 우승으로 가는 길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될 선수는 김택용일 것이다. 김택용은 상성 상 저그 상대로 약한 종족인 프로토스 유저임에도 저그 상대 통산 승률 70%가 넘는 사기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김명운이 김택용을 만나 꺾는다면, 우승 확률은 배 이상 높아짐이 확실하다.
 

 

이영호 없는 ASL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영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으로 골든 마우스, MSL 3회 우승으로 금배지 모두를 손에 넣어본 스타판 역사상 최강의 선수다. 그래서 이영호를 대부분 '최종병기'보다 더 쉽고 간결한 별칭인 '갓'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 이영호가 이번 ASL 11에 불참한다. 이영호는 ASL 8 시작 전부터 고질적인 어깨 통증을 호소해왔다. 한국 나이 15살부터 15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거의 쉬지 않고 각종 대회를 꾸준히 참가했던 이영호였다. ASL 8 시즌 도중 공개한 자신의 개인방송 영상에서 어깨 검진을 받은 결과, 담당 의사도 도저히 현역으로 군생활이 힘들 것 같다는 진단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밝혔다.

▲ 경기 준비 중인 이영호 (사진: ASL 공식 홈페이지)
▲ 경기 준비 중인 이영호 (사진: ASL 공식 홈페이지)

ASL 8이 2019년 6월에 개최된 대회였다 이영호는 ASL 9와 10을 모두 출전했다. 진단 이후 2년이나 더 어깨를 갈아 넣은 것이다. ASL 10 폐회 후, 이영호는 ASL 10 4강 진출자이이기 때문에 얻어지는 시드권을 가졌음에도 계속되는 어깨 부상에 ASL 11 대회 출전 자체를 포기했다. 그리하여 이영호 시드 공석에 대한 와일드카드전을 ASL 11은 진행해야 했다.

ASL 10에서 종족을 랜덤으로 출전했는데도 4강까지 진출해 자신이 단지 테란이라서 스타판을 지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한 '갓' 이영호. 현재 최강자가 최고를 가리는 대회에 전격 불참을 선언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격이다.

세상은 권력의 공백을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과연 이영호가 비운 최강자의 자리를 신은 김명운에게 물려줄 것인지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그의 강세는 계속될 것인가

ASL 10 8강의 4명은 저그 프로게이머였다. 4강 중 3명이 저그 프로게이머였다. 부정할 수 없다. ASL 10은 저그가 지배한 대회였다.

종족 간의 밸런스를 꾀해야만 하는 주최 측은 결국 ASL 11에 신맵 3종 어센션·히든트랙·얼티메이트 스트림을 추가했다.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다수의 프로게이머들이 공개된 ASL 11 신맵을 즉각 리뷰했다. 공통된 반응이 있었다. 3개의 맵은 대체로 언덕이 많고 입구 심시티가 가능해 프로토스와 테란의 편의를 높이는 쪽으로 제작됐다는 것이었다.

▲ ASL 10 4강 대진표, 저그 3명에 랜덤 1명이 진출했다
▲ ASL 10 4강 대진표, 저그 3명에 랜덤 1명이 진출했다

어디까지나 프로게이머들의 주관적 리뷰겠지만, 그 느낌들에 주최 측의 의도와 부합된 것은 사실 같다. 주최 측의 입장에서나 팬들의 입장에서나 저그들이 상위 라운드까지 진출하면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저그가 다수 살아남는다면, 저그와 저그가 맞붙는 대저그전이 펼쳐질 확률이 높은데, 보통 대저그전은 프로게이머 서로가 극 후반을 염두한 빌드가 아니고서야 보통 10분 안으로 끝난다. 일정 길이의 경기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짧은 경기시간은 프로게이머 당사자들 제외하곤 모두가 기피한다.

그래도 엄연히 e스포츠다.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고서야 어느 종족의 프로게이머든 이겨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ASL 11에 진출한 저그 프로게이머들은 미묘한 맵 밸런스 조정을 극복하고서라도 저그 천하를 이어야 한다. 반면, 테란과 프로토스 프로게이머들도 맵 영향을 차치하고서도 저그를 제압하여 저그 천하를 끝내야 한다. 과연 ASL 11은 어느 종족의 천하가 될까.

 

제2의 박상현은 등장할 것인가

ASL 역사에 있어 박상현의 존재는 특별하다. ASL에 출전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과거 스타 프로게임단에 속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 지금의 실력으로 성장한 선수들이다. 그리하여 기량을 꾸준히 유지한 채 ASL에 출전해 자신들의 실력을 선보이고 ASL의 흥행까지 담당한다. 그런데 박상현은? 박상현은 프로게임단에 소속된 적이 없다. 즉, 다른 출전 선수들과는 성장과정에 있어 결이 완전히 다르다.

박상현은 그야말로 2012년을 끝으로 거의 사라진 스타 프로 게임판과 무관한 선수다. 의대 진학을 위해 6수를 하던 박상현은 절친 임홍규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스타판에 뛰어들었다. 2019년 개최된 '아프리카TV 챌린저스 스타리그' 우승으로 ASL 8 24강, KSL 4강, ASL 9 4강, ASL 10 준우승까지 수직성장을 보여온 상징적인 비 프로게이머 출신 인물이다.

▲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준비하는 박상현 (사진: ASL 공식 홈페이지)
▲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준비하는 박상현 (사진: ASL 공식 홈페이지)

ASL이 마냥 과거 프로게이머 출신 선수들에게만 의지한다면, 지나간 영광에만 기대는 소위 '느그 대회'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ASL이 국내 유일 '최고 권위' 스타 공식 대회가 된 이유에는 박상현과 같은 신예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고 호성적을 내 스타판 세대교체의 장이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ASL 11에서 주목할 점이 바로 그 것이다. 박상현으로 대표되는 비 프로게이머 출신 선수들이 선배 격 선수들 사이에서 어디까지 살아남는지, 어떤 이변을 써 내려갈 것인지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는 99년 이래로 가장 성공적으로 스포츠화 된 게임이다. 비록 역사 중간 승부조작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다시 대회가 새로 태어나 생명을 잇고 있다. 계속해서 대회가 성행하고 개최되려면 박상현과 같은 신예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유입·공급돼야 한다. 곧, 스타크래프트 문화가 장수하려면 제2의 박상현이 등장해야만 한다.

 

 

스타와 ASL의 장수를 염원하며

스포츠라는 것은 그저 어른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충분히 게임도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되는 자본만 있다면 청소년들부터 기성세대들까지 연령대를 아우르는 e스포츠 산업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영광의 기간을 2000년대 내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비록 과거 찬란한 수준의 영광은 아니지만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ASL이 11번째 대회로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스포츠는 종목이 다양해야 한다. 그 다양성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도 이름을 같이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 자체가 되길 바라며, 현재 스타판을 책임지고 있는 ASL의 장수 또한 염원한다. 시간이 흐른 뒤, ASL 100번째 시즌을 관람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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