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부모가 자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길 만큼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워낙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다 보니 자녀가 너무 미워서 힘들다고 하는 분들도 종종 뵙게 됩니다.

이 경우 부모님은 혼란스러운 심정을 토로하는데 자녀에게 애틋한 마음은 있지만 어떨 때는 얼굴도 보기 싫고, 또 그러다 보니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끼는 복잡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부모-자녀 갈등, 원인은 누구?

이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누구의 잘못일까요?

많은 경우 ‘부모의 잘못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느냐', '아이를 온전히 돌봐주지 못하고 있는 부모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와 자녀 간의 심리적인 갈등은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닙니다. 단지 그 둘 간의 적합도가 좋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친구와 연인 사이에도 잘 맞는 성격적인 적합도가 있듯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합도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의 기질적, 성격적인 경향이 정반대일 경우 별다른 갈등 요인이 없어도 빈번하게 마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의 특성 파악하기

우선 부모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자녀와 갈등이 극심한 부모의 경우 성격적으로 예민한 경향을 타고났을 수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로도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작은 사건에도 쉽게 불쾌해지거나 불안해하면서 과도하게 심리적인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 본인이 계획해 놓은 대로 일이 흘러가는 것을 편안해하고,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나 개인적인 영역이 침범 당할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미숙한 존재인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들이 매우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입니다. 더군다나 아이 역시 쉬운 아이가 아니고 기질적으로 까다롭다면 더욱 힘들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한 부모 본인도 자기 부모와 관계가 그리 편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와 자신의 관계에서 갈등이 빈번했고 그로 인해 부모에게 서운한 마음이 남아있거나 늘 혼났던 자신의 모습이 싫어 과거에 대해 떠올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녀와 갈등이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인다.”, “어렸을 때 나를 보는 거 같아서 더 싫다.”와 같은 표현들을 하시고는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자녀가 본인을 많이 닮았고 그것이 단점처럼 느껴진다면 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 특성 파악하기

이제 아이의 특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극심한 경우 부모 뿐만 아니라 아이도 기질적으로 까다로울 때가 많습니다.

영아기 때부터 깊게 잠을 자지 않고 자주 깨거나 먹는 것도 까다로워서 늘 부모를 힘들게 합니다. 사소한 자극에도 깜짝 놀라거나 한 번 기분이 나빠지면 잘 풀리지 않아 부모를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아이는 부모로부터 부정적인 양육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까다로운 아이를 잘 품어주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양육자였어도 아이를 힘들게 느끼고 쉽게 소진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부모를 모델 삼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지 학습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서 부모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기질적으로도 예민한 아이들이 또 예민한 성향을 지닌 부모를 모델링하다 보면 성장 과정에서 불안정한 면들이 유지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이런 역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면서 지내다 보면 점차 갈등이 깊어지고 아이가 청소년기에 이르렀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부모-자녀 갈등 해결하기

이런 맥락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 역시 어느 정도 성격적으로 예민해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인 면이 있고, 아이 역시 부모로부터 부정적인 양육을 이끌어내는 까탈스러운 면이 있어서 둘 간의 적합도가 아주 좋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운이 좋은 경우 매우 너그럽고 수더분한 성향의 어머니를 만난 까다로운 아이는 어느 정도 자신의 기질적인 약점을 보완하며 큰 갈등 없이 자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민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기질적으로 순하고 밝은 아이들은 부모를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해 원만한 생활을 이어나기도 합니다.

부모 자녀 관계는 친구나 연인처럼 의지에 따라 관계를 맺고 끝낼 수 있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적합도를 이해하고 상호 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중간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정 내에 일관적인 규칙과 경계를 수립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연령 수준에 따라 아이가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규칙을 만들고, 그 범위 내에서 벌어지는 실수나 고집스러운 행동은 참고 품어주려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아이에게 제시했던 규칙은 항상 예외 없이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본인의 기분 상태에 따라 자녀와 규칙을 바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갈등이 심각할 때는 우선적으로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은 일상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전문가 상담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 의식 없는 반복적인 마찰이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나 아이에게 뚜렷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미운 마음과 서운한 마음, 그리고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깊어져 둘 다 마음의 병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정 내에 적절한 규칙을 수립하고 그것에 적응되기까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많은 경우 아이의 심리치료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게 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며, 아이의 심리치료를 통해 부모와 자녀의 문제 모두를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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