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저는 아이들이 또래와 원만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사회성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성 치료는 유아부터 청소년까지의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기술들을 가르쳐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갈등을 최소화하며, 나아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교육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같이 사회성 발달 지연이 있어 또래와 적절히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같이 충동적인 경향으로 인해 또래들과 갈등이 많은 아이들이 주로 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아이들 혹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이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사회성 치료를 받고 또래와 관계가 개선되는 자녀를 보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비슷한 걱정을 하십니다. 이제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데 형제자매와는 여전히 갈등이 극심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형제자매와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지 질문을 하십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사회성 기술을 배우면서 또래 관계는 좋아지지만 형제자매는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친구나 형제자매나 모두 사회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데, 사회성 치료가 형제자매 관계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이유, 무엇 때문일까요?

 

형제자매 관계의 특수성

경험에 따른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또래 관계와 형제자매 관계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또래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인데 비해 형제자매 관계는 나름 위계가 있지요. 특히 첫째 아이로 인해 형제자매 사이에서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할 때는 관계를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편입니다. 이는 관계 개선에 '동기'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래 관계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와 잘 지내고 싶다'는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어울릴 친구가 없다면 본인도 심심하고 불안을 느끼는 등 생활에 불편이 따르니까요. 이에 아이들은 치료 시간에 배운 것을 적용해 보고, 그로 인해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올 경우 그 기술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관계 개선을 위한 동기가 높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화해의 시간을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가정의 상황에 따라 다른데 보통은 나이가 더 많은 아이)가 결정하고 상대 아이는 이 결정에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또 형제자매는 가족이기 때문에 또래들처럼 사이가 완전히 멀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죠.

 

형제자매 관계 회복 위한 노력

그래서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이런 관계의 차이를 이해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수시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까요?

 

'부모의 태도' 점검하기

형제자매 관계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태도입니다. 아이들은 늘 주변을 관찰하며 보고 배웁니다. 특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의 성인이 해결하는 방식을 보고 따라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부모는 아주 좋은 참고 대상이 됩니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평소 부모가 사용하는 어투를 아이들이 따라 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언행을 조심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리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간 문제는 되도록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는 것입니다. 신체적인 다툼으로 번지지 않는 한 아이들의 갈등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부모가 계속해서 개입한다면 아이들은 갈등 상황에서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계속해서 부모를 다툼에 끌어들이려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일상이 되는 아이들은 형제자매 관계 뿐만 아니라 또래 사이에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또래 사이에서 '선생님한테 이르는 아이'라는 꼬리표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늘 공평하기

만약 부득이하게 개입을 하게 되는 상황이 있지요. 그럴 때는 형제자매에게 늘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아이에게 “네가 형이니까 양보 좀 해.”라는 표현은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결코 이해 못할 표현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말에 따라 양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면에는 억울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고, 그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부정적인 감정들이 잘 해소되지 못하고 축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형/언니이기 때문에', '동생이기 때문에'라는 표현은 공정한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두 명이 모두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하거나 공평하게 기회를 나누어주는 것, 즉 모두에게 같은 이익과 불이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규칙입니다.

 

아이 각자와 개별적인 시간 갖기

하지만 아이들을 훈육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가게 되는 경우가 흔히 생깁니다. 특히 유아기 아이들은 어린 동생으로부터 자신의 놀이를 방해 받은 상황에서도 “아직 아가라서 그러잖아.”라는 표현을 들으며 억울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도록 강요받고는 합니다.

이럴 때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도록 아이 각자와 개별적이면서 질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아이에게는 동생이 없는 상황에서 “첫째 아이인 너는 엄마에게 아주 특별해.”라는 메시지를, 둘째 아이에게는 첫째가 없는 상황에서 “둘째 아이인 너는 엄마에게 아주 특별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죠. 그리고 첫째이기 때문에, 둘째이기 때문에 혹은 막내이기 때문에 겪었을 억울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다독여 줍니다.

 

형제자매에게 장애가 있다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경우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가 있는 가정입니다. 한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 나머지 형제자매는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과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보다 성숙한 태도를 빠르게 습득하기를 요구 받기 때문에 늘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순하고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마음 속으로는 속상하면서도 잘 드러내지 않아 문제가 쌓이고 쌓인 후에야 알아차리게 되어 갈등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로 인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던 그 마음을 먼저 알아차려주고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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