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에서 개최하는 37번째 레슬매니아가 한국시간 기준 4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개최된다. 

낯설다. 레슬매니아가 이틀 동안 개최되다니. 코로나19로 인해 2일 분산개최를 작년에 처음 시도했고 무관중 녹화방송으로 치러졌다. 작년 레슬매니아는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슬매니아는 몇 만 명의 관중과 함께 하는 WWE 제1의 PPV, 세계 스포츠 브랜드 가치 6위를 자랑하는 세계적 축제인데 말이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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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회장 빈스 맥마흔은 더 이상 무관중으로 가장 성대한 프로레슬링 축제인 레슬매니아를 치룰 수 없다며 올해는 유관중으로 치를 수 있게 개최지인 플로리다 주와 계속해서 협의하고 있다.

결국 레슬매니아는 개최될 것이다.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레슬매니아가 다가오면 당연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또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고 어떤 이야기가 끝날 것인지. 레슬매니아는 37번째 개최를 앞두고 프로레슬링 역사에 굵직한 사건들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었다. 어떤 레슬매니아에서 어떤 시작과 어떤 끝이 있었을까.

 

 

시작

레슬매니아 3 : 진정한 레슬매니아의 시작

북미 프로레슬링은 WWF(현 WWE), AWA, NWA 등이 경쟁하면서 서서히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갔다. WWF가 본격적으로 더 큰 입지와 인지도를 확보하며 성장할 수 있었는 계기에 WWF가 전면에 내세웠던 고유 브랜드 '레슬매니아'가 있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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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맥마흔은 아버지 빈스 맥마흔 시니어로부터 WWF를 물려 받고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1985년 레슬매니아 1을 개최해 큰 흥행을 거둬들인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1에 대한 기억을 뚜렷히 하는 팬들은 많이 없다. 

레슬매니아 1와 2의 메인 경기를 전부 출전한 헐크 호건은 거인 기믹으로 1987년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의 대립을 가졌다. 미국의 국민적 영웅 기믹을 가진 헐크 호건이 초인적인 몸집을 자랑하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맞붙는다는 것,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대결 구도였다. 거기에 레슬매니아 3에서 헐크 호건은 도저히 아무도 가능하지 않으리라 당연히 생각됐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에게 바디 슬램을 작렬시켜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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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기억하고 인정한다. 그 바디 슬램이 레슬매니아의 진정한 시작점이라고.

 

레슬매니아 12 : 소년의 정상 등극

헐크 호건이 WWE 1세대 프로레슬링 스타 아이콘으로써 1991년 레슬매니아 7 메인 경기까지 출전하며 흥행을 직접 이끌었다. 하지만 헐크 호건이 불사신은 아니었다. WWE도 마냥 헐크 호건에게 흥행을 기댈 수는 없었다. 즉, WWE는 다음 세대를 맡길만한 새로운 아이콘이 필요했다. 그 주인공으로 잘생긴 외모와 날렵한 경기 스타일을 선보이던 숀 마이클스가 낙점받았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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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는 WWE에 락커즈라는 태그팀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1991년 숀 마이클스는 마티 자네티에게 자신의 피니쉬 기술 스윗 친 뮤직을 날리고 인터뷰 세트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아 버리며 본격적인 싱글 레슬러로써의 길을 걸었다. 

싱글 레슬러로써 경력을 쌓던 숀 마이클스는 1996년 초 당시 WWE 챔피언이자 자신과 비슷한 체구를 가졌고 일생일대의 라이벌 브렛 하트와 WWE 역사 상 최초 60분 아이언맨 매치를 레슬매니아 12에서 가졌다. 60분 내내 둘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연장 승부에 돌입했다. 결국 숀 마이클스는 마지막 스윗 친 뮤직을 브렛 하트의 턱에 적중시키며 첫 WWE 챔피언에 등극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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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숀 마이클스는 명실상부 WWE 탑 가이로써 헐크 호건 다음 세대 흥행주자가 됐다. 항간에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크지 않은 체구로 거인들이 유리한 프로레슬링 세계에 정상에 선 숀 마이클스의 레슬매니아 12 승리를 보고 '소년의 성공기'라고.

