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추억도 많지만 후회가 남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일들도 참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내가 조금만 참을걸.' 싶은 감정적인 대응들이 떠오릅니다. 

완벽한 양육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일부 노력을 통해 자녀와의 관계에서 상처로 남는 일을 줄이고 상호 간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긴다면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시도가 줄고 대신 여러 가지 선택의 기회를 주게 돼 결과적으로 감정적인 겨루기나 마찰을 줄일 수 있습니다. 

명령보다는 선택권 부여하기

아이에게 하는 말 줄에 명령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큽니다. 식사시간만 해도 그렇습니다. 

"빨리 와서 밥 먹어.", "다 먹고 말해.", "골라 먹지 마.", "앉아.", "어서 먹어."

명령어를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일 아이에게 무언가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명령에 순응하느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스스로 의사 결정하는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변화이지만 명령보다 권유하듯 말하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자율성 발달을 촉진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명령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아이가 잘 순응하지 않아 이전보다 에너지 소모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는 오히려 선택의 시간을 기다리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식탁에서 먹을 거니, 거실 탁자에서 먹을 거니?", "밥 먹을 거니, 국수 먹을 거니?"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이에게 책임을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이득이나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형이랑 같이 먹을 거야? 아니면 그거 다 보고 혼자 먹을 거야? 혼자 먹을 거면 뒷정리는 네가 해야 해."

물론 이 질문의 의도는 아이가 지금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길 바라는 것이지만 아이가 후자를 택하더라도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뒷정리의 번거로움을 경험하면서 이후에는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하고 좀 더 규칙에 가까운 행동으로 스스로 수정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행동의 변화가 생길 때까지 아이의 서투른 뒷정리를 수용하고 개입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은 우리 부모가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때 참지 못하고 뒷정리를 대신해 주게 되면 아이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 수 있습니다. 

부정어보다 긍정어 사용하기

부정어도 명령어만큼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됩니다. 주로 "~하지 마.", "~하면 안 돼." 등의 표현이죠. 부정어는 아이들에게 반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금지된 행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해서 사실상 행동 통제에 별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상호 간에 감정이 상하는 경우는 많지요. 부정어를 긍정어로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습니다. 

"뛰지 마." → "걸어가야지."
"소리 지르지 마." → "작은 목소리로 말해야 돼."
"던지지 마." → "살짝 내려놓아야 안 망가져."

부정어는 어투도 단호하고 언성이 높아지기 쉬운 반면 긍정어는 조심스럽고 유머러스한 어투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듭니다. "소리 지르지 마!" 하고 고압적으로 말하면 아이는 깜짝 놀라거나 입을 삐죽이고, 심통이 나서 괜히 더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반면 "작게 얘기해야지!" 하고 말하면 아이는 스스로 검지를 세어 입에 대고 "쉿!" 하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의 이런 친근하고 이성적인 태도는 아이들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학습하는 좋은 모델이 됩니다. 

답을 제시하지 않고 아이에게 질문하기

많은 경우 아이들과의 대화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유'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성급하게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아이가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 아이가 신발이 벗겨졌을 때 우리는 급한 마음에 "바닥에 내려놓고 신으면 되잖아."라고 아이가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줍니다. 아마도 아이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지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겠지요. 이후 아이는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보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를 바라보기만 하는 날이 많아질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재빨리 답안을 주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심통을 부릴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어른보다 사고의 폭이 넓고 유연해서 흥미롭고 신선한 문제 해결 방식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문제 상황에 당면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거니?", "어쩌면 좋지?", "방법이 없을까?" 물어보세요. 때로는 미숙하고 서툰 대응들로 인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답안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아이가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과 확신이 커질 것입니다. 

아이는 아이의 언어에 더 쉽게 반응하고 협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가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고도 많은 수의 아이들을 쉽게 통솔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과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해서 가볍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하게끔 이끄는 것 말이죠. 어찌 보면 상식적이고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은 조금 더 아이의 언어에 가까운 표현들을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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