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아이의 눈빛은 흐릿했고 표정도 경직돼 있는 것이 활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면담하는 내내 두 손을 마주 잡고 손톱이 하얗게 될 때까지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불편한 점에 대해 묻자 ‘자꾸만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의 내용은 다양했습니다. 주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는데, 전쟁이 터지거나 자연재해로 죽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었고, 부모나 형제와 같이 아끼는 사람을 본인이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들로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도 이런 생각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생각을 조절하기는 어려워서 매일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본인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거 같다고 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을 알고 있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증상은 제법 극심해진 상태였는데 이제야 병원에 처음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부모님은 아이의 증상이 이상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불안해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묻자 원래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다고 했지요. 고학년이 되면서 더 예민해지긴 했지만 사춘기 때문에 보이는 증상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예민했다’고 했는데, 아기 때부터 잠을 얕게 자고 악몽도 자주 꿨다고 합니다. 친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타입은 아니었고, 성격도 내향적이어서 늘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고요. 유치원 때는 집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는데, 그 때 부모가 왜 그러는지 물어보면 “생각하는 중이야”라고 말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부모님의 보고에는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질적으로 유약한 면이 있는 아이였고, 사회적인 적응도 쉽고 빠른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독특한 증상을 보인 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서 관찰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따로 생각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사춘기 증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사춘기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서 평범하게 지나가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지나쳐온 사춘기가 그러하듯 아이들도 그리 극단적인 변화를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기에 이전과 지나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아이의 취약점이 극대화된 위험 징후일 수 있으니 증상을 잘 살피고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아이가 말한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 말은 상당한 위험 신호입니다. 이러한 증상이 극심해지면 환청과 같이 정신병적인 증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가 그만큼 그동안 증상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왔고, 증상이 상당 부분 심화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증상이 극심해진 뒤에는 치료적 개입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아이는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강박장애는 원하지 않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침투하는 장애로, 이 불편한 생각을 피하기 위해 특정한 의식적인 행위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반복적으로 손을 씻거나 가방에서 물건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등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이 관찰되고, 아이는 이 행동들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멈추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강박장애는 아이들에게 큰 고통감을 주는 장애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치료적 개입이 없으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극심한 병리적인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장애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심리적으로 유약한 면이 있는 아이들이 쉽게 강박적인 사고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부모의 엄격하고 강압적인 태도도 아이의 증상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가 불쾌한 생각으로부터 잘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골몰하고 있는 사고 내용이 있다면 강박장애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또 불필요한 행위를 반복하고, 이러한 행동을 못하게 할 경우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면 이 역시 강박장애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유아기 아이들의 경우 ‘사람들을 죽이는 생각’, ‘나쁜 욕’, ‘지진으로 땅이 무너지는 생각’과 같이 비현실적이고 도덕적인 규범을 벗어나는 생각들로 자주 괴로워할 수 있고, 학령기나 청소년기 아이들은 ‘나는 잘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무시할 거야’와 같이 자기 비판적인 사고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불쾌한 사고의 주제는 더욱 다양하고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도 각양각색이니 중요한 것은 아이의 주관적인 고통감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