 

레슬매니아 14 : 스티브 오스틴이 직접 터트린 WWE의 전성기

WWE가 세계 프로레슬링 제1의 단체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드는 궁금증이 있다. 제1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더 압도적으로 발전한 지금의 WWE지만,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성인 지향 프로레슬링 연출을 추구한 소위 '애티튜드 시대'라 불리는 그 때의 시청률을 WWE는 현재까지도 넘어서질 못 하고 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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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전성기 '애티튜드 시대', 그 '애티튜드 시대'의 본격적인 도약을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첫 WWE 챔피언 등극이 있었던 레슬매니아 14로 본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배드 애스 캐릭터를 가장 잘 살린 프로레슬러로 평가받는다. '선이든 악이든 내 앞길을 막으면 다 X까버린다'는 식의 WWE 내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행동거지는 미친듯한 매력을 뽐냈다. 특히, 1998년 WWE 챔피언 숀 마이클스와 그를 돕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을 대할 땐 더 미쳐 날뛰었다. 결국 레슬매니아 14 숀 마이클스를 맞상대해 자신의 피니쉬 기술 스톤콜드 스터너를 먹이고, 숀 마이클스를 배신하여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승리를 도운 마이크 타이슨의 결말은 엄청난 전율을 낳았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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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14에서 이전 세대 탑 가이 숀 마이클스를 꺾음으로서 마치 탑 가이 바통 터치를 이룬 듯한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WWE의 성공가도를 이끌었고 라이벌 단체였던 WCW를 높은 시청률로 압살 하는 결과를 이룩하기도 했다.

 

레슬매니아 21 : 'PG-13' 시대를 연 존 시나

신은 1인자에게 전부를 주지 않는다. WWE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성기가 끝이 났다. 성인들을 주 대상으로 한 '애티튜드 시대'는 서서히 하향세를 탔다. 성인을 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폭력적인 연출이 지속됐다. 그러다 크리스 벤와가 자신의 가족들을 몰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이 터졌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크리스 벤와의 뇌손상 상태는 평소 일생상활을 아주 만취한 상태로 지낸 것과 같았다는 검사 결과가 알려졌다. 크리스 벤와의 뇌손상에 그간 WWE에서 행해졌던 폭력적인 하드코어 연출이 직접적 원인 아니냐는 지적에 줄곧 이어졌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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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WWE는 성인지향 연출에 대한 자성 기류가 흘렀고, 성인 지향에서 아동·청소년 지향으로 선회하기에 이른다. 미국 영상물 등급제에서 13세 미만 관람불가를 뜻하는 단어에서 온 'PG-13'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 시대가 열렸으면 그 시대에 맞는 새 아이콘이 역시 필요하다. 힙합 기믹을 가지고 유망주로 손꼽히던 존 시나가 그 주인공으로 낙점받았다. 레슬매니아 21에서 약 9개월의 초장기집권을 지내고 있던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와 WWE 챔피언쉽을 존 시나는 가졌다. 자신을 상징하는 피니쉬 AA로 승리를 거두고 첫 WWE 챔피언에 등극했다. 초장기집권을 지니던 악역 챔피언을 상대로 레슬매니아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 WWE 각본진은 그야말로 새 시대 아이콘을 위한 대관식을 성대하게 치러준 것이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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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존 시나는 '무적선역' 캐릭터로 WWE를 선두에서 이끌었으며 'PG-13' 시대를 앞 시대와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의 시대로 자리 잡게 했다. 아직까지도 존 시나의 영향력은 프로레슬링계에 막대하다. '어느 시점에서 존 시나가 탭을 치며 패배하는가'와 '존 시나가 혹시 악역으로 돌변하는가'는 WWE 수익에 직결될 정도니 말이다. 이 시작이 레슬매니아 21이었다.

