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미선('리드맘' 메인 에디터, 육아 에세이 도서 '가끔은 엄마도 퇴근하고 싶다' 지음)

아이 생일이 되면 으레 소고기를 듬뿍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잘 먹지 않더라도 각종 야채를 채 썰어 잡채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필수! 생일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두 개의 전과 나물도 있어야 한다. 끝으로 절대 빼놓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초코 케이크다. 이렇게 오로지 아이만을 생각하며 아이가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해 며칠 동안 아이의 생일을 준비한다. 

공들여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가 먼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규칙이다. 아이에게 '네 생일이 너의 날이기 전에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3살 때의 일이다. 생일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카드를 하나 가져왔는데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자에 삐죽빼죽 색칠이 돼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어느 때보다 엄마라는 것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한편으로는 가슴 한 쪽이 쿡쿡 쑤시는 것도 같았다. 내 부모가 생각나서였다. 부끄럽지만 한 번도 생일에 부모님께 그런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내 생일마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셨다. 엄마 생각에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잡채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해 마치 출장뷔페라도 부른 것처럼 한 상을 차려내셨다. 그렇게 생일을 축하받았다. 오롯이 나의 날이었다. 생일이라는 것만으로도 내 모든 것에 정당성이 부여됐다. 그게 당연하다며,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내 생일'이니까!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생일은 나의 날이기도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저 태어났지만 내 부모, 특히 엄마는 나를 열 달 동안 품고 죽을힘을 다해 낳았고 당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으면서 키웠다. 이제 와 이해하게 되는, 아이를 키우는 외로운 시간을 감당해 냈다. 아빠 역시 나를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일은 축하를 받기 전에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 날이다. 

아이의 카드를 받은 이후로 생일에는 부모에게 감사 인사를 먼저 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후로도 한참 동안 엄마 아빠께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쑥스러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생일 때마다 울리는 아빠의 축하 메시지에도 멋대가리 없이 ‘감사합니다’는 짧은 회신만 할 뿐이었다. 올해 생일에서야 용기를 내 옹알이하듯 뱉어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뜨거워졌다. 

 

왜 살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부모'의 가치를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가장 가깝고, 가장 편하고, 언제나 내 편일 거라는 원초적인 믿음은 그 대상을 가벼이 여기게 만드는 무지의 힘이 있는 모양이다. 결혼을 한 이후로는 독립한 가정에 더 중요성을 두는 까닭에 안 그래도 공기처럼 일상의 한 부분 정도로만 생각했던 부모에 소홀해진다. 

평소에는 잊고 살더라도 생일에는 꼭 그 소중함을 떠올려야 한다.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제대로 마음을 전하는 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돌아오는 생일에는 꼭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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