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용산역에는 터미널 상가가 있었습니다. 용산역과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었고, 실질적으로 용산전자상가의 입구였습니다. 특징은 아주 활기찼다는 것입니다. “손님! 손님!” 심지어 용산역 개찰구가 여기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 터미널 상가는 2014년 8월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서울드래곤시티라는 최신 호텔이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용산역에서 서울드래곤시티는 어떻게 갈까요? 예전 그 통로를 그대로 씁니다. 구름다리. 구 용산역사도, 터미널 상가도 사라졌지만 정작 살아남은 것은 30년 된 구름다리였습니다. 그런 구름다리가 이제 철거됩니다.

 

사라지는 용산 구름다리

2023년 4월 5일 용산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용산역과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을 잇는 공중보행교(구름다리)를 철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존 구름다리는 전자상가 접근성 강화를 위해 1993년부터 설치됐습니다. 대략 30년 정도 되니 오래 사용했죠.

▲ 사진 출처=용산구청
▲ 사진 출처=용산구청
▲ 2010년 3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10년 3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14년 11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14년 11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16년 11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16년 11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22년 10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 2022년 10월(사진 출처=네이버 로드뷰)

 

기존 구름다리가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2020년 12월 용산전자단지 협동조합과 상인연합회,, 시각장애인협회 용산구지회 등 9개 단체가 기존 구름다리 이용 시 보행이 불편하다고 민원을 기했습니다.

이에 권익위가 기존 노후된 구름다리를 대체할 수 있는 중재안을 마련했습니다. HDC 현대산업개발이 기존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새 다리를 짓는 내용으로 합의됐죠. 완공된 다리는 국가철도공단에 기부채납되고 시설물 유지보수는 서부티엔디(서울드래곤시티 운영사)가 합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그물망 모양의 새 교량입니다. 외벽과 난간도 투명 유리로 처리돼 개방성이 높고, 동선도 직선으로 바꾸고 경사도 1도 남짓하게 완화해 이동 편의성도 높죠.

▲ 사진 출처=용산구청
▲ 사진 출처=용산구청

 

현재 기존 구름다리는 철거 작업에 들어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 우회로가 생겼는데, 주로 자동차로 접근했던 아이파크몰 용산점 달주차장 방향입니다. 조금 돌아가게 된 거죠.

▲ 기존 구름다리는 통행이 금지됐습니다.
▲ 기존 구름다리는 통행이 금지됐습니다.
▲ 공사 기간은 6월 30일까지입니다.
▲ 공사 기간은 6월 30일까지입니다.
▲ 이제는 에스컬레이터 대신 임시 우회도로로 가야 합니다.
▲ 이제는 에스컬레이터 대신 임시 우회도로로 가야 합니다.
▲ 조금 돌아가면 됩니다.
▲ 조금 돌아가면 됩니다.

 

구름다리에 있었던 사람들

구름다리에서 볼 수 있었던 조금 특별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불법복제 CD 판매자, 노숙인, 홀로그램 상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2017년 10월 서울 드래곤시티 호텔이 개장한 뒤 쫓겨나기 전까지 있었죠.

▲ 구름다리 안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참고로 누리꾼이 합성한 어벤져스 2 패러디 사진입니다.
▲ 구름다리 안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참고로 누리꾼이 합성한 어벤져스 2 패러디 사진입니다.

 

불법복제 CD 판매자는 주로 두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인상가와 신용산역을 잇는 굴다리, 그리고 용산역과 터미널 상가를 잇는 구름다리였죠. 판매자 근처에 가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구조였습니다. “어떤 프로그램 찾으세요?” 원하는 프로그램을 말하면 비닐에 싸인 CD를 건네주는 구조였습니다. 가격은 대략 15,000원 정도였습니다.

▲ 사실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샀는지는 결국 집에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 사실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샀는지는 결국 집에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불법복제 CD 판매자에게도 단골이 제법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골이 찾아오는 이유는 놀랍게도 신용 덕분이었습니다. 적어도 불법복제 CD에 엉뚱한 프로그램이 들어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덕분이었죠. 야릇한 동영상이 들어 있는 불법복제 CD를 샀는데 집에 와서 틀어보니 짱구는 못말려가 나왔다는 사례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불법복제 CD도 초고속 인터넷과 P2P 프로그램의 보급에 따라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불법복제 CD 판매자가 단속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단속을 방지하기 위해 감시인이 망을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보통 2인 1조로 움직이게 되죠. 그러다 단속이 나오면 빠르게 도망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손님이 돈을 지불했는데 물건을 건넬 틈도 없이 도망쳤다는 일화도 있긴 합니다.

▲ 돈을 받았는데 물건을 안 주고 도망가면 
▲ 단속이 뜨면 빠르게 도망쳤다고 합니다. 

 

노숙인들은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구름다리 안에 박스를 펼쳐 놓고 누워있었죠. 박스로 요새를 만들고 지내셨던 분도 계셨습니다. 이 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놀랍게도 구름다리 밑으로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구름다리 밑에는 ‘용산 텐트촌’이라 불리는 장소가 숨겨져 있는데, 여기 텐트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보통 낮에는 외출하시고, 밤에 주거지인 텐트로 복귀한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번 새로운 공중보행교가 들어오는 자리에 텐트 자리가 포함돼 2동이 인근 장소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 텐트촌은 이 곳에 있습니다.(사진 출처=카카오맵 로드뷰)
▲ 텐트촌은 이 곳에 있습니다.(사진 출처=카카오맵 로드뷰)

 

마지막으로 홀로그램 상인입니다. 말 그대로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변하는 홀로그램화를 팔았습니다. 용, 호랑이, 금복주 로고 스님 같은 분 말이죠. 호랑이 부부가 지긋이 미소를 짓던 홀로그램이 떠오르네요.

 

마치며

구름다리가 철거되며 용산 터미널 상가의 흔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거기에 기사에서 언급은 안 했지만 게임 전문상가였던 나진 12~13동 두꺼비 상가도 사라집니다. 재개발 사업 때문이죠.

 

사실 PC, 게임, 서브컬쳐의 성지였던 용산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어 가끔 그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용산역에서 내릴 때 재미는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새롭게 변해가는 용산전자상가의 모습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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