 

레슬매니아 30 : 다니엘 브라이언의 통합 챔피언 등극

존 시나가 '무적 선역'의 계보를 잇고 있어도 영원할 순 없다. 존 시나의 존재감이 프로레슬링 세계 범주를 넘어서자 할리우드에서도 그를 원했고 결국 존 시나도 영화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파트 타임' 프로레슬러가 돼버렸다. 다시 WWE는 새로운 아이콘을 찾아야 했다. 존 시나의 다음 주자는 다니엘 브라이언이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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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브라이언은 시대를 이끌만한 적합한 능력과 조건을 갖추었다. 신장이 173cm에 불과하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9년 동안 레슬링 옵저버에서 '올해의 테크니션 레슬러'로 선정했을 만큼 실력파 프로레슬러다. 그가 외치는 "Yes!" 챈트는 미국 정치권과 다른 종목의 스포츠에서도 사용을 원했을 정도로 엔터테인먼트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종합격투기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 시점에서 타격기와 실제 격투기 기술을 여럿 차용한 다니엘 브라이언 경기 스타일은 트렌드에도 부합했다. 

다니엘 브라이언은 30번째 레슬매니아에서 먼저 트리플 H를 꺾어 메인 경기였던 챔피언 랜디 오턴, 그 해 로얄럼블 우승자 바티스타와 함께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에 참가할 권리를 가졌다. 그 마지막 경기에서도 바티스타에게 자신의 피니쉬 기술 '예스 락'을 시전 하여 탭을 받아 WWE 챔피언 벨트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동시에 들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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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 존 시나의 후임 아이콘을 찾아야 했던 WWE는 다니엘 브라이언으로 그 갈증을 약간이나마 해소했다. 절대적이었던 존 시나의 영향력을 다니엘 브라이언이 현재 온전히 넘어섰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현재 WWE에 다니엘 브라이언에 없다면 WWE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지금 WWE의 아이콘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후보군 중에 분명한 1명의 인물이다. 다니엘 브라이언은.

 

 

레슬매니아 19 :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마지막 경기

앞서 말했듯이,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등장은 WWE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었고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거의 모든 프로레슬링 팬들이 인정한다. 프로레슬링 역사의 전환점을 이끈 4명의 인물을 뽑아 '러쉬모어 산'을 만든다면 그 4명은 헐크 호건, '더 락' 드웨인 존슨, 존 시나 그리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어야 한다고.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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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가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를 꺾으며 첫 WWE 챔피언에 올랐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레슬매니아 19에서 '더 락' 드웨인 존슨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은퇴했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 드웨인 존슨의 라이벌리는 WWE의 전성기를 그대로 채웠다. 레슬매니아 15에서 첫 대결해 '애티튜드 시대' 성공가도에 대한 가속을 밟았다. 2년 뒤, 레슬매니아 17에서는 마치 레슬매니아 3에서 펼쳐진 헐크 호건과 앙드레 더 자이언트에 버금가는 명대립이라 평가받으며 '애티튜드 시대'와 WWE 자체의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레슬매니아 19에서 3차전을 치렀다. '더 락' 드웨인 존슨은 지난 2차전과 달리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경기 내내 리드하며 승리에 다가갔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 막바지 총 3번의 '더 락' 드웨인 존슨의 피니쉬인 '락 바텀'을 허용하고 2번은 킥 아웃 했지만 3번째에선 핀폴 3 카운트를 내주며 패배했다. 특히, 마지막 '락 바텀' 시전 직전 '더 락' 드웨인 존슨이 잠시 가졌던 호흡의 순간은 이 둘의 '트릴로지'를 장엄하게 마무리하는 듯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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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1997년 섬머슬램에서 치러진 오웬 하트와의 경기에서 파일 드라이버를 맞고 목이 부러졌다. 그 부상이 완치가 되지 않은 채로 WWE 탑 가이로 활동한 것이다. 사상 최고의 인기와 절대적인 존재감을 떨치던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가 레슬매니아 19에서 '더 락' 드웨인 존슨과의 마지막 경기 패배 후 퇴장하는 장면에서 모두들 마음 속으로 경의를 표했음이 분명하다.

