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의 역사를 따져본다면 시각이 상당히 넓게 확장될 수 있다. 숨어있던 원석을 찾는다는 취지라면 1970~1990년대 가요계에 수많은 음악을 공급했던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일 수 있다.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수많은 음악과 가수들을 발굴하고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2009년 엠넷 '슈퍼스타K'로 전설의 시작을 썼고 이후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소재를 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뒤이어 등장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탄생했고 사라졌다. 유난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즌제로 자주 진행됐는데, 우리나라 대중문화 역사에 있어 가장 많은 시즌 수를 자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의 '쇼미더머니'다.

▲ 엠넷 '쇼미더머니 10' 로고

2012년 '쇼미더머니 1'이 세상에 등장했다. 힙합을 소재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그렇게 9개의 시즌을 마치고 2021년 10월 1일, 열 번째 시즌 '쇼미더머니 10'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번 프로듀서 라인업은 GRAY와 MINO의 '그레이노마'팀, Zion.T와 Slom의 '티슬라'팀, 염따와 TOIL의 ‘토나와염’팀, 개코와 코드 쿤스트의 '코코'팀으로 구성됐다. 

'쇼미더머니 10'은 2021년 7월부터 지원자 모집을 시작했는데, 지원자들이 지원 영상을 공개하고 지원 사실을 알리면서 '쇼미더머니 10'에 대한 기대감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익숙한 이름들과 전혀 듣도 보도 못 한 신예 래퍼들도 보였다. '쇼미더머니 10' 정복을 위해 지원한 지원자들 중에서 '쇼미더머니' 목걸이를 프로듀서와 시청자들로 하여금 당당히 받을 것만 같은, '쇼미더머니 9'을 하드캐리했던 머쉬베놈처럼 '쇼미더머니 10'을 누가 우수한 질을 담보할까?

 

 

Don Mills

한국힙합 역사를 되짚어보면, 당대의 한국힙합을 대표하며 세대를 담당했던 레이블들이 여럿 존재했다. 2000년대 초반 마스터 플랜, 신의의지, 한량사 등이 한국힙합의 대표 레이블로서 품질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제공했다. 이후 빅딜 레코드과 소울컴퍼니가 대표 한국힙합 레이블로 성장해 바통을 이어 받았다. 빅딜 레코드의 음악 방향성과 상당 부분 닮아있으며 빅딜 레코드의 핵심 아티스트였던 딥플로우가 수장으로 있는 현 한국힙합 레이블이 비스메이저다.

비스메이저가 딥플로우라는 큰 형님 격 대표 아티스트가 있지만, 비스메이저에 딥플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탄, 오디, 넉살 등 그리고 영화배우로써도 예술적 역량을 넓히고 있는 Don Mills가 이번 '쇼미더머니 10'에 지원했다.

▲ (사진: Don Mills 인스타그램)
▲ (사진: Don Mills 인스타그램)

이미 Don Mills는 정규 음반을 2장을 포함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된 디스코그래피를 18개나 가지고 있는, 갈수록 옅어져 가는 하드코어 한국힙합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에서, 방송 활동을 극히 하지 않는 Don Mills라고 해도 이미 대중들은 Don Mills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이를 마냥 거부할 수 없어 Don Mills는 '쇼미더머니 10'에 지원한 듯하다.

힙합은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됐다. 그러는 와중에 대중성을 1차적인 요소로 여겨 한국힙합이 다양한 힙합의 맛을 잃은 지 꽤 됐다. 빅딜 레코드가 세웠던 하드코어 힙합의 줄기를 잇고 있는 비스메이저의 핵심 아티스트인 Don Mills가 '쇼미더머니 10'에 지원했다는 것은 반드시 한 번쯤은 한국힙합 안에서 자주 듣지 못 한 새로운 힙합을 들려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Don Mills만의 에너지가 엠넷을 뚫고 나올 수 있을까?

