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 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선생님, 그런데 저번에 엄마하고 아빠하고 싸웠어요!”

한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사건임에도 아이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부모님은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하십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주의를 주게 되겠지요. 그리고 스스로도 다짐합니다. 아이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면 또 부끄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뜬금없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자주 오가는 길에서 다른 사람의 다툼을 목격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많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에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던 행인에 대해 떠올려보려 하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극적인 정보는 그렇지 않은 정보에 비해 우리의 기억에 명확하게,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남아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의 다툼은 아이들에게 상당히 자극적인 사건입니다. 이 자극적인 정보는 아이의 기억 속에 긴 시간 동안 머물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인 두 사람의 갈등을 보면서 안전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지나간 부부 싸움에 대해 재차 언급하는 것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정서적 불편감을 환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 다툼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어른들이 생각해 봐야 하는 점은 ‘이 자극적인 경험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입니다. 단지 부끄러웠던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큽니다. 

 

정서적 문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부모의 다툼은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야기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만큼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기에 두 사람의 갈등은 끝난 뒤에도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큰 기둥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여파를 남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반복적인 부부 갈등에 노출될 경우 아이들은 식욕이 저하되거나 수면 중 악몽을 꾸는 등 일상적인 것들이 불안정해지거나 심한 경우 틱과 같은 정서 문제를 보일 수 있습니다. 또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갈등에 대한 걱정으로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 시키거나 둘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대인 표상 형성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유형의 대인관계를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대인 표상을 형성합니다. 대인 표상이란 아이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의 사람들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따뜻하고 지지적인 대인관계를 경험해온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호의적이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신뢰해 자신감 있게 상호작용하며, 나아가 건강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툼이 빈번하고 투쟁적인 대인관계를 경험해온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은 거칠고 위협적’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쉽습니다. 이에 사회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공격적으로 과잉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부간 건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은 아이들의 앞으로의 사회생활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 방식 모델링

또 다른 중요한 영향으로 ‘모델링’을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를 관찰하고 모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종의 학습 방식으로, 관찰과 모방을 통해 차곡차곡 누적해 놓은 정보들은 일상생활에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략으로 활용됩니다. 
때문에 갈등이 생겼을 때 소리를 지르고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부모를 자주 관찰한 아이들은 그와 유사한 대응방법을 더 쉽게 사용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야 한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보다 건강한 대처 능력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문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 추락

잦은 부부 갈등은 부모의 권위가 떨어지게 하는 영향도 있습니다. 특히 아이가 부모  한 사람에게 유난히 버릇없게 굴고 있다면 부부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돌아봐야 합니다. 

부부 싸움에서 한 사람을 향해 무시하는 행위나 발언을 자주 했다면 아이도 은연중에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 경우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주려고 하거나 벌을 주어도 잘 바뀌지 않고, 때로는 더 버릇없이 행동하고 반항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부부 싸움은 어떻게?

부부간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갈등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가 있는 장소에서는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방에 들어가서 다투더라도 다투는 소리가 아이에게 들린다면 그것은 아이가 있는 장소에서 다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에서 단둘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부부간의 갈등에 아이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아이에게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또는 아이에게 배우자를 닮아 그렇게 행동한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어쩌다 보니 아이에게 부부 싸움을 노출하게 된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 뒤처리를 잘 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떤 것 때문에 다투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었는지 아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부부끼리 화해를 했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고, 또 언제 같은 상황이 반복될지 모르다는 불안감을 느끼게도 합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다툼이 끝났음을 알려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글 = 선우현정. 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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