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또 하나의 '역주행' 음악이 등장했다. 브레이브 걸스가 2017년 3월 7일에 발표했던 '롤린'이 대한민국 국군장병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힘 입어 4년 만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2021년 3월 8일 현재 네이버, 지니, 멜론, 벅스 등 주요 음원차트에서 1·2위를 다투는 등 '역주행' 음악의 면모를 정확히 보이고 있다.

▲ (영상: 유튜브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공식 계정)

차도에서 '역주행'은 운전자, 다른 운전자, 보행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아주 잘못된 운전이다. 하지만 '역주행'이라는 단어는 대중음악계로 옮겨 온다면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죽은 노래를 살리는 현상을 비유하는 단어로 변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한 의미로는, 사전에 발표됐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 하고 잊히는 줄 알았지만 재조명받아 인기와 화제를 얻는 문화적 현상을 칭한다. 

4년 만에 빛을 본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이 아마 '역주행' 계보에 가장 막내로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롤린'보다 앞서 '역주행' 음악 계보에 이름을 올렸던 곡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 음악들이 재조명받은 계기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김범수 : 보고싶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역주행'이란 개념과 단어가 익숙지 않았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음원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차트를 확인할 수 없었고 스트리밍 감상이 곧 음원 수익으로 직결되는 체계 또한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주행' 현상을 가늠할 수 있었을까?

2002년 '얼굴 없는 가수' 김범수는 정규 음반 3집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보고싶다'였다. 2021년의 시점으로 돌이켜봤을 때 '보고싶다'는 부정할 수 없는 김범수의 대표곡이다. 하지만 발매 당시 지금과 같은 큰 인기를 바로 대중으로부터 얻어내진 못 했다. '보고싶다'가 큰 인기를 얻게 된 건, 2003년 12월 방송된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OST에 '보고싶다'가 사용되고나서부터였다. '천국의 계단'의 주인공들이 격정적인 감정을 나눌 때 어김없이 흘렀던 김범수의 '보고싶다'는 정확히 드라마에 녹아들었다. 그 때부터 국민 발라드 음악 '보고싶다'가 재탄생했다. 

지금과 같이 정확한 수치 상으로 '역주행' 여부를 가릴 수 없지만, 발매되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 다른 계기로 큰 인기를 얻은 '보고싶다'는 '역주행' 사례에 이름을 올릴만하다.

▲ (영상: 유튜브 MBCentertainment 공식 계정)

 

윤종신 : 본능적으로

2010년대 들어 체계적인 음원 수익 시스템이 갖춰지고 '역주행'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윤종신은 1달에 1곡씩 발매하는 '월간 윤종신'을 2010년 3월부터 시작했다. '월간 윤종신'의 2번째 곡이 2010년 5월 6일 발매된 '본능적으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윤종신이 1달에 1곡씩 발매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어떤 곡을 내놓았는지는 대중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10월 8일, 강승윤이 자신의 '슈퍼스타K 2' 마지막 생방송 무대에서 '본능적으로'를 불러 '본능적으로'에 기적의 심폐소생술을 일궈냈다. 항간에는 '강승윤은 왜 탈락하는 날에 '본능적으로'으로 포텐을 터트려 사람 아쉽게 만드냐'는 평가도 일곤 했다. 강승윤 버전 '본능적으로'는 멜론 차트 기준 10월 3주 음원 1위를 기록했다. '본능적으로'는 '월간 윤종신'을 상징하는 대표곡이 됐으며 당당히 5개월의 시간을 '역주행'했다.

▲ (영상: 유튜브 엠넷 공식 계정)

 

크레용팝 : 빠빠빠

원-히트-원더라면 원-히트-원더일까? 대중들이 기억하는 크레용팝의 이미지와 음악은 유일하다. 다섯 명의 소녀가 머리에 헬멧을 쓰고 원색 의상을 입고 5기통 춤을 추는 '빠빠빠'. 이뻐야만 한다는 걸그룹 고정관념을 깬 채 '병맛'의 세계로 대중들을 이끈 크레용팝의 생존전략은 2013년을 강타한 대표 신드롬이었다.

2013년 6월 20일 발매된 '빠빠빠'는 곧바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강타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병맛'스러운 콘셉트가 입소문 타기 시작했고, 발매 2달 뒤에서야 음원 성적으로 빛을 봤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EXO와 조용필에 짓눌려 계속해서 2·3위만 기록하다가, '빠빠빠'는 결국 8월 30일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기세를 몰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부문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크레용팝은 '빠빠빠'로 2013년의 대한민국을 짧고 굵게 강타하고 멤버 탈퇴 및 결혼으로 실질적 해체를 맞이했다.

