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이를 “적당한 것이 없을 때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속뜻은 그렇지만, 사실 닭은 꿩의 열화판으로 취급된다. 속담만 봐도 주인공은 꿩이며, 닭은 조연이자 대체품에 불과하다. 꿩은 예쁘게 생겼고, 야생에 있어 잡기도 쉽지 않으며 맛도 좋다. 반면 닭은 친숙한 외모와 더불어 완벽하게 가축화됐기에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맛은 좋지만, 꿩보다는 덜하다. 즉 닭은 현실과 타협한 선택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외도 있다. 닭의 가격 대비 성능이 꿩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하는 경우다. 특히 PC 하드웨어는 별 기대 없이 골랐던 닭급 하드웨어가 엄청난 성능을 보여줄 때가 있다. 펜티엄2 대신 샀던 멘도시노 셀러론 300MHz, 베니스 3000 대신 팔레르모 2800+, 라데온 9600 대신 변종 라데온 9550, 펜티엄 4 대신 투알라틴 셀러론, 코어2듀오 E6300 대신 펜티엄 듀얼코어 E2160 G0 스테핑, 코어 i7-2600K 대신 코어 i5-2500K 등 수많은 명기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파워서플라이는? 사실 파워서플라이는 크게 돋보이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더군다나 가성비를 고려한다면 선택 시 딱히 고민할 일도 없다. 그냥 그래픽카드 등급에 맞춰 마이크로닉스 클래식 2를 사면 된다. 그런데 하이엔드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보통 80PLUS 골드 이상의 대용량 파워서플라이를 선택하게 된다. 성능은 아주 뛰어나지만, 가격대가 좀 높다. 그렇다면 80PLUS 브론즈 등급의 고출력 파워서플라이가 있다면 어떨까? 새로 나온 지포스 RTX 3080 Ti 탑재 시스템도 무난히 구동하면서 가격도 저렴하다면? 치킨 맛집으로 소문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RTX 30 시리즈에 대한 짧은 이야기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 시리즈는 전작 RTX 20 시리즈보다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권장 시스템 파워 용량도 상향됐고, RTX 3090, RTX 3080의 권장 시스템 파워 용량은 750W에 달할 정도였다. 또한, RTX 30 시리즈를 사용 중인 시스템의 전원이 꺼지는 셧다운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에 굳이 용량에 딱 맞춰 쓰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1,000W 이상의 고효율 파워서플라이를 구매하자는 의견이 대세로 굳어졌다. 덕분에 고출력 파워서플라이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테슬라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한 이후 가상화폐 채굴 붐이 다시 시작됐고, 그래픽카드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 그래픽카드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됐다. 현시점에서 RTX 30 셧다운 현상은 거의 다 해결됐지만, 그래픽카드 공급 부족 사태는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RTX 3080 Ti가 들어와 기존 그래픽카드의 시장가를 낮췄고, 이어 RTX 3070 Ti가 등장한다.두 그래픽카드는 해시값을 제한한 상태로 선보인다. 즉 현 그래픽카드 시장가를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RTX 3080 Ti와 더불어 새롭게 등장할 RTX 3070 Ti를 구입할 계획이라면, 이와 짝을 이룰 고용량 파워서플라이에도 신경 써야 한다.

▲ 좌 RTX 3080 Ti, 우 RTX 3080. 두 제품 다 750W다.
▲ 좌 RTX 3080 Ti, 우 RTX 3080. 두 제품 다 750W다.
▲ 좌 RTX 3070 Ti, 우 RTX 3070. RTX 3070 Ti는 RTX 3070과 달리 750W로 상향됐다.
▲ 좌 RTX 3070 Ti, 우 RTX 3070. RTX 3070 Ti는 RTX 3070과 달리 750W로 상향됐다.

 

브론즈 인증으로 돌아온 캐슬론 M 브론즈

캐슬론 M은 지난해 하반기 마이크로닉스가 선보인 파워서플라이다. 자체 개발한 파워서플라이 플랫폼인 하이브리드-E(Hybrid-E)를 채택해 고효율을 구현했다. CPU 4+4핀 보조전원 케이블, PCI-E 6+2핀 보조전원 케이블에 일반 18AWG 케이블보다 두꺼운 16AWG 케이블이 적용돼 저발열이며 안정성도 높였다.

