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란 것을 체감할 정도로 나이가 들면 문득 옛날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가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맛있게 먹었던 음식, 즐겨 들었던 음악 등등 여러 가지가 추억에 젖게 만든다.

참 다양한 상념이 존재하지만 대개 옛날을 떠올리게 되면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기억도 하게 된다. 바로 ‘절약 정신’이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기술이나 인프라 한계로 인해 필요한 물건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해서 자연스레 절약 정신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PC 하드웨어 중 휴대용 스토리지(저장 매체, 보조 기억 장치)를 들 수 있다. 지금처럼 반도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휴대용 스토리지가 가격은 비싼데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은 미미해서 사용자는 제품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소중한 데이터를 백업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참 힘들고 답답하게만 느껴졌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도 모두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게 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 추억을 돌아보기 위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휴대용 스토리지들 중 대중적인 것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20세기 PC 사용자들의 필수품, 플로피 디스크

▲ 1980~1990년대 PC 사용자에게 필수품이었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 1980~1990년대 PC 사용자에게 필수품이었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21세기가 되기 전부터 PC를 사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를 기억할 것이다. 흔히 ‘디스켓’(Diskette)이라고 부른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는 얇고 아담해 보관하거나 가지고 다니기 쉬워서 USB 메모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PC에서 사용된 대중적인 휴대용 스토리지였다.

플로피 디스크는 3.5인치 외에도 5.25인치와 8인치 제품도 있었는데 최초의 플로피 디스크는 1971년에 IBM이 출시한 8인치 제품이다. 저장 용량은 50KB(킬로바이트) 정도였는데 그 당시 PC용 하드 디스크 용량이 10MB(메가바이트)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난한 용량이었다.

▲ 플로피 디스크는 3.5인치 외에 5.25인치와 8인치 제품도 있었다 (사진=Digital Scrapbooking Storage)
▲ 플로피 디스크는 3.5인치 외에 5.25인치와 8인치 제품도 있었다 (사진=Digital Scrapbooking Storage)

하지만 8인치 플로피 디스크는 크기가 너무 크고 데이터 기록 속도가 느려서 약 5년 뒤 이를 개선하고 저장 용량이 1MB대로 증가한 5.25인치 제품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시장에 나와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사용되었다.

범용적으로 사용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는 저장 용량이 1.44MB였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최소 수십 개는 이용해야 소프트웨어 하나를 저장 가능한 점과 걸핏하면 생기는 디스크 오류 때문에 휴대용 스토리지로서 활용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100MB 쇼크, ZIP 드라이브

▲ 아이오메가 ZIP 드라이브 (사진=Lyonsden.net)
▲ 아이오메가 ZIP 드라이브 (사진=Lyonsden.net)

1994년에는 플로피 디스크의 저장 용량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오메가(Iomega)가 개발한 ‘ZIP 드라이브’(ZIP Drive)와 ZIP 디스크가 등장했다. ZIP 디스크는 외형상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와 유사했지만 저장 용량은 무려 70배나 많은 100MB여서 당시 PC 사용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E-IDE와 SCSI, 병렬 포트 등 다양한 종류의 인터페이스로 제품이 출시되었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플로피 디스크보다 빨랐으며, 데이터 인식 오류도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해서 차세대 휴대용 스토리지를 원했던 사람들은 ZIP 드라이브와 디스크로 플로피 디스크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ZIP 디스크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사진=Lyonsden.net)
▲ ZIP 디스크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사진=Lyonsden.net)

다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100MB도 그렇게 넉넉한 용량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오메가는 1999년에 250MB ZIP 드라이브 · 디스크를 출시했고, 2002년에는 750MB ZIP 드라이브 · 디스크를 선보였다.

하지만 2000년 무렵부터 ‘CD’(Compact Disc)와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Optical Disc Drive, 이하 ODD) 제품들 가격대가 크게 낮아지면서 ZIP 드라이브는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참고로 아이오메가는 1995년에 저장 용량 1GB(기가바이트) 이상인 하드 디스크 기반 휴대용 스토리지 ‘Jaz 드라이브’(Jaz Drive)와 디스크를 선보였고, 아이오메가의 경쟁사인 이메이션(Imation)은 1997년에 FDD와 호환성이 보장되는 저장 용량 120MB · 240MB인 ‘슈퍼디스크’(SuperDisk)를 선보였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시장에서 도태되었다.

 

우리는 오늘도 CD를 구웠다

CD는 1982년에 처음 출시되어서 플로피 디스크 못지 않게 역사가 깊다. 필립스(Philips)와 소니(Sony)가 공동 개발했는데 본래 디지털 오디오 녹음 및 재생용으로 설계되었고 가격대가 높았기 때문에 PC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CD와 CD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Optical Disc Drive, 이하 ODD) 제품 가격대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대중화가 될 수 있었다.

▲ CD와 ODD의 모습
▲ CD와 ODD의 모습

저장 용량은 초기에 650MB였는데 나중에 700MB로 확장되었다. 크기는 직경 120mm이며 크기가 아담한 미니 디스크(직경 60mm · 80mm)도 출시되었다.

CD는 ODD에서 레이저로 데이터가 기록되는 알루미늄 막 부분이 흠집 없이 잘 보관되면 데이터를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고, 최신 ODD로도 과거의 CD에 기록된 데이터를 읽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호환성도 높아서 데이터 백업용으로 장기간 큰 인기를 끌었다.

일반적인 CD는 데이터를 단 한번만 기록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기록 가능한 CD-RW용 CD도 등장했다.

