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8일 개봉한 '인질'이 현재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모가디슈'와 '싱크홀'에 이어 여름 텐트폴 영화 바통을 이어받으며 개봉 11일 차 8월 28일에 관객 동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인질'의 1인 주연은 황정민이다. 메인 포스터에도 황정민뿐이고 '인질'은 황정민이 중심이 돼 극 중에서도 배우 황정민으로 등장해 악역 조연들이 있지만 결국 '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 영화 '인질'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샘컴퍼니,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 영화 '인질'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샘컴퍼니,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인질'의 선전에는 황정민이 있는 것이다. 황정민은 그동안 대중에게 영화적으로 큰 신뢰를 연신 안겨다 주었고 그 결과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여섯 번째로 돌파한 배우가 됐다. 즉, 황정민이란 배우는 한국영화계 안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을 안정감을 대중으로부터 오랫동안 확보한 배우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우리들이 기억하는 여러 명대사들의 얼굴에 황정민이 있었다.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여러 명대사들만 되짚어봐도 황정민이란 배우를 이해할 수 있으며 얼마나 황정민이 해당 영화 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값진 배우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황정민이란 이름 세 글자에 우선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 'n차 관람' 하게 만드는 여섯 명대사를 다시 느껴보자.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2005년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탄생한다. '조용한 가족'으로 스릴러를, '반칙왕'으로 코미디를, '장화, 홍련'으로 공포를 섭렵한 김지운 감독이 다시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정석 느와르에 가까웠던 '달콤한 인생'이다. 

'달콤한 인생'은 주연 이병헌과 김영철, 신민아, 김뢰화 등이 느와르 특유의 감정선에 잘 안착하여 연기해 영화를 질적 향상을 이끌었다. 그리고 특별출연급 배우들의 연기도 '달콤한 인생'의 보는 재미를 이끌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백대식 역을 연기한 황정민이었다.

느와르 장르는 대사로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감정과 행동으로 전개를 말한다. 주인공 김선우와 백대식은 '달콤한 인생' 안에서 갈등을 빚고 대척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하얀 아이스링크 위에서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김선우의 복부를 단검으로 찌른 백대식은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 영화 '달콤한 인생' 中 (사진: 영화사 봄, CJ 엔터테인먼트)
▲ 영화 '달콤한 인생' 中 (사진: 영화사 봄, CJ 엔터테인먼트)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이 대사는 영화 안에서 죽기 직전까지 가는 김선우의 삶을 단번에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수많은 명대사들 중에서도 그 백대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김선우의 삶만이 고통이 아닌 우리의 삶도 고통이기에 백대식의 말은 반드시 김선우만을 향하는 것 같지는 않다.

 

드루와, 드루와

'신세계'란 영화는 여러 주체들에게 중요한 작품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느와르 영화를 가장 자주 만드는 감독 박훈정의 출세작이 '신세계'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아직도 '신세계'의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황정민에게 두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영화가 '신세계'다. 즉, '신세계'는 감독, 배우, 대중 모두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신세계'를 왜 아직까지도 대중들은 원하고 있을 것일까? 여러 매력들이 있다. 우글대는 남자들의 마초적 감성, 선과 악이 뚜렷하지 않은 지점에서 오는 쾌감 마지막으로 인물과 상황을 단번에 잘 대변해주는 명대사까지. '신세계'는 우릴수록 진국이 더 나오는 사골 같은 매력을 가졌다.

'신세계'의 주연들은 자신을 각각 대표하는 명대사를 가졌다. 이중구는 "살려는 드릴게", 강과장은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이자성은 "하다 못 해 저 깡패 새끼들도 날 믿고 따르는데, 너희들은 왜 날 못 믿어! 난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는데, 왜!" 그리고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의 명대사는 두 말 할 것 없이 이거다.

