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6월 6일 현충일이 6월 '호국·보훈의 달' 첫째 주에 있다. 그리고 6월 25일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유일한 전쟁이자 민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6.25 전쟁이 발발한 날짜다. 두 날의 의미만 다시 새겨봐도 6월이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현재까지도 한반도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전쟁을 68년째 멈추고 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닌 전쟁을 멈추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상황은 2021년 6월까지 안보상 정치상 여러 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전쟁기념관
▲ 전쟁기념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휴전선을 맞대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단순히 지난 일이라는 이유로 6.25 전쟁의 1차적인 개념마저 인지하고 있지 못 한다면 앞으로 변화할 세계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그리하여 정치·외교·교육계뿐만이 아닌 예술계 특히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도 다양하게 6.25 전쟁 소재 영화를 만들어왔다. 교과서에 더해 영화까지 함께 6.25 전쟁을 접해본다면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6.25 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아 6.25 전쟁의 대략적인 흐름, 그리고 그 3년의 전쟁 안에서 우리나라 영화계는 어떤 지점에 주목해 어떻게 표현하여 전쟁의 참상을 전달했는지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6.25 전쟁을 이해해보자.

 

 

6.25 전쟁의 전개

전쟁 발발

6.25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설이 나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삼팔선 위를 점령하고 있던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남침을 감행했다.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적화통일을 완성하겠다는 김일성의 계산 아래 대대적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되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

국가적 전쟁을 계획하지 않았던 삼팔선 아래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상반기에 이르러서야 군 방어 체계가 잡혔다. 즉, 북한의 남침 직후에는 전력 상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군은 낙동강 유역까지 후퇴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UN군이 한반도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지연작전이 전개됐으며, 그 지연작전은 UN군이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북한군이 목표로 삼았던 광복절에 맞춘 적화통일을 무산시킬 수 있었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이 한계도달점에 다다르게 만들어 전세 역전의 희망을 살릴 수 있었다.

▲ (영상: 국가보훈처)

 

인천 상륙작전

낙동강 유역을 두고 북한군은 효과적인 전진을 이루지 못 했다. 전쟁이 고착화되면서 시간을 벌게 된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은 전쟁의 양상을 뒤엎을만한 작전이 필요했다. UN군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적 후방 완전 단절 가능, 서울과의 근접을 근거로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낙동강 유역에서 보다 전진하고팠던 김일성은 후방 부대들을 낙동강 전선으로 집결시켰기에 비교적 인천의 북한군 방어선은 헐거웠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은 삼팔선 아래를 비롯하여 압록강 인근까지 북진하는 기세를 이어갔다.

 

휴전

그러나 청천강 전투 패배에 따른 1.4 후퇴로 다시 한반도 전쟁 국면은 백중세로 흘러갔다. UN군의 당시 첨단 군사물자와 중국 대륙 내전으로 전투에 단련이 돼있던 중공군의 경험이 이룬 전세 균형은 쉽사리 어느 한 쪽으로 기세가 기울지 않았고 1953년 7월까지 오랜 고지전을 양산했다. 그리하여 결국 1953년 7월 27일 22시를 기점으로 정전이 발효(發效)됐다.   

 

 

6.25 전쟁 소재 한국영화

전개과정만 축약하여 훑어봐도 6.25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세로 여러 번 뒤바뀌었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개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는 심층적인 이해가 불가하다.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6.25 전쟁을 느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영화계가 그동안 6.25 전쟁을 소재로 삼은 아래의 영화들을 감상함으로써. 

 

남부군

현재 한국영화계에 정지영 감독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으로 한국 사회가 주목하지 못 한 부분을 영화로 꼬집어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그 정지영 감독만의 시각 출발이 영화 '남부군'이었다. 역시 '남부군'에서도 정지영 감독의 남다른 시각은 돋보였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남 프로덕션)
▲ (사진: 네이버 영화, 남 프로덕션)

'남부군'이 개봉했던 1990년 당시에 6.25 전쟁 그 안에서도 빨치산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그 자체로 상당한 도전이었다. 영화 안에서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허무함'이었다. 진영을 막론하고 전쟁은 인간에게 참담함만 낳을 뿐이라는 표현을 영화 안에 여지없이 녹였으며 이 표현력은 빛을 발했다. '남부군'은 6.25 전쟁 소재 영화 선두에 설 법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모든 소재에 대중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작이 된다는 것은 예술가에게나 그 예술작품에게나 무한한 영광이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 상 두 번째로 천만관객 돌파에 성공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 소재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이다.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스타 배우를 앞세워 강제규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태극기 휘날리며'는 블록 버스터 영화로써 '투 머치' 졸작이 아닌 수작으로 남았다.

