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시장은 3대 패널 제조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난립했던 과거 시장과 달리 이제는 삼성, LG, 벤큐의 자회사인 AUO가 전세계 3대 패널 제조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좋은 패널은 자사 제품에 사용하고 그 보다 급이 떨어지는 패널들을 OEM 제조사에 공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만나는 모니터 제조사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핵심 부품인 패널만 확보한다면 나머지는 큰 기술을 요구하지 않죠. 거의 동일한 패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모니터 브랜드를 우리가 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 PC방 사장들은 대형 모니터가 부족할 때 직접 공장을 찾아가 생산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패널만 있다면 모니터를 만든다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대 이와 비슷한 시장이 또 있습니다. 바로 SSD입니다. SSD 역시 핵심 부품인 낸드와 컨트롤러만 확보하면 나머지는 큰 기술을 요구하지 않아 생산이 쉽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제조사들이 난립해 있습니다. SSD 브랜드가 너무 많아서 소비자들은 어느 회사의 제품이 좋은지 헷갈리죠. 특히 중저가 브랜드의 경우 어디서 벤치 정보라도 구해야 따져볼만합니다.

하지만 SSD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들도 명확합니다. 낸드 플래시 제조사들이죠. 삼성, 도시바, 마이크론, SK하이닉스가 대표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삼성이 하이엔드 시장의 끝판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며, 한•미•일 연합의 인수로 자금을 확보한 도시바메모리와 이하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비등한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니터 시장과 마찬가지로 SSD 시장 역시 낸드 제조사들의 상황에 따라 나머지 OEM 제조사들이 영향을 받는 구조입니다. 그런대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제조사들이 난립해 있는 SSD 시장과 달리 HDD 시장은 3개 회사가 군림하고 있죠. 씨게이트, 웨스턴디지털, 도시바가 3대 기업입니다. 전통적인 HDD 제조사들이 SSD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낸드 플래시를 확보하고 말이죠.

 

우리나라의 SSD 시장 흐름은?
HDD 제조사들의 SSD 시장 진출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SSD 시장을 살펴봐야겠죠. HDD 제조사들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혹시 엠트론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SSD의 역사는 엠트론에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기업이었던 엠트론은 2007년 11월 기업용과 소비자용 SSD를 선보여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습니다. 자체 컨트롤러를 개발한 기술력도 인정받아 도시바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죠. 하지만 전신인 디지털퍼스트가 자회사인 엠트론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대규모 주식매수청구 비용이 발생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되며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엠트론이 주춤해지면서 성장한 것은 바로 삼성입니다. 사실 SSD 시장의 초기 주도권은 엠트론이 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엠트론이 다양한 이슈로 흔들리는 사이 착실하게 SSD 시장을 잠식한 곳이 삼성이었습니다. 물론, 인텔과 인디링스도 무시할 수 없었죠. 이 3사가 2010년을 전후해 SSD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PC 매니아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저가 브랜드의 공습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으로 SSD가 대중화된 시점은 2013년 전후입니다. 게이머를 중심으로 속도가 이슈화 되면서 120~128GB 용량의 SSD가 주류로 성장하고 HDD를 빠르게 대체해 나갔습니다. 특히 SLC에서 MLC, 그리고 MLC에서 TLC로 넘어오면서 SSD의 가격은 계속적으로 하락했고, 이때부터 수많은 중저가 SSD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SSD 시장에 뛰어듭니다. 특히 삼성 등 시장을 주도했던 제품들에서 일부 문제가 불거지자 중저가 브랜드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도 증가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사실상 SSD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보편화됩니다.

2016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무수히 많이 등장한 중저가 OEM 제조사들의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집니다. 현재 삼성이 SSD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형 브랜드들의 추격, 중저가형 시장은 100여개가 넘는 SSD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며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입니다. 하지만 SSD 시장은 점차적으로 HDD 제조사들이 SSD 시장에 진출하면서 판도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스토리지 시장에서 독보적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씨게이트, 웨스턴디지털, 도시바 등 HDD 3대 제조사가 모두 SSD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해가 쉽게 표현하자면 치열한 자영업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한 상황입니다.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핵심 부품인 낸드 플래시를 확보하고 말이죠.

