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를 꼽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역사를 거듭하며 발견한 지식, 끊임 없는 고뇌의 산물로 발전한 철학과 사상을 다음 세대로 이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도구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금속활자는 만들기 쉽지 않아 대량으로 출간해야 하는 서적의 인쇄 등에서나 쓰였을 겁니다. 하나의 활자를 만들고, 이를 종이에 찍어내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때문에 활자도, 그 활자를 이용해 찍어낸 책도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가 있었지요.

▲ 145년만에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이루어졌습니다
▲ 145년만에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조선 말,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했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었던 주베르는 가난한 서민의 집에서조차 발견되는 높은 품질의 책에 무척 자존심 상해 했다고 합니다. 서민의 집에서 발견된 책이 이러했으니, 조선 인쇄술의 절정이라 부를 만한 외규장각 도서에는 당연히 눈이 휘둥그래 졌을 겁니다. 참으로 오랜 인고의 세월 을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는 이처럼 아픈 우리의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이렇듯 과거의 데이터는 활자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듯 활자를 통해 인쇄되는 책은 그 가치가 크거나, 널리 보급이 필요한 책이었을 겁니다. 학자나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을 담은 책은 수요가 크지 않았으니 손으로 베끼는 ‘필사본’이 널리 사용됐을 테고요.

 

콘텐츠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

갑자기 웬 뜬금 없는 이야기냐고요? 이처럼 어렵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보는 사람에게도, 소장하는 사람에게도 가치이고 자부심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답니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만큼 구하기도 힘들었을 테고, 그래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더욱 애지중지 했을 테지요.

필름 시절의 카메라를 다루어본 사용자도 아마 비슷한 감상을 갖고 있을 겝니다. 촬영할 수 있는 수량은 정해져 있고, 그 한 컷 한 컷이 바로 비용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사진가나 마니아들은 한 번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 수십 번 빛을 살피고 프레임을 구상한 후 노출을 감안해 어렵사리 셔터를 눌렀지요. 마구잡이로 촬영해도 어려울 것 없고 낭비랄 것 없는 오늘날의 디지털 카메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심이 그 한 컷에 담겨있었습니다.

▲ 스마트폰의 대두로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수월해졌습니다

그렇다 해서 오늘날의 디지털 세상이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초기비용만 지불하면 언제든 추가적인 비용 없이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는 혜택,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훨씬 많은 책을 골라 읽을 수도 있을 테지요. 분명 우리는 더 많은 콘텐츠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상황에 따라서는 더 쉽게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분명 디지털이 우리에게 안겨준 혜택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런데, 최근 이런 하소연들이 자꾸 들립니다. 손안에 소통을 위한 최고의 도구를 들고 있는데도 현대인들은 외롭다고. 정말 그렇지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요, 이제는 내 주변을 너머 전 세계인과 SNS를 통해 소통하는 시대이건만, 현대인들은 더욱 외로워져만 갑니다.

 

디지털 시대, 얻은 것과 잃은 것

필자는 인문학 전문가도, 사회과학 전문가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쪽에는 제일 문외한인 ‘공돌이’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첫 번째는 이렇듯 만들어지는 각종 콘텐츠나 데이터의 가치가 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세계인과의 소통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보다 상대적 박탈감만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 쉽게 누르는 셔터에,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용자가 얼마나 될까요? 쉽게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쉽사리 소비되고, 곧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의 풍성한 혜택을 누리는 대신, 서랍 속에서 만나는 작고 소중한 추억은 잃은 셈이 아닐까요?

