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1일 한국영화 ‘싱크홀’이 개봉한다. '싱크홀'은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땅의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 및 구멍이 생기는 현상, 싱크홀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다.

물론 어떠한 예술작이든 어떠한 영화든 긍정적으로 좋은 소재를 택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 소재 선택은 예술에 있어 제한이 없고, 싱크홀을 비롯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난' 역시 영화에 자주 소재로 다뤄져 왔다. 

▲ 영화 '싱크홀'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더타워픽처스, 쇼박스)
▲ 영화 '싱크홀'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더타워픽처스, 쇼박스)

소위 '재난영화'는 단순히 특정 재난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에만 기능이 그치지 않는다. 그 재난으로 인한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 재난대처 그리고 실제 우리 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가정(假定)들이 영화에 적절히 삽입돼 관객들의 집중을 이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에도 주목해볼 만한 '재난영화'들이 여럿 있었다. 그 영화들은 과연 어떤 재난을 택했으며, 그 재난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어떤 경각심을 강조하는지 다시 감상하며 살펴보자.

 

 

괴물

영화 '괴물'은 빠질 수 없는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다. '살인의 추억'이란 걸작을 내놓은 지 3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었는데, 3년이란 시간이 느껴지지 않게 여러 매력들을 두루 갖췄다. 2006년 당시 생소했던 크리처물을 한국영화 중심으로 가져와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오락성도 흥행에 한 몫했지만 유머 뒤에 숨어있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풍자도 '괴물'의 완성도에 한 몫했다.

▲ 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청어람, 쇼박스)
▲ 영화 '괴물'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청어람, 쇼박스)

먼저 영화 초반은 재난영화의 광경을 고스란히 담았다. 한강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을 한강괴물이 습격하는데, 곧 한강공원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 장면 속에서 다수의 시민들은 한강괴물에게 죽거나 다치는 재난영화 특유의 클리셰를 보여준다. 그 다음 한강괴물 탄생 원인에 대하여 봉준호 감독은 풍자의 방법으로 현실 세계를 꼬집는다. 유머의 화법으로 사회 참여를 단행하는 '풍자'를 재난영화에 녹인 작품이 바로 봉준호의 '괴물'인 것이다. 

한국영화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음에도 2006년의 '괴물'만큼 재난의 연출을 효과적으로 해내고 풍자의 정의를 영화적 방법으로 제대로 풀어낸 한국영화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해운대

예전부터 끊임없이 지적되곤 했다. 더 이상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실제로 2017년 포항 지진으로 201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1주 연기되곤 했다. 지진은 더 이상 일본만의 재난이 아닌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재난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그널로부터 영화 '해운대'가 만들어졌다. '괴물'이 움직이는 동물이 만들어낸 재난이었다면 '해운대'는 자연이 만들어낸 재난, 지진과 해일이 담긴 재난영화였다.

▲ 영화 '해운대'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JK필름, CJ 엔터테인먼트)
▲ 영화 '해운대'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JK필름, CJ 엔터테인먼트)

서사적인 구조를 차치하더라도 영화 '해운대'는 연출적인 면에서 성과가 있는 영화다. 지진이 만들어낸 거대 해일로 인해 물에 잠긴 부산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기 감전 장면, 컨테이너가 날아드는 다리 장면 등 재난 스릴러의 면모를 영화 '해운대'는 여럿 갖췄다. 

물론 그 연출 사이사이 감상을 해치는 신파 장면들이 흠이긴 하지만 재난영화로서의 기본 요소는 갖춘 듯하다. 지진에 대해서 더 이상 안심하지 말라는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했다.

 

연가시

2010년대 들어 혐오스럽지만 자주 듣게 된 단어가 하나 있다. 연가시. 연가시는 약 10cm 정도의 길이로 곤충 내장 기관에서 영양분을 가로채면서 살아간다. 2010년부터 많아진 산꼽등이로 인해 연가시란 존재도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대체 연가시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다수의 곤충 체내에 영양분을 빨며 살아가는 연가시의 생존본능에 인간으로 대입하며 상상 끝에 만들어진 영화가 '연가시'다.

▲ 영화 '연가시'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오죤필름, CJ 엔터테인먼트)
▲ 영화 '연가시'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오죤필름, CJ 엔터테인먼트)

물론 실제 연가시가 인간의 몸을 곤충의 몸처럼 영양분을 빨아가며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곤충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연가시가 서식할 곳이 못 된다. 하지만 영화는 상상으로 시작하는 법. 그 연가시의 공포를 극대화하여 영화 '연가시'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영화 '연가시' 안에서의 연가시보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태였다. 

