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가 세계 제1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경쟁단체가 감히 시도해볼 수 없는 창조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씩 개최되는 '레슬매니아'의 선수 등장무대는 WWE의 다른 PPV, 다른 프로레슬링 단체의 등장무대와의 비교를 거부할 만큼 웅장해 WWE의 창조력을 엿볼 수 있다. 30명이 등장하며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로얄럼블' 역시 WWE의 막대한 자금으로 그 많은 선수들을 보유할 수 있기에 가능해지는 WWE만의 특별한 경기다.

▲ 'WWE 헬 인 어 셀 2021' 로고 (사진: WWE.com)
▲ 'WWE 헬 인 어 셀 2021' 로고 (사진: WWE.com)

또 하나 WWE만이 만들어낸 창조물이 있다. 6미터의 높이와 5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철제 구조물 '헬 인 어 셀'이다. 압도적인 크기에 걸맞게 '헬 인 어 셀'에 들어간 선수들은 승부가 날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다. 가히 '지옥'(Hell)이란 단어가 붙을만하다.

'헬 인 어 셀'은 존재 자체만으로 특수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WWE 뿐만이 아닌 프로레슬링 역사의 중요점에 항상 등장했다. 아래 짚어볼 7번의 '헬 인 어 셀' 전쟁은 WWE 프로레슬링에 어떤 역사와 명장면을 남겼을까. 그리고 다가올 2021년 6월 21일 'WWE 헬 인 어 셀 2021'은 어떤 결과물을 낳을지 예상해보자.

 

 

최초의 헬 인 어 셀 그리고 케인의 데뷔
1997 배드 블러드 :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헬 인 어 셀'의 역사는 1997년 10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WWE의 중심에는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가 있었다. '1997 섬머슬램'에서 숀 마이클스의 체어샷 실수로 언더테이커는 WWE 챔피언 자리를 브렛 '더 히트맨' 하트에게 내주었다. 

그렇게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대립은 시작됐고 1997년 10월 6일 개최된 '1997 배드 블러드'에서 이 둘은 WWE와 프로레슬링 역사 상 최초로 치러진 '헬 인 어 셀' 경기를 가진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충격의 연속이었다. 4각의 링을 뒤덮고도 남을 '헬 인 어 셀'의 자태에 현장 관객들 뿐만이 아닌 세계 프로레슬링 팬들이 경악을 감추지 못 했다. 경기 양상 또한 40분 동안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가 혈전을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경악의 절정이 등장하는데, 비록 각본 상이지만 언더테이커의 동생 케인이 이 날 첫 등장했다. 빨간색 의상에 빨간 가면을 쓰고 '헬 인 어 셀' 입구를 직접 손으로 뜯어 들어가 링 위의 언더테이커와 대면하는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1997년 10월 6일은 이렇게 WWE와 프로레슬링의 수 많은 의미와 역사가 시작된 날로 기억된다. 

 

Don’t Try This at Home
1998 킹 오브 더 링 : 언더테이커 vs 맨카인드

프로레슬링 팬, 프로레슬링 팬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프로레슬링 영상은 무엇일까? "Don’t Try This at Home" 문장으로 대표되는 경고 영상이 아닐까 싶다. 

그 영상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맨카인드, 듀드 러브, 캑터스 잭 3개의 기믹을 소화했던 '하드코어의 전설' 믹 폴리다. 믹 폴리가 WWE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1990년대 후반 성인지향 폭력적 연출이 난무하던 '애티튜드 시대'였다. 화려한 비주얼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스타일을 선호했던 믹 폴리에게 딱 맞았던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렇다. 믹 폴리 역시 '헬 인 어 셀'이란 지옥에 발을 자주 들였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1998년 믹 폴리가 '헬 인 어 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맨카인드 기믹이었다. 1998년 6월 맨카인드는 언더테이커와 대립 중이었고, 그 해 6월 29일 '1998 킹 오브 더 링'에서 '헬 인 어 셀' 경기를 갖는다. 

승자는 언더테이커였지만 진정한 승자는 맨카인드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날의 경기에서 맨카인드는 '헬 인 어 셀' 철장에 공격을 당하는 것은 물론 압정 더미에 초크슬램을 당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6미터 높이 '헬 인 어 셀' 천장에서 해설자 테이블로 곧 바로 떨어지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신장이 일부 파열되는 부상으로 이후 들것에 실려 퇴장하는가 싶었지만 다시 '헬 인 어 셀'으로 돌아와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앞서 말한, "Don’t Try This at Home" 영상에 맨카인드 추락 장면은 반드시 등장한다. 맨카인드를 연기한 믹 폴리를 상징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들이야"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역사가 '1998 킹 오브 더 링'에서 펼쳐졌었다.

 

믹 폴리의 마지막 '헬 인 어 셀'
2000 노 웨이 아웃 : 트리플 H vs 캑터스 잭

WWE '애티튜드 시대'의 끝이 다가오면서 같이 전성기를 달렸던 믹 폴리의 정상가도 역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0년 믹 폴리는 자신의 기믹 중 하나인 캑터스 잭으로 트리플 H와 대립하여 ‘2000 노 웨이 아웃’에서 믹 폴리 자신의 경력 4번째 '헬 인 어 셀'을 맞이했다.