▲ 영화 '신세계' 中 (사진: 사나이픽처스, 페퍼민트앤컴퍼니, 대명그룹기안컬처테인먼트)
▲ 영화 '신세계' 中 (사진: 사나이픽처스, 페퍼민트앤컴퍼니, 대명그룹기안컬처테인먼트)

"드루와, 드루와"

극 중에서 대립하던 재범파의 이중구 세력과 북대문파의 정청 세력이 결국 칼과 주먹을 휘두르며 유혈 전쟁을 벌인다. 그 속에서 정청은 보스의 지위를 잃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적 여럿을 상대한다. 칼까지 든 적을 모두 제압하긴 무리였다. 온몸이 칼로 난자당했음에도 정청은 손짓과 함께 들어오라며 죽을 때까지 자존심을 지킨다. 이 지점이 남자 영화 '신세계'의 정점이다 정청이란 인물의 정점일 것이다. 이 정점을 '신세계'를 본 모두가 감격했기에 정청의 그 외침을 기억한다.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면 그게 사랑 아니냐?

유난히 궁합이 좋은 배우와 영화사가 있다. 사례는 많지 않음에도 황정민은 이에 속한다. 황정민과 좋은 궁합으로 여러 볼만한 영화를 만들어낸 영화사가 '사나이픽처스'다. 황정민과 '사나이픽처스'는 '신세계'라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내곤 곧 다음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다음 영화는 장르를 크게 틀어 로맨스 영화로 돌아왔는데, 그 영화가 '남자가 사랑할 때'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제작사가 '사나이픽처스'라서 그랬을까? 황정민이 연기한 주인공 한태일은 '신세계'의 정청의 모습이 여럿 겹쳐 보인다. 독특한 헤어스타일, 전라도 사투리 구사, 어둠의 세계에서 남성적 기질로 살아왔다는 점 등 한태일과 정청은 닮은 점이 많았다.

사랑에서도 한태일은 마치 정청처럼 겉으로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비록 돈을 받아 내야 하는 채무자였지만 한태일은 주호정을 보자마자 반했고 급격하게 사랑에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는지 연신 불확실해했다. 그리고 동침녀 미선에게 이렇게 묻는다.

▲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中 (사진: 사나이픽처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中 (사진: 사나이픽처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면 그게 사랑 아니냐?"

한태일에게만 한정될 대사가 아니었다. 사랑을 망설이고 있는 우리에게, 혹은 사랑이 맞는지 헷갈리는 우리에게 한 번쯤 되물을 대사다. 때로는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재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 한태일의 행동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사랑이 맞는지 되묻고 확실히 답을 내린 후 진심으로 다가가는 그의 행동. 비록 영화 속 인물일지라도, 영화 속 대사일지라도 가슴 속에 품을만하지 않은가.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2014년은 한국영화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연도다. 두 개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개봉됐다. 2014년 7월 30일 개봉한 '명량'은 공식집계 17,615,053명으로 관객 동원 수 1위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12월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14,261,427명을 동원해 11번째 천만 관객 돌파 영화, 현재 관객 동원 수 4위의 영예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시장'의 중심에도 역시 황정민이 있었다.

'국제시장'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윤덕수라는 인물만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기능을 갖춘 것이 제1의 매력일 것이다. 윤덕수의 인생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6.25 전쟁 때 가족 일부를 잃고, 남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 광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났고, 베트남에서는 전쟁에 휘말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잃어버렸던 여동생을 찾기도 한다. 그야말로 윤덕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단번에 대한민국 전후시대 현대사를 살아갔던 남자이자 청년이자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건을 겪어오며 윤덕수는 많은 행동과 많은 말들을 남겼지만 그 일련의 삶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한껏 살려주며 마무리 지어주는 명대사가 바로 황정민이 노인 분장으로 말했던 아래의 대사다.

▲ 영화 '국제시장' 中 (사진: JK필름,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국제시장' 中 (사진: JK필름, CJ엔터테인먼트)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부산사람 윤덕수 특유의 동남 방언으로 흐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듯한 마지막 말은 내색하고 싶어도 내색할 수 없는 가장의 고충이 오랜 세월 묻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 고충을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이 동의 그리고 경의 했다고 믿는다. '국제시장'은 가장 감동적인 마지막 대사를 남긴 영화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베테랑'은 많은 의미를 가진 영화다. 2015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통쾌한 액션으로 마무리 짓는 영화, 영화 말미 강렬한 카메오를 등장시킨 영화, '천만 요정' 오달수의 마지막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박소담·배성우·이동휘 등 '신-스틸러'들이 다수 등장한 영화, 비로소 흥행 감독으로 올라선 류승완의 대표 영화, 정의구현 경찰영화, 마지막으로 황정민이 주연으로 출연해 사회의 문제를 시원하게 꼬집는 '사회참여' 영화다.

