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부산광역시에서 아시아 최대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약칭 BIFF: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개최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10월 초에 개최되는데, 꾸준히 성장한 끝에 10월을 부산으로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로, 대한민국을 영화강국으로 만들어버린 축제로 거듭났다.

이렇듯 잘 성장한 영화제는 영화산업을 직결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기폭제로 작용한다. 부산국제영화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영화계를 살찌우는 대표적인 영화제가 여럿 있다. 

그 대표적인 영화제들만 조금 살펴봐도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정말 많은 영화들이 있구나', '우리나라에 정말 다양한 영화들이 있구나'와 같은 미처 시선이 닿지 못 한 곳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후 극장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해 결국 대중들의 주목까지 최종적으로 훔친 영화들이 여럿 있다. 그 영화들은 고유의 매력으로 곧 출품됐던 해당 영화제의 매력까지도 대변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대표적인 영화제들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영화제들만의 매력 고스란히 담아 해당 영화제 대표작이 된 영화들에는 또 무엇이 있었는지 감상해보자.  

 

 

부산국제영화제

우리나라 4대 영화제로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고 가장 넓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영화제로 1996년 처음 개최됐으며 매년 10월 초 개최되는 전통을 가졌다. 

▲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1996년 제1회 흥행을 발판 삼아 꾸준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성장을 거듭했으며, 특히, 자정 이후 부산 남포동 일대 거리에서 국내외 영화 거장들이 털털하게 영화 얘기를 주고받으며 밤새 술을 먹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는 것은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의 전통 아닌 전통, 특징 아닌 특징이 됐다. 이 광경을 목격하러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는 후문도 암암리에 들릴 정도.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에 있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될 예정이었던 '다이빙 벨'에 대해 상영 취소를 위해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 압력을 넣어 이에 반대해 우리나라 영화 거장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보이콧을 일제히 표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 박근혜 정부의 부산국제영화제 통제를 위한 외압 사실도 알려졌다. 이 모든 위기를 겪고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는 안정을 찾았으며, 2020년과 올해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최초 소규모 온오프 동시 개최를 진행한다.

▲ (사진: 네이버 영화, KAFA FILMS, 필라멘트 픽처스)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영화제인지 한 편의 영화로 알고 싶다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을 감상하면 된다. 2010년 제15회에서 뉴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한 '파수꾼'은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조성하 주연의 영화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세밀하다면 세밀할 10대 특유 남학생들의 호흡과 감정을 담아 '파수꾼'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극장으로 진출해 평단, 관객 모두에게서 역시 호평을 받았다. '파수꾼'은 부산국제영화제뿐만이 아닌 201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수작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영화제는, 역시 우리나라 4대 영화제로 꼽히며 부천시가 만화의 도시만이 아닌 영화의 도시라고 외치고 있는 영화제가 바로 약칭 BIFAN(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으로 불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다.

▲ 202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202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역동적인' 영화제를 지향하고 있다. 어떻게 영화제가 역동적일 수 있을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제1의 매력이 장르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특정되는 분위기와 연출법이 반복돼 장르가 영화 자체가 되는 장르영화가 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된다. 그리하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시체스, 토론토,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과달라하라, 카이로, 마카오와 함께 '판타스틱 7'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장르영화제다.

주요 수상작들만 살펴봐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특색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영화 색채가 돋보였던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가장 강렬한 한국영화로 기억되는 '곡성', 사회를 핏빛으로 지적한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은 뚜렷한 색깔을 가진 장르영화제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발전시켰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싸이더스, CJ E&M 픽처스)

위 작품들 중에서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표작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 작품은 장준환 감독의 불후의 명작 '지구를 지켜라!'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겠다는 병구의 괴짜 일대기를 담은 '지구를 지켜라!'는 흥행에는 참패했어도 다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영화야 말로 2003년 한국영화 전성기 목록에서 빠지면 안 된다'는 극찬을 받았다.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병구의 과정과 주변은 온통 독특하고 강렬하고 괴랄했다. 이 자체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추구하는 색일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우리나라에서 부산국제영화제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을 것이다. 약칭 JIFF(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불리는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부산처럼 전주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화도시로 만들었다. 2014년부터 외압으로 인해 휘청이던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체제로 전주국제영화제가 대중들에게 주로 선택받았을 만큼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 영화제 중 하나다.

