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 추석에 못 갈 거 같아. 일이 좀 많네

안겨드릴 손주는 커녕 같이 찾아뵙고 소개해 드릴 '짝' 조차 없는 독신남에게 명절은 일종의 형벌과도 같다. 사실 이제는 부모님도 혼자 사는 홀아비 아들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으신다. 명절에 가족들을 보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로 혼자 지낸 시간이 길면, 거짓말도 거짓말에 속는 연기도 자연스러워진다.

이번 추석 연휴는 6일 동안 이어진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원초적인 생활을 즐기기엔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이렇게 '짐승의 시간'으로만 보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허무하게 연휴를 보내는 것보다는 '별거 아니었지만 알찼다' 정도의 이벤트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쪽이 훨씬 낫다.

추석에 어디론가 떠나는 것 대신 '집'을 선택한 싱글남들이 소소하게 해볼 만한 일을 몇 가지 소개한다. 모든 내용은 지금까지 설날과 추석 명절을 혼자 보낸 경험이 많으며, 실제로 겪었던 기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다.


신발 신고 침대에 누워?…모텔가기

▲ 남자 혼자 가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 모텔)
▲ 남자 혼자 가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 모텔)

집에만 있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모텔'에서 하루나 이틀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물론 '모텔'이란 장소가 남자 혼자서 갈만한 곳이 아니긴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 일탈을 즐기기에는 또 이만한 곳이 없다. 특히 흡연자에겐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PC방이나 당구장, 술집이 금연시설로 지정된 이후에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모텔에서는 담배를 피우면서 게임도 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다. 애연가들이라면 그 억압받았던 굴레를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흡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내가 남긴 흔적을 내가 직접 치워야 하지만, 모텔에서는 뒷정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다가 흘려도 호들갑 떨면서 치울 필요가 없고, 흡연가라면 방안에서 연초를 피우며 게임을 해도 괜찮다.

평소 '우리 집'에서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들, '남의 집'에서라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금수에 가까운 행동'을 모텔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신발 신고 침대 눕기? 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번 추석에는 국가에서도 국내 숙박업소 이용을 장려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3만 원이나 할인을 해준다고 하니, 하루 이틀 정도는 모텔에서 자유인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 추석 연휴 기간 5만 원 이상 숙박상품을 구매하면 3만 원을 할인해 준다.
▲ 추석 연휴 기간 5만 원 이상 숙박상품을 구매하면 3만 원을 할인해 준다.
▲ 단, 사람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난장판을 치면 정말로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사진 = 보배드림)
▲ 단, 사람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난장판을 치면 정말로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사진 = 보배드림)

일탈보다 휴식과 요양이 필요하다면 호텔을 찾는 것도 나쁘진 않다. 최근에는 추석 맞이 '호캉스' 패키지를 내놓은 호텔도 많기 때문이다. 대신 호텔로 정했으면, 호텔에 있는 시설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

호텔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도전 과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법 비싼 돈을 주고 쉬는 만큼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조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알차게 이용할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호캉스를 남자 혼자서 하는 건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숙박 시설이 그렇겠지만, 특히 호텔은 '2인'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괜히 비참해지지 말자. 남자가 혼자 가도 괜찮은 곳은 모텔까지가 마지노선이다. 호텔은 선을 넘는 행위다.


'게임은 예술인가?' 에 대한 답…게임하기 (feat. 엘든링, 레데리2)

'본업 게이머, 부업 직장인'을 꿈꾸는 싱글남들에게 6일은 게임 하나를 완전히 정복할 만한 시간이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게임 하나를 끝까지 해보는 걸 추천한다. 모바일 약 200개, PC 약 100개 정도의 게임을 리뷰한 경력직 입장에서 두 가지 게임을 추천한다.

첫 번째 게임은 '엘든링'이다. 맵기로 소문난 '소울라이크' 장르 중에서도 가장 최신작이다. 뉴비에게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게임이다. 여기서 '잘 다듬어졌다'는 '소울라이크 답게 열받지만,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뜻이다. 게임이 참 '합리적'이다.