위와 같이 '베테랑'은 주제별로 뜯어 분석해볼 만한 요소가 넘쳐나는 영화다. 다양한 각도로 '베테랑'을 즐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앞서 말했듯이, 불합리한 사회에 시원하게 어퍼컷을 날리는 통쾌한 사회참여형 오락영화라는 점으로 '베테랑'을 즐길 것이다. 황정민이 연기한 경찰 서도철은 관객들의 몸으로 대변하며 문제의 끝에 서있는 조태오를 향해 목을 조여 간다.

중간중간 조태오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몸서 나서는 '몹'들이 있다. 그 '몹'들 중에서는 서도철과 같이 경찰밥을 먹는 관할 담당경찰도 있었다. 이 '몹'의 내심을 알아채고 간단히 호신술로 제압하며 이렇게 서도철은 말한다.

▲ 영화 '베테랑' 中 (사진: 외유내강, 필름K,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베테랑' 中 (사진: 외유내강, 필름K, CJ엔터테인먼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그 관할 담당 결찰은 돈을 얻기 위해 가오를 내다 던진 것이다. 최종적인 사명감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경찰이. 이를 서도철은 꼬집은 것이며, 이 명대사를 '베테랑'을 모든 모든 관객들이 들었다. 우린 동물이 아닌 사람이다. 돈이야 물론 중요하지만,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인 것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위해 사람은 살아간다. 단순히 '베테랑'이 웃기고 시원해서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한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은 명대사로도 관객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해주었기에 현재까지도 '베테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영화로 남았다. 

 

그 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물어분 것이고

2016년의 한국영화계를 돌아보면 다양한 색을 가진 영화들이 등장하여 인정받았다. '동주', '아가씨', '우리들'은 2016년의 한국영화를 대표하기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2016년의 한국영화는 단 하나의 문제작이 모두를 집어삼켰다. 나홍진의 '곡성'이 말이다.

'곡성'은 어떤 장르로 분류될 수 있을까? 좀비물? 스릴러? 호러? 오컬트? 이 모두에 해당되는 영화가 '곡성'이다. 즉 '곡성'은 여간 지독한 영화가 아니다. 상상 이상의 내구력을 가진 배우가 필요했다. 역시 '곡성'의 한 축에 황정민이 존재했다.

마을에서 연속해서 터지는 핏빛 살인사건, 이상한 기운에 잠식된 듯한 딸 효진이 모두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종구는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에게 도움을 청한다. 일광은 이번 일의 배후가 귀신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종구는 간절하게 자신이 정말 궁금했던 것을 일광에게 묻는다. 왜 하필 우리 딸, 효진이냐고. 이 질문에 일광은 이렇게 답한다.

▲ 영화 '곡성' 中 (사진: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 사이드미더, 20세기 폭스 코리아)
▲ 영화 '곡성' 中 (사진: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 사이드미더, 20세기 폭스 코리아)

"그 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물어분 것이고"

이 일광의 대사는 '곡성'을 단번에 관통하며 상징한다. '곡성'은 단순히 극 중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극한의 핏빛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곡성'으로 감독 나홍진과 관객들과의 묘한 심리전도 전개된다. 관객 당신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맞다고 믿으며, 무엇 때문에 이러한 것 같냐고 나홍진은 영화로 내내 고도의 낚시질을 한다. 영화 내외적으로 모든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일광의 대사는 가히 가장 '곡성'스러운 명대사다. 

 

 

'황정민 사용설명서' 마지막엔 항상 기대감이

황정민 말고도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얼굴들은 많다. 하지만 충무로 트로이카라 불리는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도 황정민의 명대사들만큼 짙고 무거운 명대사를 여럿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황정민이란 배우의 연기력은 물론 명대사가 탄생하는 해당 영화, 해당 장면에 대한 소화가 뛰어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황정민이란 배우의 재산이다. 황정민이 생산한 명대사들을 다시 감상하며 황정민이란 배우의 신뢰감과 동시에 기대감도 동시에 상승했을 것이다. 고로 앞으로 새로운 황정민 영화가 개봉하면 '또 어떤 명대사 영화에서 나올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된다. 결론적으로 황정민이 관객들에게 쌓아온 기대감이 곧 황정민이란 배우를 대하는 가장 정확한 '사용설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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