 

HDD 제조사들의 낸드 플래시 확보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SSD 시장은 핵심 부품인 낸드 플래시를 생산하는 제조사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HDD 제조사들의 입장에서는 SSD 시장에 진출하려면 우선적으로 낸드 플래시를 확보하는 일이 선제 조건이죠. HDD 제조사들은 이 낸드 플래시를 확보하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도시바메모리가 있습니다.

도시바는 2011년 이후 적자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2015년 영입이익을 과다 계상했다는 부정회계 의혹에 휩싸였고, 2014년 회계연도 기준(2014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어마어마한 적자가 밝혀졌습니다. 이에 알짜 사업 분야들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기 시작합니다. 도시바 해체론까지 등장했었죠. 결국 도시바는 핵심 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매물로 내놓습니다.

 

이에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기 위한 한•미•일 연합이 등장했죠. 한국에서는 SK하이닉스, 미국에서는 애플, 델, 씨게이트, 킹스톤, 일본에서는 산업혁신기구와 정책투자은행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미국 업체들은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 주도한 컨소시엄을 만들었고, 인수전에 뛰어든 모든 업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컨소시엄은 이후 케이만제도에 특수목적회사 판게아를 만듭니다. 판게아는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해 각 나라의 기업들이 돈을 넣는 용도죠.

최종적으로 도시바메모리는 6월 1일 기준으로 판게아에 매각이 완료됩니다. 인수에 참여한 기업들은 각자의 이해타산으로 인수에 참여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HDD 제조사들입니다. 씨게이트가 낸드 플래시를 확보한 것이죠. 사실 씨게이트는 그동안 웨스턴디지털에 SSD 사업 부문에 있어 뒤쳐져 왔습니다. 하지만 도시바메모리를 끌어안으면서 상황은 달라졌죠. 이제 씨게이트도 본격적으로 SSD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 규모로는 상대가 부족한 SSD 시장
씨게이트가 바라쿠다 SSD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씨게이트는 HDD 라인업을 ‘가디언 시리즈(Guardian Series)로 정립하고 있습니다. 가디언 시리즈는 또 바라쿠다, 아이언울프, 스카이호트로 구분되죠. 바라쿠다는 보급형 제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라쿠다 SSD는 HDD 제조사 씨게이트의 첫 보급형 SSD 제품입니다. 또한 바라쿠다 SSD의 출시는 이제 모든 HDD 제조사들이 SSD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니터 시장과 HDD 시장을 다시금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니터 시장은 왜 3대 패널 제조사가 시장을 주도하게 됐는지, HDD 시장은 왜 3대 제조사만 남게 됐는지 말입니다. 사실 SSD 시장도 낸드 플래시 제조사들과는 달리 컨트롤러 제조사들은 거의 대부분 정리되고 마벨이 사실상 평정한 상황입니다. 나머지 컨트롤러 제조사는 오늘 내일 합니다.

결국에는 가장 뛰어난 기술력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한 업체들이 시장의 구조조정을 이루워 왔습니다. 제조의 단계부터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죠.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전통성과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만이 살아남아 경쟁해 왔습니다. 그래서 HDD 제조사들의 SSD 시장 진출은 눈길을 끄는 부분입니다.

씨게이트는 1979년에 탄생해 거의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합니다. 당연히 HDD 분야를 평정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HDD와 SSD는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시너지를 구현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실제로 SSD 관리툴들은 HDD 관리툴의 개조 버전입니다. 또한 저장장치라는 이름 하에 HDD와 SSD가 공존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합쳐지면서 경쟁력을 갖추면 낸드 플래시까지 확보한 HDD 제조사들이 무섭게 시장을 잠식해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특정 업체들이 시장을 독신하는 것은 반갑지 않죠. 선택의 폭이 줄면 자칫 가격은 비싸지고 품질은 내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PC 부품 시장이 정리되어 왔습니다. 현재 SSD 시장은 삼성이라는 1강 이하 춘추전국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시장을 평정한 HDD 제조사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변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씨게이트의 바라쿠다 SSD 출시를 기점으로 HDD 제조사들이 얼마나 SSD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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