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을 듣고 아침에 일어나고 출근할 채비를 한다. 채비를 마치고 첫 번째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을 것인가, 단정해 보이는 구두를 신을 것인가. 오늘은 중요한 일정은 없기에 편한 운동화를 선택한다. 버스정류장이 눈 앞에 보이는데 동시에 타야 할 버스도 함께 보인다. 이렇게 두 번째 갈림길에 선다. 저 버스를 타기 위해 뛸 것인가, 느긋하게 걷고 택시를 잡을 것인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를 갈등케 하는 '양자택일'은 연신 이어진다.

▲ (사진: 유튜브 '옛능 : MBC 옛날 예능 다시보기' 공식 채널 영상 캡처)
▲ (사진: 유튜브 '옛능 : MBC 옛날 예능 다시보기' 공식 채널 영상 캡처)

선택이란 개념에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우리는 인생 내내 고민과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식·주에서는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셋 중에서 욕구와 직결된 음식에서의 고민은 우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한다. 

몇몇의 음식들은 두 세력으로 나누어져 온갖 드립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키배(키보드 배틀), 조선왕조에서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로 첨예하게 갈등을 이었던 예송논쟁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과연 어떤 음식의 종류들, 어떤 음식의 방법들이 세계를 둘로 나누는 걸까? 둘로 나눠진 세력들은 어떤 주장들로 자신들이 옳다고 외치는 것일까?

 

 

여름만 되면 호남은 외로워진다
콩국수 : 설탕 vs 소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고 온몸이 끈적해지는 장마철을 겪다 보면 진정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지치다 보면 입맛은 더더욱 떨어진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것이 여름철 별미다. 여름철 특화 별미에는 수박으로 만든 화채, 몸보신용 삼계탕 등이 있다. 그리고 면요리 마니아들이 여름만을 기다리게 하는 콩국수도 있다.

이 때 호남지역 출신 콩국수 매니아들은 외로워진다. 호남지역을 제외한 콩국수 마니아들은 대부분 소금으로 간을 하여 콩국수를 즐긴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본 호남지역 출신 콩국수 마니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 하며 주방에 따로 설탕을 주문한다. 이렇게 비호남지역 출신 콩국수 마니아와 호남지역 출신 콩국수 마니아는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본다.

▲ (영상: 유튜브 '샾잉 #ing' 공식 채널)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식습관 중 하나가, 기본적으로 모 요리가 나오면 개인 입맛에 맞춰 조미료를 첨가하여 먹는다. 이 식습관이 콩국수에도 전해져 호남지역을 제외한 콩국수 마니아들이 소금을 당연하게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유래를 찾아볼 순 없지만, 호남지역에는 동치미 국물에도 설탕을 자주 뿌려 국수를 해 먹는 식문화가 있다. 이 현상이 콩국수로도 이어져 현재까지 고유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콩국수에 소금을 치던 마니아도 설탕을 치던 마니아도 서로의 방법대로 새로이 시도해서 먹으면 모르던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번 여름 콩국수를 먹을 기회가 온다면 한 번쯤 그동안 먹어오던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간식 라면대전
라면 : 면 먼저 vs 수프 먼저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점, TV를 틀어보니 우연히 드라마 속 주인공이 처량하게 라면을 먹고 있다. 어떤 사연 끝에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인 것 같은데도 맛있어 보인다. 그렇게 참지 못 하고 라면 봉지를 뜯고 냄비에 물을 담는다. 이렇듯 라면은 갑자기 출출할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음식이기 때문에 밥 다음으로 사랑받는다.

대한민국의 라면 소비량은 엄청나다. 2020년 1월 발표된 세계라면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1년 라면 소비량은 74.6개라고 알려져 있다. 2위로 집계된 베트남의 53.9개를 월등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가히 '라면의 나라' 대한민국이라 불릴만하다. 이렇기 때문에 라면 조리에 있어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 나름의 기준과 방법은 곧 자존심이다.