▲ SNS를 통해 느끼는 가장 큰 감상이 ‘박탈감’이라고 합니다

SNS도 매한가지입니다. ‘소통의 도구’로 각광받던 SNS는 어느샌가 ‘나와 남을 비교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고 같이 고심하기에 SNS라는 장은 너무 넓지요. 그래서 “난 이렇게 잘 살고 있어”라고 과대포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누군가는 그런 콘텐츠에 또 박탈감을 느낍니다. SNS를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게 된 대신, 우리는 아픔을 나누고 같이 고민할 소중한 주변의 친구는 잃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때아닌 LP 레코드를 취급하는 상점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이제는 사라진 걸로만 카세트 테입을 판매하는 상점이 다시금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렇듯 너무도 많은, 그리고 가치 없이 빨리 소비되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반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소비자의 작은 반란이라 해야 할까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중요한 건 바로 나

앞서 언급한 LP 레코드, 카세트 테입처럼 작은 반향이 있지만, 우리네 삶이 점차 디지털 기술과 이를 적용한 각종 기기에 지배당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엔 이런 기술들이 하나로 융합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4차산업혁명’이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지요. 때문에 디지털과 기술, 제품에 우리네 삶이 종속되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 LP 레코드를 취급하는 상점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합니다
▲ LP 레코드를 취급하는 상점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풍요로운 기술과 소통의 혜택 속에서 더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과 나를 비교하는 습성은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각종 첨단의 기기들이 우리네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기보다, 아직 버리지 못한 습성이 디지털의 풍부한 콘텐츠를 만나며 우리에게 박탈감으로 오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삶의 자세와 만족은 남이나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해 우위를 느끼는 것으로 내 삶이 만족스러울 리도 없습니다. 내 삶의 만족은 내 안에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남들과의 비교우위에서 그것을 찾으려 한다면, 보이는 것 많고 들리는 것 많은 오늘의 디지털 시대에서 결국 박탈감만 안고 말지 않을까요?

 

디지털 기기의 효과적인 활용법은?

“기술은 언제나 인간에게 지고 맙니다”라는 모 통신사의 광고 카피가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첨단의 기술이 집약된 오늘날의 기기들이 과연 인간을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과거보다 편리한 소통의 도구, 과거보다 편리한 생산의 도구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어떤 서비스나 어떤 기기가 중요한 것은 아닐 테지요.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는 기술이, 각종 서비스가 제공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결국 오롯이 사용자 자신의 몫이 될 테지요.

▲ 기기보다 사람, 데이터보다 활용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 기기보다 사람, 데이터보다 활용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NAS(Network Attached Storage)와 같은 기기를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쉽게 생산되는 만큼 쉽게 소비되고, 한 번 소비한 후에는 유야무야 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콘텐츠. 그 양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사방에 흩어져 저장되는 특성 때문에 이후에는 더욱 신경을 쓰지 않게 되지요.

이럴 때 NAS와 같은 기기를 통해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소소한 개인의 기록들, 즐겨 듣는 음악이나 콘텐츠를 한곳에 모아두고 언제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으로 접속하면 이렇게 쌓아둔 콘텐츠와 기록에 언제든 쉽사리 접속할 수 있습니다.

또, 온 가족이 함께 즐길 거리를 모아두면, 함께하는 시간마다 가족이 함께한 영상이나 사진, 또는 영화를 함께 즐길 수도 있겠지요.

굳이 NAS가 아니라도, 이렇듯 함께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콘텐츠 허브를 하나 구축하면 여러 모로 쓸 모가 많지 않을까요? 가깝지 않은, 또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과의 비교를 위한 소통에서 벗어나 내게 가장 소중한 주변의 사람들과 더욱 소중한 소통을 이어가는 도구로 말이지요.

 

사용할 수록 콘텐츠의 가치는 높아진다

직접 만든 콘텐츠든, 또는 다른 사람이 만든 콘텐츠든 가치를 지니려면 누군가는 이를 소비해야 합니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말이지요. 과거엔 책이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처럼, 소중하게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꺼내 사용하는 콘텐츠가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콘텐츠가 아닐까요?

쉽게 누른 셔터에서도 지울 수 없는 좋은 사진은 남습니다. 한 번 보고 지나친 영화 중에도 언제고 다시금 보고픈 영화는 존재합니다. 다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무가치한 콘텐츠의 홍수에 묻혀 이런 소중한 콘텐츠까지 함께 휩쓸려 가는 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중한 콘텐츠는 잘 보관하고, 다시 감상하며 추억할 수 있다면 그 콘텐츠는 분명 제 가치를 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누군지 모를 먼 곳의 사람과의 소통에서 가까운, 더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테고요.  ⓒ 2017. ManzLab Corp.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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