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지효

 

제 첫째 딸은 말이 꽤 늦은 편이었습니다. 염려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엄마로서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해명을 하자면 둘째 임신을 일찍 한데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돌이 막 지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상당히 많은 도시지만 아이를 위한 Korean – English Preschool은 18개월 이상부터 받았고, 자리도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국인이 운영하는 Chinese – English Family Home Childcare(집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일주일에 4번 아침 4시간씩 맡기기 시작했는데 막달이 되면서 6시간씩 매일 보냈습니다.

2~3주가 지나고부터 아이는 옹알이 시절로 되돌아간 듯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모음들의 조합을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1년 동안 한국어를 주로 듣고 살았던 아이가 어느새 “우유”, “물”, “더 주세요”, “뜨거워요” 등을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나름 '생존'하려고 급히 필요한 몇 가지 단어와 표현을 익혔던 것이죠.

아이가 익힌 표현들은 대부분 선생님과 소통이 활발한 간식 및 식사 시간에 쓰는 말이었습니다. 혼자 밥 먹는 게 서툰 딸 옆에 앉아 아이의 눈높이에서 말을 걸며 30분 동안 식사를 같이 하고 도와준 선생님과의 대화와 소통 속에서 언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습득한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아이 특히 영유아기(만 0~5세)의 언어 발달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I Message를 하는 부모와 롤 모델링 하는 아이

아이의 언어발달은 롤 모델링을 통해 이뤄집니다. 여기서 아이의 롤모델은 부모, 조부모, 그리고 선생님 등 아이가 믿고 의지하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롤 모델이 평소에 쓰는 말투, 자주 선택하는 단어,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 등을 모방합니다.

아이는 단어의 의미를 모른 채 모방만 하는 1차적인 단계를 거친 뒤에 여러 상황과 인물 속에서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이해하는 단계(comprehensive language)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단어를 적절한 상황 속에서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단계(expressive language)에 이릅니다. 아이는 모든 단어를 이렇게 세 단계를 거치면서 익히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아이의 롤 모델링이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부모나 아이들이 믿고 의지하는 어른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요? 좋은 언어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이라는 추상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연습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I Message'입니다.

I Message는 대화 중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처한 상황과 엮으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대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주체가 됩니다. 아이를 훈육할 때 주로 권장하는 방법이죠. 아이의 언어 발달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첫째가 동생을 때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너 그러면 안 되지! 너 왜 그러니 자꾸! 네가 맞아봐, 얼마나 아픈가! 너도 똑같이 당해볼래? 진짜 누구를 닮아서 이러는 거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로 협박을 했을 겁니다. 줄곧 YOU Message를 해왔던 것이죠.

이럴 때 I Message를 지속적으로 연습하면 일단 화가 가라앉고 아이에게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지금 엄마 너무 놀랐잖아.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었던 거야? 그래도 동생을 때리는 건 엄마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행동이야. ㅇㅇ가 동생에게 사과하면 좋겠어(아이가 사과를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 “동생아, 엄마가 언니 대신에 사과할게. 미안해~”). ㅇㅇ는 놀다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꼭 엄마를 불러야 돼. 엄마가 와서 해결해 줄게. 알았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I Message입니다.

I Message에는 정해진 양식이나 틀은 없습니다. 아이에게 다가가는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와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아이에게 I Message를 하며 다가간다면 아이는 롤모델인 부모와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아이의 언어 발달이 촉진되고 좋은 언어 습관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책 1,000권 읽기

제가 사는 지역은 여러 도시들이 차로 10~20분 거리에 인접해 있는데 도시마다 적어도 하나, 많게는 세 개 정도 시립도서관이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주변 도서관을 족히 10곳은 가봤는데요 방문했던 도서관마다 배치된 팸플릿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유치원 가기 전 책 1,000권 읽기.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유치원(Kindergarten)에 입학하기 전까지 아이에게 책 1,000권을 읽게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은 만 5세가 되는 모든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미국의 유치원은 1년의 정규 교육 과정의 단계로서 초등학교는 유치원부터 시작됩니다.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인 멤 폭스(Mem Fox)의 2010년도 저서 '하루 10분 책 육아'(Reading Magic: Why Reading Aloud to Our Children Will Change Their Lives Forever)의 영향을 받아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브레멘 공립 도서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제는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주에 있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글을 읽고 독해하는 능력이나 교과목을 이해하는 능력, 의사소통 능력과 학우 관계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는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많은 도서관과 단체, 교육기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그 동안 읽은 도서 목록 100권을 도서관에 제출하면 아이에게 소정의 상품과 상장을 주며 응원하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또한 1,000권에 도달한 아이들에게 유치원 입학 준비물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솔직히 1,000권은 다소 부담스럽죠. 하지만 하루에 책 1권을 3년 동안 읽으면 1,095권, 하루에 책 3권씩 1년 동안 읽으면 1,095권이 됩니다. 1,000권은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숫자라는 얘기입니다. 약간 안도가 되는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어도 도서 목록 1,000권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의 흥미와 요구에 부흥하는 책들을 반복적으로 읽어서 책 읽기를 부모와 소통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PLUS. 책 잘 읽어주는 팁

여기서 부모가 아이와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책을 읽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것이고 세 번째는 책을 읽는 본질과 동기에 관한 것입니다.

 

일곱 가지 목소리로 읽어주세요

멤 폭스 작가는 앞서 언급한 책 속에서 일곱 가지 목소리로 읽어주기를 권합니다. 서로 대비되는 여섯 가지 목소리(시끄러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목소리, 빠른 목소리와 느린 목소리, 높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읽는 방법을 적극 활용해 아이가 흥미를 갖고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글 사이사이에 의성어나 의태어를 붙여서 읽어주는 편입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이용하는 생생한 표현들은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또한 책에는 자주 쓰지 않는 글자 조합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어의 세계가 얼마나 풍요롭고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아이의 하루 일과나 경험을 토대로 질문하세요

저는 때때로 책의 등장 인물들을 (어설프게) 연기하고 이야기에 몰입하느라 책 읽기가 '일방통행'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첫째가 이제는 제법 커서 타이밍에 맞춰 알맞은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가 있는데요, 그러면 제 연기는 이내 제지됩니다.

새로운 책을 저처럼 읽어주면 아이들은 소리와 그림을 통합해서 처리하는 속도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아이의 반응과 감정을 살펴야 합니다.

아이의 하루 일과나 그 동안의 경험을 상기시키며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아이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주인공으로 초대해 보세요. 아이의 마음과 시선, 경험이 있는 곳에서 친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아이가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책을 끝가지 읽지 못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I Message, 1,000권의 책 읽기)을 알아봤습니다.

이 글은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도모해 다른 아이보다 똑똑하고 야무치고 앞서는 아이로 만드는 목적성 칼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 부모로서 기꺼이 할 수 있는 일로 저는 아이를 포용하고 인정하는 부모의 말, 적극적인 소통의 도구인 책을 선택했고 저의 경험과 확신이 여러분께도 작은 도움이 되고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합니다.

 

글=문지효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8개월 터울의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 자녀 양육의 부담감과 호기심 그리고 경력 단절 여성으로서 작게나마 자아성취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유아교육 공부를 시작해 유아교육 교사 · 부원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