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서 언제나 큰 전쟁을 겪은 이후에는 전쟁 중 벌어졌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후대에 전해진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기발한 전술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작전들에 대한 이야기도 후대에 남는다.

그러니 거의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전했다고 알려진 인류사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여전히 당시를 그리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무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뜨겁다.

그러나 맨즈랩에서 주목하는 이야기는 황당 실화들이다. 정상적이고 영웅적인 이야기들은 재미없지 않은가. 그래서 믿기 힘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황당 실화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실제 케냐산
실제 케냐산

“그 곳에 산에 있었다”
1941년 연합군은 당시 이탈리아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한다. 식민지청에 근무 중이었던 이탈리아인 필리체 베누치(1910~1988)는 졸지에 전쟁 포로가 됐고, 영국의 식민지 케냐의 제354 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1년이 넘게 불안하고 답답한 포로 생활을 하던 필리체 베누치에게 한 산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케냐산이다. 케냐산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풍경도 빼어나다. 필리체 베누치는 케냐산에 홀딱 빠져버린다. 그리고 꿈을 갖는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케냐산을 다녀오겠다는 꿈이다.

 

필리체 베누치
필리체 베누치

이에 필리체 베누치는 포로수용소에서 처음 만난 동료 2명과 감시병들의 눈을 피해 등반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철, 끈과 같은 각종 잡동사니로 장비를 만들고 비상식량을 비축하면서 산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다. 장장 8개월 동안의 준비다.

1943년 드디어 필리체 베누치는 등반 준비를 했던 동료들과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목적은 오직 하나. 케냐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해발 5000미터에 달하는 케냐산 레나나 봉 등정에 성공하고 깃발을 꼽는다. 훗날 같은 봉우리를 등정한 한 산악인에 의해 이 조잡한 깃발이 발견된다. 그리고 케냐산을 정복한 이들은 다시 포로수용소로 돌아온다.

이들은 단지 케냐산을 등정하고 싶었을 뿐 다른 이유로 탈출을 감행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4주 간 독방 신세를 지게 된다.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필리체 베누치는 이를 책으로 엮어 1947년 출판한다. 그 곳에 산이 있으니 오르는 것일 뿐. 전쟁이라고 막을 쏘냐.

 

2차 세계대전 중 보이텍
2차 세계대전 중 보이텍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곰
보이텍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군 소속으로 참전한 시리아불곰의 이름이다. 몬테카지노 전투에서 실제로 참전했다. 전역 당시 계급은 하사다.

1942년 이란 반다르에안잘리에서 플레스타인으로 떠나던 폴란드군의 한 병사는 현지 이란인 소년으로부터 아기였던 시리아불곰 한 마리를 구매했다. 어미를 잃고 이란인 소년에게서 길러지던 이 불곰은 처음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보드카병에 우유를 담아 먹였다. 이 같은 기억 탓에 보이텍으로 이름 붙여진 이 불곰은 평생을 병에다 물이나 주스를 담아 먹는 것을 좋아했다.

보이텍은 자유 폴란드군 제2군단 22보급중대원들에게 길러졌다. 이 때문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탈리아, 영국 등을 누볐다. 군인들에 의해 길러졌기 때문에 먹이도 대부분 과일이나 꿀, 맥주 등이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순한 성격으로 길러졌다. 평소 병사들과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폴란드 육군 제2군단 제22보급중대 문장
폴란드 육군 제2군단 제22보급중대 문장

보이텍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1944년 몬테카지노 전투에서다. 포를 쏘는 전투에서 군인들을 도와 포탄 운반을 담당했다. 보이텍은 단 한 번도 이 포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큰 유명세를 떨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자유 폴란드군이 해산됨에 따라 영국 에던버러 동물원에서 지내게 된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던 동료 군인들이 끊임없이 보이텍을 찾아와 외롭지 않게 지냈다. 현재 폴란드 육군 제2군단 제22보급중대 문장은 보이텍이다.

 

미국 해군 구축함 오배넌
미국 해군 구축함 오배넌

잠수함을 격침시킨 감자
1943년 미국 해군 구축함 오배넌(O’bannon)함은 남태평양 해역을 항해 중 우연히 일본 잠수함(RO-35)과 마주쳤다. 일본 잠수함은 물론, 오배넌함 역시 근접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포 사격이 어려울 정도로 근접했다.

오배넌함은 처음에는 들이 받아 격침하려고 했지만 부비트랩과 같이 잠수함에 기뢰가 설치되어 있을 수 있는 판단에 충돌 직전 작전을 변경한다. 갑작스러운 작전 변경에 오배넌함은 일본 잠수함과 평행을 이루게 됐다. 깜짝 놀란 일본 수병은 넋이 나가 기관총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미처 개인화기를 갖추지 못한 오배넌함의 수병들은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잠수함을 향해 던졌다. 마침 갑판 위에는 감자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이에 기관총을 향해 달려가는 일본군 수병에게 돌팔매질을 하듯 감자를 있는 힘껏 던진 것이다.

 

공로패를 받은 오배넌호의 당시 신문 기사
공로패를 받은 오배넌호의 당시 신문 기사

그러자 일본 수병은 공포에 질려 본인에게 쏟아지는 감자를 바닥에서 집어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바닷길에서 갑작스럽게 적 구축함을 맞닥뜨려 크게 놀란 것은 물론, 경황이 없던 탓에 날아들던 감자를 수류탄으로 오인한 것이다. 갑판 위로 떨어진 감자들을 허겁지겁 집어 바다로 던지는데 정신이 팔려 기관총을 쏠 겨를이 없었다.

이 잠깐의 시간 동안 오배넌함과 잠수함의 거리는 포를 쏠 거리 정도로 벌어졌고, 오배넌함은 즉시 일본 잠수함을 포격해 격침시킨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감자 수류탄 사건이다. 오배넌함에 감자를 공급했던 미국 메인주의 농부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오배넌함에 공로패를 전달한다.

공로패에는 ‘1943년 봄, 우리가 생산한 감자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한 기발한 작전을 기념해 오배넌함 장병들에게 공로패를 드립니다. 1945년 6월 14일 미국 메인 주 감자 영농인 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처남 매부 커플 실제 사진
처남 매부 커플 실제 사진

전쟁 중 처남, 매부된 사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마켓 가든 작정 당시 벌어진 일이다. 영국 제1공수단 소속 1개 중대는 독일군 SS친위대 2개 중대가 방어하고 있었던 마을을 야간 기습한다.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장시간의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이에 양측은 총격전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휴식을 취한다. 사건은 휴식 도중 벌어진다. 한 영국군 병사가 순찰을 돌다 갑작스럽게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돌아보니 독일군 장교가 걷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독일군 장교는 비무장 상태였고 영국군 병사는 독일군 장교를 생포한다.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끝난 것 같았던 그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다. 여동생 사진을 영국군 병사에게 보여주며 “지금 날 풀어주면 여동생을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 고민하던 영국군 병사가 독일군 장교의 제안을 승낙하고 풀어준다.

 

실제 독일군 장교의 여동생 사진
실제 독일군 장교의 여동생 사진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다. 이 영국군 병사는 독일군 장교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이에 독일 퓌센 지역을 찾아 독일군 장교를 만났고, 마침내 사진 속 주인공을 만난다. 이후 영국군 병사와 독일군 장교의 여동생은 연인을 발전하고 2년 간 열애 끝에 1947년 결혼한다.

이 세기의 커플은 1952년 첫째 딸을, 1955년 둘째 딸을, 1959년 막내아들을 낳는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며, 영국 웨일스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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