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남자들에게는 조금 쇼킹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이른바 ‘서울대 담배녀’ 사건이다. 특히 썰전 등으로 유명한 유시민 작가의 딸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사건은 201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 A씨는 이별을 통보한 남자친구 B씨가 줄담배를 피우며 남성성을 과시해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침해했다며 서울대 학생회에 고발했다.

이에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유시민 작가의 딸은 흡연을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전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서울대 학생회는 11년 만에 흡연까지 성폭력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회칙을 개정했다.

해당 사건은 가벼운 시선으로 보자면 일종의 헤프닝이지만,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담배와 남성성을 연결하는 여성들의 심리에 깜짝 놀랄 수 있다. 남성의 흡연이 여성에게는 심리적인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발견이다. 흡연이 폭력이라니.

하지만 이 같은 인식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담배의 역사와 함께 흡연이라는 행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축적되어 온 결과다. 하지만 인식이라는 것은 늘 변해 왔다. 담배가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다지만 옛날에는 담배 앞에 누구나 평등했다.

그러던 것이 권력자 또는 미디어에 의해 차츰 변했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담배에 대한 인식은 옛날 어떤 권력자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출발했는지 모른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담배의 인식을 만들었을까. 종교적 의미가 더 컸던 담배의 출발부터 더듬어 봤다.

 

팔렌케 돌기둥에서 발견된 그림
팔렌케 돌기둥에서 발견된 그림

마야 유적에서 나온 담배 피는 성직자
많은 참고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인류 최초의 담배에 대한 기록은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팔렌케(Palenque) 유적에서 등장한다. 팔렌케는 서기 6세기 무렵 마야족이 세웠다고 추정되는 유적이다. 현재 멕시코 치아파스주 산토도밍고 델 팔렝케 지역에 위치해 있다.

1949년 멕시코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된 팔렌케에는 해골, 무덤, 석관 등과 함께 장식용 회반죽세공과 테라코타상들이 발굴됐다. 특히 돌기둥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에서 담배를 태우는 성직자의 모습이 나왔다. 오늘날과 비슷한 파이프 담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조각은 마야 문명 때 이미 담배를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조각의 모습은 샤머니즘 의식을 연상케 한다. 이는 담배를 종교적으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실제로 담배의 원산지인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점괘를 낼 때 담배를 이용하거나 부족 간 협약을 맺을 때 중요 의식 중 하나로 담배를 나눠 피웠다고 한다.

전세계에 담배를 전파한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 때 담배를 접했을 당시에도 주술사들이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거나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때문에 담배가 처음 유럽과 아시아에 전파됐을 때 약초로 인식됐고, 만병통치약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말려 잘라둔 담뱃잎, 얼핏 진짜 약초같다.
말려 잘라둔 담뱃잎, 얼핏 진짜 약초같다.

초창기 약초로 인식됐던 담배
원산지에서 샤머니즘 의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담배는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약초라는 인식이 번졌다. 특히 유럽에서는 의사들을 통해 담배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는 학설도 있다. 대항해시대(15세기~17세기) 당시 유럽은 전염병과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의사들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을 발굴하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 유럽에 건너 온 담배는 의사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원주민들은 치료의 목적으로도 담배를 사용했다. 이를 목격한 선원들이 의사들에게 자신들이 목격했던 광경을 전했고, 의사들은 이 새로운 식물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했다. 그 내용을 적은 의학서들은 유행처럼 번졌다. 저술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만병통치다.

이는 교역을 통해 담배가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 각지에 전파될 때도 따라다녔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담배를 약초로 인식하는 시각이 높았다. 조선시대 때 담배는 담습(痰濕)을 치료하는데 큰 효능이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담습은 가래가 끓거나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등의 증상을 일컫는다. 흔히 몸살과도 비슷하다. 이를 담배를 피워 치료했다는 기록이 무수하다. 당연히 어린아이들도 치료의 목적으로 담배를 태웠다.

담배가 몸에 해롭고 타인에게 피해를 안겨준다는 명확한 사실이 증명되기 전까지 흡연에 대해 관대했던 사회적 인식의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래 담배는 의료 분야에서 사용됐고, 민간에서도 널리 치료의 목적으로 담배를 사용했다. 오늘날 중국의 소도시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어린아이들이 목격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히틀러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나치' 금연 광고
히틀러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나치' 금연 광고

권력자들로부터 시작된 사회 인식
기품 있는 프랑스에 담배가 전파됐을 때 궁궐에서는 담배를 코로 내뿜는 행위를 극히 천박하게 인식했다. 루이 13세(1610 ~ 1643)는 궁궐 내에서 흡연을 금지했다. 이에 대신들이 선택한 것이 코담배다. 이 때문에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이 바로 코담배이며, 코담배를 코로 가져가는 도구, 코담배를 담는 케이스 등이 사치품이 됐다.

