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영화상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견없이 우리나라 최고로 인정받는 영화상이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도 아닌  바로 청룡영화상이다. 작품의 가치와 배우들의 연기력만 수상의 기준을 삼아왔기에 종합예술 시상식에 가까운 백상예술대상보다 많은 논란으로 위상이 하락한 대종상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최고 영화상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룡영화상은 개최된다. 제42회 청룡영화상은 2021년 11월 26일 저녁 8시 30분 여의도 KBS홀에서 개최된다. 중계 방송사 역시 KBS2다. 

▲ 제42회 청룡영화상 공식 포스터 (사진: 청룡영화상)
▲ 제42회 청룡영화상 공식 포스터 (사진: 청룡영화상)

진행은 4년 연속 호흡을 맞춘 '청룡의 커플'로 새로이 거듭난 김혜수와 유연석이 맡는다. 김혜수는 명실상부 '청룡의 여인'이다. 1993년부터 18년 동안 청룡영화상의 진행을 맡게 된 것이다. 유연석 역시 2018년부터 김혜수와 진행 호흡을 맞춰 청룡을 대표하는 남자로 거듭났다.

청룡영화상의 시상 부문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인물과 기타. 영화의 연기를 담당하는 배우에게 상을 수여하는 인물 부문과 모 영화의 특정 가치를 인정하여 상을 수여하는 기타 부문. 올해는 과연 어느 부문의 어느 작품이 수상할 수 있을까? 맨즈랩은 인물 다섯 부분, 기타 다섯 부문에서 수상이 예상되는 배우와 작품을 짚어 이유를 덧붙여 보려 한다. 과연 당신은 맨즈랩의 의견에 동의할까? 반대할까?

 

 

인물

감독상 : 이준익

정확히 정의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감독상은 그동안 펼쳐온 자신만의 연출 방식을 고집 있게 유지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영화를 선사한 감독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보인다. 이 수상 취지에 가장 잘 들어맞게 올해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은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인 듯하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씨네월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사진: 네이버 영화, 씨네월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은 올해 3월 말 '자산어보'라는 시대극 흑백영화를 내놓았다. 물론 주연배우가 설경구와 변요한이라는 색다른 조합이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감독이 이준익이기에 최종적 큰 기대를 받았던 것이다. 이준익은 그동안 '황산벌', '왕의 남자',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소원', '사도', '동주', '박열'까지 시대극 연출에 있어서는 탁월한 감각을 이어왔다. 그리고 '동주'에 이어 두 번째로 흑백영화로 '자산어보'를 표현해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을 영화 내내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지속된 연출법으로 '볼만한' 영화를 세상에 꺼내놓은 이준익에게 올해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여해도 큰 논란은 없을 것이다.

 

여우주연상 : 전종서

2020년 11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콜'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낳았다. 이미 2020년 11월 당시 우리나라에는 '타임슬립'을 시도한 여러 문화 작품들이 등장했기에 색다른 연출이 아니라면 대중들은 이미 '타임슬립'을 익숙해한다. 그렇게 '콜'은 '타임슬립'에서 반드시 지녀야 할 색다름을 전종서와 박신혜의 얼굴을 빌려 완성시켰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용필름)
▲ (사진: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용필름)

여성과 여성의 대결, 과거와 현재의 대결,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이야기 등은 '콜'을 전혀 다른 ‘타임슬립’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박신혜와 전종서의 얼굴에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핏빛 살기를 '콜'에서 확인할 수 있어 연기적으로도 색달랐다. 이 둘 중에서 악의 빌런은 전종서였다. 전종서가 연기한 오영숙은 한국영화 역사에 있어 길이 남을 '여성 빌런'으로써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콜'이 다른 한국영화들과 다른 이유를 오영숙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21년 11월 현재까지 전종서를 뛰어넘은 여자 주연 배우는 없었다.

