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람이 부는 겨울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때문에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고역입니다. 뜨끈한 부침개에 막걸리 한 사발이 입에 들어가야 기운을 내고 다음 날 출근할 수 있을 것만 같죠.

결국 퇴근길에 감자전과 막걸리를 산 다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맛을 보았습니다. 근데 감자전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그 맛이 맞는데 막걸리는 기대감과 꽤 어긋났군요. 단맛이 강했는데 아무래도 아스파탐이 듬뿍 들어갔나 봅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막걸리가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며 아쉬운 대로 막걸리를 들이켜 보았지만 기분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몇 잔 막걸리를 마시다가 문득 직접 만들어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친척 어른과 함께 막걸리를 빚어본 적 있는데 대단한 기술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고 재료도 누룩 말고는 특이한 것이 들어가지 않아서 전통주 중에는 만드는 부담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집에서 막걸리 빚는 방법을 차근차근 소개해 보겠습니다.

 

필요한 재료와 물건

막걸리를 빚을 때는 주로 찹쌀을 사용합니다. 멥쌀이나 다른 종류의 쌀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쌀 종류에 따라서 술맛은 달라집니다.

찹쌀로 막걸리를 빚으면 술에 자연스러운 단맛과 부드러운 맛이 깃들고, 다른 쌀로 빚으면 술맛이 상대적으로 더 진해지고 약간 더 도수가 높게 만들어집니다.

두 번째는 누룩입니다. 막걸리를 만들 때 꼭 필요한 발효제이며, 이게 없으면 막걸리는 완성하지 못합니다. 오픈 마켓에서 검색하면 여러 가지 누룩이 나오는데 막걸리용을 골라서 구매하면 됩니다. 물론 누룩도 재료나 만드는 방식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니 가능하면 고객 평가가 좋은 국산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누룩은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몇 주 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곡물 반죽 덩어리에서 누룩곰팡이를 배양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고난이 따릅니다. 강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분이 아니라면 막걸리용 누룩은 시판 제품을 사용하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 (사진: 롯데칠성음료)
▲ (사진: 롯데칠성음료)

물은 생수나 약수가 필요합니다. 수돗물은 염소로 인해 물 속의 미생물이 거의 생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막걸리를 제대로 발효시키지 못합니다. 수돗물을 정화한 정수기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수는 야외에서 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으니 막걸리를 빚기 전에 한번 끓여서 소독하고 열을 식힌 다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막걸리를 발효시킬 항아리는 간장이나 고추장을 담는 장독을 사용합니다. 누룩처럼 오픈 마켓에서 구매해도 되고 시장의 그릇 전문점에서 사도 됩니다. 장독이 너무 크면 나중에 내용물을 담은 상태에서 혼자 옮기기 힘들기 때문에 10리터에서 20리터  사이로 고르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리고 대야도 필요합니다. 막걸리를 반죽하고 술을 여과할 때 사용해야 하니 30리터 이상 담을 수 있는 커다란 것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면포(綿布)입니다. 막걸리용 밥을 식힐 때 바닥이나 그릇 위에 면포를 받침대로 깔아둘 수 있고, 막걸리를 걸러낼 때 거름망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대형 솥도 있으면 좋습니다. 밥을 한번에 많이 지어서 시간을 아낄 수 있거든요.

다만 솥으로 밥을 짓는 것은 꽤나 기술이 필요합니다. 솥 중간만 밥이 잘 익고 가장자리는 설익기 십상이죠. 밥이 다소 덜 익더라도 막걸리는 빚을 수 있지만 최상의 맛은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밥은 전기밥솥으로 지어도 되니 대형 솥은 선택사항으로 여기시면 됩니다.

 

1단계: 밥 짓기

막걸리 빚기의 첫 단계는 밥 짓기입니다. 찹쌀은 8킬로그램 이하로 준비합니다. 더 많아도 되지만 찹쌀 양이 많을수록 밥을 짓기 힘들고 장독 하나에 발효시킬 재료를 모두 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준비한 찹쌀은 물에 씻은 후 1시간 이상 불립니다.

이제 밥을 지을 차례입니다. 솥으로 지을 때는 안에 면포를 깔면 밥알이 솥에 달라붙지 않고 나중에 밥을 통째로 옮기기 쉽습니다. 물은 찹쌀 위로 10밀리미터 정도 잠길 정도로만 붓습니다.

찹쌀 8킬로그램 기준으로 밥을 짓는 데 최소 2시간은 걸립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가장자리는 잘 익지 않을 수 있으니 1시간 정도 지나서 맛을 보고 덜 익은 부분은 주걱을 사용해 안쪽으로 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는 경우에는 물 양만 신경 쓰면 됩니다. 평소보다 물을 20% 정도 적게 넣고 밥을 하면 간단하게 고두밥이 완성되죠. 물론 여러 차례 밥을 하고 옮겨야 해서 시간은 더 걸립니다.