정신분열 설정을 한 맨카인드와 달리, 누구나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듀드 러브와 달리 캑터스 잭은 은퇴를 걸고까지 트리플 H에게 도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ECW 시절부터 하드코어 경기에 단련된 캑터스 잭이었기에 '헬 인 어 셀'을 바라보는 표정은 결연에 차있었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경기 내용은 믹 폴리가 지난 4번의 '헬 인 어 셀' 경기를 축약한 느낌이었다. '헬 인 어 셀'을 오르다 떨어져 해설자 테이블에 역시 추락했다. 철선이 감긴 야구방방이 '바비'(Barbie)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헬 인 어 셀' 꼭대기에서 트리플 H의 백 바디 드롭에 당해 천장이 뚫려 떨어져 링 바닥이 꺼지는 연출까지 일어났다. 

또 다시 캑터스 잭은 패했다. 하지만 역시 캑터스 잭은 진정한 승자였다. 이 날의 경기에서 승자인 트리플 H보다 캑터스 잭의 투혼을 더 짙게 남았다. '헬 인 어 셀'은 믹 폴리의 전용구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사상 초유의 6인 '헬 인 어 셀'
2000 아마겟돈 : 6인 WWE 챔피언쉽

1997년 탄생한 '헬 인 어 셀'은 2000년 말까지 대부분 1:1 경기였다. 1998년 6월 15일 'RAW IS WAR'(현재 RAW)에서 치러진 '헬 인 어 셀' 한 번의 경기만 2:2 태그팀 매치였다. 2000년 12월 11일, ‘헬 인 어 셀’은 또 한 번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는데, 여섯 명이 하나의 '헬 인 어 셀'에서 승부를 겨루는 경기가 '2000 아마겟돈'에서 펼쳐졌다.

참가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가히 '세기의 대결', '별들의 전쟁'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WWE 챔피언 커트 앵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드웨인 존슨, 트리플 H, 언더테이커, 리키쉬까지. 이들이 하나의 '헬 인 어 셀' 안에서 모두 모인다니, 그 자체로 역사였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마지막으로 등장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등장음악이 꺼지는데만 약 12분이 소요됐다. 그리고 '대혈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헬 인 어 셀' 꼭대기에서 언더테이커가 초크슬램으로 링 주변에 주차돼있던 톱밥 트럭 위로 리키쉬가 추락시키는 장면이었다. 그대로 리키쉬는 실신했다. 

승자는 커트 앵글이었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스터너를 맞고 쓰러진 '더 락' 드웨인 존슨을 서로 공격하느라 시선을 뺏긴 '스톤 콜드'와 트리플 H 몰래 핀 폴하여 승리를 따낸 것이다. 결말이 다소 김이 빠지긴 했지만 이 경기가 '헬 인 어 셀' 역사에 길이 남기엔 충분했다. 정상급 선수들의 '빅뱅', '헬 인 어 셀'에 걸맞은 충격적 장면 연출까지. 유일무이한 6인 '헬 인 어 셀'다웠다.

 

2008년을 장식한 라이벌리의 끝
2008 섬머슬램 : 언더테이커 vs 에지

2000년대 중반에 들어 WWE도 세대교체를 받아 들어야 했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 드웨인 존슨이라는 스타에만 기대는 것이 아닌 여러 스타급 프로레슬러를 발굴해야 했다. 존 시나라는 걸출한 스타를 발굴했지만 그의 활약만으론 온전히 WWE가 작동될 순 없었다. 애티튜드 시대에 수 많은 태그팀 명경기를 만들어내고 싱글 레슬러로도 성공적 안착을 한 에지가 WWE의 2000년대 또 다른 스타가 됐다.

에지는 크리스챤과 E&C라는 태그팀으로 WWE 태그팀 부문에 활력소 역할을 해냈었다. 크리스챤과 결별로 싱글 레슬러로 본격적으로 나섰고, 존 시나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에지가 담당해 비열한 기회주의가 기믹을 잘 살려 WWE의 스타가 됐다. 에지는 특히 2008년을 자신의 경력 정점으로 찍었는데, 2008년 에지의 주된 상대는 다름 언더테이커였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태그팀 시절 호쾌한 미남 이미지를 벗어나 목표를 위해서 모든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기회주의자 에지와 초월적 존재 언더테이커의 대립은 2008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슬매니아 24', '2008 원 나잇 스탠드'를 거쳐 마지막 '2008 섬머슬램'에서 펼쳐진 ‘헬 인 어 셀’ 경기까지의 서사는 에지와 언더테이커 각자의 경력에 빼놓을 수 없는 대립이었다.

'헬 인 어 셀' 경기답게 에지와 언더테이커는 역시 혈전을 펼쳤고 에지는 언더테이커를 자신의 시그니처 기술 스피어로 공격해 '헬 인 어 셀' 벽까지 뚫어버려 현장 관객들로부터 "Holy Shit" 함성을 연호케 했다. 결국 에지는 언더테이커의 초크슬램으로 링 바닥으로 꺼져 불꽃과 함께 각본상 산화(散華)했다. 역시 액션과 연출 모두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에지와 언더테이커의 2008년 '헬 인 어 셀'이었다.