 

남우조연상 : 허준호

2021년의 한국영화는 두 영화로 압축될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와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특히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앞서 많이 차용된 우리나라와 북한의 대립 구도 서사임에도 한 번도 보지 못 한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스케일로 올해를 대표하는 한국영화 거듭났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롯데엔터테인먼트)
▲ (사진: 네이버 영화,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롯데엔터테인먼트)

좋은 영화에는 반드시 좋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모가디슈'로 마찬가지다. 주연배우 김윤석과 조인성이 탁월하게 연기하여 '모가디슈'를 이끌었고 그 뒤에서 소말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림용수 대사를 연기하여 '모가디슈'를 봐야만 하는 영화로 발전시켜준 배우가 허준호였다. 진부한 남북 대립이 아니었다. 림용수 대사 얼굴에서 묻어난 쳐연함과 동포 의지는 '모가디슈'의 분명한 또 다른 가치였다. 조연배우의 자리에서 영화의 가치를 더한 다는 것,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를 배우 허준호가 해냈다.

 

여우조연상 : 장윤주

2021년 1월 27일 개봉한 영화 ‘세자매’에 사실 독보적인 주연은 없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세자매'가 모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김선영이 연기한 첫째 희숙, 문소리가 연기한 둘째 미연, 장윤주가 연기한 셋째 미옥까지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안에 균등하게 배치됐다. 그럼에도 이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인 건 장윤주였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업, 리틀빅픽처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업, 리틀빅픽처스)

장윤주가 연기한 미옥은 어느 영화에서도 보도 듣도 못 한 유별난 캐릭터였다. 애 딸린 상준과 동거하면서 유별난 성격으로 모두를 피곤하게 한다. '우리 가족 중에 저런 사람 있으면 못 견딘다'라는 생각을 '세자매' 속 미옥을 보면 누구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옥이 있기에 '세자매'라는 영화는 완성됐고 영화의 생동감이 부여됐다. 이제는 모델로만 한정할 수 없다. 장윤주는 어려운 배역까지 소화하는 당당한 배우이기도 하다.

 

신인여우상 : 이유미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올 때 주목받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걸그룹 EXID 출신으로써 배우로 전업한 안희연의 첫 주연 영화라는 점, '박화영'이란 영화로 독립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이환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이었다. '어른들은 몰라요' 사전 마케팅에서 또 다른 주연배우 이유미의 존재는 계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돈키호테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처스)
▲ (사진: 네이버 영화, 돈키호테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처스)

'어른들은 몰라요'는 이환 감독의 영화도 아니었다. 안희연의 영화도 아니었다. 단언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유미의 영화였다. 영화 내내 이유미의 행동으로 이야기는 전개됐으며 단 한 번도 영화의 중심에서 이유미가 이탈한 적이 없었다. 어두운 10대들의 경험을 어느 배우가 쉽게 감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이를 이유미는 연기로 정확히 승화시켰다. 올해의 배우로도 손꼽힐 이유미에게 신인여우상 시상이 아깝지가 않을 것이다.

 

 

기타

작품상 : 모가디슈

앞서 말했듯이, 2021년의 한국영화계는 '자산어보'와 '모가디슈'의 2파전으로 요약된다. 두 영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한국영화계의 질을 한껏 드높였다. 가장 뛰어난 영화에게 주어지는 작품상에는 그래도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롯데엔터테인먼트)
▲ (사진: 네이버 영화,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롯데엔터테인먼트)

역시 앞서 말했듯이,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 특유의 연출법이 많이 녹아있다. 물론 '모가디슈'도 류승완 감독의 박진감이 충분히 녹아있는 영화다. 그런데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뉴스를 보면서 '모가디슈'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혼돈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을 '모가디슈'에서 충분히 느낀 것이다. 전쟁은 없어야 하기에 경험해서도 안 될, 그러나 이해해야 하는 상황의 감정을 '모가디슈'가 대리 체험시켜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화와 국제사회의 연결, 이를 청룡 측에서 그저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각본상 : 기적

영화의 매력을 채워주는 요소들은 여럿 있다. 배우의 탁월한 연기, 압도적인 시각효과, 감독의 감각적 연출 등. 그럼에도 영화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가 없다면 영화가 아니라 단순 시각예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영상을 영화로 완성시켜주는 각본, 그 각본이 뛰어난 영화에게 수여하는 상이 각본상이다.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측되는 영화는 '기적'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블러썸픽쳐스, 롯데엔터테인먼트)
▲ (사진: 네이버 영화, 블러썸픽쳐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번 청룡영화상 각본상 후보에는 '내가 죽던 날', '모가디슈', '세자매', '자산어보' 그리고 '기적'이 올랐다. 이 중에서 각본의 요소에서 색다른 시도를 감행한 영화는 '기적' 뿐이다. 영화 중간 전개 전체를 뒤엎는 반전도 존재했고, 이야기를 따라서 인물이 배치되는 구조를 보였다. 각본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기적'이란 영화 맨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올해 각본상의 수상 작품은 '기적'이 돼야 한다.