 

사포

한국힙합의 전체를 '쇼미더머니'로 본다면 마치 지구 전체에서 하나의 대륙에만 시선을 두는 것과 같다. '쇼미더머니'라는 큰 줄기와는 멀리 있으면서도 자신의 실력과 개성을 앞세워 이름을 높여간 힙합 뮤지션들이 있다. 그 중 대표 격이 사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힙합을 접해온 사포는 '태도'라는 크루를 결성했고 '루키즈 게임'이라는 힙합 공연 브랜드에 참가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갈대와 함께 프로젝트 힙합 듀오 '사포와 갈대'를 결성하기도 했고 이 과정 속에서 사포는 때려 박는 느낌의 공격적인 플로우를 자신의 전매특허로 삼았다.

▲ (사진: 사포 인스타그램)
▲ (사진: 사포 인스타그램)

사포의 가치는 그 지점에서 드러난다. 사포의 랩 한 마디만 들어보면 느낄 수 있다. 현재 한국힙합에서는 이런 랩을 구사하는 래퍼는 없다는 것을. 이 희소가치를 최종 무기로 삼아 현재까지 한국힙합판에서 살아남았고 결국 '쇼미더머니 10'까지 지원하게 된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치는 숨어있던 원석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 있다. 사포의 랩이라면 그 주인공이 되기 적합하다. 서서히 색이 비슷해져만 가는 현재 한국힙합계에서 사포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쇼미더머니 2'에 진출했지만 빛을 보지 못 했던 사포는 '쇼미더머니 10'으로 권토중래를 이룰 수 있을까?

 

얀키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보면 가끔 뜬금없을 때가 있다. '이 래퍼가 대체 왜 지원자로?'라는 황당함(?)을 낳는, 소위 '프로듀서급' 지원자가 꼭 시리즈별로 있었다. 시즌 4의 피타입, 시즌 6의 이그니토, 시즌 7의 차붐, 시즌 8의 지조, 시즌 9의 스윙스 등. '쇼미더머니 10'에선 그 계보를 누가 잇나 했더니 얀키가 지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얀키의 '쇼미더머니 10' 지원에 가장 부담스러워할 프로듀서가 있다. 개코다. 얀키와 개코는 자신들의 힙합 커리어를 거의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얀키가 속했던 TBNY, 개코가 속했던 CB Mass와 다이나믹 듀오는 다수의 피처링을 주고받으며 손수 한국힙합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 (사진: 얀키 인스타그램)
▲ (사진: 얀키 인스타그램)

그렇게 동고동락하던 얀키와 개코가 지원자와 프로듀서의 입장으로 '쇼미더머니 10'에서 만난다. 얀키가 무반주 랩 심사에서 개코를 앞에 두지 않는다 해도 통과하고 60초 팀 래퍼 선발전에서 개코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이 광경이 실현된다면 '쇼미더머니 10'에서 시청률이 급증하는 주요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얀키 역시 많은 암묵적 부름을 받아왔던 래퍼다. 지금의 한국힙합이 있기까지 음악으로 토대를 쌓아왔던 앞 세대 힙합이 가지는 '올드 스쿨'만의 매력을 반드시 이번 '쇼미더머니 10'에서 아낌없이 보여주길 바란다. 한국힙합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닐 것이기에.

 

지구인

앞의 세 명의 래퍼들과는 입장이 다소 다르다. Don Mills, 사포, 얀키가 '쇼미더머니' 팬들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들이라면 지구인은 '쇼미더머니' 시리즈에서 자주 얼굴을 비춰왔다. 시즌 4에서 지구인은 팀 AOMG에 합류해 팀원들과 함께 'RESPECT'라는 음악을 완성했다. 시즌 5에서는 보이비와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재치 있게 재해석해 호평받는 무대를 만들었다. 시즌 6에는 지원자로 참가했지만 무반주 심사에서 가사를 틀려 탈락하고 말았다. 즉, '쇼미더머니' 안에서는 지구인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이런 지구인이 '쇼미더머니 10'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술이란 영역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자신만의 색이 뚜렷해야 한다. 지구인은 사포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 한 플로우,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목소리톤으로 한국힙합계에서 살아남고 있다. 즉, 이 희소성이 여전한 지구인의 재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 (사진: 지구인 인스타그램)
▲ (사진: 지구인 인스타그램)