마이크로닉스 CASLON M 850W 80PLUS BRONZE 230V EU(마이크로닉스 캐슬론 M 850W 80PLUS 브론즈 230V EU, 이하 캐슬론 M 브론즈 850W)는 기존 캐슬론 M 시리즈보다 출력 효율을 높였다. 캐슬론 M 브론즈 850W는 기존 캐슬론 M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80플러스 브론즈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브론즈 효율로 등록됐지만, 실측 시 최대 효율은 90.14%로 확인된다. 이는 실버 등급에 준한다.

 

마이크로닉스가 자체 개발한 하이브리드-E 플랫폼도 주목할 만하다. 동기식 정류 기반으로 다이오드에서 발생하는 전류 손실을 개선해 효율을 높였다. DC to DC 회로 설계로 모든 부품에 유연한 전력 공급 환경을 구현한다. 애프터 쿨링은 전원이 꺼져도 쿨링팬이 돌아 잔열을 제거한다. 특히 2세대 GPU-VR 기술에 주목할 만하다. 파워서플라이에 100% 부하가 인가되더라도 +12V 전압 강하를 억제한다. 즉 칼전압에 가깝다.

 

열 손실을 줄인 16AWG 플랫 케이블과 FDB 쿨링팬

보급형 파워 선플라이는 케이블 색상이 다채롭고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PCI-E 6+2핀 커넥터는 대부분 빨간색이며 연결된 케이블 색상은 노랑, 검정으로 구분된다. 거기에 24핀 전원 케이블은 무지개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색상이다. 이렇게 글로 쓰면 멋질 것 같은데, 사실은 어수선하다. 어지러운 케이블로 국수 파티를 즐기기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 보급형 파워 서플라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이블과 커넥터다.
▲ 보급형 파워 서플라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이블과 커넥터다.

 

캐슬론 M 브론즈 850W는 블랫 플랫 케이블이 적용됐다. 블랙 단일 색상이며 평평하다. 케이블의 자유와 개성 따위는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주 깔끔하며 케이스 내부 정리도 쉽다.

 

추가로 주목할 건 케이블에 16AWG 규격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평범한 파워서플라이가 사용하는18AWG 규격의 케이블보다 내부에 포함된 구리선의 단면적이 증가했다. 18AWG의 단면적은 0.823㎟, 16AWG의 단면적은 1.31㎟이다. 허용 전류가 높아졌기에 더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발열도 낮췄다. 단면적이 작으면 저항 때문에 발열이 증가하는데, 16AWG는 단면적이 높으므로 당연히 18AWG보다 발열이 작다.

▲ 플랫 케이블에 16AWG 규격이 적용됐다. 24핀 전원선은 슬리빙 처리됐다. 깔끔하다.
▲ 플랫 케이블에 16AWG 규격이 적용됐다. 24핀 전원선은 슬리빙 처리됐다. 깔끔하다.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10GB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랜카드에 맞춰 10GB 인터넷 회선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1GB 랜카드에 10GB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면 의미가 없고, 반대로 10GB 랜카드에 1GB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0GB 랜카드에 맞춰 10GB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면 제 성능을 낼 수 있다. 캐슬론 M 브론즈 850W의 고출력도 16AWG 케이블로 전달되기에 안정적으로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있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케이블 커넥터는 총 6종류다. 메인보드에 연결하는 20+4핀 메인 커넥터 x1, CPU 전원 공급용 8+4+4핀 커넥터 x1, 그래픽카드용 PCI-E 6+2핀 커넥터 x2, 저장장치용 SATA 커넥터 x8, 쿨링팬 연결용 IDE 커넥터 x4, 세상 어디선가 쓰일 FDD 커넥터 x1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조립된 시스템 내부를 정리하다 SATA 전원 케이블이 쑥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지할 수 있게 SATA 커넥터에 락킹(고정) 기능을 추가했다. 손으로 눌러서 빼기 전에는 잘 안 빠진다. 또한 IDE 커넥터에도 이지스왑 기능을 추가했다. 손으로 눌러 주면 잘 빠진다.

