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머릿속에 자꾸만 놀자고 하는 아이가 있어요."

6살 남자아이.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리고 경직돼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되묻자 아이는 머릿속에 같은 말이나 놀이를 반복하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의 생각을 그만하려고 해도 멈추어지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보호자는 아이가 자다가도 일어나 발작처럼 울음을 터트린다고 했다. 아이가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다며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아이의 증상은 보통 성인의 정신 질환으로 여겨지는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강박장애의 평균 발병 연령이 19.5세로 알려져 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좀 더 이른 나이에 발병해 남성의 25% 가까이가 10세 이전에 발현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APA, 2015)

그럼에도 이렇게 어린 환자는 흔치 않기에 아이와 보호자의 보고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몇 달 동안 비슷한 주호소(altered mentality, 의식 장애) 문제로 병원을 찾은 아이가 여럿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어린 아이가 반복되는 사고로 고통스러워하게 되었을까?

 

영어만 하면 한국말을 못해도 된다?

현재 내가 있는 병원은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소위 좋은 학군에 위치해 있다. 열정이 넘치는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교육을 시키며 일찍부터 학업을 준비시키고 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도 많은데 한 아이는 내가 묻는 말에 “그건 한국말로 몰라요. 영어로는 말할 수 있는데.”라고 여러 번 답했고, 더 어렸던 아이는 한국말이 아주 서툴러 언어지연 수준이었다.

어머니에게 아이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묻자 영어로 말할 수 있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단지 아이가 자꾸 불안해하고 예민해지는 거 같아 내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부모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스트레스 수준이 상당히 높을 수 있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영어유치원에서는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불안해하고 위축되는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많은 부분 언어를 통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학습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의사소통이 제한적이면 학습도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영어유치원을 즐거워하고 잘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모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나아가 언어 발달이 정상 경로를 밟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ADHD가 의심스러운 내 아이?

또 다른 어머니는 학원 교사로부터 아이가 잘 앉아있지 못한다며 ADHD가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낄 만큼 산만하고 충동적인지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유아기 아이들은 ADHD 진단 시 주의가 필요하다. 유아기 아이들은 본래 산만하고 활동적이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유아기에는 학교와 같은 구조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 교육이나 심리 치료 등에서 아이들에게 개입할 때 '놀이'라는 매개를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 것일까?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아이들보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이 더 행복할까?

영재교육원에서 받은 지능이 140 이상이라는 검사 결과지를 들고 내원한 아이가 내가 내어놓는 지능 검사 과제를 이미 전부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검사 과정 중에 과제의 제한 시간이 다 되어 수행을 중단시키자 안달하고 짜증을 내며 더 잘할 수 있다고 소리치는 아이를 보았을 때,

낯선 과제가 주어지자 바짝 긴장하며 온몸이 경직되거나 긴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만 반복하며 나의 눈치를 보는 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 행복할까? 조기 교육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지만 어떤 것이든 과하면 역효과가 있다. 아이들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부터 학습을 강요받으면 자연스럽게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앞으로의 긴 학업 과정을 포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다.

교육의 효과는 아이가 지니고 있는 자원에 따라 비례할 수밖에 없다. 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굳이 어린 시기부터 여러 자극을 주지 않아도 제 흥미에 따라 주도적으로 학습을 한다. 또 한동안 학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중고등학생이 되어 학습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부모가 말리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지능이 또래보다 부진한 아이들은 학습 양이 아무리 많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져오는 데 제한점이 있다. 이 경우에는 쉽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적응 수준을 높이고, 아이가 흥미 있어 하고 잘 해낼 수 있는 진로를 찾아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무조건 많은 양의 강도 높은 학습은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만 저해할 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처럼 자라야 한다

부모의 안전지대 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보고, 만지고, 듣고, 즐겁고 흥미로운 것들 사이에서 재미있게 놀이하며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이 전부 학습이다. 앞으로 학습하게 될 12년의 책상 앞 교육 과정을 미리 앞당겨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조바심으로 인해 자꾸만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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