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은애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어린이집 등원길이었는데 아이는 평소처럼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 한 대가 코너를 돌면서 빠른 속도로 아이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안돼! 멈춰! 멈춰!!!”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이 또한 소리를 지르면서 멈췄다. 

운전기사는 미처 알지 못했는지 거의 아이를 정면으로 마주치기 직전에서야 정지를 했다. 하마터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일 벌어질 뻔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에 힘이 쫙 풀렸다.

달려가서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트럭 기사를 봤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핸들을 꺾어 가던 길을 갔고, 나는 일단 옆에 있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아이도 표정이 굳어있었다. 내가 “놀랐지?”라고 물으며 안아주자 아이는 “아이! 짜증 나!”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아이도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 (사진=픽사베이)

그런데 ‘어?...’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4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처음 들어본 낯선 말 ‘짜증 나’가 나에겐 꽤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그 트럭이 다가오는 모습과 함께 아이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떨렸지만 아이의 말도 나에겐 꽤 쓰라렸다. 

아이의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를 잘 살펴보면 주로 지내는 양육자의 말 습관과 꽤 닮아있다. 아이의 또래 중 한 아이의 말투가 어르신처럼 구수해서 너무 귀여웠는데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가 키워준 아이였다. 그래서 말투도 구수하고 뭔가 더 귀여운 성숙함이라고 할까, 그런 게 느껴지곤 했다. 그때 양육자의 언어습관을 아이가 당연히 그대로 배운다는 것을 느꼈었는데 아이의 ‘짜증 나’라는 말 앞에서 또 한 번 주양육자의 평소 말투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아이가 놀라고 무서웠을 상황에서 ‘짜증 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은 나 자신에게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일이 잘 안 풀리는데 시간은 촉박할 때 혼잣말로 ‘짜증 나’라고 했던 것이다. 말을 하면서는 몰랐는데 아이는 그 말을 들었고 자연스레 기억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엄마가 겪었을 상황과 비슷한 때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있던 말을 꺼내어 표현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말을 할 때 조금 더 생각을 하게 된다. 경험을 통해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아이는 또 나를 한 뼘 더 성장시킨다. 

▲ (사진=픽사베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감정 조절 능력도 함께 성장한다. 자신의 자율적인 사고에 따라 계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능력인 자기조절 능력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또한 부정적인 정서를 조절하는 것 역시 자기조절 능력에 포함된다. 

이렇게 형성된 자기조절 능력은 유아기 사회적 능력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단체 생활을 할 때 규칙을 지키거나 다른 친구의 감정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은 주양육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즉, 아이는 부모의 행동과 말, 사고방식을 보고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배운다는 것이다. 

결국은 평소 나의 말이 아이에게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짜증 나’는 복잡하고 엉켜있는 마음을 짧고 강하게 표현하게도 하지만, 그렇게 보면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 크게 깨달았으니 더 조심할 일만 남았다. 이것을 계기로 나도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글 = 김은애

두 아이를 키우며 심리치료대학원에서 놀이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육아 관련 네이버 포스트를 운영하며 육아 정보나 육아 관련 글들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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