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글 = 이미선(리드맘 메인 에디터, 육아에세이 도서 '가끔은 엄마도 퇴근하고 싶다' 지음.)

8살, 딸아이가 하굣길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교문을 나왔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과 10여 분 놀고 귀가를 하는데 그날은 놀지 않고 바로 집에 가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절친과 '절교'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사건의 맥락은 이랬다.

급식 후 대기 시간에 미니 블록을 갖고 놀던 딸아이는 같이 놀고 싶어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가라고 했고, 몇 번 그런 과정이 반복된 후에 친구가 절교하자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가 절교하자고 했기 때문에 끝나고 인사도 하지 않고 왔다는 딸아이를 보는데 '이 조그만 애들이 별 걸 다 하네~'싶은 것이, 그저 재밌기만 했다. 

"OO야~. 왜 친구한테 가라고 말했어?"
"나는 혼자 놀고 싶으니까."
"그랬구나. 그런데 친구도 OO가 그렇게 말해서 속상했을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는데 안 받아줬단 말이야."
"그래서 또 속이 상했구나. 그렇지만 친구도 OO의 말에 속이 상해서 사과를 받아 줄 시간이 필요할 거야."
"흥."
"앞으로는 '지금은 나 혼자 하고 싶으니까 조금 있다가 같이 놀자'라고 말하면 어떨까?"

서운한 마음에 입을 삐죽이던 아이는 이내 편지를 써서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삐뚤삐뚤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친구와 화해를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그것을 보는데 또 웃음이 났다. 

다음 날 아침, 두 아이는 보자마자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나게 등교를 했다. 하굣길에는 손까지 잡고 하하호호 앞서가는 모습이 우정이 더 두터워진 듯 보였다. 아이 친구 엄마와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럴 거면서 무슨 절교를 한다고~"라며 또 한참을 웃었다. 

 

참 오묘한 아이들의 세계. 그날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과'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먼저 사과하려는 마음은 우리 어른들도 많이 배워야 하지 않나 싶다.

이번 사건을 보며 나를 돌아봤다. 아이들의 문제 해결 방법은 우리 어른들도 흔히 알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 이해하기, 잘못에 대해 사과하기, 상대의 사과를 받아주기. 그런데 참 웃기에도 우리는 종종 자존심, 고집 등의 이유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맞고, 너는 틀려"를 시전하기도 한다. 내 잘못인 것을 알아도 쉽게 사과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친구를 잃고 고립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지금도 완전히 성숙한 것은 아니지만, 더 성숙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렇게 잃은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때 조금 더 그 친구를 이해해 볼걸.. 그때 친구에게 바로 사과할걸.. 그때 친구의 사과에 슬쩍 넘어갈걸... 속수무책 지나버린 시간에 그 친구들은 내 아쉬운 기억으로만 남았다. 

이게 어디 친구관계에서뿐인가.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사과를 하는 것이 익숙지가 않아서, 가장 만만한 가족이니까 등의 이유로 너무도 쉽게 그들의 마음에 멍에를 안긴다. 

특히 아이에게는 사과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아기일 때는 아이가 아파도, 넘어져도, 모든 것에 자동으로 "엄마가 미안해."라고 했는데 아이가 크면서 사과에 인색해진다.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했어도 때로는 부모의 권위를 이유로, 때로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목 끝에서만 맴돈다. 아이니까 뭘 모를 거라는 생각도 한몫한다.

그렇게 잴 것 재고 따질 것 따지다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도 수차례였는데 아이와 친구가 서로 먼저 사과하려는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사과가 이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할까.
덕분에 최근에 큰 아이에게 했던 못된 말도 되새기게 됐다. 그리고 사과했다. 엄마가 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도 흔쾌히 내 사과를 받아줬고 뜨거운 포옹으로 마무리했다.

사과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며, 내 생각이 옳지 않다고 치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사과를 한 후 마음이 더 좋아졌다.

 

사과의 기술, 사실 딴 것 없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심을 가득 담아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그 사이는 더 애틋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8살 두 아이에게 배운 '사과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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