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만의 예술색을 확보하느냐다. 자신만의 예술색이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복사나 모조품에 불과하다. 예술이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자신만의 예술색을 먼저 확보하고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은 감독들이 여럿 있다. 디테일한 묘사와 배치로 이전에 없었던 영화를 만들어내는 봉준호, 범죄오락 장르에서 특출난 연출력을 선보이는 최동훈, 흥미로운 이야기와 검은 느와르의 배합을 적절히 이루어내는 박훈정 등. 

▲ 영화 '베테랑'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베테랑'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또 한 명, '액션'이란 단어를 영화에 가장 잘 녹이고 상업영화 감독의 길을 걸으면서도 보는 맛을 선사하는 감독이 바로 류승완이다. 이제 단순히 '류승범 형'이 아니다.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 중 한 명인 류승완이다. 

류승완 감독이 7월 28일 개봉하는 '모가디슈'로 돌아온다. '모가디슈'가 단순히 조인성과 김윤식이 주연을 맡았다고 해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성장과 의미를 자신의 지난 필모그래피에서 하나하나 얻어와 지금의 '모가디슈'까지 도착했기에 대중들이 관심을 보내는 것이다. 과연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 직전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그 길을 다 걷고 만들어진 '모가디슈'는 어떤 의미를 낳을까?

 

 

충무로 '액션 키드'의 등장

류승완이라고 하면 단연 떠오르는 단어는 '액션'이다. 류승완의 모든 영화에서 액션 장면이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중 차이가 영화마다 있을지언정 반드시 류승완의 영화에선 액션이 들어간다. 류승완은 곧 액션이다.

그렇다면 류승완의 액션 시작은 어느 작품이었을까? 류승완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곽경택 감독 연출부원으로 영화일을 이어오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촬영에서 남은 필름으로 단편 '패싸움'을 만들고 추가적으로 다른 에피소드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어 장편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탄생했다.

▲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꿈길제작소, 갤럭시컴퍼니, 라이크콘텐츠)
▲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꿈길제작소, 갤럭시컴퍼니, 라이크콘텐츠)

4개의 에피소드들은 서사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모두 폭력이란 몸짓으로 인물들이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의 서술어는 곧 폭력, 싸움, 액션이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발산되는 액션의 쾌감은 단번에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을 류승완으로 올려놓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류승완도 데뷔하고 그의 동생 류승범도 세상에 나왔지만, 21년이 지난 지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액션 영화 클래식이 됐다.

 

동생과 함께 상업영화의 길로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한국영화계에 액션이라는 갈래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냉정히 말해 동생인 배우 류승범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 했던 것은 사실이다. 

▲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 현장 스틸컷 (네이버 영화, 좋은영화, 시네마서비스)
▲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 현장 스틸컷 (네이버 영화, 좋은영화, 시네마서비스)

그럼에도 류승완의 페르소나는 류승범이었다. 류승완이 상업영화를 연출할 수 있을 환경이 갖춰질 때 류승범은 형을 도와 주연으로 다수 출연했고,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등으로 류승완과 류승범 모두 한국영화의 요주인물이 됐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선 한반도 전설을 소재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액션을 적절하게 담아 준수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류승완이었다. '주먹이 운다'에서도 액션이란 단어에 가장 본질적으로 부합하는 복싱을 소재로 두 남자의 운명적 서사를 진중하게 그려냈다. 이 두 작품 중심에 류승범이 존재했었다.

▲ 영화 '주먹이 운다'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브라보엔터테인번트, 쇼이스트)
▲ 영화 '주먹이 운다'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브라보엔터테인번트, 쇼이스트)

혈연관계가 같은 작품에 자주 등장하면 대중들은 그 관계를 상당히 피곤해한다. 하지만 류승완과 류승범의 관계는 아닌 것 같다. 류승범을 가장 잘 제어하는 감독은 류승완, 류승완의 연출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는 류승범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영화로 온전히 느꼈기 때문에 이 둘의 조합을 언제든 대중들은 지지하고 기다리는 듯하다.

 

액션의 고찰과 변주

앞서 말했듯이, 류승완과 운명을 평생 같이 해야 할 단어가 액션이다. 류승완은 액션으로 태어났고 액션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부정할 수 없이 액션을 가장 잘 다루는 한국영화 감독은 류승완이다. 류승완은 그렇게 액션이란 것에 고찰을 하기에 이른다.

▲ 영화 '짝패'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 영화 '짝패'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2006년 류승완은 '가장 류승완다운' 영화를 만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부터 합을 맞춰온 무술감독 정두홍과 함께 주연을 맡아 영화 '짝패'를 만들었다. 온몸 액션, 칼부림 등 제한 없는 액션씬들이 난무했고 '짝패' 안에서는 류승완의 영화관을 청소년 시절부터 다져온 1970~80년대 홍콩영화 색깔이 진하게 묻어났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고 가장 잘 하는 그리고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가장 자신다운 액션 영화 '짝패'를 만들어낸 것이다.