 

레슬매니아 24 : '선수' 릭 플레어의 장렬한 마무리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도 활동하기 전, 숀 마이클스도 활동하기 전, 1세대 레슬러에는 헐크 호건만 존재하지 않았다. 프로레슬링계 안에선 적어도 헐크 호건의 존재감과 기록에 뒤지지 않는 자가 바로 릭 플레어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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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플레어는 WWE, WCW, TNA 등 북미 주요 프로레슬링 단체를 대부분 경험했다. 어느 한 선수가 단체를 옮겨 활동할 때는 등장음악을 바꾼다. 하지만 릭 플레어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편곡한 등장음악을 릭 플레어는 공통적으로 사용했다. 즉, 북미 프로레슬링 단체들이 릭 플레어를 얼마나 전설로 대우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릭 플레어는 2000년대 들어 WWE 스토리라인에 직접 출연했다. 그가 속한 조직 ‘에볼루션’은 2000년대 초중반 주요 스토리라인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WWE의 공동 소유주, 에볼루션의 정신적 지주, 현역 선수 등으로 전천후 활약하던 릭 플레어는 2008년 열린 레슬매니아 24에서 숀 마이클스와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당시 각본 상 1대1 대결에서 패배할 시 은퇴해야한다는 조건을 유지한 채 숀 마이클스를 상대했지만 승리로 이끌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그 경기에서 마지막 스윗 친 뮤직을 앞두고 숀 마이클스가 "I Sorry, I Love You"라고 말하는 입 모양, 마지막 스윗 친 뮤직이란 것을 알지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릭 플레어의 분투, 핀폴 3 카운트 후에 숀 마이클스가 릭 플레어를 감싸 안는 장면은 릭 플레어의 은퇴경기에 걸맞은 명장면들이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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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플레어가 프로레슬링 활동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다. 이후 여러 이유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북미 프로레슬링 메이저 단체 최다 월드 챔피언 등극 21회에 빛나는 '선수' 릭 플레어의 장렬한 마무리는 레슬매니아 24였다.

 

레슬매니아 26 : '미스터 레슬매니아'의 퇴장

브렛 하트와의 초유의 1시간 아이언맨 매치에서 승리를 거둬 첫 WWE 챔피언에 올랐던 레슬매니아 12,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첫 WWE 챔피언 등극에 희생양이 됐던 레슬매니아 14 등 숀 마이클스는 여러 레슬매니아 등장하고 레슬매니아 격에 맞는 연출과 경기력을 보여 '미스터 레슬매니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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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는 2000년에 1차 은퇴를 선언했었다. 고질적인 등 부상이 완치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복귀하여 그 해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는 등 여전한 경기력과 스타성을 입증해 보였다. 그렇게 현역 생활을 이어가던 숀 마이클스는 자신의 커리어를 직접 마무리하기에 이른다.

2009년 레슬매니아 25에서 이미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언더테이커에게 다시 도전하려 했다. 하지만 2010년 초반 당시 언더테이커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고 도전하려면 그 해 로얄럼블에서 우승해야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렇게 숀 마이클스의 재도전은 물거품 되나 했다. 2월 펼쳐진 엘리미네이션 챔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에 숀 마이클스는 깜짝 난입하여 언더테이커를 방해하고 타이틀을 뺏기게 만들었다. 결국 언더테이커는 재도전을 받아들이되, 숀 마이클스의 경력을 걸라고 선언한다. 이 극단의 조건에 숀 마이클스는 승낙했다. 레슬매니아 26에서 언더테이커의 '연승'과 숀 마이클스의 '경력'이 걸린 ‘드림 매치’가 성사된 것이다. 경기가 성사되기까지의 대립을 담은 프로모 영상은 WWE 역대 최고의 프로모로 평가받는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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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는 또 언더테이커에게 졌다. 숀 마이클스는 은퇴를 하게 됐다. 쓸쓸히 링을 떠나는 그의 모습에 모든 이들이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은퇴 경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상당한 박진감으로 경기는 채워졌고, 프로레슬링 전문지 PWI는 레슬매니아 26에서의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올해의 경기'로 선정했다.

 

레슬매니아 28 : 시대의 끝

계속해서 언급된다는 건 그 단어가 그 세계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티튜드 시대'는 WWE의 최전성기였다. 물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당시 제1의 슈퍼스타였지만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활동한 다른 레슬러들도 WWE의 아이콘들로 성장했다. 

▲ (사진: W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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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테이커는 2009년과 2010년 레슬매니아를 숀 마이클스와의 2연전으로 채웠다. 이후 2011년과 2012년의 레슬매니아도 2연전으로 채웠다. 숀 마이클스와 함께 ‘애티튜드 시대’를 장식했던 트리플 H가 그 상대였다.

