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부정할 수 없는 세계에서 제일 인기 있는 스포츠다. 축구만을 위한 세계적 축제 FIFA 월드컵은 올림픽의 아성을 뛰어넘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분류해보자. 각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경기, 그 국가대표들이 한 데 모여 자웅을 가리는 대회가 앞서 말한 FIFA 월드컵이다. 국가대항전 말고 클럽에 소속된 팀들이 한 데 모여 자웅을 가리는 대회 중에 가장 권위가 높은 대회는 어느 대회일까? FIFA에서 주관하는 '클럽 월드컵'이 있지만 대륙마다 축구 수준 차이가 현저해 세계 최강의 축구 클럽을 가지라는 취지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건 사실이다. 여러 대륙 중에서도 축구가 시작되고 많은 나라와 리그가 밀집해 세계 최고의 클럽 대항전으로 대우받는 리그가 바로 유럽축구연맹(UEFA) 주최 '챔피언스리그'다.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빅 이어'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빅 이어'

각 대륙마다 해당 대륙 축구연맹 주최 '챔피언스리그'는 존재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챔스'를 지칭하는 대회는 'UEFA 챔피언스리그'다. 

올해도 어김없이 'UEFA 챔피언스리그'는 개최·진행됐고 한국시간 기준 5월 30일 새벽 4시 포르투갈 이스타디우 두 드라강 경기장에서 맨체스터 시티 FC와 첼시 FC가 결승전을 장식한다. 이번 결승전에선 또 어떤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질까?

유난히 우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생생히 기억한다. 몇몇의 명승부 및 의미 있는 결승전이 뇌리에 깊게 남았고 그 인상이 계속해서 밤새 결승전을 시청하게 하는 이유를 제공해왔다. 이번에도 역시 축구팬들을 잠 못 자게 그 기대, 기대를 심어준 지난 기억 속 'UEFA 챔피언스리그' 명승부를 다시 떠올려보자.

 

 

1998-1999 : 캄 노우의 기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vs FC 바이에른 뮌헨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 안에서 몇몇 경기들은 믿을 수 없는 과정과 결과물로 '기적'이란 단어가 붙었다. 그 시초로 불리는 경기가 바로 '1998-199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펼쳐진 '캄 노우의 기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와 FC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의 경기였다.

경기 양상은 뮌헨의 리드로 흘러갔다. 마리오 바슬러의 프리킥 골은 맨유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렇게 1:0으로 경기 내내 뮌헨은 앞서갔다.

▲ (영상: 유튜브 UEFA 공식 계정)

야구에는 '9회 말 2아웃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다. 축구로 바꾼다면 '9회 말 2아웃'은 '90분'이란 단어가 적합할 것이다. 공세를 펼치던 맨유는 후반전 추가 시간 1분에 테디 셰링엄에 동점골을 터트렸다. 이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2분 뒤 곧바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역전골을 성공시켜 단 3분 만에 축구의 신을 맨유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날의 승리로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해 '트레블'을 이룰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헤이첼 참사'로 축구 종주국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 했던 영국 축구가 실력으로 유럽 축구 중앙으로 다시 들어서게끔 했다. 당시 맨유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기에 이른다.

 

2004-2005 : 이스탄불의 기적
리버풀 FC vs AC 밀란

엄밀히 따지면 '캄 노우의 기적'은 유럽축구가 우리나라 문화계에 대중화되기 전 세대의 사건이다. 현재 우리나라 축구계를 더불어 문화계가 더 짙게 기억하고 있는 기적은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펼쳐진 '이스탄불의 기적'이다. 왜냐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으로 세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박지성과 이영표가 당시 함께 뛰던 PSV 에인트호번이 4강까지 진출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국민적 집중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AC 밀란은 그야말로 최강팀이었다. 선발 출전 11명의 면면을 살펴봐도 공격, 중원, 수비 어디 하나 틈이 없을 정도로 '올스타급' 스쿼드였다. 반면, 반대편 블록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리버풀 FC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객관적인 평가에서도 한 수 아래로 취급받았으며, 주전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상을 안고 출전해 승리의 예측이 대부분 AC 밀란으로 향하고 있었다.

