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미선('육아 에세이 도서 '가끔은 엄마도 퇴근하고 싶다' 지음)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 싶었다. 산후우울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지, 육아 우울증인지. 아니면 그냥 우울증인지 모를 것이 매일 마수를 뻗쳐왔다. 틈만 나면 우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 1박 2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오랜만에 남편과 친구들이 함께 하는 '아빠들과의 여행'이 진행되는 주였다. 엄마와 떨어져 본 경험이 많지 않은 둘째 아이는 여행에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하다 결국 하루 전에야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제야 주말이 통으로 내게 주어졌다. 자유부인이었다.

이 달콤한 시간을 나는 무엇으로 빛내야 할까.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친구에게 연락해 만날까 싶기도 했지만 가정이 있는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해 만나자고 하면 누군가 한 두 명에게는 불편을 안길 수 있기에, 결국 나는 누구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최종 선택은 '무계획'. 무계획이 나의 계획이었다.

엄마와의 헤어짐이 서툰 둘째 아이의 눈물에 손을 흔들며 드디어 혼자가 됐다. 낯선 고요가 찾아왔다. 한동안 멀뚱멀뚱 티비 화면만 보고 앉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눈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갈망했던 자유는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요상하게 시작됐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혼자였던 적이 드물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지만 초면인 적막과는 곧 친해졌고, 정해놓은 약속도 계획도 없었기에 빈둥거리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잠이 오기에 눈을 붙였다. 청소기도 한 번 돌렸다가 빨래를 게놓고, 그릇 정리를 슬쩍하다가 어디로든 나가기로 했다. 나만의 휴가는 나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친 까닭이다. 언젠가 SNS에서 봤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 인왕산에 오르는 것. 텅텅 빈 내 시간표에 갑자기 쓰인 첫 번째 계획이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고, 아이와 아이 엄마들이 아닌 어른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만원 버스에서 천정의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소란스러움 안에서도, 좁은 골목에서 차 사이를 비집고 걸으면서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애로웠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벌써 힘들다는 성화에 못 이겨 지쳤거나 짜증을 냈거나 화를 냈겠지만 나는 상상 이상으로 여유로웠다. 언덕이든 높은 계단이든 상관없었다. 두 어시간을 내리 걸었지만 아무도 나의 길을 막아서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잡아 세우지 않았다. 나는, 진정 자유로웠다. 한참을 오르다 길을 잃었고, 정상은커녕 중간에도 오르지 못한 채 방황했지만 괜찮았다. 나 혼자만의 방황은 반갑기까지 했다.

걷다 보니 청와대 앞에까지 닿았고, 또 걷다 보니 삼청동길이었고, 또 걷다 보니 북촌의 한옥 사이였다. 아파트 숲에 익숙했던 내 눈은 낮은 지붕과 예스러움을 간직한 건물들에 매료됐고, 내 마음은 그것들이 주는 편안함으로 물들었다. 내 안에 가득 찼던 설움과 분노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지구 내핵까지 파고 들 듯했던 내 자존감도 한 계단, 두 계단, 열 계단씩 뛰어올랐다. 사실 눈에 보이는 그것들 덕분은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혼자의 시간과 내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준 가족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지나쳤다. 무슨 모임을 하는지 여러 무리의 어른들도 지나쳤다.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그곳에서 혼자인 나는 옆의 외국인보다 더 이방인 같아 보였겠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실로 자애로웠고, 자존감도 만땅인 상태였으니까.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 야외 테라스가 예쁜 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비어 있는 한 자리는 나를 위한 것만 같았다. 시그니처 음료를 홀짝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재밌었고, 옆 테이블 커플들이 손을 잡고 꽁냥 거리는 모습은 귀여웠다. 예전같았으면 '지금은 좋아 죽겠지? 그게 언제까지 가나 봐라~'며 입을 삐죽였을 터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부부의 모습에서는 평소의 내가 보여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의 주양육자로 살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내가 아닌 아이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 된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와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조차 내 시간은 아니다. 등원/등교 준비를 마친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참혹한 형상으로 펼쳐진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치울까, 치우고 마실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몸은 자동으로 어질러져 있는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있다. 또 정신을 차려 보면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다. 치우고 치우고 치우고를 반복하다 겨우 엉덩이 좀 붙이고 앉으려고 하면 곧 아이를 맞이할 시간이다.

주양육자의 시간은 이렇게 아이의 등원/등교, 하원/하교, 학원 시간과 친구들과 노는 시간 등에 맞춰 움직인다. 시간에 쫓겨 아이를 채근하며 영혼이 반쯤 빠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창밖은 짙은 어둠. '일찍 자야 키 큰다~', '일찍 일어나야 일찍 일어난다~'는 판에 박힌 말들로 아이를 잠자리에 밀어 넣은 후에도 온전한 내 시간은 아니다. 전쟁 후의 잔해들이 남아 있으니. 휴일이라고 다를까. 피곤에 지친 남편까지 더해져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시간은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다.

하루만 좀 혼자이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 지쳤고, 그들에게 화를 내는 내가 싫었고, 그러면서 또 짜증을 내고 있는 내가 한심해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집안일은 내 숨을 틀어 쥐었고, 바쁜 남편의 무관심과 가부장적인 마인드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폭발을 코 앞에 둔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폭발시키지 못한 채 삼키는 쪽을 택했다. 부처의 사리가 내 속에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창 밖을 바라보며 뛰어내리면 어떤 느낌일까. 아플까. 죽을까. 안 죽고 반신불수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나에게 겁이 났다. 툭하면 위가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졌고, 가슴팍이 삔 듯 아파왔다.

그래서였다. 제발 하루만,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맘으로 애원했다. 누구든 내 소리가 들린다면 단 하루만 자유를 달라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그렇게 호소했었다.
 


휴가의 첫날, 나는 늦은 시간까지 그곳에 혼자 있었다. 밤을 밝히는 조명은 더없이 예뻤다. 노랗게 반짝이는 불빛이 따스했다. 나를 스치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내 안에 가득했던 설움과 분노는 어느 틈에 자취를 감췄다.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비워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다음 날에도 나는 계획적으로 무계획이었다. 또 어딘가로 나갈까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엄마이고, 아내이고, 주부였기에 자동으로 집을 치웠다. '진작에 나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분노가 사라진 공간엔 새로운 에너지가 가득 찼고, 그것은 꽤 활기찼다.

돌아온 일상.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에 지쳐 나는 또 추스르기 힘든 감정에 가슴을 칠 것이다. 하지만 비워내고 신선한 에너지를 채운만큼 화가 쌓이고 분노가 생성되는 시기는 늦춰졌다. 육아와 가사가 힘든 것은 여전해도 이전보다 여유 있는 마음은 짜증과 화를 이기는 힘이 있었다. 1박 2일의 휴가는 이렇게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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