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어린 시절, 연말이 되면 빠지지 않고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울면 안 돼'입니다. 이제 와서 찬찬히 살펴보면 노랫말이 참 강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나도 어린이들은 눈물을 꾹 참아야 하고, 그래야만 '착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산타'라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마치 신과 같아서 나를 직접 보지 않고도 내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 하니 순진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을 느꼈을까요. 

저 역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지난 행동들을 돌이켜 보며 나는 '착한 어린이'가 맞을까 걱정했던 날들이 기억납니다. 

우리의 어린 날들은 참 투박합니다. 머리를 콩 박고 서러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면 "안 돼! 뚝!" 하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울음을 잘 참아냈을 때도 "와~ 착하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생떼를 부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누가 이렇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하고 죄책감을 심어줬고, 자기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참는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저렇게 착해요~?"라며 긍정적인 강화를 해줌으로써 그러한 태도를 유제하게끔 유도해 왔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된 우리는 나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알아차리는 것도 참 쉽지 않고, 부당한 일에 불편한 마음이 생겨도 꾹꾹 참아가며 속을 시커멓게 태우는 데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야 '착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요즘 심리치료 계에서의 큰 유행은 '수용'입니다. 이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게 하는 왜곡된 생각을 잡아내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로 인해 불편한 감정들이 완화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적 개입이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불편한 감정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니 굳이 없애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치료적 개입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자의 안내를 받은 내담자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내비칩니다. 고통을 줄이려고 상담을 받으러 왔더니 오히려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수용은 자포자기하며 절망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단지 고통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고, 피하려 할수록 커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무의미한 노력은 멈추고 차라리 다른 생산적인 것에 몰두하고 전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용과 전념을 강조하는 치료사들은 자주 이런 예시를 듭니다. 
잔칫날 나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 때 거지 한 명이 나타나 자신에게도 자리를 내어달라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마도 잔치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염려돼 내쫓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거지를 쫓아내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면 거지는 더 큰 소리를 내고 행패를 부리면서 잔치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한쪽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천천히 쉬어가게 한다면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거지는 우리의 불편한 마음을, 손님맞이는 우리가 해야 할 생산적인 일을 빗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겪어왔듯 우리네 인생에서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충분히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적절히 사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생동감 있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혹시 아이들에게도 우리처럼 참아야 한다,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도 됩니다. 짜증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아이니까 당연한 일이고요. 
감정은 하나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발생한 만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꾹 참고 억압하기만 한다면 해소되지 못한 에너지가 쌓이고 쌓여 갑작스럽게 폭발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삐져나와 버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 등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울면 안 돼"가 아니고, 어떻게 울어야 잘 우는 것인지 입니다. 

어떻게 울어야 잘 우는 것일까

아직 사회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졸리면 울고, 관심을 끌고 싶으면 '왁-'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마다 부모가 보이는 반응을 보고 아이들은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하다가 유치원이라는 작은 집단에 들어가 아주 혹독하게 사회의 쓴맛을 보게 되지요. 

이 과정 전반에서 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아이가 불편한 감정도 건강하게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 거울이 돼줘야 합니다. 

배가 고프다고 악을 쓰는 아기에게는 "아이고, 배가 고팠구나." 하고 얼른 안아주고 우유를 줘야 하고, 떼쓰고 소리 지르는 아기에게는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되 눈을 크게 뜨고 단호한 목소리로 주의를 줘야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더 섬세한 거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친구와 다투고 화가 나있는 아이에게 "니가 잘못했네!" 하며 질책하거나 "오늘 유치원에서 싸운 거 다 들었어!"라고 겁을 주면 아이가 화나는 감정을 적절히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 부모는 거울이 되어 "정말 화가 났겠다!", "그건 진짜 억울하네!" 하고 아이의 불편한 감정을 읽어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훈육은 그다음 단계로 미뤄두는 것이죠. 괜히 피곤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떼쓰는 아이 역시 "졸리구나~", "기분이 갑자기 안 좋네?"와 같이 섬세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훌륭한 거울의 자세입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야. 괜찮은 거야. 다른 사람들의 위로를 받을 수 있어."라고 느끼게 됩니다. 반면 뒤따라 오는 훈육으로 인해 "그런데 이렇게 막 표현하는 건 안 돼.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어야 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순 없어."라는 규칙을 배우는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매일같이 연습과 후회를 반복하게 되겠지만요. 

양육 역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니 완벽하게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수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통감을 수용하고 앞으로 더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생산적인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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