라면 조리의 시작은 물을 받는 것부터 시작한다. 라면 물의 양은 통상적으로 500ml 내외로 알려져 있으니 이 지점에선 큰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다음, 라면 봉지를 뜯고 끓고 있는 물에 무엇을 먼저 넣느냐에 전쟁은 시작된다. 면을 먼저 넣느냐, 수프를 먼저 넣느냐에 따라 세력은 갈린다. 

'면파'는 면을 넣음으로써 물의 양이 적당한지 알 수 있고 모든 재료를 넣었을 때 끓어 넘침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프파'는 건더기수프를 먼저 넣으면 육수를 우릴 수 있고, 분말수프를 넣으면 끓는점이 약간 올라 더 강력한 온도에서 라면을 조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라면의 나라' 대한민국에선 그냥 모로 가면 안 된다. 어떻게 모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라면에 있어서는.

 

같지만 다릅니다
돈가스 : 경양식 vs 일본식

돈가스는 다양한 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우리 주변에 음식들은 대부분 탄수화물로 만들어진다. 우리의 주식인 쌀도 탄수화물이 주성분이며, 쌀로 만들어진 밥이 질려 면을 찾아도 그 역시 밀가루가 주성분인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이 우리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백질을 쉽게 충족시켜주는 음식이 돈가스다. 등심이나 안심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돈가스 안에선 단백질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깔끔한 돈가스 매장을 찾는다면, 다름 칼질을 해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녀를 위한 데이트에서도 그리 부끄럽지 않은 메뉴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돈가스를 떠올릴 때 어떤 돈가스가 떠오르는가? 널찍하게 튀겨진 돈가스에 브라운소스가 듬뿍 뿌려져 있고 옆에는 케요네즈 양배추 샐러드와 소정의 밥이 곁들여진 '경양식 돈가스'? 두툼하게 튀겨진 돈가스가 미리 썰어져 나와 젓가락으로 먹으면 되며 옆에 깔끔한 우동 국물이 함께 하는 소위 '일본식 돈가스'? 그렇다. 돈가스는 상상 시작부터 세력이 나눠진다.

생각해보면, 같으면서도 다를 수 있다. 고기를 튀김옷에 입혀 튀긴다는 방법은 같지만 이후 먹는 방법과 느껴지는 맛·매력이 다르다. '경양식 돈가스'는 부드러운 매력이 앞선다. '일본식 돈가스'는 바삭한 매력이 앞선다. 돈가스라는 대분류 밑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어쩌면 경양식이냐, 일본식이냐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보통 '경양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를 동시에 취급하는 매장은 드물기에. 

 

주재료에서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회 : 간장 vs 초장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주재료를 찍는 그 것을 소스(Sauce)라고 먼저 명명하진 않는다. 우리에게는 장(醬)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우리의 부족한 입맛을 채워주는 장(醬)의 매력은 너무나도 광활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醬) 없이 먹기 다소 심심한 음식이 생선이나 해산물로 만들어진 회다. 물론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냥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회를 있는 그대로 먹기엔 뭔가 부족해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장(醬)을 찾는다.

▲ (영상: 유튜브 '샾잉 #ing' 공식 채널)

주재료 회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회 종류를 어떤 장에 찍어먹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전쟁이 발발한다. 크게 두 세력이 맞부딪친다. 최소한의 짠맛으로 간을 충족하고 회 본연의 맛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간장파', 맵고 새콤한 맛으로 부족한 회의 맛을 채워 입맛을 돋군다는 '초장파'가 그 두 세력이다. 

'간장파'와 '초장파'의 세력 다툼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주재료만이 아닌 장(醬)마저도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의 한 종류라는 것을. 

