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은 백제와 나당(신라+당)연합군만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다. 나당연합군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언제 신라군이 당나라와 사비성 앞에서 합류하는가를 가지고 첨예한 갈등을 빚는다. 이 때 신라 대장군 김유신은 "날짜보다 중요한 게 저 살(쌀)이야"라며 절대적으로 군량을 지키려 한다. 김유신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군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최첨단 무기나 더 많은 수의 병력 등이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결국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군인들이 먹을 확실한 군량 보급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쟁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전쟁에 있어 군량의 중요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군량, 현재 우리에게 더 익숙한 단어로 바꿔보면 ‘전투식량’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인류는 적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 고로,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요. 전쟁의 역사는 곧 전투식량의 역사로 무방하다. 인류가 전쟁을 겪어오며 그와 동시 전투식량도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맞게 발달해왔다.
그리하여 맨즈랩은 전투식량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흘러왔으며, 대부분의 전투식량은 어떤 조건을 기본적으로 갖추는지 알아보겠다. 이에 더해 세계 주요 국가의 전투식량은 어떻게 구성돼있는지, 어떤 맛을 보이는지 '대신' 알아보려고 한다. 그래도 현역 군인, 예비군, 민방위의 입맛을 책임진 우리나라 국군 전투식량이 제일일까?
전투식량의 흐름
전투 중 군인이 효과적으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적합한 형태로 발달한 전투식량의 개념은 중세까지 뚜렷하지 않았다. 문화권과 대륙을 막론하고 전투에서 군대가 취식했던 대부분의 식량은 휴대하기 용이한 수분이 없는 마른 형태였다. 육포, 견과류, 비스킷 등이 주를 이뤘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때부터 콩을 말리고 발효시킨 형태의 먹거리고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이는 현재의 청국장의 기원이라는 설 중 하나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여러 기록에 간장이 전투 중 식량으로 자주 등장했을 만큼 중요한 전투식량으로 여겨져 왔다.
근대에 들어서 서서히 효과적인 전투 중 식량 보존에 대해 인류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대량의 음식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공모도 얼였고 그리하여 니콜라스 아페르의 개발로 병조림이 탄생했다. 이는 통조림으로 발전돼 제1·2차 세계대전에 주로 사용될 만큼 전투식량 흐름의 큰 줄기를 바꿔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식량은 세계 각 나라의 환경과 문화를 녹여내며 오래 보존하면 된다는 기능적인 면만이 아닌 '맛있는 전투식량'을 지향하며 미각적인 면에서도 발전하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종류로만 구성되지 않고, 전채요리부터 주식, 감미품, 후식까지 한 끼의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말린 것만으로 허기를 채우던 인류 고대 역사에 비하면 전투식량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전투식량의 조건
전투식량은 일반식이 아니다. 전쟁 중 전투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먹는 식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져야만 한다. 세계 각국의 군대가 저마다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에 세부 메뉴는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특징으로 보이는 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열량
앞서 말했듯이, 선전포고는 있을지 몰라도 전투를 예고하고 공격하는 적은 없다. 그렇기에 군인은 상시 긴장한다. 고로 언제 다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정해진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군인은 항상 전투를 바로 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몸에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전투식량은 무게에 비해 열량이 상당히 높다. 세계 군대의 평균적 열량은 약 3000칼로리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편의성
전투식량에 있어 편의성은 핵심적인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한 면에서만 발견되는 편의성이 아니다. 소지하기도, 조리하기도, 취식하기도, 정리하기도 모두 쉬워야 한다. 보급반에서 원활히 보급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유사 시 보급이 끊겼다면 자신의 몸에 지녀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에 소지하기 편해야 한다. 되도록 빠르게 먹어야 하기에 조리와 취식이 간편해야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취식 장소를 적에게 들키면 안 되기에 정리하기에도 편해야 만이 전투식량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 할 수 있다.
짠 맛
전투식량 대부분의 음식들은 짠 편이다. 염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이어야 전쟁 중 보존이 용이하다. 그리고 군인들은 전투에 임할 때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땀을 많이 흘려 염분 손실이 올 수 있다. 그리하여 한정된 양으로도 충분한 염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전투식량의 맛은 비교적 짠 편에 속한다.
