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불러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가수들에겐 자신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김범수나 허각처럼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거나, 소향이나 소찬휘처럼 높은 음역대가 가능하다거나, 윤민수나 김진호처럼 감정 전달에 능하거나, 박상민이나 백지영처럼 음감이 정확하다거나, 이은미나 인순이처럼 표현력이 출중하다면 가수로써 1차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하다. 앞서 말한 매력들만큼 중요한 매력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음색이다.

음색은 다분히 선천적인 면이 있다. 목소리의 색은 후천적으로 변경하기 힘들다. 변경한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목의 상태를 망치거나, 음색을 얻더라도 목 이외의 신체에 해로울 수 있다. 실제로 '야인시대'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OST '야인'을 부른 임강성은 과하게 목을 긁어 불러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고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고백한 바 있다.

여하튼, 어떤 목소리들이 음색이라는 제1의 무기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여 주목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떤 색깔 인지도 직접 들어보자. 

 

 

권정열 : 스토커

권정열의 목소리를 어떤 부류라 분류하기가 어렵다. 분명 진성으로 부르는 것 같으면서도 얇은 소리로 들려 가성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결국은 듣기 좋기 때문에 과거의 10cm가 있었고 지금의 권정열이 있는 것이다. 

2011년 권정열이 윤도현의 'MUST'에서 故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렀다. 다 듣고 나서 윤도현은 "권정열의 창법이 '야한 창법'이란 소리를 많이 듣지만, 그럼에도 매력이 있다"고 극찬(?)했다. 이에 권정열은 "내가 부르면 동요도 19금으로 변한다"고 재치 있게 답했다.

아래 권정열이 부른 '스토커'를 듣고 과연 어떻게 들리는지 느껴보라. 절절한 짝사랑 노래로 들리는지. 아니면 이마저도 굶은 남자의 욕망 노래로 들리는지.

▲ (영상: 유튜브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공식 계정)

 

김슬기 : 샤이닝

김슬기는 가수가 아니다. 본업이 배우다. 아니다. 김슬기는 음원을 발매한 적이 있다. 그럼 가수인가?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김슬기의 음색이다. 김슬기는 차지게 욕 연기를 한다. 발음 또한 정확해 그 욕들이 잘 들린다. 그와 동시 김슬기만의 음색으로 그 욕이 들려 기분 나쁘지가 않다. 

김슬기는 이러한 음색의 강점을 발판 삼아 영화 국제시장 OST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 드라마 우와한 녀 OST '발칙한 녀' 등을 불렀다. 이렇게 다수의 노래를 김슬기가 부를 수 있게 한 계기는, '라디오 스타'에 나와 자우림의 '샤이닝'을 부른 음악 때문이었다. 원곡 목소리 김윤아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김슬기는 '샤이닝'을 열창했다. 김슬기가 '샤이닝'을 몇 소절 부르자마자 그 날 같이 게스트로 나온 김연우는 윤종신을 향해 이렇게 입모양만으로 말했다. "계약해" 

▲ (영상: 유튜브 MBCentertainment 공식 계정)

 

김필 : 청춘

김필은 2011년에 데뷔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김필의 데뷔를 대부분 '슈퍼스타K6'로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김필이 대중 매체에 얼굴을 아니 목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모두가 놀랐다. 무엇에? 김필의 음색에.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남성의 음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늘다기보단 날카롭다는 느낌을 주는 김필의 음색은 '슈퍼스타K 6' 모든 참가자들과 맞설만한 매력이었다. 그렇게 김필은 '슈퍼스타K 6'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얻었다.

그 후, 김필의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각종 음악 방송, 음악 예능, 드라마 OST 가릴 것 없이 김필의 음악은 계속해서 대중들의 귓가에 전달됐다. 수많은 김필의 음악 중에서 김필의 음색으로 음원의 배경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 '청춘'이었다. 산울림이 불렀던 '청춘' 고유의 7080 감성을 현대적으로 김필만의 음색으로 재생산돼 '응팔'이라는 드라마를 상징하는 OST로 남았다. 왠지 모르게 김필이 부르는 '청춘'은 소주를 부른다. 그렇게 김필은 몇몇의 팬들과 포장마차에서 '청춘'으로 즉석 버스킹을 하곤 했다.

