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가 있는데, 같이 있다 보면 눈치가 너무 없어서 자꾸만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인은 “이런 걸로 소아정신과에 가볼 필요가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있었던 일화에 대해 더 들려달라고 했고, 일화를 모두 들은 다음에는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눈치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병원에 가보라고 하니 지인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습니다. 

그저 눈치가 없는 게 아닐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적인 상황을 판단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세우는 일을 하는 전두엽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치 없는 행동이 또래 아이들보다 자주 눈에 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부모가 자꾸만 아이를 질책하게 되고 화를 내게 된다면 조금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상황

눈치가 없는 아이들 중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면 문제의식을 갖고 전문가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1) 의사소통이 지나치게 피상적인 경우
만 5세 정도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긴 문장으로 조리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지난 여행 때 즐거웠던 일, 이번 주말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주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으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지요.

하지만 문장 구성이 지나치게 허술하고 단편적이거나 두서없이 말해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뭐하고 놀았는지 물어봤을 때 “몰라. 기억 안 나.”라고 답하거나 “그냥 놀았어.”라고 말하는 등 짧은 대답이 주를 이루거나, 잘못했을 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었을 때도 이유를 적당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부모님은 아이에 대해 “진짜 기억을 못 하는 거 같다”, “아는데 문장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끼시곤 합니다. 

2)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
아이가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규칙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규칙을 다시 알려줘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왜 또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으면 “몰랐어.”, “까먹었어.”라고 대답해서 부모는 답답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가 초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반복된다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찰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3) 학습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학습을 시작하게 되는 영역은 한글입니다. 한글을 가르쳐줘도 금방 잊어버리고 자음과 모음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날 익힌 글자를 다음날이면 금방 잊어버리는 등 학습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으니 괜찮다고 여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래 아이들보다 확실히 뒤처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고 아이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4)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경우
상황 판단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이용당하거나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친구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나 화를 내어 마찰이 빈번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또래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로부터도 아이가 너무 수동적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모가 보기에도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 같고 친구들도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 충분히 수용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낮은 지적 수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은 지능입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90에서 109 사이를 오가는 지능지수를 보이는데 이 수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위에서 설명한 문제들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지능이 80에서 90 사이에서 오가는 경우 이런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84 이하의 아이들은 확실히 일상생활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미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70에서 84 사이에 있는 아이들은 ‘경계선 지능’에, 70미만의 아이들은 ‘지적 장애’에 해당합니다. 경계선 지능의 경우 또래 아이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습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눈치 없는 행동이 두드러지게 관찰됩니다. 지적 장애의 아이들도 60에서 69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라면 초반에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거나 가벼운 연산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리고 유치원에서 여러 가지 규칙을 배우거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야 할 때 조금씩 미숙한 모습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지능이 낮은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질책하면 더욱 위축되고 자신감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지적 수준에 맞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2) 사회성 발달 지연
또 다른 가능성은 사회성 발달 지연입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에 지능이 낮은 아이들은 확연히 장애가 드러나지만 지능이 애매한 수준이거나 지능이 좋은 경우 부모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장애 증상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눈치가 없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지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 빠른 시기에 개입할수록 증상 개선의 폭이 크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사회기술 훈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3) 높은 불안감
마지막으로 불안감이 높은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불안감이 과도한 아이는 주변 환경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고 자신의 내적인 경험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긴장하고 위축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자연스러운 학습의 기회도 적어지고. 때문에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자꾸만 엉뚱하고 미숙한 태도를 보일 수 있고, 학습과 같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과도하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지 눈치 없어 보이는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적응 상의 어려움을 알리는 신호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증상의 발견과 치료적인 개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보다 유연한 시기에 개입할수록 속도가 빠르고 효과도 좋습니다. 또한 부모가 아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위의 내용을 확인하시어 의심되는 사항이 있다면 주저 없이 전문가에 상담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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