▲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는 2000년 첫 회를 개최했으며, 부분 경쟁 도입 비경쟁 국제영화제다. 경쟁부문은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부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 슬로건은 '디지털, 대안, 독립'이다. 이 슬로건이 곶 전주국제영화제의 고유의 색깔로 정착돼 투자·배급을 쉽게 얻지 못 하는 영화나, 다른 영화제에서 감상할 수 없는 영화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 많이 상영된다.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중 가장 '난해한 영화제'로도 불린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풀, CGV 아트하우스)
▲ (사진: 네이버 영화, 풀, CGV 아트하우스)

정치는 예술은 상극이다. 하지만 정치의 삶을 살았음에도 예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의 삶은 예술인들이 많이 소재로 선택한 바 있으며,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경선 과정을 담은 '노무현입니다'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제작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노무현입니다'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비주류 영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전주국제영화제였기에 만들어지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신춘문예를 아는가? 신춘문예란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신인 문학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를 뜻한다. 왜 그렇게 우리가 신춘문예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알고 있을까?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것이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매년 의무적으로 당선작을 뽑는 것이 아닌, 수준에 닿지 못 한다면 당선작을 뽑지 않는 해도 있었기에 신춘문예 등단의 가치는 모두가 인정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영화제가 우리나라에 존재했으니 바로 '미쟝센 단편영화제'다.

▲ 2021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포스터 (사진: 미쟝센 단편영화제)
▲ 2021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포스터 (사진: 미쟝센 단편영화제)

미쟝센(mise en scène, 국립국어원에서는 '미장센'으로 인정)을 아는가? 시각-극 예술에서만 존재하는 예술적 개념인데, 사전적 정의는 '무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인데, 쉽게 말해 시각-극 예술에서 의도된 시각적 연출이라고 보면 된다. 감독 자신만의 독특한 미쟝센을 45분 내외 단편영화의 형식으로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보는 경쟁 영화제가 미쟝센 단편영화제다. 

앞서 말했듯,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신춘문예와 흡사하게 심사위원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으면 해당 연도 대상은 없다. 그리하여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역사상 대상은 단 4편 뿐이다. 2002년 제1회 신재인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2009년 제8회 조성희의 '남매의 집', 2012년 제11회 엄태화의 '숲', 2018년 제16회 김현정의 '나만 없는 집'까지.

▲ '12번째 보조사제' 中
▲ '12번째 보조사제' 中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된 장재현 감독의 '12번째 보조사제'는 훗날 '검은 사제들'이란 장편 영화로 확장돼 관객들을 만나 약 544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운다. '검은 사제들'의 원안이 어땠는지,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추구하는 예술 방향은 어떠한 것인지 알고 싶다면 '12번째 보조사제'를 보라. 어느 정도 그 궁금증이 해결될 것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부산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천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인 지역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또 하나의 도시가 꾸준히 영화제를 열어 지역 대표 축제로 승화시켰는데, 그 지역은 제천이고 영화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다.

▲ 202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202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05년부터 시작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매년 8월 광복절 전후로 개최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 한글 로고를 제천시 출신 판화가 이철수가 그렸고, 영화제 장소 중 하나인 청풍호반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남한강 물줄기의 풍경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뿐만이 아닌 다른 요소로도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의 특성을 간직하면서도 음악축제의 면모도 갖춰 음악 덕후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매년 실력파 뮤지션들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참가해 영화제의 즐길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19 시국이 종결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는다면, 참가하는 뮤지션들의 라인업을 확인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매력일 것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 (사진: 네이버 영화)

무엇보다 영화제는 영화가 좋아야 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매년 '세계음악영화의 흐름'(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심사한다. 영화에 음악은 빠질 수 없듯이, 이야기와 음악이 조화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으면 된다. 특히, 2019년 대상으로 선정된 '지미 페이지 따라하기'는 지미 페이지의 기타 리프, 레드 제플린의 음악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영화관만을 영화의 제공처로 여겼다면 '지미 페이지 따라하기' 같은 영화를 놓칠 수도 있다. 놓칠 뻔한 영화를 보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상영·제공하는 것, 이 것이 영화제의 본기능 아닐까. 이런 본기능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충실하게 갖춘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계의 숨어있는 근간

영화가 기획되고, 각본에 따라 촬영하고 후작업을 거쳐 배급사를 통해 영화관에 걸리는 일반적인 과정에서는 흥행을 주 목표로 하고 이익을 거두는 행위를 절대 무시할 수 없기에 예술의 창작성보다는 대중성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영화들이 다소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위의 과정이 아닌,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제에 출품돼 1차적인 평가를 거쳐 주목을 받고 영화관까지 도착한다면 조금 결과물은 달라질 수 있다. 일정 예술 색을 추구하는 영화제의 우선적 평가를 거쳤기에, 그 평가에 따라 배급사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배급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대중성만 쫓다 대부분 비슷해지는 상업영화가 아닌 보다 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영화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 대중들 모르는 사이 꾸준히 한국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제는 영화계의 숨어있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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