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그게 뭐냐? 지금이 조선시대야?

옛날에는 부모님께 받은 머리카락도 신체의 일부였다. 그래서 소중한 머리카락을 어린 시절 내내 댕기 머리로 묶었다가 나이가 되면 상투를 틀고 비로소 어른이 됐다. 인간이 살면서 거치는 중요한 예식 '관혼상제'에서 첫 번째 '관'의 핵심은 '긴 머리카락'이었다. 현대에 이런 악습은 사라졌다. 이제 청학동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동학대로 뉴스에 나온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짧은 머리'가 기본값이 됐다. 물론 '개성'을 중요시하는 사회 풍조가 퍼지면서 기준이 많이 완화됐지만, 아직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짧은 머리'가 표준이다.

사회에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는 남자를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장발남'은 히피, 락스타, 아이돌, 영화배우 등 멋쟁이들의 전유물이 됐으며, 그게 아니라면 거지나 노숙자 정도로 분류가 된다.


장발의 이유

자기만족

장발의 핵심은 '자기만족'이다. 자유, 반항, 육성과 같은 형태의 욕망을 장발로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사회가 정한 '기본값'이나 '표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골' 들은 장발을 통해 불만과 반항심을 표출할 수 있다. 뭔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삐딱선'을 타며 '내가 낸대!'를 말하는 자유인들은 장발을 통해 자기표현과 만족을 동시에 얻는다.

▲ '낭만'으로 포장된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 '낭만'으로 포장된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멋쟁이
장발은 선택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 많다. 머리카락이 길면 꾸밀만한 '재료'가 많기 때문이다. '긴 머리카락' 자체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지만, 파마나 염색 같은 다양한 변화를 준다면 '멋쟁이'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주목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꿈을 꾼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우리는 그 스타들을 따라 한다. 역사적으로도 멋쟁이의 정점에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장발이었다. 그래서 기른다.

▲ 역사적으로 멋쟁이 슈퍼스타들은 대부분 장발이었다
▲ 역사적으로 멋쟁이 슈퍼스타들은 대부분 장발이었다

자기만족·멋쟁이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단점

털 봐! 털!

장발을 유지하는 건 집에서 장모종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과 같다. 내 스스로가 장모종이 되는 셈이다. 당연히 집안 곳곳에 돌돌이를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베개와 침대 머리맡을 열심히 밀어야 한다. 장발은 털과의 전쟁이다. 집안 곳곳에서 국지도발하며 침투하는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막아야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여름 장마 때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은 더위보다 더 한 고통이다. 참고 참아야 한다.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해서 장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열대야로 뒤척이는 밤,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은 장발을 멈추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항상 머리띠와 밴드를 가까이에 두고 머리 끈은 양 손목에 차고 있어야 한다.

 

냉혹한 현실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싶은 '단발병'이 있고, 남자들은 짧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려는 '장발병'이 있는다. 각각의 치료제는 바로 거울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장발은 현실을 깨닫고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슈퍼스타처럼 뭔가 분위기 있고 멋쟁이가 될 것 같지만, 거울 속의 모습은 냉혹하고 잔인하다. 장발을 해보면 현실을 깨닫는다.

▲ 꿈꾸며 예상했던 미래의 장발
▲ 꿈꾸며 예상했던 미래의 장발
▲ "어. 왔니?" 거울에서 마주한 현실의 장발
▲ "어. 왔니?" 거울에서 마주한 현실의 장발

장발은 '방치형'이 아닙니다

거기서 남자가 살 거는 콘돔밖에 없지 않나?

장발은 단순히 기르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장발을 안 좋게 바라보는 이유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모습 때문이다. 잘 가꾸면 멋쟁이가 될 수 있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거지나 노비가 된다.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발은 '방치형 모바일 게임'이 아니다. 성의가 필요하다. 관리에 필요한 제품을 많이 써보면 써볼수록 경험치가 늘고 레벨이 오른다. 물론 그만큼 '관리비'와 '유지비'가 오른다.

장발을 꿈꾸는 남자들의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고자 몇 가지 제품을 소개한다. 실제로 머리를 기르고 있으며, 콘돔외에도 많은 헤어 케어 제품을 구입한 경력의 필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순수 '내돈내산' 제품임을 밝힌다. 

