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인사 잘 하고 친구들에게 배려 깊으며 솔선수범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억압된 정서 때문에 예의 있는 척하는 아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존중하면서 예의 있는 것과 타인을 의식하는 것 때문에 예의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간단한 사례를 통해 예의 있는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부모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사례

초등학교 1학년인 영희는 똑똑하고 예의 바른 아이다. 어른들에게 상냥하고 무엇이든 솔선수범한다. 그런 영희가 센터를 내원한 이유는 또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친구들이 도덕성에 어긋나는 행동(예를 들어 규칙 지키지 않기, 새치기하기, 어른에게 인사 안 하기 등)을 하면 선생님처럼 돌변해 아이들에게 따지듯이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친했던 친구라도 이런 영희의 태도를 좋아하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영희에게 '잘난 척하는 애'라고 불렀고, 영희는 친구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 학교 생활이 재미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례 분석

jh무엇이 문제일까? 영희가 자라 온 환경을 살펴보자.

영희의 부모님이 영희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예의 바른 아이'였다. 영희의 부모님이 영희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인사해야지.", "규칙 지켜야지.", "양보해야지." 등 예의와 관련된 말이었다. 이렇게 예의를 중요하게 키우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아이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의를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끊임없이 예의에 관한 지적을 받으면서 자란 영희는 예의 바른 아이가 됐을까? 물론이다. 영희는 예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아이가 됐다. 영희의 부모님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영희는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지적을 받아야만 한다는 부모님의 훈육 태도도 학습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희에게는 자신의 기준(자신이 학습해왔던 기준)에서 한치만 어긋나도 자신을 지적했던 부모님의 행동을 모방해 친구들을 지적했고, 그 친구의 사정을 이해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또래 관계에서 선생님 같은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아이는 부모가 강조하는 삶에 대한 가치만 배우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가치를 가르치는 태도, 아동으로서 존중받았던 경험, 실수는 했으나 너그럽게 용서받았던 따뜻함을 기억한다. 자신이 공감 받았던 경험치가 한 겹씩 잘 쌓였을 때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아이가 옆집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 공감적이지 않은 반응

아이: (인사를 하지 않고 쭈뼛댄다)

부모: 어른을 봤으면 인사해야지! 얘가 오늘 따라 왜 이래?

 

- 공감적인 반응

아이: (인사를 하지 않고 쭈뼛댄다.)

부모: OO가 오늘은 쑥스러운 마음이 많이 생기나보네. ⇒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오늘은 인사하려고 쭈뼛거리는 거 봤어. ⇒ 아이의 노력 알아주기.

근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구나. 오늘 노력했으니까 다음번에 인사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 부모가 바라는 태도 이야기해주기.

 

자, 영희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영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예의와 규칙을 어긴 친구가 그것을 어기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욕구를 알아주는 것이다. 즉,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친구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 수준에 이르려면 영희는 먼저 자신이 공감 받고 수용 받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예의를 잘 지키는 '착한 영희'말고 있는 그대로인 영희, 존재만으로도 귀한 영희가 사랑받는 경험이 예의 바르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글=일산하하가족상담센터

저작권자 © 맨즈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