 

촬영조명상 : 콜

영화는 본디 영상예술이다. 한 순간을 담는 사진이 보다 더 복합적인 예술이기 때문에 촬영과 조명의 조화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 있어 필수적인 시각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상에서 촬영조명상을 별도로 마련한 것이다. 촬영과 조명을 적절히 영화에 사용하여 영화의 깊이를 더해준 영화는 올해 후보작들 중 '콜'로 보인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용필름)
▲ (사진: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용필름)

올해 청룡영화상 촬영조명상 유력 수상작으로는 '콜'과 '낙원의 밤'으로 좁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촬영과 조명이 영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해 극의 분위기를 결정한 영화는 '콜'로 보인다. 김서연과 오영숙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닫는 별장의 어두운 분위기는 영화의 장르 그 자체를 결정했으며 햇살과 모닥불로 비치는 그녀들의 표정은 영화의 공기를 결정했다. 즉, '콜'은 촬영과 조명을 영리하게 영화에 이용한 것이다. '콜'의 촬영조명상 수상을 조심히 예측해본다.

 

미술상 : 자산어보

영화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건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가 맞다. 하지만 그 요소들만으로 영화가 100% 완성되지 않는다. 연출과 연기라는 큰 원들이 메꾸지 못 하는 여백을 영화 고유의 미술이 담당하여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영화의 색깔과 인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술, 올해 한국영화 중 미술이 가장 뛰어난 영화는 '자산어보'로 보인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씨네월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사진: 네이버 영화, 씨네월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자산어보'의 미술적 가치는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자산어보'는 여러 색채를 포기하는 흑백영화의 방법을 택하며 역설적으로 미술적 가치를 높였다. 극 중 배경이 되는 흑산도 산과 바다의 절경을 흑백으로 담아 한 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게 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어류와 해산물들의 출연은 '자산어보'의 또 다른 오락적 재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걸맞은 여러 시대적 물품 배치까지. 미술적 가치만 두고 봐도 '자산어보'의 매력은 상당하다.

 

기술상 : 승리호

우리나라 영화계가 특히 잘 하는 장르들이 몇몇 있다. 2000년대 초반 부흥기를 가졌었던 코미디, 2010년대 중후반 유난히 범람했던 느와르, 시나리오 만으로 관객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스릴러까지. 한국영화는 세계 어느 영화권에 가도 뒤처지지 않을 '특기 장르'들이 여럿 있다. 반면, '취약한 장르'도 있다. SF에 한국영화계는 유난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비단길, 메리크리스마스, 넷플릭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비단길, 메리크리스마스, 넷플릭스)  

물론 일순간에 SF가 '특기 장르'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이를 올해 '승리호'가 담당했다. 독자적인 세계관과 각본으로 우주를 누비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승리호'가 개척한 것이다. 우주를 모험하는 듯한 체험적 감상은 '승리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었다. 물론 그 SF 연출에 비해 각본이 빈약했지만 '승리호'가 얻어낸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칭호는 지울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도 한국영화의 진일보를 이룬 '승리호'의 우주에 청룡은 기술상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

올해 청룡영화상 각 부문의 후보 배우나 후보작들을 보면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상당히 많은 부문에서 같은 영화들이 후보로 올랐다는 것, 물론 해당 영화가 여러 부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 후보에 올랐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올해는 절대적으로 개봉되거나 공개된 영화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유는 역시나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21년 11월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며 2021년 개봉을 꺼려했던 이미 촬영이 완료된 영화들이 개봉 날짜를 계산하고 있다. 부디 2022년 제43회 청룡영화상에서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마치 수상의 영예에 버금가는 영광이 배우와 작품에 안겨질 수 있도록 보다 많은 한국영화가 대중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영화는 무조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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