특히, 2012년의 대결은 '헬 인 어 셀' 매치로 치러졌다. 특별심판으로 숀 마이클스가 참여했다. '헬 인 어 셀' 매치는 기본적으로 반칙이 허용된다. '헬 인 어 셀' 안에 사각의 링 안에 철제 계단, 철제 의자 그리고 트리플 H의 상징물 슬레지해머까지 그야말로 언더테이커와 트리플 H는 과거 '애티튜드 시대'를 회상하듯 혈전을 펼쳤다. 마지막엔, 언더테이커는 슬레지해머로 반전을 노리려던 트리플 H에게서 되레 슬레지해머를 빼앗아 공격한 후 피니쉬 기술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작렬하여 레슬매니아 20연승을 이어갔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경기가 끝나고 특별심판 숀 마이클스는 승리한 언더테이커를 부축하여 포옹했다.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는 트리플 H를 일으켜 부축했다. 셋이 같이 레슬매니아 28 무대로 퇴장했다. 무대에 다다랐을 때 뒤돌아 수 만명의 관객들을 바라보는 셋의 모습에서 비로소 '애티튜드 시대' 주역들의, '애티튜드 시대'의 마지막 장이 덮히는 듯했다. 그들이 이끌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레슬매니아 30 : 언더테이커의 연승 마감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 승패가 그리 중요하진 않다. 각본이 녹아있기 때문에, 승패 여부는 서사의 일부일 뿐이다. 어떤 선수들이 어떤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경기를 가지며 누가 이기고 졌는지, 모든 과정이 결과 그 자체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특히,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경기에서 위 과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은 거의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가지는 선수는 레슬매니아에서 당연히 패배할 것이라 예상은 하되, 레슬매니아에서 언더테이커와 경기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상대 선수의 지위가 상당히 올라갔다고 동시에 평가했다. 언더테이커와 레슬매니아 21에서 경기를 가진 랜디 오튼이 그 대표적인 예다.

너무 마음을 놓았던 탓일까. 30번째 레슬매니아를 맞은 그 날에 언더테이커의 연승이 끊길 줄은 몰랐다. 아무리 상대라 '정복자' 브록 레스너라고 해도 혈투 끝에 언더테이커가 승리할 줄 알았다. 브록 레스너가 F-5를 작렬하고 언더테이커는 당연히 킥-아웃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심판은 카운트 3개를 전부 세버렸다. 언더테이커의 연승이 끊긴 것이다. 레슬매니아 30이 개최된 메르세데스-벤츠 슈퍼돔 안에 75,167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탄식을 질렀다. 충격이 낳은 일정 시간 정적이 흐르고 링 아나운서는 선언했다. 브록 레스너의 승리를. 그리고 브록 레스너의 등장음악이 흘렀고 브록 레스너는 매니저 폴 헤이먼과 함께 자축하며 퇴장했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링에 남은 언더테이커는 체념한 듯 이은 퇴장을 준비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슈퍼돔 내 모든 관중들도 기립했다. 모든 해설진들도 기립하여 경의의 박수를 언더테이커가 퇴장할 때까지 이었다. 언더테이커는 곧 레슬매니아였고 레슬매니아에서 언더테이커의 승리는 당연한 줄 알았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언더테이커도 그의 연승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레슬매니아 30에서 우리는 그 끝을 목격했다.

 

 

프로레슬링의 정점, 레슬매니아

레슬매니아 26에서 빈스 맥마흔은 브렛 하트와 경기를 가졌다. 레슬매니아 26 무대에서 서서히 등장하며 마이크를 손에 쥐고 "내 최고의 창조물인 레슬매니아!"라는 말을 했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 WWE에는 레슬매니아를 비롯한 다른 PPV들이 있는데 레슬매니아에 견주질 못 한다. 관객 수, 스토리라인의 절정, 당장 눈으로 확인되는 차별화된 크기의 등장 무대까지. 세계 모든 프로레슬링 팬들의 시선에 WWE는 걸맞은 결과물을 항상 내놓았다. 

그 레슬매니아가 역사적으로 주로 3월 말에서 4월 초에 개최돼왔다. 지금이다. 프로레슬링이 가장 뜨거울 지금, WWE 레슬매니아가 개최되기 직전인 지금 흥건히 프로레슬링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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