완성한 밥은 시원하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식힙니다. 주걱으로 넓게 펴면 더 빠르게 식힐 수 있습니다. 한겨울이면 1시간만 지나도 충분하지만 다른 계절이라면 최소 2시간은 지나야 열기가 식습니다.

 

2단계: 장독과 누룩 준비

밥을 짓는 동안에는 다른 것을 준비합니다. 우선 장독을 물로 한번 씻은 후 뜨거운 물로 주둥이와 내부를 소독합니다. 이렇게 소독을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누룩 대신 세균이 번식해서 막걸리는 상하게 됩니다.

누룩은 대야에 넣고 생수와 섞어 줍니다. 알갱이 형태인 누룩이라면 손으로 가볍게 주무르면서 풀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이따가 밥과 섞을 때 누룩이 한 곳에 뭉치지 않고 고르게 퍼집니다.

비율은 누룩 1킬로그램에 물 6리터로 잡으면 됩니다. 누룩 농도가 높을수록 막걸리 도수가 높아지고 술맛도 진해지므로 물을 조금 줄여도 무방합니다. 다만 물이 너무 적으면 막걸리 발효가 더뎌질 수 있으니 본래 비율에서 지나치게 줄어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3단계: 밥과 누룩 버무리기

밥이 다 식었다면 누룩 섞은 물에 옮겨 담아서 버무립니다. 마치 제빵사가 빵 반죽을 하듯이 강하게 밥알과 누룩 알갱이를 주물러야 합니다. 중앙과 가장자리 모두 고르게 말이죠. 찹쌀 8킬로그램 기준으로 최소 30분은 작업해야 합니다.

혹시 손이나 팔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서 강하게 주무르기 힘들다면 살살 주무르되 시간을 2배 이상 늘리는 방식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버무리는 작업이 끝나면 위 사진처럼 누룩과 밥이 반죽과 비슷한 상태로 변합니다. 물 양에 따라 반죽보다는 죽에 가까운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4단계: 장독에서 숙성시키기

혼합이 끝난 재료들은 장독으로 옮겨 담습니다. 손과 그릇이 지저분하면 기껏 소독한 장독이 금세 오염되므로 미리 물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작업해야 안전합니다.

참고로 항아리는 70% 정도까지만 재료를 채워야 합니다. 안이 꽉 차는 경우 막걸리 발효 중에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건더기와 함께 위로 치솟기 때문에 밖으로 넘쳐 흐를 수 있으니까요.

모든 재료를 옮겨 담았다면 장독 주둥이 부분을 막아야 합니다. 삶아서 소독한 천으로 덮어서 고무줄로 고정하면 되죠. 그 다음에 뚜껑을 덮어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으로 장독을 옮깁니다.

막걸리 발효에 적정한 온도는 약 25℃입니다. 그보다 온도가 높으면 발효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막걸리 대신 식초가 되어 버리거나 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 이하로 떨어지면 발효 속도는 느려지지만 술맛은 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다만 미생물의 생존을 위해 15℃ 이상은 유지해야 합니다.

하루가 지난 뒤 장독 내부를 보면 막걸리 발효 과정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생기면서 기포가 보글보글 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번 국자로 내용물을 휘저어주면 발효가 더 잘 이뤄집니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는 국자로 내용물을 약간 퍼서 맛을 봅니다. 발효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미세하게 막걸리 맛이 나고 취기도 조금 느껴집니다.

 

5단계: 막걸리 거르기

3주가 지나면 막걸리 맛이 완성 단계에 도달합니다. 큰 대야에 면포를 깔고 장독에 담긴 내용물을 10국자 정도 담아서 위 사진처럼 쥐어짭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막걸리를 거르는 과정이죠.

면포에 넣고 짜는 것이 버겁다면 체로 거르는 것도 괜찮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힘은 훨씬 적게 들어서 부담이 적은 방법이죠. 체 위쪽에서 국자로 건더기를 꾹꾹 누르면 더 빠르게 막걸리를 거를 수 있습니다.

막걸리를 모두 걸렀다면 빈 병에 담아서 보관해야 합니다. 물로 세척한 생수병이나 오픈 마켓에서 파는 페트병을 이용하면 됩니다.

빈 용기에 담은 막걸리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됩니다. 다만 발효 과정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은 뚜껑을 열어서 배출해주거나 뚜껑을 느슨하게 닫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경우에는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폭발한 막걸리 병과 마주쳐 깊은 슬픔에 빠질 수 있죠.

 

6단계: 막걸리 즐기기

모든 것이 끝나고 직접 만든 막걸리를 가족들과 함께 마셔보았습니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강한 단맛은 나지 않지만 찹쌀로 빚어서 은은한 단맛이 입에 감돌고 목에서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서 만족감을 줍니다.

약간 시큼한 맛도 나서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슈퍼에서 파는 막걸리와 비교하면 훨씬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군요.

아무튼 특별한 술을 마시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막걸리 만들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빚은 술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각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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