세계의 전투식량
이탈리아
이탈리아라는 나라만 두고 봤을 때, 이탈리아만큼 색이 뚜렷한 식문화를 가진 나라도 없다. 와인, 파스타, 피자 등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음식들은 전투식량마저도 세계에서 주목받게 끔 만들었다.
이탈리아 전투식량도 현대에 들어서 흐름에 맞게 1끼 비닐팩으로 구성되는 추세다. 그 안에서도 특이점이 발견되는데, 이탈리아 MRE(Meal, Ready-to-Eat) B와 F에는 알코올 40도의 한 잔 분량 술이 포함돼있다. 우리나라 식문화로 치면 반주와 같은 개념일 것 같은데, 왠지 스타크래프트 테란 마린의 스팀팩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 술 때문에 이탈리아 전투 식량이 스페인, 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전투식량'으로 불리는 걸까?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프랑스와 함께 스페인 전투식량은 '세계 3대 전투식량'으로 꼽히고 있다. 이탈리아와 함께 지중해성 기후이자 반도 국가로 문화가 언뜻 비슷하면서도 아프리카와 인접해 독자적인 식문화를 가지고도 있다. 밀덕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스페인 전투식량의 특징은 무엇일까?
스페인 MRE 런치 기준으로 본다면, 스페인 전투식량은 우리나라 사람이 먹기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먼저 국방색과 비슷한 색깔이 눈에 띄고, 통조림 메뉴는 가열하여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발효된 콩으로 만들어진 메인 요리의 경우 흡사 메주 혹은 된장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스페인 전투식량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구성품 안에는 칫솔뿐만이 아닌 소량의 치약도 있어 더 나은 위생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
독일
세계 전쟁 역사에서 독일은 항상 중심에 있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삼국동맹'으로 중심에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나치 독일로 전쟁을 겪었다. 그리하여 독일군은 세계 전투식량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결과적으로 현재에는 전투식량의 발달 결과물과 독일 식문화를 결합한 전투식량을 자국 군인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독일군의 전투식량은 아인만파쿵(Einmannpackung)이다. 가장 눈에 띄는 구성은 역시 독일의 식문화를 반영했듯이, 소시지와 호밀빵이다. 공통 메뉴에 호밀빵이 메인 메뉴로 구성돼있고, 1번부터 5번까지의 비공통 메뉴에 쇠고기 소시지, 맥주로 숙성한 소시지들이 포함돼있어 메뉴만 보고도 독일군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동아시아
우리나라가 속해있는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여러 식문화 중 하나를 꼽아본다면 쌀이다. 우기로도 별로 구별될 만큼 충분한 량의 강수량은 동아시아 나라들이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인간에게 있어 탄수화물은 필수 영양소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추수하기 쉬운 벼는 어떤 형태로든 동아시아인들의 주식이 됐으며 연쇄적으로 동아시아 국가 군대 전투식량에도 반영됐다.
일본 자위대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투식량만 보더라도 단연 메인 메뉴는 밥이다. 자위대에 보급되는 팩형과 캔형에 밥의 비중은 약 1000칼로리다. 이로 인해 '팍크메시'와 '칸메시'라는 별칭이 존재할 정도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2000년대 이후 전투식량은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듯 사이드 메뉴까지 총 12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역시 밥은 필수적으로 포함되며 2009년 개선된 후로는 볶음밥까지 추가돼 전투식량의 다양성을 중국도 꾀하고 있다.
아래 국가 전투식량부터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직접 구매·취식해보았다.
프랑스
소위 '세계 3대 전투식량'으로 불리는 나라 중 마지막 나라 프랑스다. 프랑스 역시 세계화에 성공한 대표음식들이 많다. 바게트와 크루아상으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빵, 그 빵들과 곁들여지는 여러 가지 치즈, 그 빵과 치즈에 역시 곁들여지고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와인까지. 프랑스 요리를 떠올려본다면 자연스럽게 프랑스 전투식량에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군 전투식량의 전부는 아니지만, 프랑스군 전투식량의 특징을 알아보는 데는 부족하지 않은 구성으로 구매해봤다. 먼저 5개의 통조림 메인 메뉴가 있다. 마카로니 잠봉, 치킨 바스크, 오리엔탈 샐러드, 보카쥬 꾸스꾸스, 루게일 소시지 리조또까지.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맛은 역시 한국적인 표현으로 간이 강했다. 하얀색을 띠는 마카로니 잠봉마저도 짠맛이 바로 느껴져 역시 전투식량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마카로니 잠봉 안에 마카로니는 며칠간 물에 불린듯한 식감이기도 했다. 장시간 보관해야 하는 통조림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식감일까?