물론 본업이 이미 게이머인 사람들은 진작에 앤딩을 봤을 타이틀이다. 그렇다면 '맨몸 플레이'는 어떨까? 게이머 인생에서 업적을 달성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족쇄는 없다. 중간중간 컨트롤러를 집어 던지거나, 모니터를 부숴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를 잠재우면서 '나는 네가 뭘 하든 피할 준비가 됐다'를 증명하고, 게임 특유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점차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굳이 이렇게까지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개발자들도 이런 걸 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라이프에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면 지옥과도 같은 '완전 공략'에 한번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고통이 아니라 감동을 얻고 싶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다. 비슷한 계열로 '갓 오브 워'나 '라스트 오브 어스'가 있지만, 싱글남에게는 혼자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남자는 '리볼버'다.

이 게임은 단점이 하나 있다. 다른 게임을 해도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게임 불감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에 빠져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게임이다.

1899년 미국 서부 가상의 인물 '아서 모건'과 2023년 현실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나. 아무런 교집합이 없는 관계에서 '캐릭터가 곧 나 자신'이 되는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군더더기 없는 감동의 리뷰.
▲ 군더더기 없는 감동의 리뷰.

 


빨래의 시간이다…여름옷 정리하기

추석 연휴가 지나면 계절이 바뀐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여름과는 작별 인사를 하고, 찾아오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그동안 아무렇게나 입고 던져놨던 여름옷들을 정리할 시간이다. 

다음 여름에도 입어야 할 옷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빨래부터 해야 한다. 간혹 여름에 흘린 땀이 그대로 남아있는 옷들을 그대로 보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높은 확률로 옷에 얼룩이 생기고 곰팡이가 핀다. 

특히 흰색 옷은 관리 없이 그대로 보관할 경우 변색된다. 흰옷 빨래는 '미지근한 물에 알칼리성 세제와 산소계 표백제를 1:2 비율로 넣어 20~30분 이상 담근 후 세탁하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잘 모르겠으면 엄마한테 물어보거나 검색해 보자.

▲ 이 암호문 해독은 엄마한테 물어보자.
▲ 암호문 해독은 엄마한테 물어보자.
▲ 모르면 그냥 넣고 빨아도 된다. 큰일이 나진 않는다.
▲ 모르면 그냥 넣고 빨아도 된다. 큰일이 나진 않는다.

빨래가 끝난 여름옷은 '대충'이나 '이 정도면'으로 타협해선 안된다. 적어도 7~8개월을 보관하는 만큼 제대로 마를 때까지 충분히 건조한 후 옷장이나 정리함에 보관하도록 하자.

상자에 옷을 보관할 때는 무거운 옷은 아래쪽에 넣고 구김이 생기는 옷은 위쪽에 넣는 것이 좋다. 물론 규칙을 지키는 게 어렵지만, 구김이 생기는 옷은 나중에 또 다시 펴야한다. 보관할 때 제대로 해두면 다음 여름에 바로 입을 수 있다.

▲ 여름 옷을 넣으면, 가을과 겨울에 입을 옷을 꺼내야한다. 그것도 일이다.
▲ 여름 옷을 넣으면, 가을과 겨울에 입을 옷을 꺼내야한다. 그것도 일이다.

어? 여기 있었구나! 누나 오랜만이에요!…외장하드 정리하기

▲ 주로 일본인 여성과 관련된 데이터와 게임 영상이 저장되어 있다.
▲ 주로 일본인 여성과 관련된 데이터와 게임 영상이 저장되어 있다.
▲ 최근 한국 유튜브에 나오는 걸 보고 팬이 된 일본인 여성분. 뭐 하시는 분인지는 잘 모른다.
▲ 최근 한국 유튜브에 나오는 걸 보고 팬이 된 일본인 여성분. 뭐 하시는 분인지는 잘 모른다.

연휴에 정말로 해야 할 정리는 바로 '데이터'다. 각종 드라이브에 흩어진 데이터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황금연휴의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게 좋다.

