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

유치원생인 남자아이가 한 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법 두터운 과학 잡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책은 아이의 작은 손으로 쥐고 있는 것 자체로도 힘겨워 보였지만 표지가 지루하고 어려워 보여서 유아기 아이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께 내원 사유를 물으니 아이가 아무래도 영재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느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똘똘해지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병원에 오게 된 이유는 아이가 너무 학습에만 몰두해서인지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 돼서라고 부모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재 아이들은 원래 사회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지요. 

실제로 아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과학적인 지식이 상당했습니다. 우주에 특히 관심이 많았고, 어른들도 잘 모르는 생물학적 지식도 뛰어났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가지 과학 지식들을 술술 외우듯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소한 과학 용어를 자주 사용해서 지식의 깊이가 남달라 보였습니다. 

▲ (사진=픽사베이)

아이는 정말로 영재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발달 지연에 속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몰입도가 좋고 학습능력도 뛰어났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는 건강한 발달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부모님의 걱정처럼 사회성 발달이 눈에 띄게 지연돼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또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심지어 부모와의 상호작용 시간도 극히 부족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과학도서나 영상을 보면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신체 발달도 더딘 편이었는데, 여전히 손에 힘이 없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고 숟가락질로 서툴다고 했습니다. 

언어 표현도 독특했습니다. 문장 구성은 훌륭했지만 어투에 리듬이 없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주고받는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한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때문에 검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영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 지능 검사에서도 영역별로 수행의 편차가 커서 전체 지능이 상당히 낮게 산출됐습니다.

영재를 정의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능 검사에서 상위 2% 안에 드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분류 방식입니다. 거기에 더해 또래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뛰어난 창의력과 성취가 관찰됩니다. 

영재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통의 아이들보다 걷고 말하는 등의 기본적인 발달이 빠른 경향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입니다. 즉, 전반적인 발달 영역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앞서나가는 면이 있고,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고 효율적인 면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위 사례 아이의 경우 특정 영역에 대한 몰두로 인해 해당 지식이 많은 것 외에 다른 영역에서의 성취는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융통성이 부족해서 주변의 환경과 풍부하게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결과 발달상의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지요.

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많은 부모님들이 영재의 특성과 혼동하는 부분입니다. 즉, 영재 아이들처럼 전반적인 영역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기보다는 한 영역에서만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인지 및 행동의 유연성도 부족해서 적응 상 어려움이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님들은 부적응적인 측면보다는 뛰어난 능력에 더욱 의미를 둬서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곤 합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아이들의 발달은 전반적인 영역에서 균형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니고 있는 자원을 통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특정 영역에서 남다른 능력을 보이더라도 다른 영역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저조한 수행을 보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면 오히려 발달상의 문제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요즘은 조기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기본적인 지적 수준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때때로 병원에 온 아이들 중에 지능검사를 친숙해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지능검사를 여러 차례 접하기도 하고, 심지어 지능검사를 공부해서 답안을 외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좋지 못한 시도입니다. 아이가 시력검사 전에 시력검사표를 전부 외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아이의 객관적인 지적 수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니 아이의 심리적인 자원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막상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심리적 상태를 적절히 평가하는 것에 방해가 되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사실 영재는 극소수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영재들은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평범한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하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학습 스트레스로 인해 높은 불안, 틱, 학교 거부 등의 부적응을 보여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는 데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학습 활동에 참여하고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게 되기 쉽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학습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심리적인 자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전체 발달 영역이 균형 있게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하고 즐거운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발달을 도모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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