▲ (영상: 유튜브 UEFA 공식 계정)

경기 양상 또한 전반전까지 일방적이었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AC 밀란 그 자체인 파올로 말디니가 선제점을 따냈으며, 연달아 에르난 크레스포가 2점을 추가해 3:0으로 리드한 채 전반전을 마쳤다. 여기까지 어느 누구도 리버풀 FC가 이 날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리버풀 FC 그 자체인 스티븐 제라드가 헤딩슛으로 추격골을 성공시켰다. 세리머니로 선수들의 사기와 팬들의 환호를 이끄는 제스처를 했는데 이 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스미체르, 샤비 알론소의 골이 연달아 터져 정규시간 90분이 다 지났을 때는 3:3 동점이 돼있었다.

연장 전후반도 득점 없이 끝나고 승부차기로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을 가려야 했다. 4번 키커까지 AC 밀란이 2개, 리버풀 FC가 3개를 성공시켰다. 당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AC 밀란의 마지막 키커 안드리 셰브첸코가 리버풀 FC 골키퍼 예지 두덱의 선방에 막혀 최종 승리는 리버풀 FC에게 돌아갔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0:3으로 뒤지고 있던 '언더독'이 캡틴 스티븐 제라드의 골로 시작해 동점을 만들어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뒤엎다니. 우승 세리머니 때 '빅 이어'를 들어 올리는 리버풀 FC 주장 스티븐 제라드의 환호는 '이스탄불의 기적'의 아름다움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2007-2008 : 장지현 해설위원은 눈을 감으세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vs 첼시 FC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때 맹활약한 박지성은 맨유 감독 알렉스 퍼거슨 레이더망에 포착돼 2005년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 2012년까지 7년간 박지성은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다. 특히, 2007-2008 시즌 때도 맹활약하며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이바지했다.

그래서 맨유팬, 박지성팬, 축구팬 모두가 의심하지 않았다. 박지성의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은 박지성 대신 오언 하그리브스를 출전시켜 대한민국 축구팬의 공분을 샀다.

경기 양상은 백중세였다. 각 팀의 간판스타였던 맨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첼시 FC의 프랭크 램파드가 골을 넣어 1:1의 균형을 이루었다. 그렇게 연장전까지 모두 보내고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 (영상: 유튜브 UEFA 공식 계정)

맨유의 3번 키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실축했다. 그렇게 5번 키커 차례까지 왔다. 맨유의 5번 키커 루이스 나니는 골을 성공시켰다. 다음 첼시 FC의 5번 키커 존 테리가 골을 성공시키면 이대로 첼시 FC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존 테리는 비 오는 날씨 속에서 젖은 그라운드에 미끄러지며 실축해 승부는 서든데스로 넘어갔다. 첼시 FC의 7번 키커 니콜라 아넬카가 실축하는 바람에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맨유에게로 돌아갔다. 

경기 후 축하 세리머니에 참석한 박지성은 슈트를 입고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광경이 연출됐다. 아마 이 날을 기억하는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기쁨과 씁쓸이라는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특히, 첼시 FC의 광팬으로 알려진 장지현 해설위원은 이 날을 떠올리면 잠시 눈을 감지 않을까?