▲ (영상: 유튜브 MBCkpop 공식 계정)

 

EXID : 위아래

아마 '역주행'이란 음악 용어에 가장 잘 맞는 대표 사례일 것이다. '역주행'하면 EXID를 '역주행'하면 '위아래'를 누구든지 떠올린다.

2014년 8월 27일, EXID는 디지털 싱글로 '위아래'를 발매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EXID도 몰랐고 '위아래'도 몰랐다. 그저 조용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음악으로 사장되는 듯했다. 

2014년 10월 9일, pharkil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튜버가 파주 한마음 위문 공연에서 '위아래'를 부르는 EXID의 하니 직캠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 순간부터 걸그룹 EXID와 음악 '위아래'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 영상은 삽시간에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 퍼져나갔고 '위아래' 역시 차트에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위아래' 활동을 마쳐가던 EXID는 12월 5일 뮤직뱅크에 강제로 컴백하게 됐다. 해가 지난 2015년 1월 8일 엠카운트다운, 9일 뮤직뱅크, 11일 인기가요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위아래'의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역주행'으로 EXID는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고 전국민적 걸그룹이 됐다. 

▲ (영상: 유튜브 pharkil 계정)

 

이애란 : 백세인생

음악의 존재란 대단하다. 음악 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백세인생'은 가수 이애란의 삶을 바꿔놨다.

'백세인생'의 기본 음계는 원래 작곡가 김종완으로부터 1995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러 번의 개사 과정을 거쳐 가사가 입혀지고 이애란에게까지 가 2013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세인생'이 완성됐다.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반복되는 문구와 절절히 부르는 이애란의 표현력이 담긴 짤방이 각종 커뮤니티에 밈화 되어 인기를 끌어 2015년 후반 가요계를 강타하기에 이른다.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이 총선 홍보용 음악으로 사용하려 했을 만큼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이애란은 '백세인생' 전까지 25년의 무명생활을 겪었다. '백세인생'이 히트하고 행사 출연료가 전후 대비 6배나 올랐다고 이애란이 직접 SBS '영재 발굴단'에 나와 밝혔다. 다른 누군가가 몸값이 올랐다면 살짝 배가 아프다. 하지만 이애란은 아니다. '백세인생'에 대중들이 열렬히 응답한 합당한 보상이다. 이렇듯 '역주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 (영상: 유튜브 MBCentertainment 공식 계정)

 

김연자 : 아모르 파티

트로트계에 또 하나 '역주행' 곡이 있다. 얼핏 들으면 트로트 같지 않다. 신나는 EDM 하우스곡 같다. 아마 이렇게 세련된 편곡을 거쳤기에 쉽게 사장되지 않고 '역주행' 한 것이다. 주인공은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다.

윤일상 작곡, '놀면 뭐하니?'의 작신 이건우와 '철이와 미애'의 신철의 작사로 2013년 태어난 '아모르 파티'는 역시나 발매 당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역사의 시작은 3년 뒤 시작됐다. 2016년 7월 김연자는 KBS '열린 음악회'에서 '아모르 파티'를 불렀다. 

방송이 나간 다음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아모르 파티' 복권운동을 시작했으며, 김연자는 비로소 전국민적 트로트 가수로 인기를 얻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이후 MBC '복면가왕'에서도 130대~135대 가왕으로 군림하기도 하여 세대불문 인기 대한민국 대표 트로트 가수가 됐다.

▲ (영상: 유튜브 KBSkpop 공식 계정)

 

신현희와김루트 : 오빠야

인디밴드에게 체계적 홍보란 불가능하다. 오로지 자신들이 창작할 수 있는 예술품의 힘을 믿고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이 희망을 신현희와김루트는 '오빠야' 역주행으로 정확히 보여줬다.

신현희와김루트는 독특한 구성이다. 신현희는 보컬과 리드 기타를 담당한다. 김루트는 베이스를 연주하며 간간히 노래한다. 2인 밴드인 것이다. 이런 배치를 가진 어쿠스틱 듀오는 흔하지 않다. 이러한 신현희와김루트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오빠야'는 각종 여성 BJ들이 리액션용으로 자주 사용했으며, 자연스레 입소문을 타 결과적으로 음원 차트에도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오빠야'는 2015년 2월 26일 발매됐다. 약 2년 후 2017년 1월 20일 '오빠야'는 엠넷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리하야 2월부터 신현희와김루트는 '오빠야'로 2년 만에 강제 컴백 당해 음악 방송 무대에도 올랐다. 이후 8월 3일까지 약 8개월 간 '오빠야'는 각종 차트 TOP 100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핵심은 하나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어쿠스틱 밴드가 고유의 음악을 만들어 시간이 흐름에도 사랑받아 '역주행'했다. 이 현상이 가져온 결과는 현 인디밴드들의 희망과도 같을 것이다.

