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얼마 전 한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고 산만했는데 유치원에 보낸 뒤로는 사고뭉치가 되어 매일같이 교사로부터 전화가 온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아닐까 싶어 검사를 받아보려고 내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면담 말미에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묻는 저의 말에 어머니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유를 묻자 아무래도 본인의 잘못이 큰 거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독박육아를 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거친 부부 싸움이 많았고, 아이에게 심리적으로도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3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 그 중요한 시기에 매일같이 화내고 싸우고 우울한 모습만 보였으니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게 아닌지 죄책감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생후 3년,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생후 3년이 인간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결정적 시기’라고 부르며, 이 시기의 경험이 생물학적, 심리적 흔적으로 남아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연구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후 3년’이라는 구체적인 시점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이의 뇌 발달 연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세포인 '신경원(neuron)'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들에 반응하고 이를 저장함으로써 행동의 근거로 사용하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들은 신경원들 사이의 연결이 허술해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정보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 환경의 탐색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경험, 학습하게 되면서 신경원들의 연계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신경원들 간의 연계가 가장 활발한 시기가 바로 생후 3년 동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후 3년의 경험은

돌이킬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앞서 소개해드렸던 사례의 어머니는 아이의 앞으로의 건강한 발달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의 초기 발달 시기를 건강하게 보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기의 실수로 앞으로의 날까지 모두 망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생후 3년’을 강조하다 보니 이 시기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본디 스스로 성장하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며, 어린아이들의 경우 문제로부터 회복하는 탄력성이 훨씬 뛰어납니다. 따라서 지나간 날들을 걱정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날들에 초점을 맞춰 보다 건강한 양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3살까지 아이에게 충분히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빠져 있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조금은 노력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01

지금의 상황을 객관화하기

기준이 아주 엄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소한 실수도 큰 잘못이라고 여기면서 쉽게 자책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양육할 때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기준 삼아 아이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존재여서 미성숙한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때문에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정도가 지나치다 보면 당연히 화도 납니다. 화를 내지 않고 양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강압적인 양육이 아닌 간헐적인 감정적 대응은 아이들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하나하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한다면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의 양육 스타일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02

훈육이 필요한 행동에 대한 기준 세우기

아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는 양육 방식 중 하나는 '비일관적인 태도'입니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어떨 때는 넘어가고, 어떨 때는 크게 혼내는 감정적인 대응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집만의 기준선이 필요하고, 아이가 그 기준선을 넘었을 때는 훈육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기준선 이내의 행동은 부모가 기분이 나쁜 상태일지라도 참고 지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예를 들어, 컵에 있는 물 쏟기, 옷에 물감 묻히기), 기준을 넘어가는 행동은 이성적인 태도로 훈육해 아이가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예를 들어, 동생 때리기, 유리창에 공 던지기). 

기준의 유무가 부모의 감정 조절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03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

아이들은 회복력이 뛰어나다고 말씀드렸지만 일부 바꾸기 어려운 것들 역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타고 나는 지적인 능력 수준, ADHD 경향성, 불안한 기질 등은 부모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이 같은 취약성은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높은 기준과 기대로 아이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 환경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지적 능력이 낮은 아이에게는 아이의 취향과 재능을 고려한 흥밋거리를 찾아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친구들의 학습 수준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기초교육을 반복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산만함과 충동성을 타고난 아이들은 집 안에서 문제를 바로잡아보려는 노력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 불안한 기질의 아이들에게는 답답하다며 속도를 내라고 압박을 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여유롭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바꾸기 어려운 것들은 인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두다 보면 아이들도 스스로의 약점을 극복하며 보다 나은 적응과 발전을 보이게 됩니다. 

 

04

부모도 치료받기

지난날 내가 나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나 자신이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필 너무도 힘든 시기에 소중한 아이가 생겼고, 행복의 기운도 만끽하지 못하게 하는 감정적 소모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것은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 모두들 부모가 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서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 감정이 흐르는 것에 따라 아이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리고 그것의 정도가 지나친다면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와 아이 모두 회복하기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도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 정서적인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경험을 시켜주려는 것에만 몰두해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부모 먼저 심리적인 건강을 찾을 수 있도록 전문가를 찾아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sunu84@hanmail.net)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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