지구인에게도 '쇼미더머니'에 재도전하면서 목표로 삼고 싶은 한 가지 과제가 있을 것이다. 지구인은 힙합 트리오 리듬파워 소속이다. 다른 멤버 행주는 '쇼미더머니 6' 우승자고 보이비는 '쇼미더머니 5'에서 ‘호랑나비’를 재해석해 개인적 음악 역량에 대한 성과를 냈다. 지구인이 '쇼미더머니 4'에서 목소리를 더해 만들어진 'RESPECT'는 호평을 받았지만 지구인 개인의 역량이라곤 볼 수 없다. 즉, 지구인은 이번 '쇼미더머니 10'에서 리듬파워가 아닌 지구인만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구인만의 희소가치는 아직까지 '쇼미더머니'에게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개인의 동기부여도 충분하다. 즉, 대내외적으로 지구인의 '쇼미더머니 10' 안에서의 활약을 기대된다는 결론에 도출된다.

 

쿤타

힙합이란 대분류 아래 소분류로 나뉠 수 있는 세부 힙합 장르가 여럿 있다. 과거 일리네어 레코즈가 붐을 일으켰던 트랩, 빅딜 레코드와 비스메이저가 궤를 잇고 있는 하드코어, 힙합의 뿌리 장르이며 명확한 박자감이 특징인 붐뱁, 마지막으로 듣는 것만으로 자메이카의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레게힙합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레게를 선보였던 뮤지션들은 많다. 김건모, 룰라, 김흥국, 스컬, 하하 등. 이 이름들 중에서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할 뮤지션이 있으니 쿤타다. 쿤타는 레게힙합이라는 힙합 안에서도 비주류의 음악을 고집 있게 이어가,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뉴올리언스와 함께 만든 'Holding On'이 최우수 힙합 노래에 선정되기도 했다. 레게와 힙합, 그 중심에서 적절한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레게힙합 뮤지션이 쿤타다.

▲ (사진: 쿤타 인스타그램)

쿤타는 이번 지원이 '쇼미더머니'와 첫 인연은 아니다. '쇼미더머니 6'에서 업타운 출신 래퍼 매니악의 무대 'Killin it'에 피처링으로 목소리를 더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남성적인 매니악의 랩에 이어지는 쿤타만의 레게 보이스, 그리고 마지막에 터지는 레게 샤우팅 보이스까지. 매니악뿐만이 아닌 쿤타의 저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Killin it'이었다.

Don Mills와 얀키가 존재감으로, 사포와 지구인이 희소성으로 '쇼미더머니 10'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쿤타는 장르로 '쇼미더머니 10'에 생동감을 부여할 것이다. 하하보다 앞서서 언급돼야 할 한국힙합의 대표 레게 뮤지션 쿤타의 활약이 유난히 '쇼미더머니 10'에서 기대된다.

 

 

한국힙합 그 자체가 돼버린 '쇼미더머니'

드렁큰 타이거와 에픽 하이가 우선적으로 박수받는 이유, 힙합이라는 비쥬류 장르를 고집 있게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결국 입지적 위치에 올라 10개의 정규 음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음악으로만 채워진 '소품종 다량생산' 격의 결과물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의 가치가 충분한 10개의 정규음반 결과물이었기에 박수와 인정을 동시에 받는 것이다.

드렁큰 타이거와 에픽 하이의 뒤를 이은 것이 후배 힙합 뮤지션들이 아닌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인 것이다. 10개의 시리즈를 내면서 수많은 실력파 힙합 뮤지션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했고 힙합을 하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힙합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희망을 심어주었다.(물론 몇몇의 시리즈들은 논란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쇼미더머니'가 10개의 시리즈를 내며 한 가지 확실한 성과를 냈다. 비주류 장르 힙합을 문화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은 것. 시리즈가 계속되며 힙합은 대한민국 문화 중심에 계속 위치할 수 있었으며 '쇼미더머니'만 봐도 당대 한국힙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최초 10번째 시즌을 맞는 '쇼미더머니', 힙합의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쇼미더머니'를 현재 한국힙합 그 자체로 명명하기에 부족함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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