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메이저리그에서 대기록이 쓰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루수 마크 맥과이어가 대망의 70 홈런을 쏘아 올렸다. 메이저리그 역사 상 아니 세계 야구 역사 상 리그에서 한 선수가 홈런을 70개나 때려내다니. 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 스테로이드 약물 검열이 느슨해 마크 맥과이어가 이에 대한 득을 봤다고 하지만, 마크 맥과이어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로 같은 해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홈런 레이스를 달리던 새미 소사와의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너 홈런 쳤어? 받고 나 하나 더'와 같은 느낌으로 홈런을 추가하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는 최종적으로 마크 맥과이어 70개, 새미 소사는 66개를 기록해 1998년을 메이저리그의 해로 장식했다.

▲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사진: MLB.com)
▲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사진: MLB.com)

그렇다. 시대의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의 대기록에는 라이벌 새미 소사의 존재가 필연적이었으며, 라이벌은 그렇게 흥행과 인기를 동반한다.

40년에 다다르는 KBO 역사에도 시대를 양분하고 장식한 앞선 맞수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펼치는 선의의 경쟁 역시 KBO 수준 향상으로 이어졌고 팬들을 야구장으로 집합시켰다. 

KBO 출범 이래로, 시대를 양분하며 한국 야구를 직접 이끌었던 '세기의 라이벌'에는 누가 있었는지 과거를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자.

 

 

최고의 투수는 누구인가
최동원과 선동열

두 말할 것 없다. 한국 야구 역사 상 가장 상징적이고 '라이벌'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선수들은 최동원과 선동열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관계는 단순히 그들의 존재 안에서 한정되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 영남과 호남, 연세대와 고려대 등의 여러 구도들이 녹아있어 단순 선발 맞대결 그 이상의 의미들이 함축돼있다.

▲ (사진: 유튜브 KBS 다큐 공식 계정, 전설의 타이거즈 공식 계정 캡처)
▲ (사진: 유튜브 KBS 다큐 공식 계정, 전설의 타이거즈 공식 계정 캡처)

최동원과 선동열은 선발 맞대결만 총 3번 치렀다. 결과는 사이좋게도 1승 1무 1패. 야구팬들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도 만들어진 승부가 그 1무의 경기다. 1987년 5월 16일 사직 구장에서 연장 15회로도, 최동원은 209개와 선동열은 232개라는 초인적인 투구 수를 기록하고도 무승부로 끝이 났다. 가히 질문을 던질만했다. '최고의 투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2021년 현재까지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 왜? 최고의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 때문에.

 

최고의 마무리는 누구인가

진필중과 임창용

투수의 보직에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다. 선발투수, 중간계투 그리고 마무리투수. KBO 40년 역사에 있어 독보적 마무리투수는 항상 존재했다. 김용수,  송진우, 선동열, 정명원, 오승환, 손승락 등. 이들은 활약한 시대에 라이벌을 허용치 않은 독보적 마무리투수였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최고의 마무리가 KBO에 2명 있었다. 진필중과 임창용이었다.

▲ (사진: 유튜브 광주 MBC 공식 계정, 썸타임즈 공식 계정 캡처)
▲ (사진: 유튜브 광주 MBC 공식 계정, 썸타임즈 공식 계정 캡처)

진필중과 임창용이 정점에서 리그를 양분했던 시기는 1999년이었다. 두 선수의 기록만 봐도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진필중은 114이닝 16승 36세이브 2.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임창용은 138 2/3이닝 13승 38세이브 2.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대체 이들은 선발투수인가? 마무리투수인가? 마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하루가 다르게 홈런을 쏘아 올렸던 것처럼 진필중과 임창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이브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진필중과 임창용은 마무리투수 세계에서도 라이벌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최고의 장타자는 누구인가

이승엽과 심정수

야구는 뭐니 뭐니 해도 홈런이다. 짜릿한 홈런은 선수들 뿐만이 아닌 관객들도 흥분시킨다. 한국 야구 역사 상 최고의 홈런타자는 다른 인물이 될 수 없다.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KBO 한정 홈런만 467개를 때려내며 홈런은 즉 이승엽 임을 선수 시절 내내 증명했다. 하지만 홈런타자를 넘어 장타자로서 도전장을 내민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헤라클레스' 심정수다.

▲ (사진: KBO, 유튜브 썸타임즈 공식 계정 캡처)
▲ (사진: KBO, 유튜브 썸타임즈 공식 계정 캡처)

이들의 라이벌 구도는 2003년에 정점을 찍었다. 2003년은 이승엽이 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려 아시아 최다 홈런을 기록한 해로 모두들 기억한다. 그 기록 바로 밑에 심정수가 있었다. 심정수 역시 홈런을 53개나 때려 2003년을 이승엽의 해로만 기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홈런만큼이나 중요한 안타·출루율·장타율에서 심정수는 이승엽보다 앞서기도 했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 달성에 힘 입어 2003년의 MVP는 이승엽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타격 세부 지표에 심정수의 OPS가 높았기에 진정한 MVP는 심정수였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홈런타자 범주를 넘어 장타자의 면모로서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의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우타자는 누구인가

이대호와 김태균

진필중과 임창용의 1999년, 이승엽과 심정수의 2003년과 같이 특정 선수들이 특정 연도에 서로 동시에 절정의 기량을 선보여 라이벌 구도를 한 해에 만든 경우가 있다면, 두 선수가 선수 시절 내내 높고 고른 존재감을 드러내 오랫동안 라이벌로 군림한 경우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와 부산야구의 심장 이대호와 한화 이글스와 대전야구의 자존심 김태균이 그러하다.