 

시대의 종언
레슬매니아 28 : 언더테이커 vs 트리플 H

'레슬매니아'라는 다섯 글자는 단순히 WWE의 많은 PPV 중에 하나가 아니다. 세계 스포츠팬들이 기다리는 사건이며 WWE가 가장 공을 들이는 성대한 프로레슬링 축제다. 그렇기 때문에 '레슬매니아'에서 굳이 ‘헬 인 어 셀’까지 동원하지 않는다. 다른 요소들로도 '레슬매니아'가 주목을 받기엔 충분하기 때문에.

1999년 '레슬매니아 15'에서 언더테이커와 빅 보스 맨이 레슬매니아 최초 '헬 인 어 셀' 경기를 가졌지만 기대 이하의 졸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 한다. 그로부터 13년 후, '레슬매니아 28'에서 언더테이커와 트리플 H가 그야말로 장엄한 '헬 인 어 셀' 경기를 치르게 된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이미 '레슬매니아 27'에서 언더테이커와 트리플 H는 경기를 가졌다. 그 경기에서 트리플 H는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을 저지하지 못 했다. 그 다음 '헬 인 어 셀' 경기라는 초강수로 다시 한 번 도전한 것이다. 특별심판까지 존재했다. 트리플 H보다 앞서 2번의 도전에서 모두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을 저지하지 못 해 은퇴한 숀 마이클스가 특별심판을 봤다. 그렇다. 언더테이커, 트리플 H 그리고 숀 마이클스 모두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려본 '동료'였다.

역시나 혈전의 '헬 인 어 셀'이었다. 중간 숀 마이클스가 언더테이커를 스윗 친 뮤직으로 공격하고 곧 바로 트리플 H의 페디그리가 작렬했을 때는 정말 언더테이커가 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극복하고 전세를 뒤집어 언더테이커가 승리해 '레슬매니아' 20연승을 완성했다. 경기 후,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가 트리플 H를 부축해 등장무대로 퇴장했다. 무대 뒤로 사라지기 전 셋은 뒤돌아봐 관객들을 쳐다봤다. 이 순간 모두가 뭉클해졌다. 이들이 이끌던 시대의 종언이 '헬 인 어 셀' 경기였을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최초의 여성 '헬 인 어 셀'
2016 헬 인 어 셀 : 사샤 뱅크스 vs 샬럿

프로레슬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압도적으로 남성 프로레슬러들이 더 많지만 분명히 여성 프로레슬러도 존재하고 그들도 당당히 경기력으로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공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2016년은 여성 프로레슬링 세계에서 중요한 해다. 과거에는 WWE 위민스 챔피언 혹은 WWE 디바스 챔피언으로 여성 프로레슬러가 차지할 수 있는 챔피언 타이틀은 단 하나 뿐이었다. 2016년을 시작으로 RAW와 스맥다운 브랜드를 대표하여 위민스 챔피언이 각각 창설됐고 그 이후로 여성 태그팀 챔피언도 이어 생겼다. 그리고 2016년 10월 31일 개최된 PPV 'WWE 헬 인 어 셀 2016'에서 여성 최초 '헬 인 어 셀' 경기가 확정됐다.

▲ (사진: WWE.com)
▲ (사진: WWE.com)

여성 프로레슬링 최초 '헬 인 어 셀' 경기에 나선 주인공들은 당시 WWE RAW 위민스 챔피언 사샤 뱅크스와 샬럿 플레어였다. 항상 최고의 여성 프로레슬러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항상 손꼽히던 사샤 뱅크스와 샬럿 플레어였으니 첫 역사를 장식하는 주인공으로 결격사항은 없어 보였다.

물론 남성 '헬 인 어 셀' 경기만큼의 박진감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샤 뱅크스와 샬럿 플레어는 '헬 인 어 셀' 경기로서의 만족스러운 경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사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다. 사샤 뱅크스와 살럿 플레어가 링 중앙에 섰는데 그들을 '헬 인 어 셀'이 감쌌다는 것 자체만으로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WWE니까 가능한 창조물

WWE가 아닌 다른 프로레슬링 단체들도 '헬 인 어 셀'에 아성에 따르려는 구조물들을 내놓았었다. WCW는 워게임, ROH는 스틸케이지 워페어, CZW의 케이지 오브 데쓰 등. 하지만 모두 오래가지도 못 했고 단체의 상징이 되지도 못 했다. 

'헬 인 어 셀'은 WWE니까 가능했고 탄생할 수 있었던 창조물이었다. 그리고 WWE기에 24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헬 인 어 셀'을 발전시켜 하나의 PPV까지 돼버린 것이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창조물을 만들고 그 창조물로 역사적 순간까지 연출하고 팬들의 마음까지 훔친다면, 그저 '돈지랄'이라며 거부할 수 있을까? WWE가 세계 제1의 프로레슬링 단체로 올라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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