 

제1차 음식 대전
떡볶이 : 쌀떡 vs 밀떡

감히 말하자면, 앞선 4개의 전쟁에 비해 후술 할 2개의 전쟁은 단순 전쟁이 아닌 '대전'급에 가깝다. 서로 다른 기호를 확인하는 동시 '적'이 되며 상대 의견을 이기고 제압하기에 급급해진다. 그 첫 번째 1차 대전이 '떡볶이는 쌀떡인가, 밀떡인가'라는 논제다.

먼저, 쌀떡파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쌀떡은 특유의 마름모 모양부터 보는 재미를 선사하며 한 조각 씹을 때 역시 특유의 쫄깃함이 먹는 재미 또한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수록 소비가 줄어드는 ‘우리 쌀’을 보다 많이 먹을 수 있는 거시적 경제 논리도 주장한다. 

▲ 오른쪽부터 쌀떡볶이와 밀떡볶이 (사진: 와디즈, 홍군아떡볶이)
▲ 오른쪽부터 쌀떡볶이와 밀떡볶이 (사진: 와디즈, 홍군아떡볶이)

반면, 밀떡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본디 떡볶이의 대표적인 인상은 기다란 모양의 밀떡이며 밀떡 특유의 부드러움과 양념이 잘 배는 밀떡의 특성은 쌀떡이 절대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교적 단가가 밀떡이 쌀떡보다 낮기에 업주 입장에서도 밀떡을 더 많이 공급할 수 밖에 없다는 거시적 경제 논리에서 역시 맞불을 놓고 있다.

이 논쟁을 업주들은 알아차렸던 탓일까? 많은 업주들이 쌀떡과 밀떡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비율로 섞거나, 떡볶이 양념에 어묵만을 담아서 메뉴로 내놓기도 한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해결법이던가.

 

제2차 음식 대전
탕수육 : 부먹 vs 찍먹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음식계에 있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이자 소꿉친구도 한 순간에 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그 논쟁, 두 번째 음식 대전이 바로 탕수육 소스를 부어서 먹을 것인지, 찍어서 먹을 것인지 대립하는 소위 '탕수육 소스 논쟁'이다.

부어서 먹어야 한다는 '부먹파'는 먼저 탕수육의 태생을 언급한다. 19세기 이후 중국 대륙에 살게 된 영국인들 입맛에 맞춰 튀긴 고기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려 탄생한 요리가 당시엔 당초육(糖醋肉), 지금의 탕수육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맛의 면에서도 소스가 고기에 배어들기엔 '부먹'이 맞다고 최종적으로 역설한다.

▲ (영상: 유튜브 '샾잉 #ing' 공식 채널)

찍어서 먹어야 한다는 '찍먹파'는 현재 배달이 주를 이루는 한국형 탕수육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스가 부어진 채로 배달이 되면 탕수육이 눅눅해져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스와 탕수육이 따로 오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찍어먹는 방법이 대중화됐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튀김요리에 대해 소스를 처음부터 붓는 것은 튀김을 무의미하게 하는 일종의 '모독' 행위라며 입장을 마무리한다.

'탕수육 소스 논쟁'은 다른 논쟁들보다 더 첨예하고 오래 싸웠다 보니 논리 인용의 영역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부먹파'와 '찍먹파'를 단번에 정리해버릴 명언을 문세윤 했었다. 문세윤은 이렇게 말했다. "부먹과 찍먹, 고민할 사이에 하나라도 더 먹어라"라고. 오. 갓세윤이시여.

 

 

전쟁은 더 늘어날 것

사회는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기술 역시 발전하고 그에 따라 우리 입맛을 충족시켜줄 수많은 음식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제는 음식이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도구가 아닌, 오감 중 하나인 식감을 만족시켜주는 '나'를 위한 위대한 투자품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입맛을 더 존중하게 되고 '나'에게 맞는 음식과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구체화되는 식습관에, 앞서 나열해본 '양자택일'의 전쟁이 아닌 후에는 ‘다자택일’으로 우리를 고민의 늪으로 빠지게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다양한 선택지가 태어나 우리에게 더 많은 음식과 방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더 늘어날 전쟁을 입으로 즐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