▲ (영상: 유튜브 KBSkpop 공식 계정)

 

윤종신 : 좋니

'월간 윤종신'은 2017년에도 이어졌다. 2017년에 비로소 '본능적으로'에 견줄만한 '월간 윤종신' 대표곡이 또 하나 탄생했다. '좋니' 역시 '역주행'의 수순을 밟아 세상의 빛을 봤다.

'좋니'는 2017년 6월 22일 발매됐다. 발매 직후에는 큰 반응이 없었다. 각종 차트 TOP 100에 겨우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그렇게 '좋니'는 무난하게 차트 아웃했다.

그러나 '좋니'는 그렇게 단명하지 않았다. 딩고뮤직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부른 윤종신의 '좋니' 라이브 영상이 퍼지면서 '좋니'는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온차트 8~9월 스트리밍 종합 1위를 기록했고, 9월 1일 뮤직뱅크 1위까지 차지했다. 윤종신은 데뷔 27년 만에 첫 음악방송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윤종신은 2017년 무한도전 Q&A 특집에서 "음악시장이 과열된 마케팅으로 공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음악은 가볍게 던지고 반응이 자연스럽게 오길 바랬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음악은 음악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 (영상: 유튜브 딩고뮤직 공식 계정)

 

비 : 깡

'좋니'가 최소한의 마케팅과 고유의 음악으로만 '역주행'을 일궈냈다면, 비의 '깡'은 어쩌면 '좋니'의 반대일지도 모른다. 형편없는 음악과 시대에 맞지 않는 연출 등이 대중들의 놀림감이 돼 화제가 됐고, 이 장난이 음원 성적으로도 귀결돼 '역주행'을 맞은 '깡'은 아주 요상한 사례다.

솔직해져 보자. '깡'이란 음악을 온전히 다 들어본 자가 몇이나 될까. 중간에 끊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을 '깡'은 선사한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에서 느껴지는 오글거리는 가사, 개연을 알 수 없는 안무 구성, 황당하기 그지없는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깡'은 망작이다. 

하지만 망작 '깡'은 망작이었기 때문에 새 생명을 얻었다. 대중들은 '깡'을 보며 기상천외한 댓글놀이를 이어갔고 더 참신한 댓글을 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깡'을 자꾸 더 듣게 돼 '깡'에 중독되는 '1일n깡' 현상이 나타났다. 당사자 비의 대처 또한 현명했다. 비는 더 희화화하고 더 가지고 놀아달라며 '1일n깡' 운동을 독려했다. 

2017년 12월 1일 태생 '깡'은 2년이 지나서야 통계적 성과를 넘어선 문화적 성과로 2019년 후반부터 2020년 상반기를 '깡'신드롬으로 뒤덮었다. 결국 비는 새우깡 광고를 찍으며 '깡'의 문화적 '역주행' 정점에 올라섰다.

▲ (영상: 유튜브 JTBC Entertainment 공식 계정)

 

케이시 : 그때가 좋았어

케이시는 원래 '언프리티 랩스타 3'에 출연했을 만큼 자신의 음악적 시작을 힙합으로 했었다. 하지만 '언프리티 랩스타 3'에선 자신에 맞지 않은 음악색들이 주어졌고 크게 빛을 보지 못 했다. 그리하여 케이시는 보컬 발라드로 선회하기에 이른다.

케이시의 대표곡은 '그때가 좋았어'다. '그때가 좋았어' 역시 '역주행'의 빛을 봤다. '그때가 좋았어'는 2018년 12월 31일에 발매됐다. 케이시라는 인물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었기에 바로 반응을 얻지 못 했다.

하지만 KBS N '연애의 참견 2'의 삽입곡으로 쓰이며 서서히 젊은 층 사이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발매한 지 2달이 지나서야 2월 음원 차트에 30위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3월 이후에는 줄곧 5위 안의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그때가 좋았어'는 2019년 멜론 연간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 케이시의 자타공인 대표 '역주행'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 (영상: 유튜브 케이시 공식 계정)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좋은 예술로 판단하는 여러 근거들이 있겠지만, 좋은 예술이 반드시 보이는 요소 중 하나가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좋은 예술은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음악이 '스테디셀러'로 발돋움하는 과정 중 하나가 '역주행'인 것이다. 

등장하고 나서 바로 주목받진 못 하더라도, 결국 대중들은 좋은 예술을 반드시 찾아내 시대를 초월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한다. 아직 빛을 보지 못 한 시대초월 예비 '역주행' 음악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냥 사장되기 아쉽고 좋은 예술성을 보이는 음악을 샅샅이 찾아내 '역주행'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의 빛을 비춰주자. 그것이 좋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들의 바람직한 태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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