또한 1590년 교황 우르바노 7세는 세계 최초의 금연령을 발표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교회 내부 또는 베란다에서 흡연을 하는 사름들과는 모두 사제의 의리를 끊고 문하에서 추방하겠다고 엄포를 내린 것이다. 러시아의 미하일 로마노프 황제도 1633년 당시 금연령을 내리고 최고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슬람 역시 담배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했다. 1619년 인도 무굴 제국의 4대 황제 자한기르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입술을 자르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역시도 담배에 대한 예절과 문화가 궁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광해군이 흡연 예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담배가 조선에 전해진 이후 왕과 신하 모두가 맞담배를 피우며 국론을 이야기했지만, 담배 연기를 싫어했던 광해군이 “내 앞에서는 담배를 태우지말라”라고 경고하면서 임금 앞에서는 감히 맞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이는 어린 사람이 윗 사람 앞에서 맞담배를 피울 수 없는 현재의 흡연문화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근대에서는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히틀러와 담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골초였었던 히틀러가 금연으로 돌아서며 금연정책을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애초부터 혐연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중요한 것은 히틀러가 독일 여성들의 흡연을 전면 금지했다는 것이다. 군대에서도 흡연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몇몇 영화에서는 히틀러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담배를 꺼내 무는 독일군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웅본색에서 불붙은 달러를 담뱃불로 사용하는 주윤발
영웅본색에서 불붙은 달러를 담뱃불로 사용하는 주윤발

마초적인 이미지를 담게 된 담배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코로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다. 실제로 여성의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유럽 등 주로 서구권에서 더 격렬하게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귀족들이 코담배를 즐긴 이유와도 비슷하다. 이에 여성들의 흡연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번졌다. 담배 피는 여성을 섹시나 퇴폐미로 바라보는 인식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단순 기호식품 이상의 어떤 문화적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혔다.

특히 담배와 남성의 이미지가 제대로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담배가 전세계인에게 폭발적으로 전파되었다는 시기다. 아무래도 군인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세계대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담배를 보급품으로 병사들에게 내려 보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남성들도 이 시기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흡연자가 됐다.

더구나 담배회사의 마케팅도 담배와 남성을 연결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말보로가 서부 시대의 마초적인 이미지의 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일화다. 여기에 더해 주윤발이 불붙은 지폐를 담뱃불로 사용한 영화 장면과 같이 각종 미디어에서는 남성의 마초적인 성향을 더 돋보이도록 하는 연출 기법으로 담배를 애용했다. 남성과 담배가 연결되는 명장면들은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선시대 당시 집필된 여러 책에서는 ‘담배의 향이 파, 마늘보다 독하고 담뱃가루가 자칫 음식에 들어가면 그 음식을 모두 버려야하기 때문에 부녀자의 도리에 해가 된다’거나 ‘남녀가 술잔과 담뱃대를 주고받으면 안된다’는 내용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같은 이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거리에서의 여성 흡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결국 서울대 담배녀 사건도 이 같은 사회적 관념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다시금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는 인식
사회적으로 담배에 대한 인식은 사실 성적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 증명된 이후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담배는 건강에 해롭고, 간접흡연의 피해를 양산하기 때문에 흡연자에게는 의지가 약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의 건강에 위해를 가하는 가해자로도 인식된다. 담배의 마초적인 이미지와 여성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태아에게 특히 위험하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더 크게 각인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가 등장하면서 이 같은 인식도 차츰 변하고 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흔하게 접하는 궐련은 제조 과정에서 첨가되는 각종 화학물로 많은 양의 발암물질을 내포한 것이 건강을 해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오로지 니코틴만 흡입한다는 측면에서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인식이 있다. 당장 냄새만 맡아도 구수하거나 향긋한 향이 난다. 연기만 없앤다면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궐련형 전자담배는 담배를 찌운다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와 마찬가지로 독한 냄새가 없다. 특히 담배회사에서는 일반 궐련 대비 유해물질이 10분의 1은 줄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액상형과 궐련형 모두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담배의 가장 큰 부정적 인식인 건강을 해친다는 이미지가 다소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초기의 상태이기 때문에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지만,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무엇보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전자담배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궐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던힐을 전자담배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니 전용 기기인 글로와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또 담배를 태우는 모습 자체도 변하고 있다. 좀 더 사이버틱하다. 재떨이도 필요 없다. 이제 담배가 꼭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질 필요는 없는 시대가 됐다. 이는 자유를 갈망하는 남성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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