연가시 치료제를 두고 사투를 벌이는 시민들의 몸부림, 연가시 피해자 앞에서도 돈만을 생각하는 제약회사의 이기심에서 실제 우리 삶에 여럿 대입될 수 있는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리적 재난과 인간이 일으키고 마는 인재(人災)까지 영화 '연가시'는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감기

어쩌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코로나19 시국 속에서 한 번 쯤 관람해야 할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영화 '감기'에 등장하는 변종 H5N1 바이러스로 인해 대한민국은 카오스에 빠지게 되고 분당이라는 지역 자체가 봉쇄돼버리는 지경이 이른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에는 말 그대로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 아닌가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현재 우리 삶에 가장 많이 적용될 수 있는 재난영화가 없다.

▲ 영화 '감기' 스틸컷 (사진: 아이러브시네마, 아이필름코퍼레이션)
▲ 영화 '감기' 스틸컷 (사진: 아이러브시네마, 아이필름코퍼레이션)

몇몇의 장면에서는 의학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시민들이 영화 '감기'를 봐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고 한다. 영화 초반 호흡기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이되는 과정이 영화로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연출됐다. 그리고 일부 지역을 봉쇄하는 과정, 살기 위해 상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민들, 역시 재난영화답게 한정된 가치를 두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마지막으로 항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결말까지. 2013년의 '감기'는 2021년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많다.

 

부산행

우리나라 좀비물의 가능성을 연 영화 '부산행'이 단순히 좀비물이란 이유로 천만이 넘는 관객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단순 좀비물이 아닌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여러 장소와 요소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오니 기존 좀비물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물론 좀비라는 것이 초현실적 존재지만 우리가 자주 다니는 기차역,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기차 내부에서 미쳐 날뛴다면 그 순간 좀비물에서 재난물로 승화된다.

▲ 영화 '부산행'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레드피터, NEW)
▲ 영화 '부산행'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레드피터, NEW)

장면 하나하나가 재난영화가 주는 공포감을 '부산행'은 생생히 전달했다. 대부분의 재난영화는 재난의 상황을 한꺼번에 담기 위해 원거리 촬영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부산행'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영화의 주된 장소가 KTX 열차 내부였기에 이 안에서 좀비의 섬뜩함과 재난영화의 절망감을 담아야 했다. 긴 열차 내부 안에서 좀비는 연쇄적으로 사람들을 물어뜯었고 그로 인해 열차는 지옥행 열차로 급변한다. 그리고 영화 종반부 답답한 열차 내부 앵글에서 벗어나 재난영화다운 원거리로 좀비떼들을 담는다. 

만약 좀비에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가 잠식되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에 '부산행'은 영화로 답했다. 그리고 '부산행'을 보고 기도 했다. 부디 좀비는 초현실 존재로만 남기를. '부산행'에서 보이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엑시트

앞선 재난영화들이 여러 시사점이나 연출 등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난을 극복하고 나서 따르는 과한 신파 장면을 온전히 버리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 고질적인 한국 재난영화의 병폐에 영화 '엑시트'는 담백한 감정선과 쉬운 설정으로 천만에 가까운 약 940만 명 이상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영화 '엑시트' 속 재난의 시작은 도심에서 갑자기 벌어진 유독가스 테러였다.

▲ 영화 '엑시트'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 ENM)
▲ 영화 '엑시트'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외유내강, CJ ENM)

마치 유조차를 연상시키는 한 트럭은 하얀 유독가스를 배출시켰고 곧바로 그 유독가스는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실제 이러한 재난이 시작된다면 시민들은 공포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영화답게 '엑시트'는 절망보다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행동을 선택해 주인공 용남과 의주는 연회장에 구비된 한정된 물품으로 방역 무장하고 가스 속을 휘저으며 마스크를 확보하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들며 재난을 헤쳐나간다. 클라이밍이 기초된 재난 극복 장면들은 '엑시트'의 백미였다. 

그 극복들도 흔히 볼 수 있는 대처법과 물품들이 주요했기에 더 현실감 있는 재난영화 '엑시트'가 됐다. '엑시트'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위급 시에는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영화 속에서 보이는 현실

재난영화는 영화다. 카메라 프레임 속에 가상으로 구현된 허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재난영화를 봐도 결국엔 '영화겠거니'하고 안심하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끝내면 안 된다. 모든 것이 허구니까 그냥 감상만 하자는 식으로 재난영화를 접하면 안 된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몇몇의 장면들이 재난영화 안에는 있다.

'괴물'에서도 나오듯이 화학폐기물로 인해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 '해운대'에서도 나오듯이 지진과 해일은 우리 삶에서 멀지 않다. '연가시'에서도 나오듯이 이기적인 인간은 재난도 이용한다. '감기'에서도 나오듯이 호흡기 재난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부산행'에서도 나오듯이 재난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엑시트'에서도 나오듯이 재난 극복은 평소 습관에서 시작된다. 이렇듯 여러 재난영화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이를 우리는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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