류승완은 '짝패'로 가장 자신다운 액션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그 고찰의 결과물을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 고찰 위에 류승완은 새로우면서 획기적인 B급 액션을 다음으로 만들어냈다. 2000년 인터넷 영화로 만들어졌었던 단편 '다찌마와 리'를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라는 장편영화로 재탄생시켰다. 단순히 주먹을 섞는 액션이 아닌 시대극, 서부극, 코미디 등을 적절하게 얹어 새로운 B급 액션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직도 임원희의 인생 캐릭터로 대부분 다찌마와 리를 꼽는다. 그 다찌마와 리는 류승완의 신선한 액션 변주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쇼박스)
▲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쇼박스)

그렇게 류승완은 '짝패'로 자신만의 액션에 대한 고찰을 끝냈고, 그 고찰 뒤에 자신만의 액션을 어떤 방법으로 다르게 표현할지에 대한 예술가다운 변주를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신선하게 시도했던 것이다.

 

액션 + α

액션영화로 충무로에 입성하고, 가장 가까운 동생 류승범과 함께 상업영화계에 안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액션을 지키고 변주하는데도 성공했다. 다음 류승완은 자신의 액션에 그 이상의 것을 담기 시작한다.

▲ 영화 '부당거래'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트레인,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부당거래'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트레인, CJ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의 7번째 장편 연출작 '부당거래'를 보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짧게 다음과 같이 평했다. "류승완의 선전포고"라고. 선전포고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부당거래'는 거침이 없었다. 검찰과 경찰, 공권력의 이면을 여지없이 영화 안에 담았고, 마치 세상을 향해 자신의 영화로 들이받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류승완은 액션이란 자신의 정체성에 사회비판적 면모를 얹기 시작한 것이다.

류승완은 사회로만 시선을 확장한 것이 아니다. 영화 내적인 연출적 면모에서도 확장을 시도했다. 영화 '베를린'은 촬영 로케를 라트비아와 독일에서 대부분을 진행했고 1차적 장르 구분 역시 액션이 아닌 첩보로 두었다. 기술적인 액션 장면 역시 두드러졌으며, 첩보영화 특유의 긴장감도 류승완의 지휘로 충분히 담겼다. '베를린'은 한국영화 역사에 남을 수작 첩보영화가 된 것이다. 액션에서 첩보까지 류승완은 '베를린'으로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 영화 '베를린'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베를린' 현장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류승완은 '부당거래'로 사회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담았다. 류승완은 '베를린'으로 첩보영화의 가능성도 잡았다. 류승완은 '부당거래'와 '베를린'으로 액션영화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한 것이다.

 

사회참여

'베를린'까지 연출을 완료한 류승완에게 더 이상 단순히 액션을 잘 연출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해 보였다. 명실상부 흥행 영화를 다수 만들어내는 스타 감독이 돼버린 것이다. 

▲ 영화 '베테랑'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베테랑'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엔터테인먼트)

물론 모든 류승완의 영화에는 액션 장면이 들어가 있다. 액션은 류승완의 당연한 DNA인데, 그렇다면 류승완이 다음으로 주목한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베테랑'과 '군함도'에서 느껴지는 결과, 사회참여로 보인다.

'베테랑'은 대중과 평단이 원하는 대부분의 수요를 충족한 영화로 보인다. 너무 무겁지 않게 사회를 고발하면서 오락의 느낌은 탄탄히 가져갔다. 경찰의 정의구현도 담았으며,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빌런인 조태오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베테랑'은 약 1,341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베테랑'을 버티게 한 것은 류승완의 사회참여의식이 맞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 ENM)
▲ 영화' 군함도'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 ENM)

내놓은 영화마다 호평에 호평을 잇던 류승완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영화 '군함도'는 소재가 밝혀지고나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 마치 만점짜리 영화를 만들지 못 하면 죄인이 되는 것 같은 개봉 전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류승완은 '군함도'를 내놓았지만 역사 왜곡 및 미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 하여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혹독한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감독으로써 누가 감히 군함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류승완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군함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세상이 군함도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류승완의 사회참여 의식이 영화 '군함도'의 맨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모가디슈’로 류승완은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7월 28일 개봉하는 류승완의 신작 '모가디슈'는 앞서 언급한 의미들과는 동떨어진 영화인 듯하다. 이미 한국영화의 주역이 된 류승완이기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처럼 느껴지는 패기어린 액션을 다시 보긴 힘들다. '모가디슈'의 출연진 라인업에는 류승범이 없기에 형제의 앙상블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 '모가디슈'는 오리지널 액션 영화가 아니기에 액션에 대한 고찰 및 변주를 다시 한 번 기대하기 역시 힘들다. 그리고 최근의 영화들과는 다른 결로 느껴져 분명히 이전과는 별개의 의미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예술은 달리 표현하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자신의 예술품이라도 그 예술품으로부터도 역시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예술성이 다시 달라지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 기로에 류승완은 다시 서있다. 그 기로에 류승완만 서있는 것이 아니다. 류승완을 기대하는 영화광들도 같이 서있다. 과연 류승완은 '모가디슈'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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