▲ (영상: 유튜브 DJ티비씨 공식 계정)

 

바다 :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무한도전'은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까지 총 5번의 가요제를 치렀다. 그 중에서도 2011년에 치러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는 진행부터 음악까지 흠잡을 것 없는 완벽한 가요제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특히나 홍일점으로 참가해 길과 호흡을 맞춘 바다는 S.E.S. 시절부터 뽐내던 오묘하고 몽환적이고도 맑은 음색을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맘껏 표현했다.

당일 무대를 보면 길은 옆에서 피아노 연주로 바다의 음색을 뒷받침했다. 바다는 무대 중앙에서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열창했다. 장소가 서해대교 아래 행담도 휴게소였던 탓인지 밤이 되자 해풍이 불었다. 그 해풍을 맞은 바다의 흩날리는 원피스마저도 바다의 음색을 꾸며주는 듯했다. 바다의 음색을 몇 곱절 아름답게 들리게 한 그날의 무대를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 (영상: 유튜브 MBCentertainment 공식 계정)

 

이설아 : 오늘을 보낸다

故유재하는 살아생전 대한민국 음악계에 획을 그은 것만이 아니었다. 故유재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故유재하의 음악을 기리기 위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1989년부터 열렸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뮤지션인 조규찬, 유희열, 루시드 폴, 스윗 소로우, 김연우, 정준일 등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음악계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제24회 '운다'로 금상을 수상한 이설아는 마치 속삭이는 듯 한 음색을 들려주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설아의 특색은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14' OST 중 하나였던 '오늘을 보낸다'를 불렀을 때 만개했다. '오늘을 보낸다'는 느리고 차분한 곡이다. 이설아의 음색이 더해지니 마치 퇴근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색무취' 느낌의 음색을 가진 목소리가 불렀다면 그저 그런 음악으로 남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설아였기에 '오늘을 보낸다'라는 음악을 살렸다. 오늘 퇴근길에 한 번 들어보라. 상념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 (영상: 유튜브 Sofar Sounds 공식 계정)

 

중식이 : 여기 사람 있어요

세상엔 정말 많은 음악 장르가 존재한다. 그 다양한 음악 중에 특히나 록이란 장르는 하위 분류가 다양하다.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데쓰 록, 헤비메탈 록, 브리티쉬 록 등 셀 수 없이 록의 세계는 광활하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고 싶다. '촌스락'이라고 들어봤는가? 밴드 중식이만 하는 촌스러운 록, '촌스락'. '촌스락'을 들고 나와 밴드 중식이는 '슈퍼스타K 7'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촌스락'이라는 록 음악의 하위 장르에 걸맞게(?) 밴드 중식이 멤버들의 의상은 하나같이 촌스러웠다. 더럽혀진 단화, 추레한 셔츠, 덥수룩한 수염, 뽀글이 파마까지 촌스러웠다. 하지만 음악은 색달랐다. 밴드 중식이의 반주와 보컬 정중식의 음색은 어느 록 음악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목소리였다. 육중한 몸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음색은 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특히나, 밴드 중식이의 대표곡인 '여기 사람 있어요'는 정중식의 음색과 심오한 가사가 어우러져 미묘한 매력을 낳았다.

▲ (영상: 유튜브 엠넷 공식 계정)

 

화사 : Maria

상술한 음색이란 무기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리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뮤지션이라 하면 화사를 빼놓을 수 없다. 

화사는 마마무에 속해있다. 마마무는 보컬과 랩 수준이 뛰어난 걸그룹이다. 마마무의 고음 보컬은 솔라와 휘인이 주로 맡는다. 랩은 문별이 맡는다. 그렇다면 화사는? 고음과 랩이 담당할 수 없는 영역에서 화사는 음색으로 마마무의 음악을 완성한다. 

고음과 랩이 함께해야 했을 때만 화사만의 재지한 보컬이 빛을 발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화사의 음색은 홀로 나섰을 때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Maria'라는 음악에서는 가늘게 부르는 부분과 힘을 주어 부르는 부분 음색은 분명히 같지만서도 매력은 달리 느껴지는 신기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화사는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음색깡패'가 맞다.

▲ (영상: 유튜브 1theK 공식 계정)

 

 

때로는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음색깡패'들의 목소리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하나다. 아름다움. 소리로 들리는 아름다움은 인류가 영원히 음악 없이 살 수 없게끔 한다. 더 나은 예술을 느끼기 위해선 비평도 필요하고 분석도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느껴지는 그대로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 태도를 취할 때가 바로 아름다운 음색을 들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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