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나 화를 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했던 아이들이 있지만 일부는 언제부터인가 불안정해진 아이들도 있어 보호자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아이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는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아이들은 어른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수면이 깊지 않고 섭식도 까다로웠던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기분의 질이 불안정하고 예민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키우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주변 환경을 편안하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충분히 발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 대비 과도하게 예민해진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이를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의 의사소통 방식 살피기

사실 아이들이 자꾸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면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은 부모의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아이들은 백지상태로 태어나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탐색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대상이기에 자연히 대표적인 모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아주 큰 존재이고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상이기에 그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부부간 대화 방식은 어떤가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잘 모방합니다. 둘 간의 평소 대화 방식이 어떠한지, 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서 아이 역시 비슷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그 때문에 부부 사이에 상대에게 자주 짜증스러운 말투를 쓴다거나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한다면 아이도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또 부부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차분히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고성이 오가고 서로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면 아이는 갈등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태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 의사소통 방식을 잘 검토하고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어떤가

부부 간의 의사소통 방식 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거나 매사 짜증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면서 훈계한다면 아이는 이러한 교류 패턴을 익히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와 대화할 때 아이도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낼 수 있고, 나아가 또래들과의 사이에서도 까칠하고 예민한 모습을 보여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가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훈육하는 것은 아이에게 스트레스에 건강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알려주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 상담이 필요할 수도···

이렇게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에게 부모가 가장 먼저 시도해 봐야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부모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혹시나 내가 아이만큼이나 짜증스러운 말투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소한 일에도 너무 불같이 화냈던 것은 아닌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알고 있는데도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는다면 부모 역시 심리적으로 소진된 상태일 수 있으니 병원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부부 간에 약속을 정해 화가 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충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짜증과 화가 많아졌다면 이는 긴 시간 동안 습득되어 온 행동 양식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아이의 행동이 변화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개인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형성되어 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또래 관계 살피기

부모의 영향 외에도 아이에게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또래들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은데,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더라도 또래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혼자 끙끙 앓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속상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꾹 참고 억압했다가 편안한 환경인 집에 돌아오면 억눌렀던 감정들이 사소한 자극에도 튀어나오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이러한 문제들을 부모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부모에게 이야기했다가 일이 커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해 혼자 참고 견뎌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니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주변 친구로부터 정보 얻어

자녀의 친구 문제를 살펴볼 때는 아이에게 직접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반항적으로 나오는 아이에게 직접 묻는 것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화는 아이가 화나 있을 때 하는 것보다 기분이 좋고 차분한 상태일 때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게 좋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아니더라도 같은 반 아이들과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물으면 예상하지 못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추궁하지 않아야 관계 개선

유념해야 하는 것은 아이의 일기장이나 핸드폰, 또는 친구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아이에게 추궁하듯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닌 경우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면서 아이에게 캐묻는 것은 더욱 반감을 일으키고 깊은 갈등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는 ‘다 알고 있으니 말하라’는 압박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정황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걱정이 되어 네 일기장을 보았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등)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정서적인 문제 살피기

그 외에 다른 정서적인 문제들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이 짜증이나 화를 잘 낸다고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많은데,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사춘기를 겪어왔기에 과거를 돌아보면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서적 불안정을 사춘기가 원인이라고 여기며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울적하고 불안한 마음도 짜증이나 화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불안정한 시기가 길게 지속된다면 병원에 가서 정밀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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