▲ (사진: 롯데 자이언츠 공식 홈페이지, KBO)
▲ (사진: 롯데 자이언츠 공식 홈페이지, KBO)

두 선수를 단순 연도 단위로 비교할 수가 없다. 한 선수가 절정의 기량을 보이면 한 선수는 다른 나라 다른 리그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 하지만 이대호와 김태균이 우리나라 야구 역사에 있어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우타자였음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이대호와 김태균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때 우리는 더욱 안정감을 느끼며 응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대호와 김태균이 한국 야구에 기여한 바가 남다르기에 둘을 묶어 시대의 라이벌로 칭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성격의 라이벌, 같은 시기를 공유하며 나란히 달린 라이벌, 우리나라 최고의 우타자 명단에 반드시 이름을 올릴 이대호와 김태균이다.

 

최고의 좌완 파이어볼러는 누구인가

김광현과 양현종

야구만큼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에 따라 선수 가치가 나뉘는 스포츠도 없을 것이다. 보다 주자를 효과적으로 묶을 수 있는 왼손잡이면서 투수의 최우수 조건인 강속구를 연신 뿌려댄다면 모든 야구인들은 주목하고,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며 그 좌완 파이어볼러의 중요성에 대해 무한히 강조할 것이다. 우리나라 야구에 대표적인 좌완 파이어볼러 김광현과 양현종은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를 직접 이끌며 2010년대 신흥 라이벌로 부상했다.

▲ (사진: SSG 랜더스,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 (사진: SSG 랜더스,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류현진이 김광현과 양현종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류현진은 변화구 비중이 비교적 높아 현재는 파이어볼러 이미지로 한정할 순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광현과 양현종의 주무기는 직구다. KBO 기준 김광현과 양현종의 직구는 리그 최상위권이었으며 그에 따른 김광현의 고속 슬라이더, 양현종의 회심의 체인지업은 두 선수가 2010년대 시대를 양분하는 88년생 동갑내기 라이벌로 거듭나게 했다. 특히, 2017년 양현종과 2018년의 김광현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세이브는 2010년대 후반 한국야구는 이들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했다.

 

최고의 젊은 피는 누구인가

강백호와 이정후

지금까지의 라이벌은 모두 과거였다. 즉, 이들의 선배 격 라이벌이었다. 과거를 충분히 되돌아봤으니 이제 현재로 돌아오자. 2021년 현재 KBO를 직접 이끌고 있는 라이벌은 누구인가? 다른 후보군이 없다. 2021년 6월 7일 기준 .411이라는 경이적인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kt 위즈의 강백호와 데뷔와 동시 신인상 그리고 3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최고의 젊은 피가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겨루고 있다.

▲ (사진: kt 위즈,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강백호는 프로에 대한 적응기간도 필요 없다는 듯이 데뷔해에 바로 홈런을 29개나 때려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정후는 데뷔 이래 4시즌 내내 160안타·3할 이상을 기록할 만큼 타격기계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강백호의 1루수 전향으로 직접적 비교가 어렵긴 해도 확실한 것은 두 선수는 한국 야구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이다. 강백호와 이정후라는 라이벌이 한국 야구계에 안 좋은 점도 낳긴 했다. 모든 신인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이들 정도는 이제 해야 된다. 이것이 강백호와 이정후 라이벌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다.

 

 

라이벌의 기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라이벌 구도는 현재까지 자이언츠와 타이거즈가 KBO의 대들보 구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진필중과 임창용의 라이벌 구도는 마무리투수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이승엽과 심정수의 라이벌 구도는 우리나라에도 이만한 홈런타자가 있음을 알렸다. 이대호와 김태균의 라이벌 구도는 오랜 기간 한국 야구를 직접 지탱했다. 김광현과 양현종의 라이벌 구도는 선수를 넘어 팀의 황금기를 함께 해 흥행을 이끌었다. 강백호와 이정후의 라이벌 구도는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한국 야구를 밝게 했다.

이렇게 한국 야구 역사에 있어 라이벌 계보는 라이벌로 존재하며 결국 한국 야구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인기까지 책임졌다. 즉, 감정적 앙숙이 아니라면 선의의 경쟁이 바탕이 되는 라이벌은 프로 스포츠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야구 관계자를 비롯한 팬들 모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선의의 라이벌을 만드는 것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