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유난히 아픈 곳이 많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두통이나 복통, 또는 메스꺼움이나 어지러움 등 독특한 신체적 불편감을 호소합니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지만 별다른 질병이나 이상을 발견하지 못해 더욱 난감하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신체적인 증상들은 심리적인 상태와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증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스트레스가 완화되면 증상도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증상들은 정신과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돼 왔습니다. 과거에는 ‘전환장애’라는 명칭으로 극심한 증상들이 종종 발견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거나 한쪽 손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등의 과장된 증상을 호소하지만 병원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곤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극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신체적인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신체증상장애’, ‘질병불안장애’, ‘전환장애’ 등이 이러한 증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WHY? 
신체적 증상은 스트레스의 신호

특히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면이 있는 아이들이 신체적 증상을 자주 호소합니다. 영아기부터 수면이나 섭식이 까다로워서 부모를 힘들게 한 경우 성장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예민한 성격으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주변 자극에 민감하고, 또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렇게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은 부모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부모도 의도치 않게 감정적이고 거친 양육태도를 보이게 되기도 합니다. 이는 다시 아이에게 환경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는 요인이 돼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내면에 쌓인 부정적 감정 폭발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은 이 같은 주변 환경의 위험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이들은 되도록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피하고 싶어 하며, 그 결과 자신의 내적인 경험들을 회피하는 방어 전략을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의식적인 것이 아니며, 아이들이 살아오면서 불편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발전시켜온 대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참고 억압하는 것이 지속될 경우 적절히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누적되다가 우회적인 통로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참고 억압하다 보면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신체적인 증상들로 변형돼 나타나는 것이죠. 

유아기에는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
다만, 유아기 아이들은 정서 발달 과정상에 있고, 자신의 감정을 세부적으로 인식하거나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나가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체적인 증상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인 증상들이 지나치게 빈번하거나 증상이 극심할 경우 일상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해야 하는 일들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교육기관에 가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또는 중요한 시험을 보지 못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HOW!
“부모 정서 먼저 돌아보세요”

유아기를 지나 학령기가 되면 그런 신체적인 증상들은 상당 부분 사라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학령기와 청소년기까지 지속되는 신체적인 증상들은 만성적인 호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증상이 나타나는 기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감정을 참고 억압하려는 시도들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반대로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해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모부터 정서적 환기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부모들도 어렸을 때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다거나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들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기질적인 취약성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됐을 수도 있지만 부모의 성격적으로 예민한 면이 불안한 환경을 조성해 아이가 비슷한 방식으로 불안감에 대처하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부모가 먼저 정서적으로 충분히 환기해 편안하고 여유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벼운 활동으로 스트레스 해소
이후 아이들의 정서적 환기를 돕기 위해서는 가벼운 스포츠 활동이나 놀이치료와 같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추천합니다. 감정을 참고 억압하는 것이 의식적인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무작정 불편한 기분을 참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활동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습니다. 

아울러, 아이가 어렸을 때 기질적으로 예민한 면이 있었다면 평소에도 아이의 스트레스를 관리해 줘야 합니다. 아이의 기질적인 면을 무시한 채 주변 친구들만큼 학업의 양을 늘리거나 과도한 압박감을 준다면 신체적인 증상들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부모의 기대와 정반대로 신체적인 증상들로 인해 학업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상태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체적인 증상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주변 사람들을 조정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해도 되게 해주는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즉, 어딘가 아프면 부모의 잔소리가 줄어들고, 학원을 쉬거나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등의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신체적 증상이 더욱 쉽게, 그리고 빈번하게 드러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신체적인 증상들이 만성화돼 일상생활 적응에 어려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평소에 스트레스를 관리해 주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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