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을  기점으로 일주일째  '노미디어(No Media) 육아'를  하고 있다.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는데  막상 해보니 꽤 할 만하다.

우리 가족의 노미디어 육아는 의도치 않게 시작됐다. 텔레비전 리모컨이 없어진 탓이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시간(미리 정해져 있던 시간), 리모컨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갖고 있던 리모컨이었다.

아이들은 리모컨을 원래 자리에 두지 않았고, 심지어는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노는 사이 알 수 없는 구석에 들어갔거나, 어딘가로 딸려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아이들이 놀던 장소와 거실을 싹 뒤졌으나 리모컨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까지 들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텔레비전을 볼 수 없게 됐다.  

사용한 물건을 제 위치에 놓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진 리모컨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다가 없어진 것을 인정, 텔레비전을 볼 수 없게 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우리의 '노미디어 육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일상은 참으로 어이없게 시작됐다. 

텔레비전을 틀어줘야 내가 편한데..
나도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노미디어 육아, 잘 할 수 있을까?

노미디어 육아, 많이 고민한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틀어줘야 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이미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떼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다. 

내 스마트폰에 리모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등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분명 있었다. 리모컨을 새로 구입해도 되고, 텔레비전 본체의 버튼으로 조작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건을 제 자리에 놓지 않은 잘못에 대한 책임은 져야 했다.

셋째 날, 아이들이 유독 싸웠다.
나 역시 신경이 예민해졌다.
'미디어 금단' 현상이었다

노미디어 육아를 시작하고 둘째 날까지는 텔레비전 없이 지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재미가 있었다. 

문제는 셋째 날 터졌다. 아이들이 유독 많이 싸웠고, 또 장난감이며 잡다한 것들을 많이 늘어놓는 것이었다. 나 역시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날은 거의 하루 종일 아이들이 내게 혼이 났던 것 같다. 이유가 뭘까. '미디어 금단' 현상이었다.  

참고 참다 너무 힘들어서 스마트폰을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틀어주니 아이들은 금세 얌전해졌다. 싸우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엄마에게 혼나지 않고 본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늘어져 있는 방 정리도 싹 마쳤다. '이렇게 사이가 좋고, 정리를 잘 하던 아이들이었나' 놀랄 정도로. 

그날 아이들과 절충안을 만들었다. 평일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주말에는 정해진 시간에 엄마나 아빠의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보여주기로 한 것. 아이들의 요청에 1일 1회, 30분의 스마트폰 게임도 허락했다. 단, 할 일을 다 해 놓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함께 정한 규칙이었기에 아이들도 꽤 잘 지키고 있다.

 

텔레비전 대신 놀이나 독서!
챙겨줄 것 많지만 이 정도면 OK!

노미디어 육아를 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셋째 날의 고비를 잘 넘기고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절충안을 만들고 나니 텔레비전 없는 일상이 제법 익숙해졌다. 비록 100% 완벽한 노미디어는 아니지만 텔레비전 집착이 심했던 우리 가족에게 이 정도면 100% 이상의 도전과 성과다.

물론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만큼 장난감을 많이 늘어놓는다. 또 다투는 횟수도 늘었다. 반면 기존에 비해 책을 펼쳐보는 횟수나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 마침 큰 아이가 재밌게 읽을만한 책들도 선물 받아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글씨를 읽는지 그림만 보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책을 펼친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이지 않은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떼쓸 것을 우려했지만 '텔레비전 보고 싶다'는 말에 '그럼 리모컨을 찾아야지~'라고 하면 아이들은 의외로 빠르게 포기했기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주양육자인 내가 해줘야 할 것이 많아진 것은 당연했다. 같이 그림도 그려야 하고, 책도 읽어줘야 하고, 인형 놀이도 해야 하고... 아이들이 나와 하께 하고 싶은 것이 어찌나 다양한지. 잘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처음엔 귀찮고 피곤하게 느껴졌는데 잠깐씩 같이 놀이를 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비록 나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계속 같이 놀아줄 수는 없지만, 많은 육아전문가들이 아이와 놀이하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짧지만 제대로 놀아주려고 한다.  

 

시작은 두려웠지만 도전해 볼 만한 과제

시작이 두려웠던 미디어 육아, 한 번씩 찾아오는 고비만 잘 넘기면 꽤 쉽게 적응되는 일이었다. '텔레비전을 틀어주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서', '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으니까' 망설였는데 이렇게라도 하게 된 걸 고맙게 생각한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 다 잠든 틈에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으로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비록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봐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참에 거실에 텔레비전을 없애고 책장을 놓을까 싶기도 한데 일단은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생각이다.  

미디어는 잘 활용하면 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처럼 아이들이 미디어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미디어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부모라면 과감히 '노미디어 육아'에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내 경험상 시작이 어려울 뿐 생각보다 할만하다. 특히 처음 찾아오는 고비만 잘 넘긴다면 그 이후는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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