▲ (사진: 네이버 영화, 강제규필름, 쇼박스, 다자인소프트)
▲ (사진: 네이버 영화, 강제규필름, 쇼박스, 다자인소프트)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고 나면 6.25 전쟁의 시작과 이후까지 전부 느낄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청년들이 어떻게 징집되는지, 그리고 피난민들이 어떻게 피난하는지, 전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마지막으로 사망자와 생존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영화로써 표현할 수 있는 서사는 모두 담았다. 단순히 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정과 연출까지 적절하게 영화 안에서 드러났기 때문에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 소재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

6.25 전쟁을 소재로 삼았다고 하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효과적으로 연출됐던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 전투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은 안에서 전투 장면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중심 배경 역시 강원도 산골이며 '웰컴 투 동막골' 메인 포스터 중앙에도 군인이 아닌 강혜정이 연기한 여일이 있다. 그럼에도 '웰컴 투 동막골'은 6.25 전쟁 소재 또 다른 대표 영화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있수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있수다)

동막골에 각기 다른 이유로 모이게 된 대한민국 국군, UN군, 북한군은 동막골 안에선 군복이 의미가 없었다. 처음엔 서로 경계하다 적응을 위해 모두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동고동락하며 하늘로 터지는 옥수수를 바라볼 때는 그 순간 모두가 한민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웰컴 투 동막골'은 영화의 기법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했으며 그 전달에 부응해 800만 명이 넘는 당시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아 '웰컴 투 동막골'을 봤다. 뭔가 다른 결을 보이는 6.25 전쟁 소재 영화를 감상해보고 싶다면 '웰컴 투 동막골'이 답이다.

 

고지전

처음 느껴지는 이미지와 실제로 감상했을 때의 인상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흡사해 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 해갈 수록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집중하는 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연히 다른 걸 알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6.25 전쟁 전체의 서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면 '고지전'은 6.25 전쟁 안에서도 비교적 시선을 덜 갔던 휴전 직전의 고지전 상황에 주목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쇼박스, TPS컴퍼니)
▲ (사진: 네이버 영화, 쇼박스, TPS컴퍼니)

영화 '고지전'을 관람함으로써 먼저 대중들은 고지전이란 무엇인지, 고지전이 6.25 전쟁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일삼는 고지전의 실태를 대중들은 영화 '고지전'으로 학습했다. 그리고 한 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윗선은 몰라도 전쟁을 직접 이행하는 아래 군인들에게는 더 이상 진영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둠의 경로로 국군과 인민군은 물자를 교환하며 소통하고 있었으며 그 순간 영화 '고지전'의 차별성이자 경쟁력이 드러났다. 국군과 인민군의 소통이 자칫 대중들의 반감을 살 수 있는 지점이었는데 장훈 감독은 불편하지 않게 연출했다. 분명히 '고지전'은 다른 6.25 전쟁 영화와 달랐다.

 

오빠생각

전쟁은 참혹하다. 전쟁은 잔인하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이토록 전쟁은 부정적 개념만을 인간에게 심는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본질이 그렇게 때문에. 이를 인정하고 나서 후에 생긴 전쟁에 대한 인식을 영화 '오빠생각'은 달리 느끼게 한다. 중심인물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고아들이었다. 전쟁 전투 연출 역시 적었다. 주요 장면들은 전쟁고아들이 음악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조이래빗, NEW)
▲ (사진: 네이버 영화, 조이래빗, NEW)

그렇다. '오빠생각'은 전쟁의 표면에 주목하지 않았다. 표면 속에 숨은 것을 주목했다. 잔인한 전쟁 속에 군인들도 피해자였고 그에 따른 전쟁고아 역시 피해자였다. 전쟁은 총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전쟁고아들도 전투지역 뒷켠에서 역할을 했다. 이렇듯, 전쟁의 다른 면을 영화 '오빠생각'은 주시했다. 새로운 면을 밝히는 데 성공한 6.25 전쟁영화의 또 하나의 영화 '오빠생각'이다.

 

 

전쟁은 절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 먼 역사가 아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1년, 정전된 지 68년 밖에 안 된다. 불과 100년도 안 된 가까운 역사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땅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직접적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이 대부분 떠안았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쟁의 피눈물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정치적·외교적·경제적인 면에서 일종의 주장을 펼칠 때, ‘전쟁은 이렇기 때문에, 필요하다’라는 표현을 가끔 듣는다. 물론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 하는 표현이겠지만 듣는 것만으로 섬뜩한 기분을 우리는 느낀다. 그것이 아직 우리가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뜻이고 특히 우리 민족은 전쟁이 남긴 피비린내를 잊지 못 했다는 것이다. 전쟁을 승리하여 여러 형태의 중요한 전리품을 얻을 순 있다. 하지만 그 전리품이 수많은 생명을 잃어가면서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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