특히 '일본 여성이 등장하는 영상 데이터'는 절대 하루 만에 끝낼 수가 없다. 각종 저장장치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다가 '어 이게 뭐였지?' '어 누나 오랜만이에요!' 하는 과정에서 힘(?)이 빠져 마무리하지 못한다. 그 순간 끝이다. 

데이터 정리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6일도 짧을 수 있다. 이번 연휴를 계기로 차근차근 조금씩 시도해 보자.

▲ 데이터의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정리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집가'들의 비결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은퇴 혹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업데이트가 없는 '완결' 폴더는 냉정하게 다시 한번 살펴볼 것. 이 폴더는 단순히 외장하드의 용량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외장 하드를 더 구매할 것이 아니라면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이별할 것 인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2. 각각의 데이터에 미래의 나를 위한 정보를 남겨둘 것. 신세(?)를 진 데이터는 마지막으로 접근한 년도와 날짜를 적어두면 좋다. 본인이 마지막으로 '감상' 정보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그 데이터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영화도 그렇듯 데이터에도 별점을 남기면 좋다. 재미와 감동을 준 영상에는 별을 하나씩 남기고, 이 별이 5개나 10개 이상이 된 데이터는 'hall of fame' 같은 폴더를 따로 만들어서 보관하는 것도 좋다. 

정리는 올바로 된 분류와 삭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진심'을 다하는 수집가들의 정보를 공유한 것뿐이다. 평소에 데이터를 '일회성'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리할 데이터가 많지 않을 테니 굳이 알 필요는 없다.

▲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휴일은 없다…알바하기

'연휴에 놀아서 뭐 하냐. 돈이나 벌자.'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명절에는 기본 시급이 2배인 만큼, 일주일을 꽉 채워 알바한다면 '1 플레이스테이션'이나 '1 애플워치' 정도는 가질 수 있다.

경험상 명절 알바는 주로 물류나 행사 이벤트 진행요원, 숙박업소 관리가 많다. 즉, 단순노동 인력이 필요한 알바들이다. 카페나 음식점 알바도 간혹 있긴 하지만, 보건증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짧게 단타로 치고 빠지는 명절 알바를 하기엔 번거롭다.

▲ 명절에도 노동력이 필요한 곳은 많다.
▲ 명절에도 노동력이 필요한 곳은 많다.

명절 알바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물류'와 '배달'이다. 명절 물류 알바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인생에서 정말로 힘들었던 일' 리스트에 반드시 추가할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택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한 시간 정도 황토색 박스들과 씨름하며 먼지를 마시다 보면 '이 정도면 기계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량을 처리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았나를 깨닫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벌려다가 몸도 다치고 영혼도 다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돈도 좋지만, 힘든 일에는 반드시 몸이 대가를 치른다. '푼돈 벌려다 수술비 나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 기간만큼은 '추노'도 용서가 된다. 

▲ 수 많은 박스들이 쌓이면, 차로 옮겨야 한다.
▲ 수 많은 박스들이 쌓이면, 차로 옮겨야 한다.
▲ 이렇게 비어있는 탑차를 가득 채우면 된다.
▲ 이렇게 비어있는 탑차를 가득 채우면 된다.
▲ 하루에 5~6번 반복하면 된다. (지난 설날 아르바이트)
▲ 하루에 5~6번 반복하면 된다. (지난 설날 아르바이트)
▲ 일주일 정도 하고 나면 한동안 팔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 일주일 정도 하고 나면 한동안 팔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데는 서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 지는 개인의 자유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굳이 명절에 맞춰서 그 분위기를 낼 필요는 없다. 싱글라이프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만 경험자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본능에 충실하며 쉬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 '추석 잘 보냈어요?'에 대답할 만한 준비는 하는 게 좋다. '그냥 잤어요'는 폼이 안 난다.

진짜로 하진 않더라도 위의 내용들을 기억해 뒀다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느꼈으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느끼고 정리했다' 정도의 뻥은 준비해 보자. 모든 싱글남의 명절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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