치킨 바스크, 오리엔탈 샐러드, 보카쥬 꾸스꾸스 이 세 전투식량은 한국인이 쉽게 만족을 느끼지 못 할 생소한 맛이었다. 맛이 있고 없고의 판단이 아닌 쉽게 접하지 못 할 맛이기에 한국인이란 머릿속에 물음표를 먼저 떠올릴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럼에도 적은 양으로 쉽게 배가 차는 느낌으로 다시 한 번 전투식량이 맞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루게일 소시지 리조또는 달랐다. 전투식량이기에 강한 맛과 큼직한 소시지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기분 좋게 취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망스럽지 않은 소시지의 식감과 두께는 모르고 먹으면 하나의 요리, 전투식량으로 인지하지 못 할 정도였다.
그리고 프랑스군 전투식량 메인 메뉴들은 모두 통조림이기에 작은 착화 버너만 있다면 불로 가열해 먹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실제 전투에 적용된다면, 연기가 피어나는 것으로 적에게 위치를 들킬 수 있다는 점과 통조림은 쉽게 처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몇몇의 군사적 한계점을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군 전투식량 안에 메인 메뉴와 함께 포함돼있는 특징적인 구성은 다량의 감미품(甘味品)이다. 실제 우리나라 군인들에게도 오로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전투식량 취식 뒤에 따라오는 감미품의 기쁨은 분명 사기진작에 효과가 있다. 이를 프랑스군 전투식량은 놓치지 않은 것이다.
먼저 초록색 포장의 과일누가바는 언뜻 촉감은 과거 마트에서 자주 보였던 과일향 캐러멜 '새콤달콤'같았다. 맛은 하얀색 부분이 극강의 단 맛을 담당했고 중간중간 씹히는 과일 식감은 다른 종류의 단 맛을 제공해 한껏 기분 좋게 했다.
초콜릿 강국 프랑스답게 프랑스군 전투식량에는 코코아매스 약 70% 이상 함유돼있는 느와르 초콜릿이 포함돼있었다. 코코아매스 약 70% 이상이라는 표기답게 한 때 유행했던 다크 초콜릿의 그 맛이었다. 앞서 맛 본 과일누가바의 강한 단맛을 단번에 달콤씁쓸하게 바꿔주었다.
마지막으로 과육젤리였다. 두 가지 과육젤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라즈베리와 살구였다. 사실 라즈베리와 살구의 맛은 잠깐 느껴지고 주로 느껴진 것은 겉에 뭍은 설탕의 단 맛이었다. 역시 극강의 단 맛이었다. 물론 중간에 느와르 초콜릿을 먹어 입맛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긴 했지만 프랑스군 전투식량 감미품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달았고 만약 전투 중에 취식한다면 단기적으로 강하게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대한민국 국군의 차례다. 국내법상 군수품의 민간 유통은 불법이기에 대한민국 현역 군인들과 예비역·민방위 등 군을 경험한 모든 이들이 맛 본 전투식량을 구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그와 비슷하게 현재 민수용으로 유통되고 있는 전투식량을 찾았다.
먼저 메인 메뉴 중 하나로 원터치 발열도시락을 구해봤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먼저 장점은 쉽게 가열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메인 메뉴가 들어있는 팩을 발열팩 사이에 끼우고 종이각 안에 넣어 위로 솟아있는 고리를 당기면 빠르게 김이 올라와 가열해준다. 하지만 이는 위로 김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선 적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어 그리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이에 대한 고민을 실제 국방부는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도 앞서 말한 동아시아 문화권이기에 탄수화물인 밥이 주식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특유의 비빔밥 방식은 확실한 염분과 맛을 확보할 수 있기에 국군 전투식량으로 자주 차용된다. 물론 비빔밥의 고장인 전주비빔밥과 아니 집에서 나물을 양푼이에 모아 먹는 비빔밥의 질은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마법 소스 고추장은 어떻게든 전투식량을 먹게 만든다. 같이 들어있는 양념 소시지를 물론 따로 먹을 수는 있지만 한국인의 비빔밥은 그런 거 없다. 그냥 다 모아놓고 비벼야 제맛이다. 약간 마른 식감이 거슬리긴 했지만 고추장 앞에 양념 소시지도 그저 한식 반찬일 뿐이었다.