내부 부품은 어떨까? 대만 TEAPO 사의 105도 캐퍼시터가 탑재됐다. 평범한 파워에 탑재되는 85도 캐퍼시터보다 수명이 4배 길다. 오토 팬 컨트롤러로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팬 RPM이 변화한다. 액티브 PFC로 고조파 발생을 억제한다. 매직 스위치 IC로 무부하시 0mW에 가까운 입력전압을 구현한다. EMI 필터로 전자파 노이즈를 제거하며 트랜스포머로 저발열에 고효율 출력이 가능하다. 알루미늄 방열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쿨링팬. 중요하다. 120mm FDB 쿨링팬이 적용됐다. 대체로 비싼 건 좋은 거다. 그리고 FDB 팬은 쿨링팬(슬리브 베어링, 라이플 베어링, FDB 베어링) 중에서도 비싸다. 즉 FDB 팬은 좋은 거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브 사의 FDB 팬이 적용됐다. 회전 시 마찰을 줄여주는 유체 베어링 기술이 적용됐다. 먼지 유입도 최소화됐고, 오일 누유도 적어 수명이 길다. 그리고 소음이 적다.

 

얼마나 소음이 적을까? 내부 온도가 50도 이하면 아예 팬이 돌지도 않는다. 단, 온도가 그 이상으로 상승하면 자동으로 팬이 회전해 냉각시킨다. 팬이 회전할 때도 점잖게 돌아간다. 시끄러운 건 그래픽카드 뿐이다. 소음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쿨링팬은 쉬러 간다.

▲ 라이젠 9 5900X와 RTX 3080 Ti 시스템에 풀로드를 건 상태에서의 소음. 조용한 편에 속한다.
▲ 라이젠 9 5900X와 RTX 3080 Ti 시스템에 풀로드를 건 상태에서의 소음. 조용한 편에 속한다.

 

애프터 쿨링 기술도 적용됐다. 원래 시스템이 꺼지면 파워도 당연히 꺼진다. 그런데 꺼진 파워 내부에는 열이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꺼질 때 파워서플라이의 쿨링팬만 따로 동작한다면 어떨까? 파워서플라이 내부의 열을 식혀 잔열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면 제품 수명이 증가한다. 애프터 쿨링에 대해 잘 모르면 “뭐시여! 전원이 꺼졌는데 얘는 왜 안 꺼져!” 하고 당황할 수 있는데, 사실은 아주 좋은 기술이니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RTX 3080 Ti도 문제없다

▲ 라이젠 9 5900X, RTX 3080 Ti에서 게임 및 OCCT 테스트 등을 진행했다.
▲ 라이젠 9 5900X, RTX 3080 Ti에서 게임 및 OCCT 테스트 등을 진행했다.
▲ OCCT 전원 테스트 시 소비전력은 대략 557W로 확인된다.
▲ OCCT 전원 테스트 시 소비전력은 대략 557W로 확인된다.
▲ 테스트 시작 후 파워서플라이 내부 온도는 대략 52.2도로 확인됐다. 모니터링을 통해 +12V 전압은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스트 시 전원이 꺼지는 등의 현상도 없었다.
▲ 테스트 시작 후 파워서플라이 내부 온도는 대략 52.2도로 확인됐다. 모니터링을 통해 +12V 전압은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스트 시 전원이 꺼지는 등의 현상도 없었다.

 

가성비 하이엔드 시스템 구성에 잘 어울린다

캐슬론 M 브론즈 850W로 라이젠 9 5900X, 지포스 RTX 3080 Ti 시스템을 무난하게 구동할 수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에서 온갖 옵션을 잔뜩 걸고도 문제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OCCT나 AIDA64 등의 테스트도 별 문제없이 진행했다. 거기에 소음도 적고 온도도 낮다.

RTX 3080 Ti 기반 하이엔드 시스템이라고 해서 꼭 고출력에 80PLUS 인증 등급이 높은 고가의 파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파워를 사용하면 오버클럭 등 극한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맞다. 단 하이엔드 시스템 구성 시 가성비를 고려한다면, 캐슬론 M 브론즈 850W가 아주 좋은 선택지다.

캐슬론 M 브론즈 850W가 12V도 칼전압을 유지하며 내부 부품도 훌륭하다. 과부하 상황에서도 안정적이었다. 하이엔드 시스템 용도로 가성비 좋은 파워서플라이를 사용할 계획이라면 캐슬론 M 브론즈 850W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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