 

2008-2009 : 드디어 '해버지' 결승 출전
FC 바르셀로나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0년대 후반 맨유의 조직력은 1999년 '캄 노우의 기적'을 일으켰던 때의 스쿼드와 비견될 정도로 막강했다. 그 중엔 역시 '해버지' 박지성이 있었고 박지성은 2008-2009 시즌에서도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넘나들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맨유만큼이나 전성기를 달리며 위용을 떨치던 팀이 있었으니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였다. 티에리 앙리,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의 최강의 공격진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지오 부스케츠, 차비 에르난데스로 FC 바르셀로나 프랜차이즈 중원 '세 얼간이' 트리오는 맨유를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 (영상: 유튜브 UEFA 공식 계정)

박지성은 작년의 설움을 풀고 '2008-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선발 출전에 성공한다. 60분가량 그라운드를 누비며 투혼을 발휘했지만 FC 바르셀로나의 벽은 더 높고 창은 날카로웠다. 사무엘 에투와 리오넬 메시의 연속골에 맨유는 준우승에 그쳤으며 박지성이 슈트가 아닌 유니폼을 입고 '빅 이어'를 드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 날의 결승전을 축구팬들이 더욱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당대 세계 축구판을 양분하던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맞붙은 유일무이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기 때문이다.

 

2018-2019 : 10년 만에 '해버지' 뒤를 이은 'SON'
리버풀 FC vs 토트넘 홋스퍼 FC

박지성이 2012년 맨유를 떠나고 일시적으로 해외축구의 붐은 다소 소강상태를 맞았다. 박지성의 뒤를 이어 유럽축구를 누비며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른 선수가 바로 손흥민이다. 손흥민이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이하 토트넘)로 이적한 후 성공적인 안착을 이뤘다. 다시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밤을 지새워 손흥민 경기를 시청했으며 아침마다 손흥민 골 소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물론 손흥민이 올 시즌에 개인 역대 리그 최다 17호 골까지 성공시키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맞고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손흥민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를 거쳐 오면서다. 특히, 8강 1·2차전 종합 3골을 터트리며 큰 경기에서도 강하다는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4강에서도 토트넘은 AFC 아약스를 상대로 루카스 모우라가 해트트릭을 터트려 '암스테르담의 기적'을 손수 완성해 토트넘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 (영상: 유튜브 UEFA 공식 계정)

토트넘의 결승 상대는 리버풀 FC였다. 14년 전 '기적'을 바랐던 언더독 리버풀 FC가 아니었다. 위르겐 클롭 감독 지휘 아래 드디어 리버풀 FC다운 스쿼드가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던 2019년 당시 잉글랜드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리버풀 FC였다.

물론 이 날의 경기는 리버풀 FC가 선제 득점에 이은 철저한 수비지향 자물쇠축구로 2:0 승리를 거뒀다. 박진감이 넘치며 승부를 알 수 없는 그런 식의 명경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박지성에 이은 우리나라 선수 손흥민의 결승 선발 출전, 토트넘이 만들어낸 '암스테르담의 기적'과 리버풀 FC가 FC 바르셀로나를 꺾은 '얀필드의 기적'이라는 걸어온 드라마들이 오랜만에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새벽잠을 빼앗았다.

지금 토트넘의 전력으로 다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꿈꾸기엔 무리가 있다. 박지성과 손흥민 그리고 다음을 이을 우리나라 '월드 클래스' 축구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이 날의 결승전을 자꾸 보게 되는 것 같다.

 

 

잠 그까이꺼 하루 안 자면 뭐 어때?

유럽 대륙 가장 서쪽에 있는 아이슬란드 나라의 수도 레이캬비크는 서울보다 9시간 느리다. 러시아 모스크바는 서울보다 7시간 느리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를 실시간으로 즐기려면 어쩔 수 없이 잠을 미뤄가며 새벽에 시청해야 한다.

그렇게 잠을 자지 않고 시청한 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세기에 남을 명승부였다면, 그 순간 이제 남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아 그 경기 하이라이트로 봤어? 난 라이브로 봤잖아"라는 말과 함께 어깨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렇듯, 축구는 평생 남을 추억거리를 반드시 선사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결승전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4시 경기라 시청하기에 부담이 적다. 명승부가 펼쳐지는 역사의 산증인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알람을 맞춰 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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