다음 메인 메뉴도 비빔밥이었다. 그러나 조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포장팩 윗부분을 뜯고 뜨거운 물을 일정량 부어 불려먹는(?) 방식인 즉각취식형 비빔밥이다. 앞서 맛 본 원터지 발열도시락과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구성품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즉각취식형 비빔밥에는 비빔밥이란 음식에서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조미료, 참기름이 들어있었다. 참기름을 포장팩에 넣고 안 넣고는 엄청난 맛의 차이를 보였다. 참기름이 섞이고 나서는 비로소 한국인이 찾던 비빔밥의 맛이 됐다. 물론 실제 전투에서 비빔밥도 사치고 참기름을 넣는 것 또한 사치일지 모른다. 모의시식이었음에도 참기름이 함유된 즉각취식형 비빔밥은 국군 전투식량의 수준을 한 껏 높였다. 한식의 마무리는 역시 참기름이었다.
다음은 파운드케이크였다. 2007년 들어 보급 구성에 포함된 파운드케이크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다. 맛 역시 그러했다. 물기도 없으면서 잘 부서지는 내구성은 과연 전투식량으로 적합한지 의문이 들었다. 맛 또한 퍽퍽함의 끝이었다. 미군 MRE에는 단단한 비스킷에 같이 먹으라고 치즈 스프레드라도 동봉돼있지 국군 전투식량 패키지에 파운드 케이크와 함께 먹을만한 전투식량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동떨어진 존재감을 보이는 파운드케이크라면 서둘러 수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굳이 파운드케이크를 다른 방법으로 먹어보겠다고 국군장병들이 몰래 다른 메뉴를 가져온다면 사건사고는 반드시 일기 마련이다. 전투식량 구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국군 전투식량은 레토로트, 즉각취식, 동결건조형으로 크게 3가지로 나뉜다. 3가지 대분류 중에 거의 반드시 들어가 있는 메뉴는 볶음김치다. 국군 전투식량에서 김치가 포함돼있는 이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비빔밥엔 참기름, 반찬엔 김치라는 것은 한식의 불변의 진리다.
공식적인 국군 전투식량 구성에 포함돼있지는 않지만, 물론 함부로 지참해서는 안 되지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실제 전투나 훈련 중 동료 군인들에게 영웅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잇템'이 있다. 전역한 예비군도 훈련 때 대부분 구매하고 만다는 그 ‘잇템’은 바로 맛다시다.
고추나라 맛다시와 산채비빔 맛다시 두 종류를 구매해봤다. 위 메인 메뉴 비빔밥의 고추장은 양으로나 맛으로나 약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두 종류의 맛다시는 이 부족함을 완벽히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채워주는 느낌, 이는 곧 국군 군인 입맛의 기준은 맛다시로 길들여져 있다는 뜻일까? 아주 가끔 맛다시가 생각난다면, 그만큼 확실한 '군필인증'도 없을 것이다.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세계 각국을 지칭하는 별명들이 있다. 러시아는 불곰국, 일본은 성진국, 독일은 맥주국 등. 그렇다면 세계 초일류국이라 자부하는 미국은 무엇일까? 천조국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미국의 국방비가 원화 환산 1,000조에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2021년 기준으로는 약 872조 원에 달함) 그만큼 세계 군대를 논할 때 미국군을 뺼 수는 없으며, 전투식량에도 예외는 아니다.
미군 전투식량을 접해보기 위해 미군 군납 MRE 세트와 흡사하게 구성된 MRE STAR에서 판매하는 전투식량을 구매해봤다. 4종류를 구할 수 있었다. '메뉴 5: 칠리 토르텔리니 위드 마리나라 소스', '메뉴 6: 베지테리안 칠리 위드 빈스', '메뉴 7: 파스타 위드 마리나라 소스 앤드 베기 크럼블스', '메뉴 8: 렌틸 스튜 위드 포테이토스'까지.