▲ 도장깨기 하듯이 '하나씩 서본다'로 접근하면 재미있다
▲ 도장깨기 하듯이 '하나씩 서본다'로 접근하면 재미있다
▲ 머리카락에만 사용하는 제품이 벌써 5개다
▲ 머리카락에만 사용하는 제품이 벌써 5개다
▲ 관리는 결국 돈이다
▲ 관리는 결국 돈이다

 


달리프 릴렉싱 샴푸

▲ 달리프 릴렉싱 샴푸
▲ 달리프 릴렉싱 샴푸

'샴푸를 왜 비싼 돈 주고 사?' 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관리'의 영역에 입문하면서 구매한 첫 번째 샴푸. 처음으로 콘돔 대신 구매한 제품이기도 하다. 그전까지 샴푸는 명절에 받은 선물 세트나 1+1 대용량 행사 제품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누나 바디워시나 샴푸는 '향'만 다를 뿐, 성능은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특별한 효과를 체감하긴 어렵다.

그래도 꾸준히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거품 때문이다. 살다보면 부득이하게 오랫동안 머리를 감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평소 사용하던 샴푸 양으로는 거품이 잘 나지 않는데, 이 샴푸는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거품이 많이 생겨서 확실히 묵은 때를 벗기는 느낌이 난다. 

 

닥터그루트 탈모증상 집중케어

▲ 닥터그루트 탈모증상 집중케어 샴푸와 컨디셔너
▲ 닥터그루트 탈모증상 집중케어 샴푸와 컨디셔너

명절 선물 세트로 받은 샴푸와 트리트먼트. 장발은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지지 않게 관리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덜 빠지겠지'라는 기대하며 사용 중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샴푸의 90% 이상이 모두 '탈모 방지' 효과를 달고 있는데, 실제로 의학적 효과는 없다고 한다. 탈모 방지에 가장 확실한 것은 프로페시아와 아보다트의 '복용'이다.

샴푸와 컨디셔너는 각각 따로 쓰는 것이 정석이지만, 귀찮을 때는 반반씩 섞어서 사용한다. 패키지의 색깔 때문에 한약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지만, 철저한 화학적 냄새가 난다. 

 

클로란 아쿠아민트 두피팩

▲ 클로란 아쿠아민트 두피팩
▲ 클로란 아쿠아민트 두피팩

'쿨링'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두피팩. 특히 찬물로 사용하면 정수리가 얼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팩은 화장품 로션과 같은 농도이고, 머리카락이 아니라 두피에 바르는 제품이다. 끝부분이 뾰족해서 두피에 대고 쭉쭉 짜서 마사지 해주면 혈액순환이 된다.

민트의 강력한 향과 함께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라 여름에 사용하면 좋다. 정수리에서 냄새날 걱정을 없애주는 제품이다. 처음 사용했을 때는 굉장히 어색한데, 마치 치약을 머리에 바르는 느낌이다.

▲ 처음엔 비타민 주스같은 건 줄 알았다
▲ 처음엔 비타민 주스같은 건 줄 알았다

 

닥터포헤어 폴리젠 씨솔트 스케일러

▲ 닥터포헤어 폴리젠 씨솔트 스케일러
▲ 닥터포헤어 폴리젠 씨솔트 스케일러

'스칼프'는 두피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붙으면 두피 관리용 제품이다. '닥터포헤어'는 대표적인 헤어 케어 브랜드인 만큼 온갖 형태의 제품들이 있다. 하나씩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단, 생긴 게 다 비슷해서 포장 위에 쓰여 있는 효과를 잘 읽어야 한다. 이 제품도 사실 원래는 뚜껑이 회색인 '케어팩'을 샀어야 하는데 잘못 샀다.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효과가 나쁘지 않아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빨간 뚜껑의 '스케일러'는 샴푸에 가까운 형태다. 이스라엘 사해 소금이 들어있어서 두피의 각질과 노폐물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소금이 머릿결을 상하진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써보면 물에 자연스럽게 녹는다. 거품도 잘 나는 편이라 이틀에 한 번씩 샴푸 대신 사용하고 있다.