▲ CD와 같은 크기지만 저장 용량이 훨씬 더 큰 DVD · 블루레이 디스크 (사진=Geeky Sweetie)
▲ CD와 같은 크기지만 저장 용량이 훨씬 더 큰 DVD · 블루레이 디스크 (사진=Geeky Sweetie)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CD의 700MB 용량도 백업용으로는 매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동일한 크기에 저장 용량 4.7GB를 제공하는 ‘DVD’(Digital Versatile Disc)가 대중화되면서 CD의 자리를 대체했다.

DVD 다음에는 저장 용량 25GB인 ‘블루레이’(Blu-ray) 디스크도 나왔는데 휴대성과 범용성 면에서 훨씬 유리한 ‘USB 메모리’(USB flash drive)가 대중화되면서 휴대용 스토리지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다만 비디오 게임과 영화용 스토리지로는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편하고 빠르다, USB 메모리

USB 메모리는 2000년부터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개발사로는 M-시스템스(M-Systems)가 알려져 있지만 다른 기업이나 개발자와 특허 출원 시기에 대해 논쟁이 있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초기에 출시된 USB 메모리는 최대 용량이 32MB에 불과했고 가격은 수십만 원대를 호가했기 때문에 휴대용 스토리지로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 손가락 한 마디 크기에 수백 기가바이트를 저장 가능한 USB 메모리

그러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USB 메모리의 핵심 부품인 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급격하게 감소했고 2005년 무렵부터는 1GB 용량 USB 메모리를 몇 만 원에 살 수 있을 만큼 가격 대 성능비가 크게 높아졌다.

현재는 저장 용량 512GB인 USB 메모리도 일반인이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이고 PC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 백업용으로도 활용 가능해서 범용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USB 메모리는 첫 출시된 지 20년 이상 지났는데도 현역 휴대용 스토리지로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용량으로 여유로운 백업 가능, 외장 하드

USB 메모리 만큼 보편적으로 쓰는 휴대용 스토리지로는 ‘외장 하드’(External hard disk)가 있다. 하드 디스크는 플로피 디스크보다도 15년 가까이 먼저 출시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기 때문에 외장 하드도 오래 전부터 출시되었지만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제품이 나온 시기는 USB 메모리와 비슷하다.

휴대하기 적당한 크기의 외장 하드는 초기에 2.5인치 하드 디스크와 USB 2.0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크기는 USB 메모리보다 몇 배 더 컸지만 10GB 이상의 저장 용량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이용 가능했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빨라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2010년 무렵부터는 USB 3.0 인터페이스를 적용한 외장 하드도 출시되었는데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기존 USB 2.0 기반 제품보다 몇 배 높아졌고, 하드 디스크 자체 용량은 100GB 이상으로 증가했다.

▲ 최대 5TB 모델까지 있는 ‘씨게이트 One Touch HDD’
▲ 최대 5TB 모델까지 있는 ‘씨게이트 One Touch HDD’

현재도 외장 하드는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저장 용량이 5TB(테라바이트) 이상인 제품도 있어서 웬만한 PC는 통째로 데이터를 옮길 수 있을 정도이다.

 

쾌속 데이터 백업도 문제없다, 외장 SSD

▲ 외장 SSD ‘씨게이트 Fast One Touch SSD’
▲ 외장 SSD ‘씨게이트 Fast One Touch SSD’

한편 하드 디스크는 모터로 데이터가 저장된 원판을 회전시키는 구조의 특성상 데이터 읽기 · 쓰기 속도가 향상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넉넉한 저장 용량이라는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 경우도 생기는데 그 점을 극복하기 위해 ‘외장 SSD’(External SSD)가 등장했다.

외장 하드에서 하드 디스크 대신 SSD를 넣어서 만든 휴대용 스토리지가 바로 외장 SSD이다. 아직 PC용 SSD 역사가 20년도 되지 않기 때문에 외장 SSD가 등장한 지도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발전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 최대 2000MB/s로 데이터 전송 가능한 외장 SSD ‘씨게이트 FireCuda GAMING SSD’
▲ 최대 2000MB/s로 데이터 전송 가능한 외장 SSD ‘씨게이트 FireCuda GAMING SSD’

초기에 나온 외장 SSD는 SATA3 기반 SSD와 USB 3.0 인터페이스를 조합한 방식이었는데 같은 방식의 외장 하드보다 몇 배 더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를 제공했다. NVMe 기반 SSD와 USB 3.2 Gen 2x2 인터페이스를 조합한 최신 외장 SSD는 그보다도 5배 가까이 빠른 속도를 제공하여 100GB 파일도 1분 내에 전송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게다가 크기는 외장 하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저장 용량이 동일한 경우 외장 SSD 쪽 가격대가 훨씬 더 높지만 1TB 용량 제품까지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구매 가능하므로 현재 외장 하드와 함께 주력 휴대용  스토리지로 사용되고 있다.

 

계속 발전해 나가는 휴대용 스토리지

지금까지 휴대용 스토리지들을 살펴보았다. 플로피 디스크와 외장 SSD를 비교하면 수십 년 동안 관련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으로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디스켓 한 장도 아끼면서 데이터를 백업했던 시기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라떼는 말이야” 소리가 나오게 될 지도 모른다.

한편 요즘은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 스토리지와 NAS로 데이터를 백업하는 경우가 흔해졌는데 간편하기는 하지만 서비스 기업이나 통신사에 사고가 생기는 경우 소중한 데이터가 유실되거나, 접근하지 못해서 유명무실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중요한 데이터는 예나 지금이나 사용자가 직접 휴대용 스토리지에도 백업해서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좋다. 최신 제품들은 옛날 제품들처럼 툭 하면 데이터가 날아가거나 내구성이 약하지 않으므로 개인도 충분히 안전하게 장기간 데이터를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기만의 소중한 데이터를 다수 보유한 사람이라면 휴대용 스토리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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