미군 MRE STAR 1팩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메뉴 번호와 함께 적혀 알 수 있는 주식, 발열팩, 크래커, 치즈 스프레드, 과일 음료 분말 스틱, 견과류, 오트밀 쿠키, 토르티야, 구운 옥수수, 티슈, 소량의 조미료들, 캔디, 커피믹스, 프림, 소형 칫솔, 숟가락까지. 그래도 가히 한 끼 식사를 감당하는 수준을 넘어 뒷처리 청결까지 챙길 수 있는 구성이다. 이 것이 천조국의 위엄인ㄱ...
메뉴 번호에 따라 크래커·오트밀 쿠키·토르티야, 견과류·구운 옥수수는 무작위로 포함돼며 과일 음료 분말 스틱의 맛도 무작위로 구성된다.
주식을 조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비닐 발열팩에 주식팩을 넣는다. 그 다음 표기된 선만큼 물을 조금 넣으면 곧바로 발열팩이 작동해 끓어오른다. 골고루 조리되는 것을 위하여 발열팩과 주식팩을 담았던 종이팩에 빠르게 넣어야 원활한 조리가 가능하다. 여기에 위아래를 거꾸로 하여 약간 기울이면 골고루 주식이 데워진다.
미군 MRE STAR 주식들의 맛은 프랑스군 전투식량 몇몇의 주식들처럼 상당히 생소했다. 모든 메뉴가 첫 술을 뜨고 입에 넣으면 '이 것이 미국의 입맛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메뉴던간에 동봉된 조미료를 전부 넣지 않으면 다 먹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과 같은 탄수화물 주식이 없어 한국인의 입장에선 크게 부족할 것이란 느낌도 들었다.
의외로 사이드 메뉴는 만족스러웠다. 개인의 입맛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크래커와 치즈 스프레드의 조합은 평소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과자들의 맛과도 큰 차이가 없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특히, 치즈 안에는 향신료가 첨가돼있어 마냥 느끼하지 않고 매콤해서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사이드 메뉴라고 할 수 있는 오트밀 쿠키 또한 맹맹한 맛일 것 같은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첫 인상과는 다르게 속에 배어있는 계피맛은 계속 먹을 수 있게 했고 함께 먹는 커피 또한 진한 향과 맛을 매력으로 가져 오트밀 쿠키와 꽤나 잘 어울렸다.
커피를 마시지 못 하는 사람이라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구성 음료가 있다. 물에 타먹는 과일 음료 분말 스틱이 있는데, 상온의 정수에도 잘 녹고 분말 전부를 부어 녹여도 밀도가 적당해 더운 여름에 마시면 갈증을 풀 수 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미군 MRE STAR에는 후식도 있다. 구성품에 차이는 있지만 이번 구성품들에는 견과류와 작은 캔디를 후식으로 맛볼 수 있었다. 견과류는 흔히 볼 수 있는 견과류 믹스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차이가 1도 없었다. 그리고 작은 캔디는 모양만 달리했지 맛은 초등학교 시절 문방구 앞에서 사먹을 수 있었던 '아폴로'의 맛이었다. 어쩌면 비닐이 없기에 '아폴로'보다 더 먹기 편해서 좋을지도?
미군 MRE STAR는 청결도 생각했다. 처리를 위한 물티슈 뿐만이 아닌 끝에 솔처럼 처리가 된 이쑤시개와 칫솔 그 중간쯤의 기능을 하는 것도 포함돼있었다. 특이점은 물티슈에서 레몬향이 났다는 것이다.
전투식량을 먹을 날이 없기를
이상 주요 국가들의 전투식량 특징과 맛 볼 수 있었던 국가의 전투식량도 살펴봤다. 계속해서 이런 가정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전쟁 중이라면? 내가 총을 든 군인이라면? 과연 모 국가의 전투식량이 가장 적합하고 맛있을까?
가정이 슬펐다. 전쟁이 발발했다는 가정. 그 가정은 일어나면 안 된다. 전쟁은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적이고 수 많은 생명을 죽인다. 물론 나라의 국방력이 강해야 자국민의 안전도 보호된다. 강한 국방력은 바꿔 말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부디 위 전투식량 분석이 무의미하게 생각했던 가정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전투에 투입돼 열악한 상황에서 '전투식량'을 먹을 날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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