▲ 닥터포헤어 제품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잘 읽어봐야 한다
▲ 닥터포헤어 제품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잘 읽어봐야 한다

 

모레모 헤어 트리트먼트 미라클 2X

▲ 모레모 헤어 트리트먼트 미라클 2X
▲ 모레모 헤어 트리트먼트 미라클 2X

착각 끝판왕인 제품이다. 사용 직후에는 찰랑거리며 머릿결을 휘날리는 광고 모델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물론 한번 사용했다고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진 않는다. 꾸준히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 트리트먼트 때문에 좋아졌나?'라는 생각이 한 번쯤은 든다. 머리긴 여성들이 꼭 하나씩 집어 가는 걸 보고 따라서 산 제품.

'트리트먼트'는 태생 자체가 '귀찮음'을 담고 있다. 샴푸 후에 또 머리를 감는 행동을 한 번 더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장발 멋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트리트먼트를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 사용법도 다른 제품들보다 까다로운데 '머리카락 끝에만, 두피에 닿지 않게'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이 제품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쓰고 나면 샤워기, 슬리퍼, 욕실 바닥 모두 미끌미끌해지는 것이다.

▲ 모레모 제품들은 '일시 품절' 스티커가 자주 붙는다
▲ 모레모 제품들은 '일시 품절' 스티커가 자주 붙는다

 

어노브 실크 오일 에센스

▲ 어노브 실크 오일 에센스
▲ 어노브 실크 오일 에센스

'어노브'는 품들은 대부분 염색이나 파마에 상처 입은 '극손상 모'를 캐어하는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에센스 제품이 인기가 많다. 1+1 행사할 때 헐레벌떡 구매했다.

사용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제품이다. 사용하는 아이템 중에 가장 만족감이 높은 제품. 머리카락 말리고 나서 발라주면, 나중에 쓸어 넘길 때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크기도 작아서 하나는 집에 두고, 하나는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비가 오는 날 제멋대로 날뛰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 닥터포헤어와 어노브는 같은 식구라고 한다
▲ 닥터포헤어와 어노브는 같은 식구라고 한다
▲ 저도 세경 누님처럼 되고 싶어요
▲ 저도 세경 누님처럼 되고 싶어요

 

아모스 컬링 에센스 2X

▲ 아모스 컬링 에센스 2X
▲ 아모스 컬링 에센스 2X

'오늘, 나는 아이돌이 된다!'의 욕망이 불꽃처럼 일어날 때 사용하는 제품. 머리를 더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싶을 날 사용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번화가에서 약속이 있는 날 사용하거나, 제대로 한번 튀어보고 싶은 날 사용하기 좋은 일종의 '필살기 템' 이다.

어머니가 다니는 미용실에 따라갔다가 원장님 추천으로 사용하게 된 제품이다. 이걸 바르는 날에는 남성용 스킨 냄새와 복숭아 냄새가 섞여서 독특한 향이 난다. 한동안 쓰지 않다가 코로나 이후로 종종 사용하고 있다. 

 

로제 에코 알로에 코팅 에센스 / 미쟝센 퍼펙트 세럼

▲ 로제 에코 알로에 코팅 에센스
▲ 로제 에코 알로에 코팅 에센스
▲ 미쟝센 퍼펙트 세럼
▲ 미쟝센 퍼펙트 세럼

머리에 광택을 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제품이다. 머리에 광택을 낸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제품. '떡진 머리'를 '뭔가 바르고 관리한 머리' 처럼 보이게 해준다.

단, 이 제품을 쓰는 날은 '최종의 최종'까지 버틴 날이다. 반드시 머리를 감아야 한다. 이 선을 넘는다면 정말로 '노비'나 '거지'와 다를 게 없다.


정성이 중요하다

▲ 놀랍게도 관리를 한 상태가 이 지경이다
▲ 놀랍게도 관리를 한 상태가 이 지경이다

이것저것 많이 쓰고 있지만, 사실 뭔가 극적인 효과를 보는 건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쓰니까 사람 구실을 하지'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바르고 문지르고 있다. '더 좋은 단계'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들짐승이 되는 것을 막는다'의 느낌으로 접근하면, 디펜스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건 귀찮고, 돈도 많이 들고,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회의 틀을 약간 벗어나는 짜릿함, 뭔가를 가꾸고 기른다는 뿌듯함 같은 묘한 감정도 느껴볼 수 있다. 단, '멋쟁이 장발남으로 화려한 재탄생!'같은 건 없다. 연예인이니까 그 정도로 멋진 스타일이 나온다는 걸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장발을 시도하려는 남자들을 위해 조언을 하나 남긴다. 

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머리 기르는 것을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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